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꿀과 옛사람의 정취
    [푸른솔의 식물생태] 검붉은 단맛
        2019년 01월 14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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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꿀 <Stauntonia hexaphylla (Thunb.) Decne.>은 으릉덩굴과의 상록 덩굴성 식물이다. 제주도와 남서해안에 분포한다. 꽃은 5월에 암수딴꽃으로 한그루에서 핀다. 열매는 장과(berry)로 달걀모양인데 적갈색으로 익고 달며 먹을 수 있다.

    사진1. 멀꿀의 꽃, 충남 외연도

    ​사진2. 멀꿀의 수꽃, 충남 외연도

    사진3. 멀꿀의 열매, 전남 진도

    ​사진4. 멀꿀의 씨앗, 전남 진도

    멀꿀이라는 이름은 정태현과 일본인 이시도야 츠토무(石戶谷勉)가 공저한 ‘조선삼림수목감요'(1923)에 ‘멀ㅅ굴’로 기재되었다가 이후 조선식물향명집(1937)에서 ‘멀꿀’로 기록하여 종(species)에 대한 국명이 되었다. 조선삼림수목감요(1923)는 ‘멀ㅅ굴’이라는 이름을 제주 지역의 방언을 채록한 것임을 기록하였다. 현재에도 제주에서는 방언으로 ‘멍, 멍꿀, 멍줄, 멍쿨’이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제주 방언에서 ‘멍’은 표준어와 마찬가지로 멍(痏)을 의미하고 꿀도 표준어와 마찬가지로 꿀(蜜)을 뜻한다. 그에 비추어 보면 멍꿀은 멍이 든 것처럼 보이고 꿀을 먹는 것처럼 달다는 뜻이므로, 식용하는 열매가 적갈색으로 익고 단맛이 나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론된다.

    그런데 멀꿀에 대한 한글 이름을 기록한 것은 조선삼림수목감요(1923)가 최초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인 1521년경이었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문인화가이었던 충암 김정((金淨, 1486~1521)이 제주에 유배되어 제주의 풍물을 기록한 제주풍토록(1521년 저술 추정)에 그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제주풍토록> 有山果末應 實大如木瓜 皮丹黑 剖之子如林下夫人而異子差大味差濃 盖林下夫人之種而差大耳 聞海南等邊海處或有之 未知信否

    이를 번역하여 보자면 아래와 같다.

    산의 과실로는 멍(末應)이란 것이 있는데 열매의 크기는 모과와 같고 껍질은 검붉다. 이를 쪼개면 씨는 으름덩굴(林下夫人) 열매 같으나, 이보다 약간 크고 맛이 좀 진하다. 대개 으름덩굴의 일종으로서 다소 큰 것이다. 듣기에 해남 등지의 바닷가에도 있다고는 하나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열매의 검붉은 색깔이며 단맛이 나는 것이며 멀꿀이 가지는 특징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제주풍토록을 보면 그 당시에도 제주에서는 한글로 ‘멍’이라 부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자 末應(말응)은 멍을 표현하기 위한 음차로 보인다. 유배 중에 자연과 벗하며 정확하게 관찰하고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자신이 본 것과 들은 것을 정확히 구별하였다.​ 그 묘사와 정취가 사뭇 남다르다.

    김정(金淨), 산초백두도(山椒白頭圖), 종이에 담채, 32.1×21.7㎝, 개인소장

    김정은 형조판서로 조광조와 함께 당대 개혁정치를 이끌었던 문신이자 화가이기도 했다. 그가 그린 산초백두도(山椒白頭圖) 한 점은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산초나무에 노니는 한 쌍의 새를 붓으로 가볍게 스치듯 그렸지만 나무와 새의 종류를 어림잡을 수 있을 정도로 제주풍토록의 기록만큼이나 세밀하기도 하다.

    김정은 조광조와 함께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금산을 거쳐 진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유배지를 옮겨 1520년 8월에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1521년 10월에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하기까지 1년 남짓한 동안 제주도에 머무르며 앞서 언급한 제주풍토록을 남겼다. 그는 사약이 내려진 후 아래의 시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臨絶辭(임절사)

    投絶國兮作孤魂(투절국혜작고혼)
    遺慈母兮隔天倫(유자모혜격천륜)
    遭斯世兮隕余身(조사세혜운여신)
    乘雲氣兮歷帝閽(승운기혜역제혼)
    從屈原兮高逍遙(종굴원혜고소요)
    長夜暝兮何時朝(장야명혜하시조)
    烱丹衷兮埋草萊(경단충혜매초채)
    堂堂壯志兮中道摧(당당장지혜중도최)
    嗚呼千秋萬世兮應我哀(오호천추만세혜응아애)

    외딴 섬에 던져져 외로운 넋이 되었다
    어머님을 두고가니 천륜을 어겼다
    이 세상을 흘러 다니다가 이내 몸은 죽으니
    구름타고 하늘 올라 옥황상제를 뵈올까
    굴원을 따라 높은 곳을 거닐어 보려만
    긴 밤이 어두우니 어느 때나 아침이 오겠는가
    타오르는 붉은 마음이여 풀숲에 묻히는구나
    당당하고 장대한 뜻이 중도에 꺾이었구나
    오호라 천추만세여 내 슬픔을 알리라.

    이때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어쩌면 그의 슬픔이 멀꿀의 검붉은 열매에 어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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