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분노가 허공 속에 사라지게 하지 말라
    By tathata
        2006년 06월 01일 02:18 오후

    Print Friendly

    허공 위에 놓여 있었다. 코오롱 해고자들의 청와대 앞 금융감독원 신축공사현장의 크레인 점거 농성이 6일째 되는 지난 31일. 35미터 높이의 크레인에 서 있는 그들에게는 단단한 땅도, 굳건한 지지대도 없었다. 가끔씩 바람이 불 때면, 바람의 저항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크레인이 조금 흔들렸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땅을 향하고 있었다.

    코오롱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정투위)의 전기철 부위원장이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그는 지난 3월 5일부터 4월 6일까지 코오롱 구미공장의 15만4천 볼트의 송전탑에서 32일간의 고공농성을 벌였다.

    허공에서 느끼는 ‘폐쇄공포증’

    “저기에 저렇게 있는 것이 얼마나 가시방석인줄 아십니까? 나는 이렇게 하늘에 올라와 있는데 땅에 있는 동지들의 투쟁은 잘 될까. 도대체 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뿐입니다.”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크레인의 폭은 한 사람이 드러눕게 되면 꽉 차버리는 비좁은 공간이다. 그 곳에서 하루, 이틀, 사흘을 지내면 나중에는 두려움과 불안감마저 고조된다고 한다. 폐쇄공포증.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공간 안에서 수 십일을 지내다보면 이른바 ‘폐쇄공포증’이 몰려옵니다. 곁에 있는 동료들도 신경이 예민해져서 사소한 일도 서로 부딪히게 됩니다.”

    드넓은 허공에서 폐쇄공포증을 느낀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고공농성 중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식사와 생리적인 대소변 처리. 땅에서 보내주는 김밥 한 줄로 허기를 채우고, 대소변은 비닐봉투로 해결해야 한다. ‘큰일’을 보는 “그 일이 얼마나 민망한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을 결코 모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농성이 장기화될수록 그런 민망함도 무뎌져 간다.

       
     ▲코오롱 해고자들이 청와대 앞 금융감독원 신축공사 현장의 타워크레인을 점거하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노무현 대통령님 코오롱 해고자는 공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가 적힌 현수막 뒤로 코오롱 해고자들이 보인다.

    코오롱 해고자들이 고공농성을 벌인 것은 이번이 세 번째. 꿈쩍도 하지 않는 사측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투쟁의 강도를 높여가는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으로 하지 않으면 사회로부터 주목받지 못하는 것도 한 이유였다.

    이날 건설사로부터 점거농성자 1인당 하루 3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안내문이 날아왔다. 지난 1년 5개월여 동안 가정에 한 푼이라도 벌어주기는커녕 빚만 쌓여가는 신세인데,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아내가 식당에서 한 달에 60만원을 받고 일을 하고, 그 돈으로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아이들의 학비와 생계를 꾸려갑니다. 어느 날은 딸애에게 전화가 와서 ‘아빠, 내려와. 다른 직장 다니면 안돼?’라고 하는데 정말 앞이 깜깜했습니다. 파출소 근처에도 한 번 가보지 않았던 저희들이 이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500일이 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코오롱 정투위 조합원 49명은 500일이 넘는 기나긴 싸움을 하고 있다. “정리해고는 없다”는 노동조합의 합의를 휴지조각처럼 내던지고, 무려 9백여명을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시키는 회사의 폭력에 가만히 당할 수만은 없었다. 현재 희망퇴직자 가운데 5백여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현실도 이들을 분노케 했다.

    그보다 더한 것은 검찰이 사상 처음으로 부당노동행위 혐의의 건으로 공장을 압수수색을 해서 인사노무관리 팀장 1명이 구속되었지만, 나아지기는커녕 돌아온 것은 최일배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 3명이 구속이었다.

    지난 4월에 정리해고 이후 처음으로 노사간의 교섭이 있었지만, 회사는 단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희망퇴직자에게 주는 퇴직금을 그대로 주겠다는 것이었는데,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일하기만을 간절히 소망하며 1년여 이상을 싸워온 이들이 느낀 것은 허탈함 그 자체였다.

    노동부의 중재도 먹혀들지 않았다. 노동부는 회사 측에 단계적 복직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회사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투쟁이 장기화될수록 가정은 ‘파탄 직전’에 몰려 있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 저항한다”

    “평균 근속년수 12년. 젊은 시절을 다 바칠 만큼 땀으로 일군 회사로부터 하루아침에 ‘정리’되는 심정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노조와의 약속마저도 우습게 알고, 비정규직으로 다시 고용하면 묵묵히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는 현실에 치가 떨립니다. 싸움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서서히 우리도 독이 오릅니다. 여기서 패배하면 세상 어디에서도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 제 아이들이 비정규직이 되면 얼굴을 들 수가 없을 만큼 부끄러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단단해집니다.”

    광화문 열린시민 공원 앞. 코오롱 해고자들이 모여 있다. 오랜 투쟁으로 투쟁조끼는 바랠 대로 바랬고, 그들의 얼굴은 지친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의지가 충만해 있었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택하는’ 이유파업하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막다른 선택

    지난 2003년 10월 23일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지회장이 한 달여간의 고공농성 끝에 끝내 목을 매고 자살을 택한 이후로부터 고공농성은 노동자들의 투쟁방법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김 지회장이 유서에 쓴 대로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 3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 치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공농성을 택하는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이 방법 밖에는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순천 하이스코 공장의 크레인을 점거했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박순오 조합원(34)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리 선전전, 삼보일배, 점거농성, 삭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파업이 제일 큰 무기이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우리는 파업조차 벌일 수 없었다. 생산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은 크레인 점거뿐이었다.”

    하지만 고공농성은 다른 싸움과 마찬가지로 ‘외로운 싸움’이다. 김 조합원의 말처럼 “생라면 하나를 둘이서 나누어 씹어 먹고, 생쌀을 한 웅큼 집어 소화를 시켜야 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고립된 고공에서 음식은 물론 식수, 세면, 용변도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언제 용역깡패와 구사대가 처들어올지도 알 수 없어 긴장상태에 놓여있다.

    고공농성에 돌입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화물연대, 타워크레인노조, 비정규직, 정리해고자들이다. 노동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파업의 수단을 갖지 못한다.  파견 · 용역업체에서 쫓겨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교섭에 응하지 않는 원청회사를 향해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은 극단적인 방법밖에 없었다.

    화물연대의 한 관계자는 “지상에서 투쟁하는 방법은 모두 다 불법으로 낙인 찍힌다”며 용역깡패의 농성장 침탈과 경찰의 무력진압, 사측의 손배가압류 협박 등을 예로 들었다. 상대적으로 경찰의 진압이 어려운 고공농성은 생산에 차질을 빚게 함으로써 사측을 교섭에 나오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고공농성은 노동자들에도 커다란 타격을 남긴다. 지난 5월 롯데건설의 공사현장 크레인을 점거한 타워크레인노조 조합원 4명, 양재동 현대그룹 본사 옆 연구센터 공사현장을 점거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명이 구속 수감 중에 있다. 광주 삼성전자 공장의 송전탑을 점거한 화물연대 조합원들도 구속됐으며, 창원 지엠대우 비정규직 노동자 2명도 최근 구속됐다.

    구속을 감수하면서까지 고공농성을 강행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분노가 하늘에도 울려퍼지고 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