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계와 협의 한 번 없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
    양대노총, 산입범위 개악 이어 또 정부 일방적 개악 추진에 강력 반발
        2019년 01월 07일 07: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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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7일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이원화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양대노총은 “최저임금 제도 개악”이라며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노정 갈등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편안은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3자가 모인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해 온 최저임금을 올해부터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나눠 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문가 집단인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의 상·하한 구간을 정하면 노사공이 모인 결정위원회가 정해진 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러한 내용의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반복됐던 소모적 논쟁이 상당 부분 감소할 것이며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논란도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편안 발표하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이 장관은 구간설정위원회에 대해 “상시적으로 운영해 최저임금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모니터링과 분석을 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구간설정위원회 위원인 9명의 전문가를 노사단체가 직·간접적으로 추천하는 방식으로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결정위원회는 기존 최저임금위원회와 유사한 기구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 정부가 단독 추천했던 공익위원 추천 몫을 국회와 나누기로 했다.

    최저임금 결정기준도 일부 바뀐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기준은 노동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도록 돼있다. 여기에 고용수준, 경제상황, 사회보장급여 현황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

    노동계 등에선 이번 개편안이 정부의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을 반영한 정책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이번 개편안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좌지우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식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는 관여하지 않고 객관적인 전문가들이 구간을 설정하고 노사 공익위원들이 모여서 결정하게 하겠다는 취지이자, 정부가 개입할 여지를 최대한 없앤다는 것이 개편안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1월 말까지 공론화 작업을 진행하고, 국회는 2월 임시국회를 열고 이 법안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30년 만에 이뤄지는 최저임금제도의 ‘졸속 개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노총 “노동계와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개편안 발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개편안의 내용을 조목조목 반복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노동부가 개편안을 발표하자마자 ‘형식과 내용 모두 엉망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시도,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 대투쟁을 원하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강하게 반발했다.

    우선 양대노총은 노동계와 협의 없이 개편안을 발표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저임금 노동자 생활안정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제도보완을 하기는커녕,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악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정부의 정책 추진 절차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노동계와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편하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ILO(국제노동기구)협약의 취지와 정신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ILO 최저임금결정협약은 최저임금제도 운용에 있어 노사 대표와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한국노총도 입장문을 내고 “관련 주체들의 충분한 논의 없이 국회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민주주의 절차상 큰 문제”라며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명줄로서 민생현안이자 국가 및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정책이기 때문에 제도변경 시 당사자와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과정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개악 안을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사업주의 지불능력 고려’라는 변경된 최저임금 결정기준도 문제다. 노동자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는 데에 그 취지가 있는 최저임금법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한국노총은 “현재까지 학계 및 연구기관에서 발표된 최저임금 연구에서 고용 및 경제 영향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없다”며 “더구나 사업주의 지불능력을 고려한다는 것은 최저임금법의 목적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이라고 짚었다.

    민주노총은 “재벌대기업 등 재계의 압력에 굴복해 ‘최저임금 1만원’으로 대표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구간설정위원회가 ‘통계분석과 현장 모니터링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최저임금 상·하한 구간을 정하겠다’는 정부의 주장도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노동계의 지적이다.

    민주노총은 “단 한 번도 임금교섭을 해보지 않은 이들만의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폭은 통계와 분석이 필요한 전문가의 연구, 분석 영역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저임금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면서 “최저임금은 전문가의 책상이 아니라, 공장과 사무실, 청소실과 급식실이라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전문가의 종이는 숫자만 나열될 뿐,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안정이나 실상에 대해선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인 결정구조 이원화는 불균형 문제가 제기된다. 사실상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주체로 보이는 구간설정위원회는 전문가로만 구성돼 사실상 공익위원에 의해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양대노총은 문재인 정부가 또 다시 최저임금 개악에 나선 것에 대해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한국사회 저임금 노동자비율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10%대로 떨어졌다. 정부가 재계의 입장만 들어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을 강행한다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신음하는 한국사회 현실을 바꿀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것”이라며 “(개편안이 관철될 경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전체 노동자 대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노총도 “정부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제도 개악 이후 또 다시 최저임금 제도개악을 강행한다면 이는 사회적 대화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한국노총은 이의 저지를 위해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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