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섬뜩한 우리 이야기
    [그림책 이야기] 『안녕, 블립』(스티브 안토니/ 우리동네책공장)
        2019년 01월 04일 10: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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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와 연결하다!

    그림책 『안녕, 블립』의 표지는 아주 새까맣습니다. 새까만 표지에 은빛 꼬마 로봇 블립이 나옵니다. 블립의 손에는 플러그가 들려 있습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표지를 넘겨보니 왼쪽 페이지 위에 컴퓨터가 나옵니다. 모니터에는 로딩 중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마 부팅 중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컴퓨터와 연결된, 길고 구불구불한 전선이 있습니다. 전선은 구불구불 이어져서 오른쪽 페이지에 있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플러그를 손에 들고 있던 꼬마 로봇 블립입니다.

    안녕, 블립! 컴퓨터가 꼬마 로봇 블립에게 인사를 합니다. 이제 즐거운 시간이 시작됩니다. 컴퓨터는 블립에게 산수를 가르쳐 줍니다. 컴퓨터는 재미있는 게임도 제공합니다. 컴퓨터는 블립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블립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게다가 컴퓨터 속에서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꼬마 로봇 블립은 날마다 컴퓨터가 보여주는 세상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꼬마 로봇 블립의 행복이 끝나버렸습니다. 갑자기 정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이 캄캄해졌습니다. 너무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던 블립은 전선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 순간 전선이 다리에 걸려 당겨지면서 블립과 컴퓨터를 연결한 플러그가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필이면 블립이 넘어진 곳이 계단이었던 것입니다. 블립은 계단을 따라 떼굴떼굴 굴러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세게 굴러 떨어졌는지 블립은 현관문에 부딪혀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버렸습니다. 다행이 블립은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진 로봇이라 아무 데도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평생 컴퓨터가 보여주는 세상 속에서 살던 블립이 이제 처음 컴퓨터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블립 앞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요? 꼬마 로봇 블립은 컴퓨터와 함께 살았던 것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아주 섬뜩한 이야기

    사실 『안녕, 블립』을 처음 보는 순간, 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꼬마 로봇 블립의 모습이 요즘 우리 아이들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뿐만이 아닙니다. 꼬마 로봇 블립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여러분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나요? 저는 스마트폰을 봅니다.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 알람을 끕니다. 시간을 확인하고 날씨를 봅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새로운 알림을 찾아봅니다.

    이제 사람들은 스마트폰 안에서 세상과 소통합니다. 스마트폰에서 정보를 얻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스마트폰으로 쇼핑도 합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집밖에 나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친구가 보고 싶으면 화상 통화를 하면 됩니다. 친구와 함께 놀고 싶으면 온라인 게임을 하면 됩니다. 보고 싶은 영화나 공연도 언제든지 스마트폰으로 혼자 볼 수 있습니다. 백화점에도 재래시장도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스마트폰 안에 다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사람들과 진짜 세상을 연결해주는 건 택배 노동자들뿐입니다.

    누구를 위한 기술이고 과학인가?

    그런데 택배 노동자들에게도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곧 자율주행과 드론의 시대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택시 노동자, 화물 노동자를 비롯한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IT 기술자들이 근로기준법과 상관없이 밤을 새우며 수많은 기업을 디지털 기술로 자동화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해고와 퇴직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자동화는 곧 해고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었던 국가와 기업이 우리를 버리고 있습니다.

    기업과 기술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이다!

    안타깝게도 디지털시대와 자동화의 가속화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국가와 기업을 지배하는 소수의 이윤을 위한 것입니다. 진정 국가와 기업이 사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면 계약직 노동자를 만들지 않습니다. 명예퇴직을 강요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디지털시대와 자동화의 진짜 의미는 사람이 할 일을 컴퓨터와 기계가 대신한다는 뜻입니다. 정말 무서운 현실입니다.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를 대신해서 컴퓨터와 기계가 진짜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내가 할 사랑을 기계가 대신하고 내가 받은 사랑을 기계가 대신 받는다는 뜻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목 뒤에 플러그를 끼우고 허상 속에 사는 모습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습니다.

    기술의 진보가 우리를 노예로 만들지 않으려면 교과서부터 고쳐 써야 합니다. 기업과 기술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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