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로운 전환 없는 대한민국
    [에정칼럼] 전환시대, 어떻게 어디로 갈 것인가
        2018년 12월 31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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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없이 온실가스 감축은 불가능하다.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24차 유엔 기후변화총회(COP24)의 의미를 요약하면 이렇다. 온도 상승을 제한하려는 목표를 달성하자면 여러 실행 방안들이 필요한데 이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다.

    2018년을 뜨겁게 달군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는 기후변화 대응이나 에너지 전환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유류세의 역진성 등 사회 부정의에 분노하는 것이다. 기후정책 중 하나인 탄소세에 대해 좌파 내부에서도 논쟁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기후정의 원칙에 맞게 설계하면 조세정의를 실현하고, 나아가 기본소득(시민배당)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13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박원석 의원실의 탄소세(기후정의세) 연구에서 기후정의특별회계와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제안한 바 있다.

    탄소세는 기후나 경제 이슈의 일부일 뿐이다. 생태-경제-정치 위기에서 촉발된 체제전환 요구는 새로운 논의, 즉 전환논쟁으로 우리를 이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은 세상을 위해 확대해야 할 분야와 축소해야 할 분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 조건과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고, 전환과정에서 사람과 생태보다 이익과 자본이 우선하는 사회를 교정하지 않고서는 공정하고 안전한 나라를 바랄 수 없다. 녹색이면서 괜찮은 일자리가 얼마나 보장되는가가 주요 지표가 된다. 2016년 구의역 사고 이후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는 전환의 사각지대를 상징하며, 동시에 문재인 정권의 취약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저탄소 녹색성장’은 청와대와 공공기관의 유전자에 변형되어 존재한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에너지원을 교체한다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노동적폐 청산은 후퇴하고 있고 녹색 일자리는커녕 괜찮은 일자리는 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댈 곳은 사회적 저항밖에 없다. 과거청산이 미흡한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비관과 불안일 것이다. 민주당류의 개혁정권이 갖는 한계치, 국민 다수의 기대치, 정권의 능력치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 관련 국정과제에 초점을 맞추면, 새해에는 정의로운 전환 전략을 수립해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수용된 정의로운 전환 개념은 올해 카토비체를 경과하면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서명한 연대와 정의로운 전환 실레지아 선언(Solidarity and Just Transition Silesia Declaration)과 COP24의 고위급 회담인 탈라노아 대화(Talanoa Dialogue)의 요청문서(Talanoa Call for Action)는 우리에게 녹색복지국가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질문을 던진다. 사람과 지역과 환경을 살리는 지속가능한 한국의 길이 무엇인지,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가치이자 방법을 통해서 찾아야 한다는 주문인 것이다.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전환계곡을 탐사하고 극복하는 흐름은 이미 세계적으로 형성되어 있고, 검토할만한 사례도 제법 많다. 최근에 끝난 석탄전환(Coal Transitions) 국제 연구 프로젝트(Climate Strategies와 Institute for Sustainable Development and International Relations 주관, 2016~2018년)와 유엔사회개발연구소와 로자룩셈부르크재단 등이 함께 하는 정의로운 전환 합동 연구(Just Transition Research Collaborative, JTRC)에서 배울 것이 많다.

    유럽연합의 석탄지역 전환 이니셔티브(Coal and Carbon-Intensive Regions in Transition Initiative)와 독일 정부가 후원하는 유럽 기후 이니셔티브(European Climate Initiative, EUKI)의 정의로운 전환 프로젝트(2017~2020년)는 한국 정부가 지원할 탈석탄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 담론을 주도한 국제노총(ITUC)이 조직한 정의로운 전환 센터(Just Transition Centre)가 제출한 보고서(Just Transition: A Business Guide, 2018)는 노동자 등 여러 행위자들과 협력해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을 제시한다. 그리고 유엔 책임투자원칙(PRI)은 국제노총과 함께 정의로운 전환 투자 가이드라인(Climate Change and the Just Transition: A Guide for Investor Action, 2018)을 권고한다. 기업과 금융 역시 정의로운 전환에 동참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전환을 주장하고 전환시대를 전망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절차적 정의와 분배적 정의, 그리고 회복적 정의를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앞으로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는 치열한 전환논쟁을 통해 결정하고 검증 받으면 된다. 성장과 탈성장 중 어느 것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전환전략도 달라지겠지만, 우선은 판을 마련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권이 과연 길 잃고 헤매는 전환을 찾을 의지가 있는지 여부는 2019년에 판가름 날 것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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