• 미국식 민주 ‘정부 셧다운’,
    누가 감당하나?
    [중국매체로 중국읽기] 미국 양당 간의 필사적 게임
        2019년 01월 14일 04: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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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주: 국경장벽 설치 예산안으로 공화와 민주 양당이 대립한 후, 누구도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의 휴업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미국식 양당 정치의 필연적 논리가 있다고 환구시보의 사설은 진단한다.

    <환구시보 사설 원제목>

    미국식 민주,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2019-01-10 00:20 (현시각)

    남쪽지역의 국경장벽 건설 문제를 둘러싼 미국 양당의 힘겨루기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1월 9일, 미국정부 셧다운 (부분업무 일시 중지-주)이 19일째를 맞지만 교착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요일 황금시간대에 발표한 연설에서, 미국 남부 국경을 따라 국경장벽을 건설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매우 중요하다며, 국회의원들에게 자금 제공에 동의하여 정부 셧다운 사태를 끝낼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의 말이 떨어지자 민주당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하원의장인 펠로시 캘리포니아 의원은 “미국인을 인질로 삼고 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중단하고, 정부 운영을 반드시 재개해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또 다른 민주당 인사도 “우리는 당신들의 중세적 국경장벽을 위해 50억 달러의 대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지만, 줄곧 양당에게 물과 불처럼 서로 화합할 수 없는 문제로 여겨져 왔다. 3년차에 접어든 트럼프에게 국경장벽 건설은 대선공약 이행의 중점이 되었으며, 당연히 민주당은 역량을 집중해 트럼프의 최전방 기지를 총력으로 공격하려 할 것이다.

    국경장벽 문제는 이미 마땅히 건설할 것인가 말 것인가, 돈이 있느냐 없느냐, 또는 돈을 모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명백하게 양당의 신뢰와 각자 민의의 지지가 걸린 큰 문제가 되었다.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은 하원을 장악하고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국경장벽 건설 저지는 그들이 대통령에게 가한 첫 타격에 불과하다. 이는 정당 양극화의 당연한 결과다. 트럼프의 별난 성격이 또 이런 교착상태를 더욱 악화시켜 당파적 대립과 대결을 매우 극단적 방식으로 진전시켰으며, 앞으로 유사한 힘겨루기는 더 많이 그리고 더 심해질 것이다.

    미국 정치체제는 오늘에 이르러선 하나의 문제가 일단 양당 모두에게 승패가 걸린 문제로 인식되면, 원래 본의에서 벗어나 어떤 지지를 위한 지지 혹은 반대를 위한 반대 같은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시합이 이미 시작되었으니 경기장의 정치가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겐 다시 방법을 강구하여 양당의 의견 차이를 봉합할 여유가 없게 되었다. 상대의 매서운 공세에 대해 단지 더 빠른 공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리거나, 혹은 최소한 비기기라도 해야 한다. 이것은 심판이 없이 하는 승부를 가리기 힘든 격투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차원의 도전은 점점 엄중해지고 있지만, 미국식 민주와 정부는 해결 방안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빈부격차와 계층 간 대립이 정당의 분극화를 격화시키지만, 그러나 또 정당의 대립이 이런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양당의 경쟁은 원래 타협을 이룰 수 있는데, 그러나 지금의 양극화는 조금씩 타협의 여지를 좁혀 버렸다. 사회 전체가 점점 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1~2백 년 전에 설계된 국가 기기의 작동도 점점 더 시원치 않게 되어가고 있다.

    이번 국경장벽의 스토리는 확실히 얼마간 일반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심지어는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보통 사람들이 갖게 되는 더 큰 의혹은,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민주체제가 왜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는가라는 것이다. 미국의 상대적 쇠약도 정말 체제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동안 어떤 나라에서 동란이 발생하면 미국 일각에선 금세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질책하였다. 그들은 심지어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 미국식 민주적 기준을 내세워 다른 나라의 문제를 가늠한 뒤 미국의 ‘민주치료 매뉴얼’에 따라 약을 처방하였다.

    미국인은 한층 더 당당하게 자신들의 민주를 전 세계적인 모범으로 묘사하면서 세계 각지에 자신들의 기준을 퍼뜨렸다. 심지어는 군사적인 수단을 동원해 다른 나라의 정권을 교체하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이러한 기준들의 ‘사용범위’를 확장하였다. 비록 이후의 사실이 증명하듯, 이러한 기준들은 종종 그 나라 조건에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워싱턴의 정치시합은 계속되겠지만 관중은 점차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미국의 양당 간 필사적인 게임은 미국식 민주의 필연성과 특수성을 지닌다. 정부 셧다운이 거의 3주째 이르고, 80만 명의 정부부처 요원이 정상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이런 체제는 미국조차도 좀처럼 감당할 수가 없다. 다른 나라, 특히 여전히 발전을 모색 중인 개발도상국은 근본적으로 그것을 배울 수도 쓸 수도 없다.

    필자소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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