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뿌리 자치 힘, 정당 우위에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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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02일 06: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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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권 여당의 참패, 한나라당의 싹쓸이로 압축되는 2006년 지방자치선거가 막을 내렸다. 지방자치선거가 중앙정치에 대한 중간 심판의 성격으로 변질되는 가운데 상황은 80년 전두환 정권 이후 최대의 정치권력 독점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80년 전두환 이후 최대 정치권력 독점

    이에 대한 분분한 정치적 해석을 뒤로 하고 우리는 이런 질문을 마주해보도록 하자. “과연 이러한 결과와 지방자치의 풀뿌리 운동은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을까?”

    이번 선거는 새로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기초의원 선거의 경우 정당공천제와 광역별로 2-4인의 당선자를 뽑는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었다. 애초 논란이 분분한 대목이었다. 한국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정당정치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이 제도 도입을 찬성하는 측(주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에서는 이전 총선에서부터 실질적인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한 민주노동당의 등장과 관련지어 한국사회도 이제 책임 있는 정당정치를 기초의원까지 뿌리내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반대하는 측(일반 시민운동 진영을 중심으로)에서는 그나마 생활정치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기초의회 선거마저 기존 정당의 입김과 영향력 하에 두려는 것이냐며 철회를 요구하였다.

    민주노동당과 시민운동 진영의 논쟁

    그러나 양측의 주장과 논쟁 자체가 무력화되었다. 소수, 신진 정치세력의 정치권 진입을 돕는다는 중대선거구제의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었던 4인 선거구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에 의해서 지역별로 완전히 유린되어버린 것이다.

    모든 4인 선거구는 2인 선거구로 쪼개져버렸다. 지역별로 민주노동당에서는 물리력으로까지 막아보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4인 선거구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열린우리당과 정치적 협상까지 진행되었으나 무산되었다.

    4인 선거구들이 붕괴되면서 사실상 새로운 선거법에 의한 지방선거는 보수 정당들의 잔칫상이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독식으로 이어졌지만 이는 이미 4인 선거구의 전면 붕괴 때부터 예고되었던 것에 불과하다.

    민주노동당은 애초의 목표에 현저히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고 풀뿌리 시민후보들은 극히 예외적인 두세 명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몰락하였다. 개성적인 지방자치의 꽃을 피워야 할 씨앗들은 질식사 직전이다.

    민주노동당의 초라한 성적과 풀뿌리 시민후보의 몰락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싹쓸이, 그 자체가 한국사회 지방자치와 풀뿌리 운동에 있어서 재앙일 까닭은 없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이번 사태를 초래한 선거법은 정치적 역관계의 정직한 반영일 뿐이다.

       
    ▲ 과천시의원에 당선된 서형원 후보

    “풀뿌리 운동의 입장에서 설령 열린우리당이 좀더 되었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느냐”는 풀뿌리 활동가의 푸념은 정직한 것이다. 현재 각 정당의 지역별 정치 주체들에게 어떤 독자적인 지역 정책들이 있단 말인가? 이러한 비판은 민주노동당, 무소속 시민후보에게 있어서조차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경기도 과천에서의 선거 결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7명의 기초의원 중에서 한나라당이 5명을 당선시켰지만 2개의 선거구에서 민주노동당 후보와 풀뿌리 시민후보가 각각 2등으로 당선되었다.

    선거 준비 과정에서부터 지역의 생협들, 청소년인권단체, 환경단체, 대안학교와 공동육아어린이집 등등의 시민들이 함께 양쪽의 선거를 준비하였다. 심지어 한 곳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와 시민후보가 내부 경선을 거쳐 후보를 단일화하기까지 했다.(여기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의 진보정당에게 있어서 지역 시민들의 뜻보다 더 높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상식으로 답하고자 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시민들에게 자신의 정치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당이 몇 명의 당선자를 낸다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과천, 민주노동-시민후보 각각 2등으로 당선 주목할 가치

    선거 운동 과정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의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었다. 정당공천제 속에서 대부분의 보수 정당 후보들은 당과 개인만을 알리기에 바빴다면 이들은 민주노동당 후보와 풀뿌리 시민후보를 각각 자기 단체의 의제들을 실현시켜나갈 정치적 교두보로 여기고 자기 일처럼 선거운동에 나섰다.

    개표 현장에서 개표 요원들은 술렁거렸다. 민주노동당이, 무소속 후보가 한나라당 유력후보와 1,2등을 다투자 전체 개표장의 분위기 자체가 달아올랐다. 어떤 이들은 신기해하고 어떤 이들은 생경스러워했지만 아무도 그 힘의 원천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동력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지역사회가 결의한다고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과천 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방과 후 교실을 함께 만들어내었던 공동의 경험과 이를 통해 쌓여진 공감대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국에서 눈 씻고 찾아보아도 지역의 시민 권력이 튼실하게 자리 잡고 지역 의제들을 정치적 힘으로까지 끌어올려 활동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당이 싹쓸이를 하든, 다른 당과 사이좋게 분점을 하든, 심지어 진보정당과 무소속 시민후보가 대거 진출을 하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지역정치 실천과 시민 자치력

    굳이, 정말 억지로 이번 선거의 미덕을 찾자면, 지역에서 새로운 각성이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일 뿐.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지역정치의 실천이며 이를 가능케 할 시민들의 자치력이다.

    과천조차도 그 기준으로 보자면 한참 멀었다. 시민들이 선거운동을 자기 일처럼 뛴다는 것이 무슨 자랑거리이겠는가, 실제로 지역정치는 자신의 일들이다. 자신의 일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해 직접 땀 흘리는 지역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의제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실천을 본격적으로 펼치지 않는 한 그저 ‘깨끗하고’, ‘착한’, 심지어 ‘진보적인’ 사람들이 지방정치권에 수혈된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진보 정당이, 시민후보가 풀뿌리 주민자치의 힘으로 지휘되는 단계까지 가지 않고서는 지방자치의 본질적인 진전은 단 한발자국도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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