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한국 영화 :
    허상 넘어, 현실 고민하기
    [기고] 한국 영화의 고민과 성찰은?
        2018년 12월 31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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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이 지나간다. 많은 이들에게 2018년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각자마다 올 한 해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최소한 영화판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 2018년에게는 ‘막막함’이라는 말이 더욱 와닿을 해였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2017년에는 ‘막연한 기대’가 영화판 내부에 감돌았다. 한창 2016년 말엽에 정체가 드러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시끌시끌했던 직후였다.

    몇몇 독립-예술영화, 일부 저예산 상업 영화들이 아무리 사업 지원을 신청해도 선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 원인에는 지난 두 정부의 보수적인 성향이라 짐작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직접적으로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던 것이다. 한창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터져 나온 분노에 영화인들을 비롯한 문화예술인이 합세하였다.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한편, 좀 더 엄밀하고 공정한 영화 정책과 환경의 구축을 요구하였다.

    그 바람의 일부는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는 2017년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하며 모든 업무가 정지되었고, 3월이 되어서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최종적으로 인정되었다. 뒤이어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고, 뒤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영화계 반독과점 법률안을 제출했었던 도종환 국회의원이 임명되자 기대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지만 2018년에 당면한 현실은 차가웠다. 조윤선, 김기춘을 비롯해 박근혜 정권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였던 고위 인사에 대한 처벌은 이뤄졌지만, 실무자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많은 실망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아쉬움을 남긴 부분은 정책도, 환경도 모두 이전 정권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2018년 1월 출범한 오석근 위원장 체제의 영화진흥위원회는 출범 직후 영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를 하고, 정책 수립 및 집행-운영에 있어 최대한 영화계 인사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위원 구성에 있어서도 조영각 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독립영화 인사를 선임하거나, 위원회 산하에 ‘독립예술영화’ ‘지역영화’ 등 최근 영화계 현안을 아우를 수 있는 분야의 소위원회를 설치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영화인들이 얼마나 변화를 체감했을까. 2018년 한국 영화의 흐름은 더욱 거세고,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흐르고 있었다.

    움츠러든 상업기획영화

    많은 이들이 2018년에 가장 인상 깊었고,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은 한국 영화로 주호민 원작, 김용화 연출의 <신과 함께> 시리즈를 떠올릴 것이다. 이러한 예측은 결코 틀리지 않다. 작년 12월 20일에 개봉한 <신과 함께 : 죄와 벌>은 남은 2017년 열흘의 시간 동안 약 8백만명의 관객을 휩쓴 것에 이어 해가 바뀐 2018년에도 약 6백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기록을 거뒀다. 이후 올해 8월에 개봉한 후속작 <신과 함께 : 인과 연>은 전편의 1400만 관객에 이어 1200만 관객을 모으는 거센 인기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하지만 문제는 나머지 작품의 상황들이었다.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제외하고 2018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기록한 영화는 추석 시즌에 개봉한 <안시성>이었다.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최종 관객수는 <신과 함께 : 죄와 벌>이 2018년에 모은 관객수보다 적은 540만 관객에 그쳤다. 2018년의 상업영화가 2017년 끝자락에 개봉한 영화의 성적보다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2017년 상업기획영화와 2018년을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이는 2017년 한국영화의 흥행 성적과 달리, 2018년의 경우에는 절대 다수가 3백만 관객 이하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흥행 성적은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제외한 대규모 제작비를 투여한 작품들이 대부분 만족할 만한 흥행을 기록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뜻과도 같다. 추석 시즌을 노리고 개봉한 작품들은 가까스로 500만 관객을 돌파한 <안시성>을 제외하고 모두 흥행에서 쓴맛을 봐야만 했다. (<협상>, <명당>, <물괴>, <원더풀 고스트>)

    이와 반대급부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중소규모로 제작된 영화들이 흥행적인 측면에서도 이득을 보았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국가부도의 날>을 비롯하여, <마녀>, <너의 결혼식>, <곤지암>, <리틀 포레스트>, <미쓰백>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제작비를 절감하고 특정한 포인트에 집중한 작품들이 주목받는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2017년의 경우에는 중소규모로 제작한 상업영화는 <재심>과 <박열>, <해빙> 정도만 흥행적인 측면에서 성과를 냈던 것을 생각하면, 단순히 ‘대형 블록버스터’라는 스케일로만 관객을 끌어 모으는 것에는 서서히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 차가웠던 독립-예술영화

    하지만 아무리 상업영화가 움츠러 들었다고 해도 독립-예술영화의 상황보다 더 차가울 수는 없었다. 2018년에 개봉한 한국 독립-예술영화들 중에서는 단 16개 작품만이 독립-예술영화에서 흥행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1만 관객을 돌파했다. 2017년에는 29개 작품이 1만 관객을 돌파했던 것을 생각하면, 단 1년 사이에 독립-예술영화를 관람하는 풀 자체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음모론을 제시했던 김어준 제작, 김지영 연출의 <그날, 바다>가 약 54만 관객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작품이 흥행에서 기록을 세우지 못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나마 CGV 아트하우스가 투자-배급 단계에서 관여한 <소공녀>, <영주>, <죄 많은 소녀> 정도만이 흥행에서 유의미한 기록을 거뒀을 뿐이었다.

    오랜 시간 통했던 ‘홍상수’의 이름값도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상반기에 개봉한 <클레어의 카메라>가 간신히 9,439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1만명의 문턱에 간신히 머물렀지만, 하반기에 개봉한 <풀잎들>은 7,302명의 관객이 감상하며 더욱 흥행이 감소했다. 사회 이슈를 전면으로 다룬 작품이 잘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세월호나 한국 전쟁 같이 한국 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민감하게 다가오는 이슈를 선점한 <그날, 바다>나 <폴란드로 간 아이들> 정도만이 주목을 받았을 뿐,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다수의 독립-예술영화는 모두 흥행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그나마 2012년 개봉하여 큰 화제가 되었던 용산 참사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의 후속작인 <공동정범>이 가까스로 11,252명의 관객을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그린 <1991, 봄>도, 박정희 정권 당시 폭력적인 개척지 인력 동원을 추적한 <서산개척단>도, 국정원 대선개입을 취재하여 만든 <더 블랙>도 모두 흥행에서 난항을 겪고 말았다.

    한국 영화에도 영향을 미친 페미니즘의 물결

    이렇게 전반적으로 상업영화, 독립-예술영화 모두 흥행 난조에 빠진 사이에서도 두드러지는 모습들은 존재했다. 그 중 하나는 2010년대 중후반 들어 다시 사회적인 의제로 대두되고, 2018년에는 ‘미투 운동’과 같은 운동과 연결되며 더욱 거세게 흐른 페미니즘에 대한 요구였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2018년 초 독립-예술영화에서 발생한 모습이었다. 우연하게도 1월 말에 작품 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은 독립 다큐멘터리 3작품이 동시기에 개봉을 하게 되었다. 바로 <공동정범>과 생리의 문제를 그린 <피의 연대기>, 그리고 감독 본인을 중심으로 고부 갈등을 포착한 <B급 며느리>였다.

    많은 이들은 2012년에 약 10만명의 관객을 모았던 <두 개의 문>의 후속작인 <공동정범>이 가장 흥행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하지만 실제 흥행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세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던 작품은 다름 아닌 19,843명의 관객을 기록한 <B급 며느리>였다. 그다음으로는 11,252명의 관객을 모은 <공동정범>, 그리고 10,631명의 관객을 기록한 <피의 연대기> 순이었다. 하지만 <피의 연대기>가 초반 스크린수가 30개 내외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스크린을 확보헀던 <공동정범>과 관객수 차이가 얼마나지 않는 모습은 여러모로 상징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발생했던 것일까. <B급 며느리>의 경우 적극적으로 TV나 라디오에 감독이 모습을 드러내며 흥행에 신경을 기울였고, 작품의 내용과 상관없이 ‘고부 갈등’이라는 소재가 중장년 관객들의 호기심을 이끈 측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흥행에 선방한 <피의 며느리>와 함께 생각하면, 사회 전반에서 불었던 페미니즘의 열풍과 결코 배제해서 생각하기에는 힘든 모습이었다. <B급 며느리>는 ‘고부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동시에 며느리가 쉽게 시댁에 순응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시댁에 의견을 개진하며 싸우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피의 며느리> 역시 근래 불거졌던 생리대 유해성 논란, 생리컵 허용 논란 등 여성의 ‘생리’와 관련된 지점을 종합적으로 훑어냄으로서 개봉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측면이 있었다.

    두 번째로 상기해야 할 모습은 <미쓰백>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들이다. 이지원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 <미쓰백>은 절대적인 흥행 수치로 비교하면 마냥 흥행이 잘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곤란했다. 최종 흥행 성적은 약 72만명에 그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작품적인 측면으로도 여러 왈가왈부가 있었다. 가정 내 아동 학대를 소재로 삼은 것에 대해서는 큰 비판은 없었지만, 학대를 묘사하고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점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아동 학대의 실상과 쉽게 구석으로 몰리는 여성과 아동의 현실을 그렸다는 평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아동 학대의 현실을 극대화하여 묘사하는 것은 물론 주인공인 ‘미쓰백’(한지민)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러한 엇갈림에도 불구하고 <미쓰백>은 온라인 상에서 분 ‘여성 서사 영화’를 보러가자는 움직임이 실제 극장가에도 빛을 발한 사례라는 점에서 많은 이슈가 되었다. <소공녀>. <허스토리>, 그리고 <박화영> 같은 작품에 있어서도 여성이 주인공이며, 여성이 중심이 되는 서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관람을 권유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 움직임이 결실이 된 작품은 <미쓰백>이었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실제 영화를 제작하거나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는 살짝은 부족할지 몰라도, 근래 CJ CGV가 발표했던 관객 통계에서 언급되었듯 여성-1인 관객의 증가가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에서도 영향을 미침을 드러내는 지표라는 점에서는 분명해보인다.

    ‘개인’이 중심에 선 영화를 원하다

    동시에 2018년 한국 영화에서 감지된 모습은 ‘개인’이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를 원하는 흐름들이었다. 대규모의 제작비를 들이며 ‘안시성 전투’(<안시성>),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명당>), ‘거대한 악에 맞서는 음모’(<골든 슬럼버>)를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극장에서 외면을 받는 사이, 이야기의 크기는 작을지 몰라도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중심에 세운 영화들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18년 상반기에 슬리퍼 히트를 기록한 <리틀 포레스트>와 <소공녀> 같은 작품들이 이러한 성향을 대표하는 영화들이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며, 이미 몇 년 전 일본판 영화가 관심을 모으며 주목 가능성을 보였던 임순례의 <리틀 포레스트>는 분명 낭만적인 이상향으로 가득찬 작품이다. 원작보다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농촌의 모습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리틀 포레스트>는 여성 혼자서 농촌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최대한 지운 채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동네 친구들과 일상을 즐기는 여유로움과 느릿함을 빈 자리에 채워넣기를 시도한다. <소공녀> 역시 현실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거처를 옮겨 다니며 삶을 영위하는 ‘유랑민’의 삶을 낭만화시키는 방식으로 20-30대 청년들의 삶을 묘사한다. 그러기에 이 두 작품은 비평적인 차원에서는 현실에 대한 쉬운 이상화-낭만화로 비판을 받은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흥행적인 측면으로 성과를 거둔 것은 사회적으로 ‘낭만적인 삶을 사는 개인’의 모습을 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측면은 흥행에서 유의미한 모습을 드러낸 다른 작품들에서도 연달아 감지된다. 한국 영화에서 비로소 IMF 금융위기를 전면에 내세운 최국희의 <국가부도의 날>은 철저히 ‘개인’의 힘을 강조한다. 실제 IMF가 발생한 국제적-내부적 경제의 역학 관계에 세부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대신, 남은 자리에는 IMF 때 실제 있었을 법한 개인들의 존재를 세우면서 이들이 IMF의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하려 노력하는지를 강조하는 형태로 IMF의 시대상을 그려내기를 시도한다. 그 안에서 거시적인 움직임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거대 관료조직에서 저항하는 ‘개인’,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돈줄을 잡는 ‘개인’, 그리고 저항하지도 위기를 알지도 못한 채 시대에 휩쓸려 가다 각자도생을 시도하는 ‘개인’으로 나눠질 뿐이다.

    대의를 어설프게 강조하는 상업영화들이 대거 흥행에 실패했던 것을 생각하면, 겨울에 발생한 <국가부도의 날>은 한국 사회 전반의 욕구와 변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이정표로도 볼 수 있다. <죄 많은 소녀>, <박화영>, <어른도감> 같이 어떠한 폐쇄적인 사회 내부에서 피해를 입은 개인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독립-예술영화에서 자주 등장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흐름을 고민하기 위해

    이러한 2018년 한국 영화의 흐름은 앞으로 구축해 나가야 할 환경과 정책 구상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드러낸다. 2017년의 <군함도>, 2018년의 <인랑>이 각각 흥행이 실패했을 때 풍문으로 들려온 말이 있다. “이제는 도저히 관객들이 무엇을 볼지 알 수가 없어.” 이전까지 통했던 방식이 이제는 점차 통하지 않는다. <인랑>의 실패는 그야말로 한국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음을 드러내는 사건과도 같았다.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오시이 마모루의 원작을 가져오는 한편, 강동원-한효주-정우성-김무열이라는 유명 배우를 주연에 배치했다. 원작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는 2018년 한국을 감싼 ‘남북 통일’이라는 이슈를 활용해 주목을 모으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과는 처참한 흥행 실패였다. 관객들이 좋아하리라고 생각할 코드를 모조리 가져왔지만, 최종 관객수는 100만도 넘지 못했다.

    물론 모든 블록버스터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신과 함께> 시리즈를 비롯해, <인랑>과 비슷하게 남북 화합에 대한 이슈를 다뤘던 <공작>은 <인랑>과 달리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것은 물론 약 497만 관객을 기록하며 쏠쏠한 흥행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영화들의 흥행에 불구하고, 많은 영화인들이 기대했던 대형 프로젝트들 다수가 줄줄이 무너졌다는 것은 앞으로의 한국 영화 기획 개발이 이전과는 결코 같을 수 없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문제는 독립-예술영화가 처한 현실과도 연결된다. 실망스러운 모습들이 가득했던 2018년의 한국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예술영화에서는 여전히 흥미롭고 독특한 작품들이 계속 극장을 수놓았다. 하지만 대체 무엇이 단 일 년 사이에 한국 독립-예술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게 했던 것일까. 그에는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유통과 배급이라는 측면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00년대와 비교하면 2010년대 한국 독립-영화는 단순히 확보한 스크린의 수로만 비교하면 월등히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20개 스크린을 확보하기도 어려웠던 2000년대의 한국 독립-예술영화와 달리, 조금만 심혈을 기울인다면 20개 스크린은 기본에 몇몇 주목작들의 경우에는 1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감지된다.

    그러나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과는 별개로, 시간이 지날수록 전체적인 모객은 계속 감소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상영관을 확보하는 이상으로, 원활한 상영시간이나 상영횟수를 배정받지 못한 영향도 존재한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개봉을 시도하는 한국 독립-예술영화도 증가하고, 독립-예술영화관에서는 해외 작품과도 경쟁을 해야만 한다.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무작정 시장에서 맞붙는 현실에서는 결국 시대정신을 자극하는 특정 작품만이 성과를 거둘 수밖에는 없다.

    이런 현실 앞에서 독특한 시도를 감행했던 독립영화가 두 편 있었다. 바로 장우진 감독의 <춘천, 춘천>과 백재호-이희섭 감독의 <대관람차>이다. <춘천, 춘천>은 상영관을 최대한 끌어 모으는 대신 의도적으로 특정 상영관에 집중하는, 다시 말해 ‘단관 개봉’을 시도했다. 서울 종로3가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단독으로 개봉하는 실험을 펼친 것이다. 한편 <대관람차>의 경우에는 최대한 영화 상영과 연계된 다양한 부대행사를 기획하는 형태로 작품의 배급을 시도했다. 다양한 영화 ‘굿즈’(goods, 상품)을 만드는 한편 ‘음악 영화’라는 특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공연 연계 상영을 기획하기도 했다. 마치 2014년 개봉한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 담긴 측면을 최대한 활용하는 형태로 마케팅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어떤 성과를 거두었을까. 지난 12월 21일 <씨네21>과 장우진, 백재호 감독이 함께 나눈 인터뷰에서는 “소기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발견했다”는 말이 나왔다. 절대적인 관객수는 5천명도 넘기지 못했고, 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모객과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모두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관 개봉을 감행했던 <춘천, 춘천>은 개봉관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1,506명의 관객을 모으는 것에 성공했고 인디스페이스의 좌석 점유율을 소폭 상승시키는 효과를 만들었다. <대관람차>는 3,591명의 관객을 모으며 매니아 관객을 개발할 수 있었다. 완벽한 성공이라 말하기에는 힘들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단서를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한국 영화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길도 이러한 실험들과 변화의 양상에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단순히 ‘반독과점’이라는 구호로, ‘정권 교체’라는 대형 사건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애초에 아니다. 멀티플렉스 밖의 관객을, 정형화된 영화 제작과 극장 상영의 틀을 벗어나 더욱 다양하고 창의적인 행보를 독려할 수 있는 정책적-사회적인 지원과 연대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행정적-공공적인 성찰이 필요하지만, 민간과 사회의 차원에서 새로운 상을 구현하고 정착할 수 있는 새로운 상시적 체계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이 함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처럼, 한국 영화의 새로운 전기도 서로가 만나고 변할 수 있을 때서야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필자소개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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