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성하자, 하지만 '제대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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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02일 05: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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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는 이미 논쟁거리가 아니다. 2004년 ‘탄핵 반대 세력’(물론 반대의 이유야 서로 달랐더라도)에 대한 대중의 탄핵이라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결론을 끌어낼 수 있겠는가? 대중정치의 장에서 대중이 심판한 것인데 “반성하겠다”는 것 외에 달리 어떤 대응이 가능하겠는가?

    민주노동당 안에도 지금 ‘반성’론이 분분하다. 물론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반성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향을 잘못 잡은 반성은, 반성 안 하느니만 못하다.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기대치’의 위기다

    정당지지율 12%, 울산 단체장 상실, 기초의원 당선자 100명 미만 … 이 결과가 민주노동당이 반성해야 하는 주된 이유일까? 하지만 울산 단체장 상실을 제외하면, 이건 민주노동당의 현재 실력과 그렇게 동떨어진 결과는 아니지 않은가?

    기초의원 당선자 100명 미만이라고 하지만 애초의 기초의원 수보다 두 배가 늘었다. 전에는 정당을 내걸지 않고 인물로만 뽑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민주노동당’ 간판으로 당선된 것이다. 이건 차라리 약진이다.

    정당지지율 12%. 사실은 그나마 선거 과정에서 바람이 좀 불어서 얻은 성과 아닌가?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급추락’했는데 민주노동당은 총선 지지율 13%에 근접한 지지를 얻었다는 것은 오히려 주목할 만한 결과 아닐까?

    필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선거 결과를 감싸주기 위한 게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반성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자는 취지에서다. 선거 결과는 더도 덜도 없이 민주노동당의 실력 그대로 나온 것이다.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애초에 내건 목표에 있다. “15% 정당 지지율, 기초의원 300명 당선”을 내걸었었다. 물론 현재의 최고위원회가 내걸었다. 하지만 이게 최고위원회만 주장했던 것인가? 아니다. 당의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주장했고, 당원들도 사실은 동의했던 것 아닌가?

    그리고 이에 더해 외부의 시각이 있다. 총선 3위 득표를 한 당이 지방선거에서 적어도 이 정도는 나와야 선거 ‘승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언론과 선거 전문가들과 소위 식자층의 눈높이.

    이런 기대치는 어제 오늘 형성된 게 아니다. 2004년 총선 이후 당 안팎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이 기대치를 기준으로, 여론조사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재보궐 선거 결과가 안 좋으면, 그 때마다 당의 ‘위기’를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기대치 자체를 되짚어볼 때가 됐다. 단순히 당 지도부의 ‘허풍’만 탓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기 직시가 필요하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총의 지지에 기반해서 만든 당이고, 앞으로도 조직된 노동자․민중운동의 발전 위에서 성장하고 집권할 거라 선언한 당이다.

    강령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의 지향을 분명히 하고 있고, 선거 때도 평택 미군기지 싸움에 앞장서는 그런 당이다.

    한데, 한국사회에 지금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조직 노동운동의 몫이 얼마인가? 민주노총에 한국노총의 일부 노동조합을 합쳐도 100만이 안 된다. 전체 유권자의 2% 수준이다. 지역의 사회운동 이력은 또 얼만가?

    사실 민주노동당 지역조직들이 볼품 있게 만들어져 활동한 게 몇 년 안 된다. 당의 이념과 대안을 자신 있게 이야기해왔던가? 그렇지도 못하다.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나서도 보수언론 외에 기댈만한 대중 접촉면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이런 현실에서 ‘좌파’를 자처하고 ‘계급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당이 10% 넘는 정당지지율을 얻고 그래도 지역구 당선자가 있다는 게 외려 놀랄 만한 일 아닐까? 탄핵 반대운동 이후에 한국사회의 이념․정치 지형을 뒤흔든 어떠한 역사적 사건도 없었던 상황에서 말이다.

    미래 목표치의 수정과 새로운 성장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당원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사실 이런 것이다. 일종의 암묵적 합의라고 할까, 원래 우리의 시나리오는 2004년 총선 이후 두 가지 계기를 통해 당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는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통해 지지층을 급성장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결과가 드러났다. 12% 지지면 할 만큼은 한 거다. 하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급성장’은 분명히 아니다. 의원단이 잘못한 것인가? 그런 혐의도 분명 있다. 그러나 애초 우리의 기대 자체가 망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2007년 대선이다.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10%가 넘는 득표를 해서, 그 때의 민주노동당 바람이 2008년 총선으로 이어지게 하자는 것이다. 한데, 지금 이 전망도 흔들리고 있다. 대선 때 바람을 일으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문제는 설사 그렇게 된다 할지라도 2008년 총선에서 지역구에서의 비약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사실 그게 ‘불가능할 것 같다’는 신호다.

    이 대목에서 몇 가지 ‘전형적’인 반성들이 대두할 수 있다. 물론 그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실제 많지는 않겠지만, ‘진보개혁세력 대연합’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보다 더 많은, 더 진지한 목소리는 서민들에게 접근하는 새로운 대중정치를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물론 이에 동의한다. 무엇보다도 2007년 대선으로 향한 길목이 이러한 대중정치의 활발한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2004년 총선에서 확보한 ‘개혁’ 유권자층에서 이번에 한나라당을 지지한 ‘서민’ 유권자층으로 ‘목숨을 건’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딴죽을 걸어야 할 게 더 있다. 이런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얻어야 할 목표치는 무엇인가? 우리가 우리의 전진과 후퇴를 판가름할 기준은 무엇인가?

    여기서, 욕먹을 소리 하나 해야겠다. 이제 민주노동당의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민중운동이 지금의 교착 상태를 돌파하고 지역의 진보 역량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에만 질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민주노동당 정치인이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게 더 이상 당 내의 논란거리가 되지 않고 미군기지에 맞선 싸움이 대다수의 무관심과 냉소의 대상이 되지 않을 때 비상할 수 있는 정당이다. 그 때까지, 그 때까지 이 당은 5%에서 10%다.

    노회찬 의원은 “민주노동당의 정체성만 빼고 모든 걸 다 바꾸자”고 했다. 필자는 “바꿀 수 없는” 그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의 핵심은 바로 위와 같은 냉정한 현실 인식이라고 본다.

    그렇다. 우리의 모든 것을 바꾸자. 하지만 더 이상 허황되지는 말자. 바꾸더라도 ‘제대로’ 바꾸자. 아직 8만 당원의 머릿속에서 “선거 승리”가 “세상을 바꾸자”는 외침의 수단이지, 그 역은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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