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식 인해전술은 이제 그만
By
    2006년 06월 03일 09:23 오전

Print Friendly

한국전쟁에 중국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이 실재했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걸 전술(戰術)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병사들을, 사람을 그저 죽음으로 내모는 걸 무슨 전술이라 이름붙일 수 있을까? 

인해전술은 전술이 아니다 

러일전쟁 당시 여순 요새 공방전은 일본과 러시아의 육군이 맞붙은 큰 전투였다. 그 전투에서 승리하여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 된 자는 엄청 무식했다고 한다. 그는 부하들로 하여금 무작정 요새를 향해 총탄이 쏟아지는 성벽을 기어오르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수천 명의 병사들이 희생되면서도 단순무식한 공격을 반복하여 드디어 요새는 함락되었다. 숱한 부하들을 죽인 그는 어쨌든 승리했으므로 개선장군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의 부하들 중에 그런 무식한 명령에 이의를 다는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 당시의 일본군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어 부하 장교들이 이의를 자꾸 제기하여 작전회의가 무한정 길어졌거나 아니면 장교들이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더 낫다고 생각하는, 아니 실제로 더 나은 작전으로 각자 움직였다면 일본군이 승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지난 4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5.31 지방선거 대책위원회 출범식
 

그래서 인간 집단끼리 부딪치는 전쟁이란 항상 비인간적인 것이고 또 어느 정도는 단순무식한 것이며, 역사가 만들어지고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죽고 다치는 병사들이 있어야만 한다. 전쟁을 지휘하는 자는 어느 정도는 뻔뻔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무감각할 필요가 있으며, 지나치게 합리적이거나 인간적이어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주노동당의 중앙당은 이제 장교들, 부사관들, 병사들의 고통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81명을 당선시키기 위해 무려 721명의 낙선자를 낸 처절한 전쟁이 끝났다. 그 81명의 생존자마저도 일부 지역에 치우쳐 있어서 여러 광역시도에서 한두 사람의 지방 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해 수십 명이 낙선하였다.

민주노동당, 이제 병사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이 화려하게 원내진출을 하는 대승을 거둔 지난 2004년 총선마저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면 123명의 지역구 후보 중에서 121명이 낙선하는 대참사였다. 그리고 2002년 지방 선거는 218명의 출마자 중에서 173명이 낙선하였다. 지금까지 낙선한 후보들 중에 대다수가 15%는커녕 10%도 득표하지 못하여 자존심 상함과 재정적 어려움을 함께 당하였다.

이제까지 민주노동당 중앙당의 선거 전략은 ‘인해전술’이었다. 숫자가 크게 많지 않아 바다를 이루지는 못했으니, 그저 모두 떼를 지어 달려 나가자는 ‘벌떼 전술’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중앙당이나 당의 지도자들은 호언장담으로 낙관적 분위기를 만들어 출마를 권유하고 부추기는 것이 일이었고 지방당 간부들은 후보의 수로써 그 유능함을 인정받았다.

배추장수 셈법만도 못한 민주노동당식 계산법

또 재보궐 선거나 총선거나 동시 선거를 가리지 않고 선거만 있으면 참여하였다. 선거구의 사회적 구성이나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았고 득표나 당선의 가능성을 미리 돈 들여 과학적으로 타진해본 적도 없고 현실적 목표를 세우지도 않았다.

투자 대비 소득을 계산하지 않았으니 배추 장수의 셈에도 미치지 못하고, 얻을 것과 잃을 것을 따져본 적도 없으니 손자병법과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손자병법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함부로 전쟁을 하지 말라"이지 않던가?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시점에 왔다. 이제는 "후보의 수보다는 당선자의 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상기해야 한다. 예산을 들여서 선거구에 대한 조사를 하고 적합한 후보를 가려야 한다. 더 이상 당에 충성하는 당원들에게 ‘묻지마 출마’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아무 전략도 없는 무대뽀 전쟁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다가오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부터 전략을 세우고 전투를 감당할 해당 당 간부의 역량도 고려하고, 후보 개인에게 지우는 부담이 얼마나 될지도 분명히 측량하여 출전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양치기 소년되면 안 된다

후보들과 그를 돕는 당원들이 당과 계급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납득이 갈만한 전략적 목표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구체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동원되어야 하고, 이 구체적 목표의 달성 여부로서 사후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나 허황된 목표를 내세우고 지나고 나면 어영부영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승리적 평가’로 마무리짓는 방식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자꾸하면 안된다. ‘필요한 거짓말’이라고 함부로 자꾸 하면 당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낙선자와 낙선자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121명의 낙선자를 양산한 총선 직후에 선출된 최고위원회의 다수는 낙선자가 아니었다. 대신 정파의 대표들이 최고위원이 되었다. 그러니 대중이 우리 당을 예뻐하는 이유와 미워하는 이유를 모른다. 그리고 어느 당이나 하는 낙선자대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

721명 낙선자에게 하고 싶은 말

2004년 4월의 121명이었던 나는 2006년 5월의 721명에게 말하고 싶다. “그대들의 소중한 경험을 곰곰이 반추하고 서로 경험을 나누어서 당의 일상 활동에 반영하고 당을 변화시키라”고 말하고 싶다. 그대들의 아픔을 얘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대들이 느끼는 현실적 어려움을 이제는 솔직하게 말하라고, 그것이 진정으로 당과 계급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말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은 121명을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면 2006년의 민주노동당은 721명을 소중하게 받들어 앞으로 한 걸음 나가야 할 것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