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FTA 과격 추진 무모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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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05일 08: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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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런 결정과 과격한 추진’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한미 FTA는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며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적 미국경제에 통합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미 FTA, 갑작스런 결정과 과격한 추진

    최장집 교수가 노무현 정부가 ‘열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한미 FTA 정책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했다. 최 교수는 최근 펴낸 그의 저서『민주주의의 민주화』(후마니타스. 최장집 지음, 박상훈 엮음)에서 ‘현재 한국 사회의 최대 이슈인 한미 FTA 추진’과 관련해 노대통령과 경제 관료들의 추진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한편, 주목할 만한 대안적 경제 발전 경로를 제시했다.

       
      ▲ 최장집 고려대 교수 ⓒ연합뉴스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와 경제 관료들이 한국 경제는 “개방이 안 돼서 문제이고 한미 FTA로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생산성 향상과 함께 경제발전 등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이처럼 단순한 인과논리는 “현실화될 가능성이나 설득력을 전혀 갖지 못 한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한미 FTA가 한국경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논증하면서, 노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추진론자들이 내세우는 근거인 △성장 중심론 △개방 만능론 △서비스산업 대안론 △제조업 수출증대와 중소기업 발전론의 허구성 또는 한계점을 차례차례 비판했다.

    ‘성장 중심론’과 관련해 최 교수는 정부와 경제정책 결정론자들이 성장의 둔화를 걱정하고는 있지만 “이들에게 양극화 문제는 성장둔화의 결과일 뿐”,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의 귀결인 양극화 현상 자체가 성장을 둔화시킨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약하다고 비판했다. “노대통령과 주요 정책결정자들의 주장은 성장의 분배효과에 대한 일방적 과신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성장만 되면 분배는 자동? 과신에 빠진 정책결정자들

    최 교수는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적 환경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고용을 증대시키지 못한 채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주요 경제제표들이 이런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책결정자들이 ‘성장의 분배효과’처럼 현실에서 증명되지 않거나, 정반대로 나타나는 것을 너무 믿지 말고, 분배의 성장효과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최교수의 입장이다.

    최장집 교수는 이어 개방 만능론에 대해 “정책결정론자들은 FTA를 통한 대외 개방이 생산성을 제고하고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며, “제조업은 개방되어 생산성이 높고 서비스 산업은 개방되지 않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서비스 산업에서 개방 수준과 생산성의 저조함이 인과적 함수관계를 갖는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신빙성이 약하다”고 말하고 있다.

    최 교수는 특히 “한미 FTA와 관련하여 정책 결정자들이 사용하는 ‘서비스 산업’이라는 말은 서비스 산업 전체를 지칭하기보다는, 지식 기반 전문직종으로서의 금융, 컨설팅, 의료, 법률, 기술 정보 등 서비스 산업의 최상층 부문을 의미”하며 “일자리 규모로 보면 서비스산업 가운데서도 아주 일부분만 포함하는 것”으로 “전체 서비스 산업은 이들 소수의 상층부분으로 대표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비스 산업, 개방하면 생산성 높아진다? 신빙성 약해

    최 교수는 이와 관련해 미국의 경우도 “상층 서비스 종사자는 가장 높은 소득층인 반면, 노동집약적 하층 서비스업 부문은 소득 및 계층구조에서 최하층을 구성한다”며 “미국과 같은 위험 사회(risk society)에서 성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은 후진국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서비스 산업 대안론’에 대해 최교수는 “서비스 부문은 노동 그 자체가 소비 대상이고 제조업 부문에 있던 낮은 질의 노동력이 서비스 부문으로 이동해 오기 때문에 낮은 질-낮은 임금-낮은 생산성의 악순환 구조에 빠지게 된다”는 ‘보몰의 법칙’(경제학자 윌리암 보몰이 1960년대에 제출한 경제 이론)이 한국에서도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따라서 “서비스업이 한국 경제성장의 출로가 될 수 있다는 논리는 현실성이 없으며 특히 미국에 대한 개방을 통해 세계적인 서비스 산업을 만들겠다는 주장은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한미 양국간 격차가 극히 심한 조건에서 한국의 개방업종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거나 위계적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결집되어 있는 이 분야의 종사자들을 미국 체제에 통합시킴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이미 깊숙이 진행된 사고와 가치체계의 미국화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견했다.

    사고와 가치체계 미국화 더욱 심해질 것

    제조업 경쟁력 증대론과 관련해서 최교수는 현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이 서비스 부문의 개방과 함께 관세율 인하 등이 제조업 발전 효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러한 발상은 마치 군사안보 영역에서 한미 동맹관계의 강화가 경제교역에서 한국에 유리한 파급효과를 낳는다는 막연한 기대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제조업 분야에서 중소기업의 기반이 이미 상당히 허물어진 상황에서 확실한 근거도 없이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함으로써 중소기업에 대한 무대책을 또 한번 합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세계화와 양극화 해소는 선진 한국으로 가는 양날개다. … 국민 복지를 위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한 것은 “한낱 공허한 수사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안은 있다

    최 교수는 한미 FTA 정책을 비롯한 ‘민주정부들’의 개방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성장과 고용, 성장과 양극화 해소가 같이 갈 수 있는 ‘내발적 산업발전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다소 이상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민주정부가 정치적으로 선택하기에 따라서는 실현 가능”하다고 말한다.

    최 교수가 말하는 모델은 “성장정책과 산업정책, 노동 및 복지를 위한 사회정책이 만날 수 있는 발전의 틀, 그 속에서 성장과 고용증대가 병행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양극화 해소 내지는 완화에 기여하고, 또 반대로 양극화 해소가 성장에 기여하는 내발적 산업발전 모델”이다.

    그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에서 금융, IT, 서비스 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개방 경제로의 전환이 필연적이며 그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입장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한다.

    최 교수는 그 같은 논리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한국의 경우 민주정부들이 잘못된 선택을 계속해온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이 한미 FTA라는 ‘과격한 해결책’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그런 잘못의 연속일 뿐이라는 게 최 교수의 견해다.

    박정희 모델에서 참고해야 할 것들

    이와 관련해 최 교수는 박정희식 모델과 87년 이후 민주정부들의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모델을 비교하고 있다. 그는 “권위주의 산업화, 즉 박정희식 발전모델의 구성 요소로 성장제일주의, 기술 관료적 정책 결정, 성장의 견인차로서의 재벌 대기업 중심체제, 노동 배제 등은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전략에서도 대부분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최 교수가 절차적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해 비관적 진단을 내리고 있는 배경 인식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두 모델은 유사성과 함께 중요한 차이점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박정희 모델이 채택했던 ‘내발적 발전모델’이 민주정부들의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서는 폐기 처분되고 있다는 점이라는, 주목할만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재벌 대기업이 성장을 주도했지만 그 하부기관으로서 중소기업의 강화와 발전을 동반했다. 또한 생산의 파트너로서 노동을 배제하고 억압했지만 노동자들은 경제성장의 수혜자 가운데 하나로 생산체제에 통합될 수 있었다. 그것은 제조업 발전을 기초로 한 재벌, 중소기업, 중산층, 노동자를 포괄하는 커다란 성장 동맹으로 나타났다.”며 박정희 모델의 특성을 설명했다.

    박정희 모델과 성장 동맹

    후자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모델에서는 재벌기업이 여전히 성장을 주도하지만 제조업 기반으로서의 중소기업은 크게 약화되었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중산층과 노동자를 불완전 고용과 노동조건 악화라는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성장의 수혜자였던 권위주의 산업화 시기의 노동자와 달리, 사회보호와 고용보호를 박탈당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노동자는 성장의 배분에서도 대부분 배제되었다”라고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경제 발전 경로에 관한 한 박정희 모델이 민주정부들의 개방 모델보다 더 한국적 현실에 높은 정합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생산적 논쟁점을 많이 제공해주는 견해가 될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도 최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를 변형되고 더 무능한 ‘박정희 모델’이라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아래 인터뷰 기사 참조)

    물론 그가 대안으로서 내놓은 새로운 산업정책이 권위주의 시대의 정책으로 복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놓고 있다. 그럼에도 박정희 모델에서 볼 수 있는 ‘내발적 발전 모델’의 복원 필요성은 강조하고 있다.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정치세력

    최 교수는 책 안에서 내발적 발전모델의 구체적 내용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코포라티즘 등 노사관계, 기술 교육 문제를 비롯한 교육 정책, 사회복지 정책 내용, 그리고 이들 사이에 어떻게 유기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대안적 모델을 현실화하는 주도 세력은 누구인가. 이와 관련 최 교수는 “현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안적 발전 경로를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현재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러한 방향의 대안이 개척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구체적 내용은 최 교수에게 질문을 통해서 확인된 내용이 아니라, 정치 수준에서, 대중 운동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는 조직들이 자신들의 실천 과정에서 만들어가야 하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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