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국장님, 한나라가 집권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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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19일 09: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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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께 몇 말씀드립니다.

    서기국장님,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많은 사업들을 하시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노구를 이끌고 광주까지 오셨는데 망월동 국립묘지에서 느끼신 감회도 궁금하지만 우선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몇 자 적게 되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말머리를 꺼내어야 할지 몰라, 그저 두서없이 몇 말씀드리겠습니다.

    천편일률적인 대중집회 연설엔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겠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종석 장관이나 백낙청 선생님께서도 안 국장님께 말씀을 드렸다고 하지만 공식석상에서 많은 말씀이야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하여 어쩌면 그 분들이 드린 말씀에 보충이 될지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하지만, 혹시 중복되는 말씀이 있더라도 양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지난 6월 10일, ‘반일 6.10만세 시위투쟁 8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라는 대중 집회에서 하신 서기국장님의 연설에 대해서는 저는 그렇게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대중 집회의 형식과 내용은 천편일률적이고 수십 년 전부터 되풀이 되어 내려오는 전통이지요. 저희들도 대중 집회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고, 혁신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매번 같은 지루한 연설과 구호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런 대중 집회에서 남쪽의 ‘반동들’에 대한 비난과 과장된 수사들이야 하나의 전통이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거겠지요. 다만 명색이 통일 사업을 하는 민간단체인 조평통의 서기국장께서 연사로 나가실 필요는 없었다고 봅니다. 다음부터는 다른 분더러 연설하라고 사양하십시오.

    그래서 저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6.15가 날아가고 금강산 관광길이 막히고 개성공업지구 건설도 전면 중단되고, 온 나라가 미국이 불지른 전쟁의 화염 속에 훱싸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는 연설의 과도한 수사법에 대해서도 하나의 전통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사가 아니라 이런 발언의 이면에 깔린 인식과 사고방식에 대해서 오히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나라당 집권, 너무 큰일로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선 한나라당이 집권하시는 것을 너무 큰일로 받아들이지 마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민주노동당이 영국노동당을 전범으로 삼고 있는지라 영국의 정당 구조를 빗대어 말씀드린다면) 한나라당이 보수당, 열린우리당이 자유당 같은 성격의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남한의 사회경제적 토대로서 지주나 귀족이 있지 않고 자본가계급, 부르주아지가 단일 지배계급인지 오래이기 때문에 두 당 모두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이 가능했던 것도 바로 남북의 긴장 완화와 평화가 한국 자본가계급 주류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반면, 시대착오적인 반북 대결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극우파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회창 씨가 오히려 자본가계급 주류의 마음과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대변하지 못하고 굳이 말하자면 몰락하는 소부르주아지의 자포자기한 심성을 대변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 일부 사람들이 인색하기 짝이 없는 지원을 일컬어 ‘퍼주기’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아마 더 ‘퍼줄’ 것이라는 점은 이 방면에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남북 대화가 중단되었던 것도 아니고 북한에 대한 지원이 끊겼던 것도 아닙니다.

    제가 통계를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대북 지원이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대북 지원보다 더 많을 겁니다. 그리고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심지어 군인 출신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이루어진 남북기본합의서가 6.15 공동선언보다 더 진전된 내용이었고 오히려 6.15 공동선언이 남북기본합의서보다 후퇴한 것입니다.

    남한 자본의 물질적 이해가 민족애보다 중요한 요소

    예를 들면 개성공단 사업 같은 경우에 어디 북한 경제의 발전을 돕겠다는 순수한 민족애로서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남한의 자본가계급 전체의 물질적 이해가 걸려있는 사업이고 남한의 자본주의의 활로로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 경제가 되살아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니, 서로의 이해가 맞아 서로 득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개성 공단 사업의 진행에 아무런 차질도 없을 것이라고 저는 장담합니다. 아마 한나라당은 집권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회창 씨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집권을 하고 나면 야당인 시절과는 판이한 태도로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한나라당이 그렇게 강조하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 개성공단 사업은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서기국장님은 이러한 남한 정치의 특성을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과 사사건건 여당을 비판하여 국민을 선동하고자 하는 야당과는 크게 다른 듯합니다. 그러나 흔히 야당이 집권을 하고 나면 자기들이 비판하던 여당이 하던 정책을 답습하고 여당이 정권을 잃고 나면 과거 야당이 하던 소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 나라의 보수양당체제인 것입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너무 크게 보시고 있는 것도 저희들은 안타까워하는 점입니다. 민주당이라고 이른바 인권문제나 북핵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민주당이 더 ‘진지하게’ 인권문제나 북핵문제를 제기하고 공화당은 이를 계속 우려먹으면서 국내정치에 이용하려고 하는 불순한 태도를 보인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민주당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것이야말로 순진한 행동이라는 건 민주당 집권 시기에 실제로 발생했던 한반도 전쟁 위기를 돌아보더라도 명백한 것입니다.

    미국 공화당, 민주당 차이 너무 크게 보시지 마십시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이 미우실 겁니다. ‘호혜주의’를 강변하고 인색한 지원을 ‘퍼주기’라고 비판하고, 남의 약점을 예사로 들추어내고, 이른바 북한인권 문제를 들고 나오고, 북한 정치에 대해 막말을 해대는 국회의원들이 여럿 있는 한나라당이 미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밉다고 몸에 좋은 약을 줄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미운 놈은 그저 떡 하나 더 주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조평통은 5월 18일 ‘남조선 동포들에게 고함’을 발표하여 한나라당의 승리를 막으라고 격려하고, 심지어 금강산에서 남쪽 학생들을 만난 누구는 당선 가능한 후보를 위하여 사표가 될 우려를 피하기 위해 민주노동당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밀라고까지 하였다고 하는데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한나라당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왜 자기들이 욕먹은 사실을 자랑하고 소문을 냅니까? 자기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평통이 앞으로 오히려 한나라당의 집권을 도와주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지금까지 이른바 북풍은 항상 보수당(신한국당, 한나라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들, 남한의 진보세력들은 의심해왔습니다. 적대적 의존 관계로서 북한 정권, 또는 북한 정권 내의 강경파는 남한의 보수당, 극우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보수당을 돕는 것은 아닌가라고 의심해왔습니다.

    물론 조평통이나 북한 당국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돕겠다는 명백한 의도나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더 이상 할말은 없습니다. 저로서는 북한 당국의 대남 전략에 대해서까지 시비를 걸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다만 혹시라도 그럴 의도가 아니라고 한다면 앞으로 실제로 한나라당을 도와주시는 우(愚)는 반복하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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