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야무진 말에
맞장구치는 일이 줄다
[밥하는 노동의 기록] 어떤 무력감
    2019년 01월 14일 09: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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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겨울,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한 노동자가 집회 도중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나는 그의 소식을 신문 기사를 통해 알았다. 나는 황아무개라는 그의 이름 옆 괄호 안의 숫자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34, 서른넷.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로 관계를 시작하고 “당신 몇 살이야?”로 싸움을 시작하는 사회지만, 애 키우느라 내 나이도 잊고 사니 남의 나이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서른넷이면 나와 비슷하겠구나 손가락을 헤아리다 알았다. 나는 그와 나이가 같았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나이가 그와 나를 실낱같이 연결했다.

사는 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자기 몸을 투쟁의 도구로 쓰는 것을 보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그저 몸뚱이 하나뿐인데 일을 할 때는 일한다고 몸을 험히 썼고, 싸울 때는 싸운다고 낡은 몸을 더 험하게 썼다. 그것으로 자신과 모든 이들의 노동을 지켰고, 그리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보잘 것 없는 내 노동도 지켜질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나의 방패라 생각했다. 멀게는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앉았던 강주룡부터 가깝게는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까지, 나의 방패는 매일 사라져 갔지만 어쨌든 나는 그래도 내 노동이 어딘가의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같은 나이의 노동자가 몸에 불을 붙였다는 소식이 나를 한없이 불안하게 했다. 이제 나를 지켜줄 방패는 없고 나는 선언만으로 살 수 있는 나이가 아니며, 특히 이 모든 것을 서른넷에야 깨달은 내가 바로 내 삶의 가장 큰 불안이었다. 사람이 게으르면 그 사람의 불안도 게으른 법이다. 나의 불안도 마찬가지였으나 요새 들어 점점 부지런해지고 있다. 세상이 계속 나빠져서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노동자들은 점점 젊어지고 내 아이들은 점점 그 나이에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을수록 잔혹하게 죽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는지 생을 빼앗긴 그들의 몸은 수습할 길이 없을 정도라 했다. 치여 죽고 끼어 죽고 베어 죽었다. 떨어져 죽거나 떨어진 물건에 맞아 죽었다. 물에 빠져 죽거나 불에 타 죽었다. “컨베이어 벨트가 노동자를 죽인다.”는 말은 은유인 줄 알았는데 현실이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크면 하고 싶다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둘째는 흔히 ‘장래 희망’이라 부르는 것이 수시로 바뀌었다. 아침에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가 저녁에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가 그 다음 날에는 마을버스 기사가 되고 싶다가 일주일 후에는 다시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식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수의사, 유치원 선생님, 마을버스 기사의 처우를 알아보았다. 아이가 되고 싶다고 하는 모든 직업의 종사자들은 해가 갈수록 어렵게 살았다.

수의사들은 영리법인과 프랜차이즈 병원의 직원이 되어 매출 압박에 시달렸고, 유치원 선생님은 층층시하 원아 보호자와 CCTV에 옴짝달싹을 못했고, 마을버스 기사는 걸핏하면 해고당했다. 이래서 다들 공무원, 공무원 하는구나 했으나 그 공무원들도 과로로 죽기 시작했다. “나는 나중에 무엇무엇이 될거야!” 아이의 야무진 말에 맞장구쳐주는 일이 줄어들었다. 돈을 버는 일에 대해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날짜 하나의 차이지만 새해가 되었다. ‘희망찬’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연초부터 노동자들은 다시 죽어나간다. 직업이 없으면 돈이 없어 죽고, 직업이 있으면 돈을 벌다 죽는 세상에서 나는 대책도 없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저 밥이나 해먹이면서.

떡국.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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