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학자와 소설 ‘토지’
    이 시대 인간의 존엄, 품격은 어디에
    [책소개]『잃어버린 품격을 찾아서』(김윤자/생각의힘)
        2019년 01월 05일 10: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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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존엄에 관한 대서사, 박경리의 『토지』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1969년에 연재를 시작해 1994년 8월까지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는 원고지 4만여 장에 달하는 분량에 걸맞게 600여 명이라는 인물이 대거 등장한다. 시대적 배경 또한 1897년부터 1945년까지 반세기를 아우르고 있어, 동학혁명과 지주의 몰락, 외세의 침략, 신분 질서의 붕괴, 개화와 수구,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광복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세월을 겪은 한국 사회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5부로 완성된 『토지』는 한국 근·현대사가 겪어온 과정 속에서 다양한 계층의 인간들이 처한 저마다의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시작으로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수상했으며,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또한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기도 한 대작임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박경리 작가의 작품 전반에는 인간의 존엄과 소외, 낭만적 사랑과 생명 사상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인간이 지닌 존엄과 품격, 생명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두루 품고 있는 작품이 바로 『토지』다. 『토지』는 다양한 인물들이 삶을 이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일임을, 그리고 곧 그것이야말로 생명의 본능임을 일깨워준다.

    구시대의 낡은 관습과 제도가 인간의 존엄마저 위협하지만, 민초들은 이러한 운명의 굴레 속에서 인간임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이치고, 욕망에 사로잡혀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이들을 향해 멸시와 혐오의 감정을 뿜어내며 저마다 한(恨)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을 살아가는 경제학자는 『토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 『토지』를 읽으며 그 행간에서 과연 무엇을 찾아내었을까?

    경제학자, 『토지』에서 이 시대 인간의 존엄과 품격을 찾다

    『잃어버린 품격을 찾아서』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 김윤자 교수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또 잃어버린 것을 찾아 인간의 존엄을 되살리기 위해 탐구하고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1부 ‘빈자의 품격, 부자의 품격’에서는 『토지』의 나라 잃은 백성들이, 그러나 자기 존엄만큼은 치열하게 지켜내려 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부자여서 품격이 있음이 아님을, 먹고살기 팍팍해도 다름 아닌 자기 존엄을 위해 지킬 품격이 있음을 적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토지』의 보릿고개 시대가 아니다. 무려 국민소득 3만 달러대의 선진국 진입을 전망하고 있는 길목에서 그러한 전망이 가능하기 위해 빈자와 부자 모두를 위한 복지는 그들의 품격을 위해서도, 나라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시혜’가 아닌 고효율의 ‘사회적 투자’임을 강조한다.

    2부 ‘시장의 에너지와 시민의 품격’에서는 근대적 진보의 동력이었던 시장의 넘치는 에너지를 『토지』에서 묘사한 장터 풍경에 대비해 서술한다. 독점 시장의 폐해와 가진 이들의 천박한 ‘갑질’이 도무지 창피스러운 오늘의 대한민국이지만 식민지 지배를 통한 왜곡된 근대화로 우리가 아직 시장의 동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저자의 평소 생각을 바탕으로 시장의 에너지를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사회의 품격으로 조화시켜 모멘텀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전제로 해고를 둘러싼 갈등,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 낙하산 논란 등 몇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3부 ‘갈등의 품격’에서는 너나없이 불완전한 인간들의 세상에서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위기와 갈등을 풀어가는 기본 스탠스로서 갈등의 품격을 이야기한다. 미국, 영국, 유럽이 각각의 위기와 갈등에 임했던 에피소드들을 차례로 훑어보고,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의 땅 한반도의 리스크를, 그러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프리미엄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마지막 4부 ‘『토지』 남녀: 잃어버린 품격의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토지』의 몇몇 두드러진 인물들과 『토지』 전반에 흐르고 있는 미학을 통해 존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남녀 간, 부모 자식 간의 성(性)과 사랑과 연민을 풀어낸다. 이를 토대로 식민지 지배와 동존상잔의 전쟁, 개발 독재의 치달음 속에서 단절되어온 우리의 태생적 품격을 탐구한다.

    시민의 품격, 시민사회의 품격을 탐구하라

    “한국에서는 삼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친일 경력 혹은 좌익 경력이 나온다.”라는, 그래서 “한국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꼭 좋은 것인가?’ 하는, 그 말이 함축하는 특권 의식을 둘러싼 논쟁을 잠시 차치하자면, 책임감 있는 건전한 보수 세력의 부진, 자신감 있는 포용적 진보 세력의 부진 등 우리의 아픈 근대사를 상기시키는 말임에 틀림없다.

    그 아픈 근대사는 아마도 허수아비 왕을 세워놓고 사리사욕 채우기에 바빴던 조선 말 세도정치 속에서 이미 잉태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같은 세계에 유례가 드문 기록 문화의 유산, 사관과 암행을 비롯해 왕권과 신권(臣權) 및 백성 간의 견제와 균형, 애민과 민본의 통치 이념 등 나름대로 안정적인 농경문화와 중앙 집권적 통치 시스템을 구축했던 조선이지만 근대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식민지로 전락했다.

    열강들이 제국주의의 혼돈 속에 근대화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던 시기에 시민계급의 발흥도, 계몽 군주도 갖지 못했고, 그나마 일어섰던 동학 농민군은 외세 침탈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우리의 고단한 근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왕조는 사라졌지만 백성은 남아”(『조선왕조실록』, 박시백) 국내에서, 또 만주에서 끈질기게 애국 계몽 운동을 펼치고 신교육 운동, 식산 흥업 운동, 무장투쟁 등을 벌이면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는 대목이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선도해 근대화의 원형(prototype)으로 상징되는 영국의 경우, 1215년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에서 시작한 ‘지배자 군주’와 귀족 및 일반 시민 간의 균형과 견제라는 통치의 원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매우 점진적으로 진행되었고, 여성의 참정권은 192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법제화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함”을 규정했고, 이어 1948년 제헌 헌법과 함께 민주 공화국이 선포되지만, 선언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오늘날까지도 일정하게 지속되고 있다.

    『토지』에서 하동의 청백리 이동진은 망국의 한을 품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떠날 때 친구 최치수의 질문에 스스로 정리된 답을 주지 못한다. 양반의 권위 의식이 골수에 차 있으면서 기질적으로 시니컬하고 허무주의자였던 치수가 “자네가 마지막 강을 넘으려 하는 것은 누굴 위해서? 백성인가, 군왕인가?”라고 물었을 때 이동진은 “백성이라 하기도 어렵고 군왕이라 하기도 어렵다.”면서, “굳이 말하라 한다면 이 산천을 위해서, 그렇게 말할까?” 정도로 대답을 하고 떠난다.

    훗날 그는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독립운동의 동지로서 맞닥뜨리게 된 예전의 하인 구천이 반상(班常)에 갇힌 그의 도덕의식을 조롱할 때 처절하게 깨닫고서 통곡한다. “독립이라는 구실 아래 모든 것이 용납되는 현실에서 조선 시대 암행어사의 출두가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진다.”라는 그의 자조도 군주제든 공화제든 나름의 근대를 준비하지 못한 채 바뀌고 만 세월 앞에 서야 했던 양반계급의 서글픈 넋두리다. 그러나 그 서글픔이 비단 이동진 그만의 서글픔이었을까? 식민 지배와 민족 분단의 시련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우리 역시 “목욕물 버리다가 아기까지 함께 버리는” 사람들처럼 내 역사를 탈탈 털어버려 전승받은 자산도 없고 전통마저 단절된 채 천둥벌거숭이처럼 천박한 시장 속에서 염치없는 각자도생의 난전을 벌여온 셈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1980년대 초반의 운동 가요에는 유난히 ‘산하’니 ‘강토’니 ‘고국’이니 ‘산천’이니 하는 노랫말들이 많았다. 한편으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였다고 할 수도 있을 테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마다의 그림이 다를지라도 산천과 약소국의 민족이라는 매개로 그 차이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민족이란 존재의 근원, 자존감의 출발점일 것이다. 다만, 근대 민족주의가 자본가의 주도로 해외 팽창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침략과 수탈을 일삼게 되면서 편협한 집단 이기주의처럼 매도되고 민족주의 대 국제주의, 혹은 민족(우선)주의 대 계급(우선)주의 운운하는 대치의 도식이 생겨나버렸다.

    시장 원리를 중심으로 하는 주류 경제학과 교환 이전의 자산 상태를 포괄해 빈부 격차의 원리까지를 분석하고자 하는 여타 비주류 경제학 중에서 어느 하나만으로 한국 경제를 분석하는 데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이 비효율적인 관료주의와 비효율적인 시장 사이, 역설적이게도 이 지점에 한국 경제학도들이 독창성(originality)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때로는 에너지 넘치는 공정한 시장을, 때로는 민주적인 규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사회의 품격과 시스템으로서의 국가 역량을 다 같이 도모하는 그 과정이야말로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탐구의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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