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법 공방의 진실과 거짓'의 왜곡과 소설쓰기
By tathata
    2006년 06월 05일 12:08 오전

Print Friendly

 

매일노동뉴스는 최근 ‘비정규법 공방의 진실과 거짓’이라는 제목으로 10회에 걸친 기획시리즈를 연재했다. 이 기획시리즈는 지난 1년 8개월동안 비정규법안 공방과정에서 벌어진 노사정위원회 국회의 교섭내용은 물론 공식화되지 않은 사전 막후 교섭, 그리고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노동계 내의 여러 가지 논란 등을 당시 법안 처리 과정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을 취재하여 보도했다.

 <매일노동뉴스>는 비정규법 처리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최대강령주의적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교섭의 실리를 얻지 못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개선시키는데 기여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열린우리당의 비정규법안 입법 의지에 의문을 던지며, 한편으로는 민주노동당은 법안 통과 저지에만 집중할 뿐 원내 입법 전략이 부재했음을 비판했다.         

당시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비정규법 입법과정에 참여한 강문대 변호사가 <레디앙>에 반론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1. 여는 글

조상기 기자가 정치부 기자로 노동계 안팎을 취재하면서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가 보다. 이토록 격한 글을 ‘기사’라는 이름으로 10회나 게재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 ‘기사’들을 읽는 내내 나의 심기가 그토록 불편했던 것을 보면, 필자가 조 기자가 애당초 이 ‘기사’들을 작성하면서 대상으로 삼았던 자들 중의 한 명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심기가 불편했던 것은 조 기자가 주관적으로 희망한 것처럼 조 기자의 글을 읽고 필자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서가 아니라 기사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해 짜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 ‘기사’를 읽는 내내, 기사의 형식을 띤 글의 논리가 왜 이리 단순하고 비약적이며, 사실 관계는 왜 이리 자의적으로 설정되어 있는가 하는, 그래서 이 ‘기사’의 진실과 거짓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을 끝까지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 기자가 이 ‘기사’를 “사실에 바탕을 둔 평가성 기사”라고 자평하였을 때 무척 당혹스러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난 이 ‘기사’를 ‘특정입장을 바닥에 깐 주장성 칼럼’이라면 모를까 ‘사실에 바탕을 둔 기사’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내가 이 글 전체를 통해 조 기자의 기사들을 ‘기사’로 표현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필자는 이 글을 “사실에 바탕을 둔 평가성 반론”으로 작성하고 싶다. 그래서 일단 이 ‘기사’ 중에서 사실이 아닌 것은 바로 잡도록 하겠다. 또한 기자의 주관에 차고 넘치는 입장을 평가하며 그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적도록 하겠다. 즉, 반론이다. 이 ‘기사’에 조 기자의 입장이 아주 강하고 분명하게 피력되어 있기 때문에 반론 역시 그 정도의 농도로 구성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2. 사실의 오해 또는 왜곡

조 기자가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는 사실 관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 권리보장 법안, 이른바 ‘단병호 법안’의 작성 경위에 대한 부분이다. 조 기자는 이 법안이 필자를 비롯한 일부 실무자들에 의해 1개월만에 ‘전광석화’처럼 뚝딱 만들어졌던 것처럼 적고 있다. 물론 마지막회에 윤애림 불안전고용철폐연대 국장의 지적에 공감하는 식으로 그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 아니기에 지적을 해 두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안은 1999년 이후의 비정규직 투쟁 과정에서 제출된 요구와 2000년 이후 수차례의 토론회와 공청회를 통해 마련된 법안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필자가 의원실에 들어갔을 때, 비정규법은 더 새로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낄 정도로 이미 완비가 되어 있었다.

“2000년 7월부터 10월까지 양대노총과 비정규공대위, 여성단체연합이 각각 국회에 비정규보호법 제ㆍ개정을 입법청원”한 사실은 조 기자가 다른 기사에서 적고 있는 사실이다(2005. 8. 8. 매일노동뉴스 기사 참조).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한다. 이 법안은 민주노총이 비정규 투쟁 과정에서 마련해 놓았던 법안을 토대로 그 의미와 문제점들을 평가 보완하면서 최종 작성한 것이다.

그 과정이 한 달 넘게 걸렸으니 매우 꼼꼼하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전광석화’로 법을 만들 솜씨를 가진 사람은 당시 아무도 없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이 법안을 “민주노동당이 만들고 민주노총에게 호소”했다는 것도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만든 것을 민주노동당이 수용했다고 하거나 최소한 둘이 함께 만들었다고 해야 정확한 것이다. 단병호 의원 개인을 놓고 보면, 민주노총에서 주장해 오던 것을 민주노동당에서 완성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지난 4월 법사위를 점거하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비정규법 통과를 저지하고 있다.
 

둘째, 이 법안을 작성한 실무자들이 이 법안을 매우 비현실적인 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조 기자는 다소 비아냥거리는 문투로 실무자들조차도 이 법안의 실현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단정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근거라고 제출된 것은 김선수 변호사가 다른 토론회에서 수정안을 제출했다는 것인데, 나도 언뜻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김선수 변호사가 공식적으로 사유제한을 포기한다고 말한 적도 없고, 그 수정안이라는 것도 사유 제한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경과 후 사유제한을 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걸 근거로 삼는 것은 아무래도 빈약하다. 김선수 변호사 외에 다른 실무자들에 대해서는 무슨 근거로 위와 같이 판단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기사’를 아무리 읽어봐도 그 근거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물론 실무자들이 다른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달리 이 법안을 정부와 자본의 반대를 뚫고 쉽게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과 이 법의 내용이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한편 조 기자는 민주노동당의 선제적 입법발의에도 불구하고 비정규법의 쟁점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적고 있는데 그것은 온당한 평가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그런 입법 발의가 없었다면, 조 기자가 국회를 출입하면서 비정규법안에 대해 이다지도 많은 기사를 쏟아낼 수 있었을까, 기간제의 사유제한이니 파견제의 고용의제니 하는 말을 들어보기라도 했을까. 쟁점이 형성되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 조 기자는 10회나 걸쳐 무슨 음모를 파헤치듯 진실과 거짓을 논했던 것인가?

셋째, 민주노동당 법안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이 상당히 다른 것처럼 전제하고 있는 부분이다. 두 안은, 파견폐지를 전제로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점과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점에서만 차이가 나고 그 외는 민주노동당 법안의 작성에 관여한 필자도 놀랄 정도로 거의 동일하다. 기간제의 사유제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불법파견 시 고용의제 등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핵심 쟁취 과제로 설정한 내용이 인권위 안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따라서 조 기자가 노동계가 “비현실적인 ‘권리보장법안’ 대신 인권위 의견 수준의 ‘수정안’을 내면서 밀어 붙였다”고 표현한 것은, 두 안의 내용을 아직까지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인권위 안이 가이드라인이라고 말한 것은, 위 두 안에서 차이가 있는 위와 같은 부분은 추후 논의하는 한이 있더라도 인권위가 제시하고 있는 내용은 분명히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지, 민주노동당 안은 비현실적이고 인권위 안은 현실적이므로 후자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조 기자는 위 두 안이 어느 지점에서 ‘비현실성’과 ‘현실성’으로 갈라지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한편, 조 기자가 열린우리당과 심지어 경총마저도 기간제의 사유제한을 수용할 의지가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세 주체가 다 동일한 의사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란 말인가? 행간으로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대응을 잘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두 집단의 무능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은데 조 기자만 유독 그리 생각하고 있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너무 쇼킹한 이야기를 태연히 적고 있으니 ‘대략 난감’을 넘어서 ‘난감 만땅’이다.

넷째, 열린우리당이 이 법안을 통과시킨 2006년 2월 이전에는 단 한 차례도 이 법안의 통과에 대해 어떤 의지를 가진 적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열린우리당 측에서 본격적으로 반론을 제기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열린우리당과 맞서 싸운 민주노동당 입장에서 볼 때도 황당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조 기자의 평가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은 어차피 통과되지도 않을 법을 놓고서 소회의실 점거를 수차례 감행한 어리석은 정당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민주노동당 보좌관들이 지난 4월 회의참관을
  불허한 법사위에 항의하고 있다.
 

실제로 조 기자는 민주노동당이 2005년 2월에 감행한 소회의실 점거의 이유로 △정보부족 △민주노총 지도부 흔들기 등을 들고 있다. 좀 실례를 무릅쓰고 말하면, 이 부분이 필자가 가장 크게 소리 내서 웃은 부분이다.

솔직히 이런 분석은 소설을 넘어서 코미디에 가까운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막으니까 열린우리당이 강행 통과라는 무리수를 쓰지 않은 것이지, 열린우리당이 통과시킬 생각도 전혀 없었는데 민주노동당이 오판을 하여 막았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조 기자는 민주노동당이 아무런 저항을 안 한 경우에도 열린우리당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인가? 무슨 이유로? 열린우리당에게는 비정규법안이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유도책에 불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갑자기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이건 거의 음모이론에 빠진 사람의 논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 필자와 입장은 달랐지만 비정규 노동자 보호라는 그 진정성 하나는 의심되지 않던, 열린우리당 노항래 전문위원이 이 ‘기사’를 보고 얼마나 분개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 기자는 이 ‘기사’가 기자 개인의 일기장이 아니라 데스킹 과정을 거쳐서 출판되는 매일노동뉴스의 자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매노 데스크도 이런 입장이라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법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당시 조상기 기자의 기사에서도 뚝뚝 묻어나는 사실이다(매노 2005. 2. 23 및 같은 달 24일자 기사 참조).

다섯째,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지도부 흔들기에만 골몰했다고 평가한 부분이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조 기자는 민주노동당이 2005년 2월에 소회의실을 점거한 이유 중의 하나로도 이 점을 들고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은 너무 황당해서 비판하고 평가할 의지조차도 생기지 않는다. 감춰진 목적이라고 얘기되는 것과 그것을 위해 감행한 수단 사이에 어느 정도 균형성이 있어야 그 둘 사이를 연결시킬 수 있는 법인데, 이 경우는 그 부조화가 너무 심하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오로지 내부의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온갖 대국민적 비난을 감수하고 소회의실을 점거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 중에는 민주노총 지도부와 대척점에 놓여 있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이며 원내와 원외를 불문하고 지도부는 모두 민주노총과 같은 식구라고 평가되고 있는 사람들인데도 그런 결정이 이루어졌다? 의원실 내에도 그렇고 의원총회에서도 점거의 실행 여부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는데 그 와중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를 흔들기 위해 의원실 점거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정말 알 수 없는 논리의 비약이다. 민주노동당 특히 단병호 의원실과 민주노총 집행부 사이에 비정규 법안의 평가와 대응 방식에 있어 초기에 다소 이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대화를 하지 않은 적이 없고 독자적으로 행동한 적도 없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가면서는 단일한 입장으로 조율했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각 단위의 독자성도 충분히 인정했다.

그래서 국회 절차를 통한 협상이 이루어질 때는 단병호 의원실이 주도하였고, 국회 밖에서 노사정 협상이 이루어질 때는 민주노총이 주도하였다. 내심의 의사가 어땠는지, 비공식적 행보가 어땠는지는 서로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논의를 통해 확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 불협화음 없이 한 길로 매진해왔다. 민주노동당이 소회의실 점거를 반복했던 것과 민주노총이 국회 앞 농성 및 집회와 총파업을 지속했던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지도부 흔들기에만 골몰했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여섯째, 2006년 2월말에 환노위에서 법안이 통과될 때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이 막을 수 있었는데도 막지 않은 것처럼 쓴 부분은 정말 심각한 왜곡이다. 조 기자의 평가대로라면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아주 노련한 모사꾼에 다름 아니다.

조 기자는 정녕 그렇게 생각하는가? 당시 회의실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모여든 수십명의 보좌관들도 회의실 진입에 실패했는데, 의원들이 무슨 수로 회의실에 진입한단 말인가? 단병호 의원은 환노위 위원장이 어쩔 수 없이 허락하여 회의장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열 경찰이 한 도둑 못 잡는다고, 하루에도 서너 차례나 고지되는 환노위와 소위원회의 일정을 어찌 모두 봉쇄할 수 있는가?

당시는 더구나 비정규법안을 처리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서 양치기 소년마냥 보좌관들과 의원들을 함부로 소집할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그런 와중에 결과적으로 의원들이 이 법안의 통과를 막지 못했다고 해서 이런 모사꾼의 혐의까지도 받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보좌관의 한 명이었던 사람으로서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마지막으로, 어느 누구도 비정규법을 상수로 놓고 움직이지 않았다고 평가한 부분이다. 다른 정당은 모르겠고 민주노동당은 언제나 비정규직법을 상수로 놓고 움직였다. 민주노동당은 일각으로부터 야합에 능하다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비정규직법의 강행을 중단하는 세력과 일관되게 손을 잡았다.

즉 조 기자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를 오가며 비정규직법의 ‘수비’에 급급했다. 이 정도면 민주노동당이 비정규법을 상수로 놓고 움직였다고 충분히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더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정규법을 상수로 놓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실컷 함께 축구를 하고서도 수비만 했다고 축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3. 단순하거나 혹은 불순하거나

조상기 기자가 이 ‘기사’를 통해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정부 법안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는데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데 열린우리당은 왜 그리 미적대고 민주노동당은 대책도 없이 막기만 하느냐 라는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에 대해 진정으로 입법 의지가 있냐라고 다그치고, 민주노동당에 대해 장렬한 전사 운운한 것은 이런 생각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이 법안을 반대하기로 정하고 행한 행동들은 성실했고 일관되었다. 말이 쉽지 소회의실 한 번 틀어막는 것도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서 너 차례에 걸쳐 소회의실을 틀어막았고, 국회법이라는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어차피 우리 주장을 관철시킬 때에도 국회법에 의존해야 하므로) 절차적 규율 앞에서도 실체적 정의 관념으로 대항하였다. 그것이 나중에 어떤 자충수가 되어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법이 가장 중요했기에 무리수를 감행하였다.

그런데도 조상기 기자는 의원들을 함부로 힐난하고 모욕한다. 우원식 의원의 마지막 제안을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자들과 논의한 것도 비난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아니, 의원단이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어찌 ‘구멍 찾기’이며 “운동의 주체이어야 할 비정규노동자를 객체로 남기고 소외시키는 것”이란 말인가?

조상기 기자는 민주노동당이 자기 아집에 사로잡혀 조금의 유연성도 발휘하지 못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윤애림 국장이 밝힌 바와 같이 외부 단체의 비판을 받아가면서도 파견제 폐지 요구를 사실상 접었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최소한 백지 상태의 입법도 용인하였으며, 사유 제한에 대해서도 그 폭을 넓힐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조직 내부 사정으로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결정을 한 것은 없지만 일선에서 협상하고 싸우는 자들의 처지를 양해하는 방식으로 대부분 용인해 주었다. 사실상 현실적 힘 관계를 고려하면서 대응 수위를 정해 온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본 것이 바로, 기간제 사유제한 그 자체와 불법파견 시 고용의제이었던 것이다. 조상기 기자는 지금 민주노동당에게 그것도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인가? 그것이 정녕 비정규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조 기자가 ‘단순’하다는 비판에는 몰라도 ‘불순’하다는 비판에는, 내가 조상기 기자의 ‘기사’를 보며 느꼈던 감정과 똑같은 감정을 느낄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오해를 사지 않으려거든 자신의 입장을 비정규 노동자들의 눈물 뒤로 숨기지 말고 현재 대립하고 있는 주장들 속으로 끌고 와 정확히 밝혀야 한다.

자신의 입장은 애매하게 드러내면서 한 쪽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자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행태, 그것은 공격 방법의 단순성과는 별도로 비판되어야 하는 입장의 불순함이다.

4. 뒤돌아보며

조상기 기자가 하도 심하게 몰아붙여 앞에서는 변호하듯이 글을 썼지만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노동계의 대응이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노동계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이 ‘기사’의 편집자 주에서도 나와 있듯 노동계가 너무 명분과 몸 사리기에만 집착하고 최대강령주의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실무가로서 일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나도 기간제 사유제한과 불법파견시 고용의제에 대해서는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노동계가 그런 분위기를 잡아가는데 약간의 기여는 한 것으로 보이므로 명분에 치우친 최대강령주의자로 비판받아도 달리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입장에 대해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명분이냐 실리냐 하는 것과 최대강령인지 최소강령인지 하는 것도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평소 실리주의자로서 단계적 접근을 선호하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 문제에 있어서 위와 같은 입장을 취했던 것은, 그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실리 있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최소 요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게 명분에 치우쳤다느니 최대강령만 내세우려고 한다느니 하는 비판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필자는 노동계의 진정한 문제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입장을 정함에 있어 각 주체 및 세력단위가 자기의 요구사항과 그 근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막연한 원칙에만 기대려고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적은 결론적으로 최대강령만 추구한다는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어느 주체나 세력단위가 단기적 실리를 더 우선할 수도 있고 장기적 실리(=정치적 명분)를 더 우선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극단적으로는 당장 눈앞의 실리를 포기하고서라도 추구해야 할 목표가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각 주체가 처한 상황 및 정치적 입장 나아가서는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소신껏 정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어느 주체가 어떤 요구사항을 정식화함에 있어서는 그 주장을 명료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근거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일반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명분을 갖추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주장 내용을 다듬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필자가 봐 온 노동계의 의사결정 구조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최일선에 있었던 나부터 반성해야 하겠지만 노동계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와 기풍이 없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는, 항상 적절한 세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일정한 수준의 원칙을 주장하는 흐름이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더 강한 원칙을 주장해도 일정한 세력이 없으면 채택되지 않고 더 강한 세력을 갖추고 있어도 정부와 자본과 조금이라도 타협하는 내용이면 강력하게 주장되지 못한다. 한 마디로 서로 눈치를 보면서 대응 수위를 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120m 크레인 위에서 지난 5월 1일부터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식적으로 결정되는 과정이 흐릿하게 되고 그 결과 공식적으로 결정된 사항이 있어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핵심 간부들조차 다른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이를테면 "사유제한 그거 뭐 되겠어" 하는 식이다, 그러다가 인권위의 권고안이 발표되자 그런 얘기는 쏙 들어갔다).

그러다 보면 일선 협상팀도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양보에 대한 유혹을 끊임없이 받게 된다. 그러나 양보도 잘 하지 못한다. 그 주장의 현실적 목표와 논거가 명확히 정리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적정한 양보선을 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조상기 기자가 말한 대로 장렬한 전사를 감행했다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을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

현재 정파나 노선에 따라 주의 주장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그걸 탓하지는 말자. 그러나 엉성한 논리와 요구를 내세워 놓고는 그것이 원칙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더 이상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상황 논리와 전술 요구라는 핑계를 들어 진정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은 밝히지 않은 채 현실에 있어서는 갈등만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 요구를 내세우는 것도 지양되어야 한다. 그리고 절차적 정의를 함부로 무시하려는 행태도 근절되어야 한다.

절차가 실체를 통제해서는 안 되지만, 실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절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 실체적 정의를 근거로 절차를 무시한 자는 언제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런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양심의 깊은 고뇌에서 도출된 결론이 아니라면 함부로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편의주의적 사고는 운동의 진정성을 해하는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비정규법을 다룸에 있어 여당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우리 주장의 현실 적용 가능성과 논거를 요구하였다. 어차피 우리 말을 들을 의지는 없었겠지만 그런 요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어차피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그런 논거는 필요하였다.

돌이켜 볼 때 우리가 우리 주장의 논거를 얼마나 솔직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제출하였는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여당의 실업대란의 협박이 얼마나 허구인지, 차별 시정 효과가 얼마나 낮은지,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이 우리 경제에도 어떤 긍정적 효과를 낳는지, 비정규센터 등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지속적으로 대응해 나갔지만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고민이 노동계 전체적으로 확산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법안 공방 시기에는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그 시기만 지나고 하면 마치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러 보낸 적도 솔직히 많이 있다. 비정규법의 마지막 숨통이 죄어지려는 지금, 노동계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내가 아직 일선의 언저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지되는 것이 전혀 없다. 이러다 장렬한 전사는 고사하고 안락사 당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6월 국회에서 비정규 법이 어떤 운명에 처할 것인지 너무 궁금해지는, 짜증나는 초여름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