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대통령 비정규직 눈물 닦아줬더라면 그런 참패는 안 당했을 겁니다"
        2006년 06월 02일 07: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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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특공대가 처들어오기 하루 전인 6월 1일 오후 5시3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하이닉스 본사 앞. 1m90의 장신에 몸무게가 족히 100Kg은 되어 보이고 머리는 짧게 깍은 젊은이 50여명이 하이닉스 앞에 무서운 표정으로 서있다. 깍두기 청년들의 매서운 눈을 지나자 반가운 하이닉스 조합원들의 얼굴이 보인다.

    40여명의 조합원들이 대표이사 면담을 요구하며 12층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오늘로 열흘. 그러나 회사는 대화가 아니라 200명이 넘는 용역직원들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발면으로 아침 허기를 때우고, 점심은 2천원짜리 도시락으로 버티고 서울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농성장에 돌아와서야 겨우 백반 한 그릇을 먹는 노동자들. 그래도 아래에 있는 노동자들은 ‘배부른 소리’다.

    12층에 있는 노동자들은 온 종일 김밥 한 줄로 버틴다. 매일 점심시간 경찰은 김밥 40줄을 확인한 후 밀봉을 해서 회사에 건네주고 회사는 그걸 농성자들에게 전해준다. 도시락도, 김치도, 생수도 거절했다. 심지어 아픈 사람에게 건넬 약도 회사는 받아주지 않았다. 23일 농성을 시작하고 사흘 동안은 아무 것도 올려 보내지 않아 수돗물을 틀어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송대균 조합원은 "농성 시작하고 나서 3일간 아무 음식도 들여보내지 않아 우리 동지들이 먹어야 할 음식을 여기에 쌓아놓고 우리 손으로 다 집어던졌을 때가 가장 맘이 아팠다"고 말했다.

    가난한 노동자 ‘연대의 삼계탕’ 먹다

    이날 가난한 노동자들 앞에 때아닌 삼계탕이 나타났다. 서울 시내 대시민 선전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자, 금속노조 서울지부와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 조합원들이 닭 50마리를 삶아온 것이었다. 한 사람 당 닭 한 마리. 열흘만에 처음으로 밥다운 밥을 먹는 조합원들은 오늘도 ‘김밥 한 줄’로 하루를 버티는 12층의 동지들을 생각하며 가슴아픈 연대의 삼계탕을 먹어야 했다.

       
     
    ▲ 6월 1일 오후 6시 강남 하이닉스 본사 앞에서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금속노조 서울지부에서 준비해온 삼계탕을 먹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식사를 하고 있던 유재학 조합원에게 12층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ㅎ조합원이다. "몸이 아픈 건 견딜만 해. 내일 여기 집회가 있으니까 해결이 잘 됐으면 좋겠다." 그는 유 조합원에게 매일 밤 용역들이 12층 문 앞에서 발로 차고 소리치면서 난동을 부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ㅎ조합원은 지난 해 7월 대전지방노동청 앞에서 ‘불법파견 인정’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다 탈진해 쓰러졌다. 의사는 몸 상태가 아주 안 좋고, 심근경색이 있어서 더 하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다. 유 조합원은 "12층에서 같이 농성하는 조합원들이 몸아 많이 아프니까 내려가서 투쟁하라고 등을 떠밀어도 그는 끝까지 같이 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지지 80표가 날아가다

    하이닉스 조합원들은 5월 31일 아무도 투표하러 가지 못했다. 송대균 조합원은 "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노무현을 찍었다"며 "노무현에게 기대를 건 사람들에게 절망을 줬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참패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 조합원들이 선거운동은커녕 투표조차 하러 가지 못했기 때문에 청주에서 민주노동당 80표가 날아갔다. 송 조합원은 "몇 표 차이로 민주노동당 후보가 기초의원에서 떨어졌다는 얘길 듣고 많이 속상했다"고 말했다.

       
     
    ▲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김기철 조합원
     

    옆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김기철 조합원이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묻자 주저없이 말한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노무현이 대통령 되고 나서 길거리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아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대통령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잖아요. 잘사는 사람은 더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사는 사회구조가 됐어요. 당연히 참패를 할 수밖에 없어요. 아니, 참패를 당해야 해요."

    그랬다. 노무현 대통령이 약속했던 것처럼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면, 하이닉스 매그나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을 함께 했다면 850만 비정규직과 그의 가족들이 열린우리당을 이토록 처절하게 심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그 표가 노동자와 서민을 이해하는 민노당으로 갔으면 좋은데 한나라당으로 갔다는 거예요. 저는 한나라당도 똑같다고 보거든요." 이것을 두고 금속노조 전송철 부위원장은 "현명한 국민들의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불렀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왜 민주노동당을 외면했나

    그렇다면 왜 노동자와 서민들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 않았을까?
    "저 같은 경우도 노동조합 하기 전까지는 민주노동당이 무슨 일 하는지 몰랐어요. 이거 하면서 민노당이 서민과 약자들을 위해 애쓴다는 걸 알았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랫동안 지역감정에 젖어 지금까지 당만 보고 무조건 찍잖아요. 아직도 민주노동당이 어떤 정당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예요. 노동자로 일하는 우리 형과 동생도 그렇거든요."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패배했다. 울산에서 구청장 2명이 날아갔고, 정당 지지율도 떨어졌다. "민주노동당이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마음에 와 닿게 하지 못했어요. 우리들 거의 대부분이 민노당 당원이예요. 우리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아가면서 자기 자신이 몸으로 느꼈을 때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게 되고 민노당은 이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울 수 있겠죠."

    그랬다. 지난 선거운동 기간 동안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서민들에게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서라고, 민주노동당이 함께 하겠다고 하지 못했다. 다른 당 후보들처럼 인사하고 명함 나눠주고 얼굴 알리기에 바빴던 것은 아니었을까? 전국에서 출마한 801명의 전사들이 노동자와 서민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호소했다면 민주노동당이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작은 희망의 빛을 전해주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는 민주노동당에게 희망을 본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다른 당보다는 희망이 많죠. 가면 갈수록 아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희망도 많아질 거예요.”

    그는 7살과 4살짜리 아이를 키운다. 그는 "아이들 때문에 많이 힘들다가도 애들 눈을 들여다보면 애들 눈이 겁나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아빠가 되기 위해서, 내가 아이들을 떳떳하게 가르칠 수 있기 위해서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KTX 여승무원 20명 연대방문

       
     
    ▲ 6월 1일 저녁 8시 하이닉스 본사 앞 농성장에서 연대방문을 한 KTX 여승무원들이 율동을 하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7시가 조금 넘어 KTX 여승무원 20여명이 찾아왔다. 갑자기 칙칙하던 사무실 분위기가 환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화기애애해졌다. 파업투쟁을 시작한 지 아직 100일도 되지 않은 노동자와 500일을 넘긴 노동자. 운수노동자와 제조업노동자.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

    이들이 하는 일은 달랐지만 이들은 둘 다 "원청회사가 중간착취업체를 이용해 부당하게 착취해 온 노동자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한목소리로 강남대로가 떠나갈 듯이 외쳤다.

    "원청이 사용자다 직접고용 쟁취하자"

    그러나 KTX 이철 사장도, 하이닉스 우의제 사장도 이들과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 얼마나 더 오래 싸워야, 얼마나 더 격렬하게 싸워야 사용자들이 나설까. 김기철 조합원이 말한다. "10년을 넘게 일하면서 마음속에 늘 품고 있었던 생각이 뭔 줄 아세요? 꼭 한번 노조 만들어서 뒤집어엎어야겠다는 거였어요.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몰랐지만, 얼마나 악에 받쳤으면 1년 6개월이 넘도록 싸우고 있겠어요? 앞으로는 더 격렬한 투쟁을 할 거예요."

    8시부터 하이닉스 조합원들과 KTX 여승무원들이 함께 한 투쟁문화제는 90분동안 환호와 함성, 분노와 결의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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