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을 껴안은 채
    불을 운반하는 일에 관해
    [소설로 읽는 한국사회]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과 코맥 매카시의 『로드』
        2019년 01월 08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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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컴한 터널, 탄을 머금은 공기, 잿빛 세상에서 한 치 앞을 비출 랜턴 하나 없다. 고막까지 파고드는 굉음, 저를 향해 입을 벌린 암흑에 속수무책 잡아먹힌 청년, 12월 11일. 정적과 동시에 한 세계가 끝났다. 정적을 알 리 없는 컨베이너 벨트는 다시 그 차가운 금속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움직였고 태양은 무심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둠이 몰려오던 그날 저녁. 퇴근 후 몸을 누일 그의 방 불은 켜지지 않았고,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던 두 내외의 창가에도 내일의 태양 같은 것은 없었다. 그 소식을 보거나 듣게 된 이들의 가슴에도 어둠이 들이찼다. 광장에 모여 앉아 초에 불을 밝혀보아도 도무지 물러설 기미 없는 어둠 앞에 문득 말하고 싶다. 제 몸을 태워 불을 밝히는 것은 초여야지 사람이어선 안 된다. 더는 그 누구도 내어줄 수 없다. 남겨진 이들이 껴안아야 할 어둠조차 인정할 수 없다. 그리하여 모순일지 모를 절실한 고백이 필요하다.

    “너는 나다” “내가 김용균이다”

    고 김용균 추모제에 모인 청년들은 저마다 피켓을 들었다. ‘죽음의 외주화’, ‘우리가 김용균이다’ 특성화고를 졸업해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박봉에 시달렸다는 여성, 군 제대 후 겨우 들어간 공기업 외주업체의 열악한 노동환경,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라며 사람 취급 못 받는 맥도널드 청년 노동자들은 발언 중 자주 울음을 터뜨렸다.

    2016년 구의역 김 군 사고, 2017년 제주 현장실습생 이민호씨 사망사고, 2018년 무빙워크 수리 도중 사망한 이명수씨 사고, 김용균 군이 죽은 뒤에도 금속가공공장 입사 7개월 만에 목숨을 잃은 청년. 2인 1조라는 최소 안정규정을 어긴 노동 현장은 늘 인원이 부족했다. 사측은 원·하청 관계 및 산업통상자원부 허가 등의 이유로 안전인원 충원을 미뤘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에 꾸려졌고 12일 한국 서부발전소 정문 앞에서 촛불집회를, 13일에는 광화문 세월호 광장과 태안읍 태안터미널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광장에 설치된 화면에 고인이 살아생전 일하던 발전소 내부가 공개되었다. 시커먼 탄가루에 덮인 기계가 굉음을 내며 돌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고개 숙여 눈물을 닦거나 땅이 꺼질 듯 탄식을 내뱉었다.

    “어느 부모가 이런 꼴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옛날 지하탄광보다 열악한 곳이 지금 시대에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

    고 김용균 청년 어머니의 말이다. 고인이 남긴 유품은 잿빛이었다. 과자, 컵라면 사비로 산 헤드랜턴. 탄가루를 닦으려 사용했던 그의 물티슈마저 얼룩져있었다. 한 청년의 푸른 인생을 한 순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사회, 이 세계가 끝났음이 분명하다.

    검게 타 버린 세상과 혹독한 겨울. “1시 17분에 멈추어져 있는 시계”(p.52) 세계가 종말 했다. 코맥 매카시 『로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재앙이 순식간에 지구를 휩쓸었고 모든 것이 멸종한 땅에 살아남은 남자와 소년의 이야기이다.

    남자와 소년은 로드를 따라 푸른 바다가 있는 남쪽을 향해간다. “어둠이 다가와 수의(壽衣)처럼 그들을 감싸는”(p.14) 새벽을 지나 로드를 걸으며 음식 부스러기, 휘발유를 찾는다. 버려진 카트에 버려진 통조림과 물건으로 겨우 연명되는 숨. 남자는 잠에서 깰 때마다 제일 먼저 “손을 뻗어 옆에서 자는 아이”(p. 7)의 “귀중한 숨”(p. 7)을 확인했다. 대재앙 이후 거리에 살아있는 인간이라곤 인간을 잡아먹어 인간이길 포기한 종들뿐이었다. 남자와 소년은 기약 없이 식인들을 피해 남쪽으로 간다. 지쳐 쓰러져도 가야만 하는 이유를 되묻는 소년에게 남자는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자”(p. 96)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황량한 바다에서 소년보다 먼저 죽게 된 남자는 반드시 살아서 불을 계속 운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때 밝혀지는 ‘불’의 정체는 끝내 모호하다.

    어디 있어요?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왜 몰라. 네 안에 있어. 항상 거기에 있었어. 내 눈에는 보이는데.(p.314)

    ‘불을 운반하는 자’라는 막연한 명명에 의지해 불확실한 구원과 희망을 가졌다. 남자가 만들어낸 이 허구의 ‘불’은 이들의 여정에 있어 강한 주문으로 작용했다. 불을 운반하기 때문에 혹독한 배고픔에도 길에서 만난 낯선 노인에게 통조림을 나누어 준다. “검게 탄 아이” “머리가 잘리고 내장이 빠진 채 꼬챙이에 꿰어져 시커멓게 그을려” 있는 아이를 본 소년이 묻는다.

    우린 아무도 안 잡아먹을 거죠, 그죠?
    그래, 물론이지.
    우리가 굶더라도요?
    지금 굶고 있잖아.
    안 굶는다고 했잖아요.
    안 죽는다고 했지. 굶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어쨌든 안 잡아먹을 거죠.
    그래, 안 잡아먹어
    무슨 일이 있어도요.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p.147)

    굶어 죽는다 해도 사람과 아이를 잡아먹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불은 일종의 신성이다. 남자가 운반하려는 불은 소년 안에 꺼지지 않는 신성이다. 폐허와 암흑 속에서 동정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소년. 남자는 소년을 살육과 재앙의 혼돈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남자에게 소년은 곧 신의 말씀이다. 종말 이후 태어난 소년은 아무 죄가 없다. 하지만 앞 세대의 죄과를 이어받은 소년은 황량한 세상에서 훼손되지 않은 신성을 지녔다. 이 신성을 지키기 위해 남자는 자멸의 유혹을 떨쳐내고 온갖 노동과 고역을 참아내 생존했다. 길에서 만난 노인(엘리)은 “오랫동안 불을 보지 못했소. 나는 짐승처럼 살고 있소.”(p.196)라고 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살아남은 인간들이 그 예언자”(p. 193)라고 단언한다. 그의 말은 『로드』를 넘어 인류 전체에 들어맞는다. 살기 위해 아이와 인간마저 잡아먹는 인간이 신의 부재를 증명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에게서 훔쳐다 준 “불”은 오랫동안 노동과 문명의 상징이었다. 『로드』에서 ‘불’은 대재앙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불을 운반하는 자”들에 의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남자와 소년이 불을 운반하기 위해 끝없이 감당했던 것은 생존을 위한 노동이었다. 때론 목숨 바쳐 구한 통조림을 나눠줘야 할 노동,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노동, 근원적 삶의 조건과 본성인 노동은 생존이었으나 약자를 착취하거나 파괴해 제 배를 불릴 노동은 “우린 생존자가 아니야. 우린 공포 영화에 나오는 좀비”(p.66)로 만들었다.

    카트를 밀며 연명하는 인간은 통조림, 지옥의 매점, 쇼핑카트, 폐허가 된 로드에 덩그러니 걸린 간판 ‘록 시티를 보라’의 무용한 불빛을 좇다 소멸한다.

    마치 소년의 악몽에 나타난 태엽을 감지 않아도 움직이는 펭귄처럼 넝마를 걸치고도 수레나 카트를 끌며 새까맣게 탄 통조림을 들고 헤매다 먹고 먹히는 좀비. 신의 부재를 끝 간 데 없이 증명하는 종말의 전모일 뿐이다.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에 신도 살 수 없다면 지금-여기 청년 노동자를 삼켜버린 이곳이야말로 신자유주의라는 숭엄한 신을 모시는 잿빛 세상, 무수한 김 군을 삼킨 암흑 속 터널일지 모른다. 예측 불가능하고 전 지구적이라는 점에서 ‘로드’는 도래했다. 노동자의 피를 먹고 자란 자본은 무한 팽창해 신의 얼굴마저 가렸고, 막 자라날 취약한 생명의 뿌리마저 양분 삼아 뻗어나갔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기계가 멈춰선 안 되는 세계에서, 죽음조차 방치돼 6시간 만에 도착한 김 군의 참혹한 부고 앞에서, 우리는 과연 ‘불을 운반할’ 힘을 가졌는가.

    사람을 잡아먹고도 그걸로 부족해 제 집 지하에 잡아먹을 사람을 가두는 좀비가 득시글대는 세상에서 남자의 아내처럼 일찍 생을 등지거나 자신이 차라리 죽었거나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길 바라는 노인처럼 생을 냉소하는 길이 빠른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결말이다. 남자가 죽은 뒤 홀로 남겨진 소년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어느 부부와 함께 다시 ‘로드’로 나선다. 여자는 가끔 소년에게 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소년은 신과 말을 하려 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아버지(남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안다. 여자는 그런 소년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신의 숨이 곧 그의 숨이고 그 숨은 세세토록 사람에서 사람에게 건네진다고”(p. 323)

    남자와 소년의 필사의 고행, 남자와 소년 사이에 죽음이 있고 소년과 어둠 사이에 불이 있다. 소년 안의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참혹한 로드에서 제 것을 나눠주고 후회하면서 결국 나누고야마는, 그리하여 “너는 나다”라고 말할 신성.

    진정 묻고 싶다. 광장에서 촛불로 투표소에서 일상으로 그 ‘불’을 운반할 준비가 되었는가. 또다시 김 군의 어머니를 순례자로 만들어가야만 하는 암흑의 길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어둠과 맞설 진짜 ‘불’을 당신은, 당신의 삶은 정녕 지녔는가.

    필자소개
    여미애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기법을 연구했으며 성균관대 박사과정에서 현대 문학평론을 공부하고 있다. 독서코칭 리더로 청소년들과 붉은 고전읽기를 15년간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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