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으로
목회하는 순천중앙교회
[그림 한국교회] '해방자' 예수님
    2018년 12월 27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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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누가 4:18-19)

성탄절은 해방자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다짐하는 날이 아닐까? 이 점에서 해방신학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따라 사는 길을 제시하는 신학이 아닐까? 408일 넘게 고공농성을 하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사진을 보며 우울해진 성탄절에 떠오른 생각입니다.

세계적인 해방신학자 성정모 교수(브라질 상파울루감리교대학교)는 『해방신학 이야기』(홍인식, 신앙과지성사, 2016)의 추천의 글에서 해방신학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합니다.

“(남미의) 대도시 주변에서 발생한 가난의 현실과 고통을 보면서 많은 기독교인들, 신부, 수녀,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이 상황에 대하여 어떤 응답을 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들의 신학을 재성찰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갖고 있었던 이들에게 성서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서의 하나님은 언제나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위한 투쟁과 연관되어 있음을 재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 우리에게 하나님은 생명을 주신 분이며 따라서 그 생명, 특히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체적인 형태로 지탱하고 보호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사회학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사회학 이론을 도입하게 됩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가난의 원인을 알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1960-70년대 남미에서 군부독재의 억압과 불평등으로 고통당하던 민중의 입장에서 주창한 신학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빨갱이 신학으로 매도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서 자유와 해방의 말씀을 실천하는 신학이므로 기득권자에게 불편을 끼쳐 로마 교황청과 갈등을 빚기도 하였지만, 2013년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해방신학은 원주민 해방운동, 여성해방운동, 흑인 해방운동, 토착문화운동과 결합하여 다차원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억압 차별받는 이들이 현존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이기에, 또 신학의 해방까지도 추구하는 까닭에 해방신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순천중앙교회(그림=이근복)

요즘 전남 순천의 해방신학자의 목회와 순천중앙교회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지방의 중견교회가 세인의 편견을 극복하고 해방신학자 홍인식 목사를 청빙하였고, 그분이 창의적 목회로 새 길을 열고 있는 까닭입니다. 2009년 한국에 들어온 후, 그의 신학과 실천이 좋아서 친밀해진 덕분에 저도 2017년에 펴낸 『해방신학 이야기』의 추천사를 썼습니다.

부임한 지 10개월이 지난 2017년 2월 12일의 담임목사 위임식은 참신했습니다. 선물접수대도 없고 기념품도 주지 않았으며 예배당에는 흔한 현수막 하나 걸려있지 않았습니다. 순서는 더 놀라워, 노회 서기가 위임식 사회하고 선배 목사님이 짧게 설교를 할 뿐 노회장 등 임원들이나 교계인사가 대거 참석하여 축사, 격려사, 권면 등의 순서를 맡지 않았습니다.

상찬일색인 순서 대신에 등록하지 않은 교인 등이 담임목사에게 바라는 바를 이야기하였는데, 서리집사로 은퇴한 80대 할아버지 교인이 “…..참된 주의 종, 사역자, 일꾼이 되고자 갈망하는 홍인식 목사님을 모시게 되었으니….., 우리도 새 믿음과 더 크고 넓은 생각으로 낮은 곳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따라 민족의 양심과 시대의 등불이 되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실천하도록 합시다.” 라고 진정어린 제언을 할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홍인식 목사가 부임하고 교회가 크게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담임목사는 자기 연봉을 깎고 부교역자들의 급여를 올려줄 것을 제안했으며, 고급승용차를 사양하고 중형차로 바꾸었는데 일부 귀족화된 중형교회 목사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보통 담임목사로 부임하면 먼저 장로들이나 유력한 교인들을 심방하는데, 홍 목사는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였으며, 심방 시 1만원이 넘는 식사를 사양하겠다고 선언하고, 약하고 가난한 이들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여 공감이 큰 설교를 하고, 청년들과 같이 공부했습니다. 사회선교사를 세워 광양의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들을 돌보게 하였고,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양복에 세월호의 노란 리본배지를 달고 명성교회의 부자세습 반대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교인들이 행복해하며 분란이 심했던 교회가 새롭게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홍 목사는 자신도 젊은 시절에는 성공지향주의자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가난한 가족들과 남미 파라과이로 이민 가서 행상하고 고학하여, 명문 국립대학 경영학과에 진학하여 성공의 꿈으로 나아가던 중, 대학 2학년 때 서점에서 해방신학자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을 읽고 삶의 방향을 낮은 곳으로 바꾸게 되었답니다. 돌아와 장신대 신대원에서 공부하여 목사가 된 후 선교사로 파송받아 남미에서 사역하며 중형 교민교회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신성교회 등에서 목회하였고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에서 미게스 보니노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해방신학자로서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 살아보겠다고 가난하고 불편한 쿠바신학교에서 4년간 학생들을 지도하고, 귀국하여 강남의 현대교회에서 4년간 목회하고는 자진 사임하고 열악한 멕시코의 장로교신학교에서 3년간 봉사한 후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습니다.

순천읍교회(현 순천중앙교회)는 순천지방의 첫 교회로 1907년 4월 15일에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국인에 의해 자발적으로 세워진 교회에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프레스턴(J. F. Preston, 변요한)은 1910년 매산학교를 세워 순천에 복음이 풍요롭게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1920년에는 한국 최초의 목사 7명 중의 한 분으로 제주도에 첫 복음의 씨를 뿌린 이기풍 목사가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는데 나중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서 순교하였습니다. 7대 담임목사였던 박용희 목사는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되는 등 항일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 돌파구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순천중앙교회가 하나의 대안이 되길 바라며, 홍인식 목사가 『해방신학 이야기』의 서문에 쓴 기도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간구이길 소망합니다.

“해방신학에 깃든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의 영성과 성서 속에서 샘솟는 역동적인 증거들을 통해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을 모색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오늘의 우리를 진정한 복음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필자소개
이근복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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