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랑 드롱, 드골 지지자에서 르펜의 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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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6월 01일 03: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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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5월, 프랑스 전역을 충격과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대통령 선거일 저녁. 국민전선(le Front National, FN)의 르펜을 이긴 시라크 대통령이 엘리제궁 창문에서 수많은 축하인파들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건 비단 시라크의 얼굴만은 아니었다.

    저명한 영화배우들, 가수, 문화계 인사들이 시라크의 등 뒤에서 환호하는 프랑스 시민에게 함께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는 대중문화계의 인사들이 선거에 전략적으로 참여하는 사례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니며, 그 효과 또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 게다.

    좌우로 나뉘어 정치운동 하는 프랑스 대중문화계 사람들

    전통적으로 프랑스 내에선 철학과 문학 영역 등에서 많은 진보 지식인들이 그들의 이론체계와 실천 활동을 합일화하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다. 이들은 끊임없이 좌파 이데올로기를 옹호 혹은 재생산해내며 적극적인 정치노선을 표명해 왔다,

    60~70년대 들어서는 대중문화계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주로 사회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출발하는데, 이는 사회당의 정책선전이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되는 효과를 주었고, 선언을 한 유명인 들에게도 정치적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 후 다양한 정치적 색깔을 갖춘 나라답게 여러 가지 정치노선들이 선택된다. 사회당을 지지했던 진영에 제라드 드빠르디유, 아누크 에메, 이자벨 위페르, 마크리트 뒤라스, 쟝 폴 고티에 등이 있다면, 맞은편인 시라크를 중심으로 하는 중도우파 진영엔 쟝 마레, 롤랑 쁘티, 나나 무스크리, 조니 할리데이 등이 있다. 그 외에도 각각의 당에는 각각의 유명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국민전선은 가장 나쁜 마약”

    하지만 르펜이 당수로 있는 FN을 향한, 대중문화계의 수많은 선언문과 발언들은 한결같이 비판 혹은 경고다. 그 중 유명한 것으로는 1990년 5월 250명의 지식인, 예술가들이 서명한 <FN에 대한 저항을 위한 선언문>이 있다. 인기가수 파트릭 브루엘은 공개석상에서 “FN은 마약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해악한 마약”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장 마리 르펜과 국민전선 로고
     

    FN을 지지하지 않는 것, 르펜을 비판하는 것이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것처럼 또 다른 자랑스러운 실천행위가 되버린 분위기 속에서, FN은 이러한 일련의 경향에 대해 방어하려 했다.

    르펜은 “우리는 유명인들의 사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문화와 정치가 섞이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애써 항변했지만, 그 후엔 “우리를 지지하는 가수들도 있지만 그들의 이름을 공개할 순 없다. 왜냐하면 쇼비지니스계에서 그들을 엄청나게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을 바꿨다. 더 나가선 “모든 지식인들은 우리를 반대한다”라는 현실을 인정한 다음에 “그래서 이들은 국민을 갈라놓는다”라며 역공을 시작했다.

    알랑 드롱 “프랑스를 상징하는 건 드골과 브리짓도 바르도”

    FN의 전 당수이자, 리옹3대학 교수를 지낸 골리쉬는 “대중성, 그것은 예술과 아무런 연관도 없을 뿐 더러…문화는 좌파들에 의해 진행되는 마지막 행군일 뿐이다”라거나 “문화는 3가지 압력단체에 의해 지식 테러리즘을 감행하는데, 그들은 유태인, 마르크스주의자, 그리고 동성애자이다”라고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을 자신들의 논리로 분석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역사적인 해석으로는 “드골의 정치세력 하에 좌파주의자들이 문화적 권력을 점유해 왔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지지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암묵적인 ‘친구’가 르펜에게 생겼는데, 그가 바로 알랑 드롱이다. 드롱은 과거 열성적인 드골의 지지자였다. 그의 공식적인 자서전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건 브리짓도 바르도와 드골이다”라고 말한 이가 어떻게 바르도와 함께 르펜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에겐 강력한 프랑스, 프랑스인을 위한 프랑스라는 실리적 개념이 당파성보다 우위에 있었던 건 아닐까.

    68년 5월 투쟁을 둘러싸고 드골과 퐁피두가 갈등을 빚을 때, 중도우파의 진영 속에서도 좀 더 강한 우파적 성향을 지지했던 드롱은 반(反)퐁피두그룹에 끼게 됐고, 그 후 퐁피두가 대선 후보로 당내 권력을 장악하게 될 무렵 터진 일이 그 유명한 ‘마르코빅 사건’이다.

    르펜 사상 동의하지 않지만 강한 사람이 좋다

    사실 ‘마르코빅 사건’이 유명한 이유는 그 사건의 내막을 아무도 모른다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드롱의 보디가드이자 운전수로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젊은 유고슬라비아인 마르코빅이 어느 날 변사체로 발견됐다.

    마르코빅이 들고 있었다는 퐁피두 부인의 외도 장면과 그룹섹스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는 경찰의 내부문건이 공개된 적도 없고, 드롱과 그 측근들이 퐁피두 부인을 닮은 창녀를 시켜 연출된 사진이라거나, 이 때문에 퐁피두가 마르코빅을 제거했다는 등의 소문만 무성할 뿐, 그 중 어느 것도 확인된 바 없지만, ‘모두들 알고’ 있는 마르코빅 사건은 프랑스 정치권력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드롱은 퐁피두가 대통령으로 있는 중도우파보다는 르펜과 교우관계를 가졌다. 이때부터 드롱은 르펜을 ‘친애하는’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1988년엔 다시 중도우파의 대선 후보인 레이몽드 바레의 지지를 위한 호소문을 발표하게 되지만, 여전히 르펜과의 관계는 좀 더 튼튼하게 맺어지게 된다.

    2003년 공중파 대담프로에서 드롱은 “르펜의 사상에는 동의할 순 없지만 나는 강한 사람을 좋아한다. 이것이 내가 르펜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그는 나의 친구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를 껴안을 것이다”라고 말해 르펜의 지지자들로부터 “가장 프랑스적인 배우”라는 호칭을 얻었다. 

    잔 다르크 동상을 향한 극우파들의 메이데이 행진

    “우리는 루이 14세 때부터 내려오는 프랑스인 중의 프랑스인이야!” 알랑 드롱이 출연한 영화 ‘미스터 클레인’에서 나온 대사처럼, 그의 존재 자체가 프랑스의 상징이 됐다. 프랑스에 대한 자부심은 극우적 성향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시민혁명’을 거친 공화국에서 ‘국가’ ‘국민’ ‘애국’ ‘민족’이라는 단어는 그 정치적 성향이 보수성을 담기 때문이다. 여기에 르펜의 ‘애국심’은 이 둘을 묶는 공통분모로 작용하는 것이다.

    메이데이 때 모든 정치, 노동 단체들이 노동일을 기념하며 가두행진을 벌일 때, 그와 구분해서 르펜은 프랑스를 구한 잔다르크 동상을 향하는 가두행진을 매년 5월1일 벌인다. 신의 가호 아래, 외국 군대를 무찌르고 살신성인한 ‘애국심’이 곧 FN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정치무대에 등장해 늘 르펜의 곁을 떠나지 않는, FN의 공동 당수로 있는 그의 딸 마린 르펜의 풀어헤친 금발머리는 프랑스의 혈통주의를 암시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르펜(왼쪽)과 손을 잡고 반갑게 웃고 있는 알랑 드롱(오른쪽)
     

    하지만 드롱의 지지대상이 드골에서 르펜으로 바뀐 것은 드롱의 정치적 성향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드롱은 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었다.

    사회당의 죠스팽이 1차 투표에서 떨어지고 그 덕에 르펜이 올라갔던 2002년 대통령 선거를 떠올려보자. 많은 좌파 지지자들은 사회당이라는 간판 때문에 무조건 죠스팽에 투표를 하진 않았다. 선거유세를 하면서 죠스팽이 사회주의자로서 퇴보적인 발언을 거듭해 좌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이에 정치적으로 일관된 좌파들은 “사회당은 더 이상 사회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비판과 함께 ‘투쟁하는 노동자당’과 100% 좌파임을 선언한 트로츠키주의 정당인 ‘공산혁명전선’에 표를 던졌다.

    이렇듯 당이라는 ‘그릇’보다 ‘노선’이 더 중요하다면, 또 이것이 우파 진영에도 드롱의 경우처럼 적용되는 이야기라면 다가오는 내년 선거는 또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이민자들이 국민전선을 지지하는 이유

    FN은 창당 이후 꾸준히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FN의 지지도에 대한 지역적 차이이다. 프랑스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브르타뉴 지역과 문화, 교육 정도가 높은 파리근교 지역에선 지지율이 낮은 반면, 이민자 혹은 그 2~3세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마르세이유 지방에서는 반유대주의, 반아랍주의를 표명하는 FN의 지지율이 높다. 물론 그 인근 고급휴양도시의 은퇴한 최상류층의 지지를 고려해도 말이다.

    이민자들이 르펜을 찍는다는 건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다. 2등 국민으로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분명 한계가 있는데, 새롭게 밀려오는 이민자들, 불법 취업자들은 이들에게 있어서는 인종의 문제가 아니다. 점점 열악해지는 사회적 지위와 차별에도 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FN 지지율 상승의 또 다른 배경에는 만성적 경제침체가 불러오는 고용문제, 그로 인해 불거지는 사회 안전 문제, 유럽통합으로 인한 국가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 등이 있다. 불안감은 영국 다음으로 많은 식민지를 거느릴 정도로 강력했던 프랑스 제국을 향수하게 만들고, 현실적으론 강력한 해결책을 원한다. 그래서 각종의 설문조사 혹은 지지정당 조사에서 프랑스인들이 현 사회문제의 해결에 있어 FN에 기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읽히는 것이다

    사르코지-중도우파의 옷을 입은 르펜

    하지만 정치적 자부심에 가득 찬 프랑스인들이 르펜을 지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이민자, 고용, 사회안전 문제를 중도우파 쪽에서 들고 나와 준다면, 당이라는 깃발이 아닌 실리적인 노선에 따라 집결하는 건 가능한 일이 된다.

    이것이 사르코지가 전체 우파시민 62%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이다. 사르코지가 법안으로 상정한 ‘선택이민’, 즉 자격과 능력을 보고 이민자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발상은 많은 좌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녹색당의 마메르는 “능력의 정도를 어떻게 측정하나”고 물었고 공산당은 즉각적으로 “육체적 능력을 보며 시장에 노예를 찾으러 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회당의 블리스코는 “어느 날 지단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그의 체류증을 박탈할 것인가”라며 되물었다.

    이처럼 좌파들이 한결같이 선택이민제가 인권을 거스르는 법안이라는 비난을 퍼붓는 데 반해, 르펜측은 일찍부터 자신들을 따라하고 있다고 믿는 사르코지가 자신들의 정책을 잘 분석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노선에 합치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음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사르코지가 발표한 사형제도의 부활에 대해 FN은 당연히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르펜측은 만약 2007년 대선 시 르펜이 2차 투표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 사르코지를 지지하겠다고 벌써부터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많은 신문들은 “만약 불행하게도 르펜과 사르코지가 2차 투표에 남게 되면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주제로 논쟁을 할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누가 누구인지 구별해서 골라 찍을 것인가”라며 이 둘을 조롱하고 있다. ‘사회안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법안은 그것이 르펜이든, 사르코지든 폭력적인 인종차별과 반인권적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알랑 드롱이 드골 지지자에서 르펜의 친구로 변모해 오는 과정에서, 일관되게 강력한 프랑스, 프랑스인을 위한 프랑스를 추구해 왔던 것처럼, 이제 많은 프랑스인들도 강한 프랑스를 꿈꾸며 새 이민법, 사회안전법의 둥지로 모여들고 있다.

    비록 사르코지가 몸담고 있는 당이 중도우파인 대중운동연합(UMP)라고 해도, 그의 사상이 중도우파적이지 않음은 너무나 확실하다. 프랑스는 이제 상영이 시작된 공포영화에서 그러는 것처럼 등짝에서 놀래키며 등장할 또 다른 괴물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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