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똘마니들이 내 뒤를 밟지 말게 하쇼"
    2006년 06월 19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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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 등으로 20세기 미국 현대문학의 거대한 산맥으로 불리고 있는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 1902∼1968). 그는 평생동안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빈민과 노동자의 삶을 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승산없는 싸움(In Dubious Battle)>에서 그는 파업을 조직하는 공산주의자들을 객관적으로 묘사했고 <분노의 포도>에서는 경제 대공황 시기 농업기계화에 밀려 서부로 향하는 조드 일가의 가난과 분노를 전하며 미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했다.

노동자, 빈민들의 삶 직접 체험

   
 

스타인벡은 1902년 2월 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샐리너스에서 아버지 존 언스트 스타인벡 3세와 어머니 올리브 해밀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캘리포니아의 가장 중심적인 농업지대인 샐리너스 계곡 주변은 이후 <생쥐와 인간들>, <승산 없는 싸움>, <분노의 포도> 등 주요작품의 배경이 된다.

스타인벡은 1920년 스탠포드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강의를 듣는 대신 목장, 도로공사장, 목화밭, 제당공장 등에서 노동을 하는 시간이 많았다. 스타인벡이 노동자와 빈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기간 동안 사회의 밑바닥과 그곳에서 노동하고 생활하는 서민들의 생활을 몸소 경험했던 탓이었다.

대학시절 교내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는 스타인벡은 1925년 23살의 나이로 대학을 자퇴한 후 작가가 되고자 2백 달러를 들고 뉴욕으로 떠났다. 하지만 작가로서 성공하기까지 스타인벡은 오랜 기간 실패를 거듭했다.

1932년까지 아무런 책을 출판하지 못한 스타인벡은 이 해 <하늘의 목장>을 시작으로 이듬해 <미지의 신에게> 등을 출간했지만 비평가들의 평가도 시원치 않았고 판매도 부진했다.

파업소설 <승산없는 싸움>으로 명성

1936년 1월 그의 첫번째 정치소설이자 파업소설인 <승산없는 싸움>이 출간되면서 스타인벡의 작가로서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조직가인 맥이 사과밭 과수원 노동자들의 파업을 조직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이 출간되자 스타인벡은 미국의 우익으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견딜 수 없는 착취를 당해온 노동자들의 투쟁을 묘사해 공산주의자들의 동정을 끌어모으려 했다는 비난이 나왔다. 하지만 <승산없는 싸움>은 캘리포니아 커먼웰스 금상을 받았고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스타인벡 연구자들은 <분노의 포도>가 출간되지 않았다면 이 작품이 스타인벡의 대표작이 됐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1930년대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창한 뉴딜정책이 시행되는 시기이자 숙련공 중심의 직업별 노동조합인 미국노동총동맹(AFL)에 맞서 산업별 노조 조직화를 강조한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의 활동으로 미국에서 노동조합원이 급격히 증가하는 시기였다.

1935년부터 1937년까지의 2년 동안 노조 조직율은 10%에서 20%로 두 배 이상 뛰어 올랐으며 그에 힘입어 노동운동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시대상황을 놓치지 않고 소설로 쓰기 시작한 스타인벡은 1937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향했는데 이 경험이 <분노의 포도>의 집필동기가 됐다. 캘리포니아 농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애환과 분노를 접한 스타인벡은 조드 일가의 역경을 그린 <분노의 포도>를 1939년 발표했다.

<분노의 포도>, 여러 주에서 금서 판정

   
▲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 <분노의 포도>

토지 소유주인 은행에 의해 농장을 빼앗긴 조드 일가가 캘리포니아를 향해 1천8백 마일에 달하는 서부 대장정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에서 스타인벡은 미국의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탄압하는 지주, 은행, 경찰을 고발하고 노동자들이 단결해 파업에 돌입하는 과정을 그렸다.

당시 미국사회에서 작가로 성공하기 시작한 스타인벡은 이 작품의 출간으로 인해 지독한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혔다. 흥행에도 실패할 우려도 있었지만 그는 미국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그리고 그 안에서 연대를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확보해가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길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스타인벡이 이 소설을 들고 출판사에 찾아갔을 때 출판사에서는 조금 부드럽게 손질을 보자고 제안했으나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책이 출간되자 <승산없는 싸움> 출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다. <분노의 포도>는 배경이 된 오클라호마주를 비롯해 여러 주에서 금서 판정을 받았고 도서관·학교 등에서 구입이 금지됐으며 분서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초판이 50만 부나 팔릴 정도로 미국의 독자들은 이 소설에 주목했다. 스타인벡의 고발을 통해 미국사회에서는 캘리포니아 이주노동자들의 생활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이 때부터 스타인벡을 ‘주의인물’ 명단에 올려놓았다. 나중에 공개된 1백20쪽 분량의 파일에 따르면 당시 연방수사국에서는 스타인벡을 공산주의자로 의심하는 한편 그의 작품이 나찌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반미선동에 사용될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개된 파일에는 스타인벡이 공산주의자 색출로 악명 높았던 에드거 후버 연방수사국장의 감시에 항의하면서 프란시스 비들 법무장관에게 보낸 편지가 들어있다. 스타인벡은 이 편지에서 "에드거의 똘마니들이 내 뒤를 밟지 않게 해줄 수 있겠소? 짜증이 나는군요"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작가동맹, 인민전선에서 활동

스스로를 공산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로 규정한 적은 없었지만 그는 <분노의 포도>를 썼을 당시에 인민전선(Popular Frontist) 당원이었다. 인민전선은 1935년 공산주의인터내셔널(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파시즘에 대항한 비공산당 좌파와의 동맹을 결성하기로 하면서 국가별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미국공산당도 산업별노동조합회의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대중운동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공산당과 인민전선의 활동은 1939년 히틀러와 스탈린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으면서 급속도로 위축됐다.

이 시기 스타인벡은 미국작가동맹을 통해 미국공산당과 느슨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인민전선의 붕괴 이후에도 작가동맹의 회원으로 남아있었다.

1942년에는 점령군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을 다룬 중편희곡소설 <달은 지다>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돼 당시 유럽지역의 레지스탕스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종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스타인벡은 1949년 공산주의자였던 감독 엘리아 카잔을 위해 멕시코혁명을 다룬 영화 <비바 사파타(Viva Zapata)>의 시나리오를 썼다.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타인벡은 이후 린든 존슨 대통령의 월남전 참전 결정에 지지의사를 밝혔다가 진보적인 독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지만 1967년 반전입장으로 돌아섰다.

헤밍웨이, 포크너와 함께 20세기 미국 현대문학을 이끈 거장 존 스타인벡은 1968년 12월 20일 뉴욕시 자택에서 심부전증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과 주변의 삶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인간을 그린 스타인벡. 그는 지금도 미국 노동자계급의 영원한 벗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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