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 도입하자
    민주주의로 자본주의 규제될까?
    [서평] 우석훈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2019년 01월 12일 10: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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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 대 자본주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 흔히 1인 1표와 1원 1표로 대비되는 것처럼 기본 작동 원리가 다르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자유와 경쟁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배척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시장의 자유가 과도하게 강조될 때 민주주의는 훼손된다. 이 둘 사이에는 숙명적 긴장관계가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와 친화력이 있는 것 같은데 현실에서 그렇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런 주장이 설 바탕을 많이 무너뜨렸다. 좋은 말인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에게 준 채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폄훼하고, 나쁜 단어인 독재를 가져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세웠으니 어쩔 수 없게 됐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일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 또는 헤게모니-를 얘기했어야 한 건 아닌지.

    하지만 이처럼 빤하거나 실익 없는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에서 별로 영양가가 없다. 우석훈이 36번째 책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한겨레출판)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탱 축 가운데 하나인 기업/회사/직장 문턱에서 멈춰서 있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안으로 집어넣어서 조직을 ‘민주화’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기 때문이다. 우석훈은 직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민주적 행태를 그저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할 게 아니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내부 민주주의와 제도가 함께 진화하지 못한 기형적 시스템”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우석훈은 공정, 더 나아가 정의와 경제적 효율까지 보장되고, 돈도 들지 않으면서 한국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질곡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선언한다. ‘직장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그는 ‘직장 민주화’ 운동은 야만의 자본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말한다.

    복지와 직장 민주주의

    사실 우석훈은 2015년에 펴낸 『성숙 자본주의-성숙과 퇴행, 기로에 놓인 한국경제』에서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보여줬다. 산업화-민주화-선진화는 현대 한국 사회의 발전단계를 말하는 널리 퍼진 분류법이었다. 우석훈은 이와 함께 한국 현대 자본주의 발전단계를 개발단계-성장단계-성숙단계로 나누고 이제 우리 사회는 ‘성숙 자본주의’ 단계로 들어설 때라고 주장했다. 성숙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유럽 선진국 사회를 예시하며 ‘인간적 모습을 가지게 된 자본주의’가 그것과 가까운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우석훈이 이번에 내세운 직장 민주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디어 수준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나라인 북유럽 국가들의 경제를 지탱해 주는 두 축을 ‘복지와 직장 민주주의’라고 평가하면서 직장 민주주의의 만만치 않은 현실적 의미와 효력을 강조한다. 또 직장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수직적 질서에서 수평적 질서로, 경쟁 체제에서 협력 체제로 전환 논리를 아담 스미스의 ‘분업론’에서 그 원천을 찾아내는 혜안을 보여준다.

    그는 기업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시장 실패’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업은 “사람들을 모아서 조직을 이루고, 그 안에서는 경쟁을 잠시 정지시키기 때문”이다. 기업은 말하자면 아담 스미스의 ‘분업’을 조직화한 결과물이다. “직원들끼리 경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협동해서 분업하기 위해서 기업을 만든 것이다. 재화를 만들든 서비스를 만들든 사람들은 기업 내에서 하나의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행동한다.”

    왜 직장 민주주의인가?

    이쯤 되면 우석훈의 ‘직장 민주주의’는 개인 아이디어 수준을 넘어 자본주의 경제학 이론의 출발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고, 북유럽 사회 형성의 근간을 이루는 현실에서 그 쓰임새를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경제사회적 의제/과제가 된다. 그는 이런 기본 입장을 밑바탕에 깔면서 ‘직장 민주주의’를 지금 여기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자신의 그의 총기와 노력을 집중시킨다.

    “지금 한국 경제가 이 모양으로 헤매는 것은 직장 민주주의가 딱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경제적 이유로라도 직장에서 지금보다는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가 직장 민주주의의 필요성, 가능성, 효과를 차근차근 분석하고 평가하기에 앞서 먼저 공유하고 싶어 하는 전제는 촛불 혁명의 경험이다. 1995년 이건희가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며 격에 맞지 않는 일갈을 했을 때, 그의 안중에 ‘민도가 낮은’ 국민은 없었다. 이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자기 손으로 이룬 경험을 가진 촛불 국민 눈에는 대기업의 ‘민도’가 많이 이상해 보인다. 민주주의가 부재한 직장에서 민주주의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대한항공 조현민이나 삼성 이재용은 바보가 됐고, 그 바보는 괴물이 됐다. 이들만 그런가? “민주주의 과목에서 회사 오너나 사장들은 물론 부장들까지 너무 공부를 못해서 전 국민의 삶이 고단한 게 우리 형편이다.”

    우석훈이 직장 민주주의를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소박하지만 절실한 것들이다. 출근이 즐겁기까지는 않더라도 덜 괴로운 직장, 여직원이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는 곳, 군대식 모델의 상명하복이 극복된 곳, 수직 구조에서 수평 구조로 바뀐 공간, 내부 경쟁 게임을 협력 게임으로 전환시키는 곳. 이런 곳은 아득히 먼 거리에 있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잘만 하면 손끝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마냥 소박한 것들은 아니다. 권력 자원의 배분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숨어 있는 불량팀장 찾기

    그는 민주주의가 사망한 여러 현장 모습을 소개하면서 세 범주의 직장 민주주의를 설명한다. 팀장 민주주의, 젠더 민주주의, (오너 리스크와) 오너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팀장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직적 위계 조직을 수평적 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사람들은 위계적 조직보다는 수평적 조직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지방선거 이후 자유한국당 보좌관들 중 상당수가 더불어민주당으로 옮긴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됐다.

    우리 사회 전체 민주주의 수준보다 민간 기업의 민주주의 수준은 한참 떨어지며, 이는 직장인 개개인의 불행을 늘리는 문제를 넘어서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데까지 도달했다는 게 우석훈의 진단. 직장 민주주의가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팀장 민주주의를 꽃 피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연상되는 것이 ‘교육’이다. 신임 팀장들을 대상으로 직장 민주주의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개별 기업별 자체 교육이 어려우면 정부가 나서서 이를 지원할 필요가 있고, 필요하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팀장 연수원 같은 교육기관을 만들 것을 우석훈은 제안하고 있다. 현재도 중견기업 이상 대기업은 팀장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우석훈다운 발랄하고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등장한다.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다. 교육, 안전, 환경 등 기업이 특정 부분에서 경영 시스템을 갖추었는지 점검하는 장치인 기업 인증제에 직장 민주주의 분야를 포함시키자는 제안이다. 현재 여성가족부에서 운용하는 가족친화 인증제를 응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직장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조직관리가 품질관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팀장, 나쁜 팀장, 무능한 팀장이라는 분류 사이에 ‘불량 팀장’이 숨겨져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우석훈은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 도입은 유난스러운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한다. 실제 직장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어려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ISO(국제표준화기구)26000이라는 이름으로 표준화가 진행 중이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핵심은 한국 자본주의 운용 방식을 결정하는 사회적이고 철학적 선택일 뿐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를 도입하면 “한국 자본주의의 운영과 성격을 결정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또한 이러한 인증제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 정부 입찰과 조달 제도에 이를 연동시키는 방안을 권고한다. 또한 의무 인증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 또 중앙 부처부터 솔선해서 직장 민주주의를 확립할 것도 제안한다. “청와대라는 직장은 민주적일까?” 검찰은? 법무부는? 감사원은? 청와대와 검사동일체라는 ‘이상한 원칙’을 오랫동안 유지해 온 검찰, 이런 곳부터 직장 민주주의를 이뤄내라, 이게 우석훈의 주문이다.

    마초 자본주의에 갇히다

    ‘질서정연한 바보 짓’을 하면서 자기들이 제일 잘 나가는 사람들인 줄 안다. “(미국 주류 계급인) WASP도 한국 SKY 대학 엘리트들의 굳건함에 미치지 못한다. 일본 도쿄대가 너무 많은 것을 독점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서울대주의 근처에도 못 간다.” 1970~80년대 형성된 군대식 남성 엘리트주의 의식과 이를 자랑차게 실현하는 남성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짓이 최고 실력자들의 행동이라 여기지만 이는 오로지 한국에만 존재하는 바보 짓거리라는 게 저자의 비판이다. 이를 부수는 것이 직장 내 젠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저자는 말한다. “여성 간부를 늘리는 것이 현재로서는 궁극의 직장 민주주의이다.”

    그는 여성 노동을 ‘핸디캡 노동’으로 간주하는 과거의 잘못된 인식이 최근 바뀌는 경향이 있다면서 21세기 들어서 여성 임원 할당제를 도입한 유럽의 나라들을 소개한다. 제도를 시행 중인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 임원 비중이 너무 높다며 역으로 남성 임원 비율도 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생겨날 정도라고 한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크고 좋은 기업의 경영자는 ‘생산성 확보를 위해서라면 지옥까지 갈 존재’들이고, 정부가 여성을 좀 더 고용하라고 해서 그 말을 따르는 고분고분한 사람들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선진 경제를 구가하는 유럽에서는 여성 임원 할당제를 도입하고, 실제로 여성 임원 비율을 높였을까? 민주주의가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면 직장 내 젠더 민주주의 역시 그럴 것이다. 우석훈은 말한다.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에 의미가 있거나, 기업 생존전략에 도움이 되니까 하는 일이다. …… ‘정의’를 실현하는 일과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 초일류 기업들에서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최첨단의 직장 민주주의는 젠더 민주주의이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이런 흐름이 더 강화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경제 최전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굳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마초들의 자본주의’에 우리는 갇혀 있다, 저자가 던지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다.

    오너 리스크와 직장 민주주의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이후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아빠에게 이렇게 물었단다. “아빠, 스티브 잡스는 자식이 없었어?” 기업은 물론 학교도 교회까지 자식에게 물려주는 한국 사회에서 자라나는 새싹들로서는 당연히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겠다.

    2세, 3세로 세습이 당연시 되는 것은 기업은 개인의 것이고,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줬다.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세를 줄 때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대기업 세습을 위한 편법과 불법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다. 삼성의 온갖 범법 행위도 대부분 이 때문에 발생했다. 재벌의 형성과정도 자수성가와는 거리가 있다. 국가의 선별적 특혜로 커온 기업을 불법적으로 자식에게 승계하는 일은 정당성이나 명분으로 볼 때도 비판 받을 일이지만, 현재 상태로 보면 경제 효율 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항공사가 오너 자금줄 대느라 비행기는 제대로 정비조차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의심 받는 현실, 이대로는 정당성도 없고 효율성도 없어서, 국민경제마저 위기에 빠지게 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세습이라는 형식은 봉건성이라는 조직 문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21세기의 왕조시대 유물을 그대로 두고 한국 경제가 발전, 전진한다는 것은 매우 확률이 낮은 게임이다.

    이런 문제를 고치자고 도입한 사외이사제. ‘감시견 역할을 제대로 하라고 만들었더니,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는 오너들의 충성스런 애완견’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유명무실한 사외이사제는 폐지하고 노조 또는 노동자, 소비자와 지역 주민 등 이해 당사자 중심의 이사회를 만드는 게 낫다고 우석훈은 주장한다.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경영 성과 자체를 최적화시키는 과정에 노동자들도 참여하면 회사와 노동자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변해 갈 것이다. 이런 게 유럽의 오래된 회사들이 걸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게 현재로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궁극의 직장 민주주의다.”

    직장 민주주의 위원회 설치를

    우석훈은 오너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직장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밖에도 감사위원회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감사에게 신고 의무를 부여한다거나, 공적 연기금의 활용 방안 등을 제시한다. 이 역시 처음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 공적 연기금의 적극적 개입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직장 민주주의라는 상 위에 중요한 메뉴로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우석훈은 ‘직장 민주주의 위원회’ 설치를 제안한다.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와도 연결된 사안인데, 입찰과 조달 연구비 지원 등을 조건으로 직장 민주주의 위원회 설치를 필수 전제로 요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업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사전 과정이 필요하다면 정부가 나서서 만들어라, 법을 크게 바꿀 필요도 없고, 대통령령이나 장관 고시도 필요 없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결심하면 된다, 이후 오너 있는 대기업과 이어서 중소 규모 기업까지 도입하면 된다, 한 번 해보자. 이게 우석훈의 제안이다.

    “각 부처별로 직장 민주주의가 향상되게 절차를 개선하고, 무슨 일을 했는지 매년 보고서를 만든다면? 또 직장 민주주의 성과지표에 장관들의 연봉 성과급을 연동시킨다면? 확실히 국민 모두 살기가 좋아진다. 공무원 특히 하위 직급의 공무원들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 직장 민주주의’ 제목의 장에서 공영방송 KBS, 아시아나 항공, 병원, 학교, 삼성, 서울우유 협동조합, 카카오, 여행박사 등 구체적인 직장이나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노동조합 일상 활동 중 하나로

    우석훈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88만원 세대』의 부제는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이다. 그는 자신은 ‘희망’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책에서는 직장 민주주의가 희망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희망의 씨앗을 뿌리다’라는 소제목도 있다. 이런 대목도 있다.

    “내가 직장 민주주의가 우리가 같이 일굴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마지막인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일해야 먹고사는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경제가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거의 유일한 디딤돌인 듯싶다.”

    이 책에서는 직장 민주주의를 이룩할 주체로서 노동조합의 역할을 풍부하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유럽에서 직장 민주주의 역사는 노조 발전사와 대체로 일치한다고 설명한다. “노조의 영향력이 점점 높아져서 결국에는 노동부 장관 정도를 넘어 대통령을 만들어내고, 전격적인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국가 복지를 기본 정책으로 하는 사회민주주의로 가는 역사와 같다.”

    노동조합의 중요한 일상 활동으로 ‘내 직장 민주화’ 사업을 실천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만하다. 개별 사업장을 넘어서 산별이나 전국 조직에서도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마침 일부 노조에서 이 책을 읽고 저자 초청 강연을 요청한다니 잘 된 일이다.

    민주주의 대 자본주의에 대한 다른 시각

    민주주의로 자본주의를 ‘규제’하자는 우석훈의 생각은 이 프로젝트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입장과 함께 검토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노란 조끼의 프랑스와 굴뚝 농성의 대한민국은 시민 주권을 중심에 놓는 헌법을 가지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다. 하지만 이보다 우위에 있는 현실적인 힘, 주권 시민보다 우위에 있는 자본가를 받쳐주는 체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규제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뜯어 고쳐 다른 체제를 만들어 가는 동력이어야 한다는 입장 말이다.(장석준) 이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석훈이 직장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이 다행스럽게도 돈도 들지 않고, 회사에서 ‘그냥’ 하면 된다고 말했을 때, 다소 안일하고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권력 배분의 방식을 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돈은 들지 않더라도 돈을 나누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과 관련 회사 쪽에서 ‘그냥’ 하기에는 어려운 중요한 권력 이슈가 아닐까? 또 만약에 회사가 그냥 해 주는 정도의 민주주의라면 마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정도로 끝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그가 쏘아 올린 ‘직장 민주주의’는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핫이슈’로 떠올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쁜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말로 하지 않아도 벌어지지만, 좋은 일은 말로 떠들어 대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 우석훈은 아마 이 책을 읽고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수다 떠는 직장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랄 것이다. 한국 경제를 위해서, 인간 얼굴을 한 성숙 자본주의를 위해서.

    직장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술자리에서 가장 질긴 안주로 등장하는 직장의 비민주적 행태를 씹으면서 잔을 들어 올릴 때, ‘직장 민주화 동지’들과 생맥주 각 한 잔 값을 아껴서 이 책 한 권을 사는 건 어떨까? 돌려 읽고 난 다음 다시 생맥주 마시면서 씹는 ‘직장 민주화’ 이야기는 그 전과는 많이 다를 것으로 확신한다.

    필자소개
    도서출판 <레디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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