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산(離散)을 넘어 통일로!
    [역사의 한 페이지] 느낌과 울림이 있는 어느 대학의 통일 광고
        2018년 12월 28일 12: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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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열녀와 장한 어머니 그리고 미투 운동”

    “내일의 눈으로 오늘을 읽다. 경희대학교”

    “이화는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여성의 영역에 가능성을 더했습니다. 이화가 시작하면 역사가 됩니다. 이화가 시작하는 길이 됩니다. 내일의 변화를 이끄는 이화.”

    “숙명은 소통의 다른 이름.

    앞서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것의 위대한 가치. 나는 사람과 통하고 사람과 나누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것이다. 나는, 오늘도 숙명합니다.”

    2018년이 저물어가는 12월 하순 많은 대학들이 대입 정시 모집을 위한 다양한 광고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광고들에서는 흔히 ‘도전’, ‘열정’, ‘소통’, ‘인재’, ‘가능성’, ‘미래’ 등의 용어가 쓰인다. 미래의 인재를 기르는 우리 대학에 오라는 손짓들이다. 그런데 다른 대학과 달리 ‘통일’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워 광고를 하는 대학이 있다. 이 대학은 올해 수시와 정시 모집 광고뿐 아니라 그 이전의 이미지 광고에서도 “통일, 마침내 이룰 민족의 새날. 하나 되어 비상하는 그날을 준비합니다.”라는 카피를 내세웠다.

    이 대학은 왜 줄기차게 ‘통일’을 외치는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대학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이 대학은 어느 대학일까?

    다음 보기에서 골라 보시라.

    ①서울대학교 ②성균관대학교 ③숭실대학교 ④고려대학교 ⑤경희대학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대학을 일제 강점기인 1924년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대학은 일제강점기 이전인 1906년에 설립되었다.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인 대한제국 시기에 이미 애국계몽운동을 추진했던 지식인들과 개신교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대학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움직임이 제일 먼저 결실을 맺은 곳이 숭실학교(崇實學校)였다. ‘실용(實用)을 숭상(崇尙)한다’는 뜻을 가진 이 숭실학교는 1897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베어드(Baird W.M, 한국명 배위량)가 개설한 미션 스쿨이었다. 처음에는 13명의 학생을 모집하여 중학교로 시작했으나, 교장 베어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중등교육만으로는 학생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을 추진하게 된다. 그리하여 1906년, 마침내 북장로교 선교부의 결정에 의하여 대학부(大學部)를 개설하고, 12명의 학생을 입학케 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대학이다. 이렇게 출발한 숭실학교 대학부는 2년 뒤인 1908년 대한제국의 학부로부터 ‘4년제 대학’으로 정식 인가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위 문제의 정답은 ③숭실대학교이다.

    [사진] 1901년경의 숭실학교의 모습(왼쪽), 천문학 수업을 듣는 숭실학교 학생들의 모습(오른쪽)이다.

    평양에서 숭실학교가 대학부를 설립할 때 평양 주민들의 호응은 대단하였다. 당시 많은 평양주민들이 돈과 패물을 기부하여 대학 설립을 도왔는데, 대한매일신보 사장 베델의 축하 글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교육열이 높은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한양이나 지방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본 기자(記者)는 구주인(歐洲人)이라……근래에는 평양 예수 교회에서 대학교를 설립하는데, 일반 남자들의 의연(義捐)은 으레히 있는 일이어니와, 이 지역의 부녀들은 금은 반지, 패물 등속을 그 이름도 밝히지 않고서 앞 다투어 기부하여 며칠 뒤지 않아 수천 원에 이르렀다 하니, 이러한 의협의 기풍은 세계 열국에도 많지 않은 일이니, 이 나라 안에서는 더할 나위없는 것이다.” -‘평양 대학교 설립을 축하함’, 대한매일신보, 1906년 7월 13일

    숭실학교, 평양에서 서울로 내려오다.

    이 숭실학교 대학부를 시작으로 하여 대학 설립의 움직임은 다른 학교에서도 나타났다. 1886년 스크랜튼이 설립한 이화학당도 1910년 대학부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을 위한 대학교육을 실시하였고, 언더우드의 경신학교 역시 1915년 별도로 대학부를 개설하였다. 이처럼 일제가 1924년 경성제대를 설립하기 이전에 이미 3개의 근대적 대학 교육 기관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학교들은 이후 일제의 전문학교규칙(專門學校規則)에 의해 1925년 모두 전문학교로 개편되었다. 숭실학교 대학부는 숭실전문학교로, 이화학당 대학부는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경신학교 대학부는 연희전문학교로 각각 개편됨으로써, 1925년 이후 일제 강점기 유일한 대학은 경성제국대학뿐이었다.

    숭실전문학교는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거세지자 이에 맞서 1938년 국내 전문학교로서는 유일하게 자진 폐교를 선택하였다. 이로써 서북지방 평양의 사학 명문이요 다수의 선각자를 배출하였으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던 숭실학교의 역사는 일단 종말을 고한다. 그러나 그게 완전한 끝은 아니었다.

    그 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숭실 관계자들은 대부분 남하하여 서울에서 모교 재건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숭실 중·고등학교는 박하성(朴夏成)이 희사한 재단으로 1953년 5월 문교부의 인가를 얻어 개교하였으나, 실은 1948년 9월에 신당동에서 학교의 문을 열었고, 숭실대학 역시 박하성이 기증한 재단으로 1954년 4월에 문교부의 인가를 얻어 개교하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의해 자진 폐교했던 숭실이 16년 만에 서울에서 다시 부활한 것이다.

    이런 역사를 가진 숭실대학교이므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해빙기를 맞이하여 대학 중 유일하게 한반도 통일의 움직임을 응원하는 광고를 낸 것이다. 올 6월에 신문지상에 실린 이미지 광고를 살펴보자. 이 이미지 광고는 이후 대학 수시와 정시 모집 광고에도 주요 내용은 그대로 이용된다.

    [사진] 2018년 6월 선 보인 숭실대학교 광고 ‘통일비상’편이다. (숭실대학교 홈페이지)

    먼저 화면 가운데에는 남북을 가로막은 철조망이 잘라져나간 사이로 북녘의 산하가 보인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땅과 하늘의 모양은 정확히 한반도 지형(지도)이다. 아무런 장벽과 단절이 없는 통일된 코리아를 상징하고 있다. 단절을 상징하는 철조망 파편들은 희망과 자유를 상징하는 새로 서서히 변하면서 푸른 창공을 비상한다. 이미지의 극적인 반전이다. 왼쪽 위에는 멀리 미래의 희망을 상징하는 햇빛이 새들과 푸른 하늘, 그리고 드넓은 산하를 밝게 비추고 있다. 통일 코리아의 희망찬 미래를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낸 이 그림의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넣었다.

    통일·숭실
    통일, 마침내 이룰 민족의 새날,
    하나 되어 비상하는 그날을 준비합니다.

    한민족의 염원이자 이산대학 숭실의 숙명인 통일,
    푸르른 하늘을 두 날개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처럼
    통일된 한민족이 가장 위대한 시대를 열어갈 것입니다.
    평양숭실 재건을 꿈꾸는 121년 역사의 숭실대학교가
    창의인재 통일교육으로 남북동행의 새날을 준비합니다.
    통일은 우리의 미래, 미래는 숭실에 있다.”

    ‘평양숭실’ 재건을 꿈꾸다.

    우리 나라 최초의 대학으로 평양에서 건립된 후 일제 강점기 자진 폐교하고, 해방 후 서울에 자리를 잡은 숭실대학교. 이런 우여곡절의 역사가 있었기에 숭실대학교는 ‘통일 비상’과 같은 광고를 냈던 것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그 광고가 좀 더 실감나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 주목할 것은 숭실대학교가 2018년 올해 들어 극적으로 전개된 남북·북미 사이의 화해 분위기 때문에 이런 광고를 즉흥적으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통일을 주제로 한 ‘한반도 시리즈’의 광고를 지속적으로 게재해 왔는데, 올해 광고는 그 중 일곱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눈썰미가 있는 독자들은 이 광고들을 이미 보셨을 수도 있다.

    이 시리즈의 광고들은 모두 한반도 지형(지도)을 이용하여 하나된 나라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매우 창의적일 뿐만 아니라 통일에 대한 희망과 설렘을 전해주고 있다. 이런 공감 때문이었을까? 이 시리즈의 일곱 번째인 올해의 ‘한반도 시리즈 ‘통일비상’편은 지난 달 제24회 서울광고대상 대학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사진] 숭실대학교의 통일을 주제로 한 ‘한반도 시리즈’ 광고들이다. 한반도 지도를 소재로 하여 통일 한국의 희망적 미래를 창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홈페이지)

    광고뿐만 아니다. 그들의 표현대로 ‘이산(離散) 대학’인 숭실대학교는 통일 지향적인 활동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2014년부터는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교양 필수 교과목인 ‘한반도평화와 통일’과목을 개설하고 숭실통일리더십 연수원을 개원해 2015년부터 3박4일간의 ‘숭실평화통일스쿨’을 실시함으로써 2016년 통일부 주관 통일교육선도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숭실대학교는 ‘평양숭실 재건’도 꿈꾸고 있다. 평양은 숭실대학교의 잊을 수 없는 고향인 것이다. 그 꿈의 일환으로 올해 4월에는 교내에 ‘평양숭실캠퍼스 가상현실 체험존’을 열어 미리 평양숭실을 가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광고 속 문구 ‘평양숭실 재건을 꿈꾸는 숭실대학교’가 빈 말이 아닌 것이다. 또한 ‘121년 역사의 숭실대학교’라는 문구도 과장이 아니다. 그 기점을 1954년을 잡은 것이 아니라 숭실학교가 평양에 처음 세워진 1897년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과연 이산 대학 숭실대학교가 평양캠퍼스를 재건할 수 있을까?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은 이미 종전을 선언하였고, 북미관계 역시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는 최근의 상황 변화는 이런 기대가 허황된 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그런 점을 간파한 것일까?

    [대학내일]이라는 주간지 2018년 6월호에서는 ‘통일되면 대학생에게 생길 일’이라는 글을 실었는데, 그 중 첫 번째로 언급한 것이 ‘숭실대 평양캠(퍼스) 복원’이었다. 기사 내용이다.

    “01. 숭실대 평양캠 복원

    현재 서울시 동작구에 있는 숭실대의 모태는 1897년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M 베어드가 ‘평양’에 설립한 숭실학당이다. 평양에 있던 숭실학교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1938년 자진 폐교한 뒤, 1954년 서울에 지금의 숭실대를 재건한 것.

    현재 숭실대는 통일이 되면 숭실대의 평양캠퍼스를 복원하기 위해 미리미리 여러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는데! 숭실대 학생들은 평양캠이 부활되면, 서울에 있는 숭실대는 분교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한다.”

    이 숭실대 평양 캠퍼스의 재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을 재건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남북한 학문 교류의 새 장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숭실대학교의 소망이 결실을 맺어 멀지않은 미래에 숭실대학교 평양캠퍼스가 정말로 개교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숭실대학교가 통일 한국의 중심 대학이 되기를 응원한다.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 달리 말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증조할아버지가 되는 김형직도 이 숭실학교 출신이니 그 인연 때문에라도 숭실대학 평양캠퍼스 설립은 생각보다 쉽게 될 수도 있다. 정말 먼 일이 아닐 수 있다. 2018년 남북 사이에 꿈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던가!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사진] 북한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의 모습(왼쪽), 숭실학교 재학 당시 반일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김형직의 모습을 그린 북한 그림이다.(오른쪽)

    필자소개
    박건호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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