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식 도시재생,
개발의 또 다른 민낯이다
[기고] 캄캄한 청계천 골목의 풍경
    2018년 12월 26일 0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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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이 아프다

많이 아프단다. 그동안 이곳이 헐릴 거라는 소식은 들어왔는데 기어코 쓸어버리고 새로운 건물을 짓겠단다. 부랴부랴 카메라를 들고 을지로3가 역에 내려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굴착기는 들개처럼 노쇠한 공룡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었다. 아스팔트 위에 깨진 유릿가루와 타일이 아무렇게 흩어져 있었다. 뼈마디처럼 벽을 뚫고 나온 철근은 상처의 깊이를 짐작케 하였다.

청계천 공구상가는 깊은 자상을 입고 철거를 알리는 현수막 아래 엎드려 있었다. 불 꺼진 공장 문을 닫는 주인의 어깨도 굳어 있었다. “40년을 넘게 일했다. 이제는 떠나야 한다.” 체념 섞인 한숨을 깊게 쉬더니 셔터의 자물쇠를 잠갔다. 이미 술에 취한 얼굴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더 붉게 빛났다. 겨울 찬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낡은 코트 깃을 세우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한때 ‘위대한 한국 근대화의 상징’으로 알려졌던 청계천 공구상가 그곳에 터전을 일구며 피와 땀으로 ‘도시의 신화’을 이루었던 사람들도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사진=최인기

청계천 톺아보기

청계천은 소위 한국의 발전을 날 것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 첫 번째가 청계천 복개와 고가도로 그리고 그 주변의 삼일빌딩과 세운상가 등이다. 이번에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세운상가 자리는 익히 알려진 대로 일제 강점기 이후 종묘 앞에서 퇴계로까지 공습대비용 소개공지였다. 전쟁 시 화재가 발생하면 불이 인근으로 퍼지지 않도록 차단하기 위해 1km 넘게 이어졌던 도로라는 거다.

그 후 가난한 사람들의 무허가 판잣집이었던 곳을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세운상가 준공식이 개최되었다. 이듬해인 1968년엔 4개 지구 8개 동의 건물이 모두 완공되어 서울 도심을 남북으로 가르는 거대한 상가 단지가 형성됐다. 이른바 불도저로 불리던 김현옥 서울시장과 한국 현대건축가 1세대인 김수근이 손잡고 ‘세상의 기운이 다 모여라’라는 뜻을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단지 세운상가가 탄생했다. 개발시대 서울의 랜드마크였던 셈이다.

신개발주의와 뉴타운 재개발

도시는 이윤을 둘러싸고 끝없이 변하기 마련이다. 80년대 들어 전자상가가 용산으로 이전하거나 강남 등으로 도시가 확장되었다. 세운상가를 둘러싼 주변부는 침체되기 시작했다. 2002년 민선 3기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이명박 서울시장은 동․서로 이어지는 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소위 환경과 문화재 복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신개발주의’라는 이름의 청계천 복원공사를 강행하였다.

2006년 취임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술 더 떠 남․북의 축을 잇는 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2008년에 착공하여 6년 만에 완공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그 결과물이다. 그리고 2006년 종로·중구 세운상가 일대 43만8585㎡를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하여 2015년까지 세운상가 등 8개 상가 건물을 헐고 1㎞ 길이로 초록띠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총사업비는 1조4000억 원에 최고 36층, 높이 122m 높이 빌딩을 짓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처럼 환경을 강조하며 녹지축을 만들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신개발주의’의 본질은 ‘뉴타운 재개발’ 이라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이렇게 청계천 공구상가 사람들은 삶의 공간에서 내몰릴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 실제 2009년 5월 세운상가 종로 쪽 현대 상가가 철거되기에 이른다. 이후 국제적으로 휘몰아친 금융위기로 개발 경기는 침체하였으며 특히 종묘 문화재 심의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등 수익성이 악화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개발계획은 3년 넘게 표류하다가 결국 2011년 무상급식을 둘러싼 주민투표를 둘러싸고 시장 직을 내놓게 된다. 2012년 12월에 이르러서야 세운상가 철거 계획은 마침내 취소되었다.

도시재생사업과 박원순

남북으로 길게 뻗친 선형 건물인 세운상가는 한동안 방치되었다. 그러다 박원순 서울시장에 의해 ‘도시재생사업’이 확정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그가 누군가, 시민단체 수장 아니던가?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2조(정의)에 따르면 ‘인구의 감소·산업 구조의 변화·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새로운 기능의 도입 창출을 통해, 지역자원을 활용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 으로 정의한다.

이 사업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채택하기 전부터 일각의 사회운동 진영에서조차 대안 사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재생사업은 무문별한 개발을 자제하고 낙후된 도심의 기능을 재활시킬 수단으로 알려졌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문제로 유명무실해진 뉴타운 사업을 대체하고, 신개발주의 담론을 새롭게 각색한 개발일 뿐이었다.

세운상가도 대규모 개발을 벗어나 정비를 통해 기존 주민들과 상생한다는 취지로 종묘와 남산으로 이어지는 보행로를 만들어 환경을 개선하는 듯했다. 하지만 박원순식 도시재생 사업이 10년 넘게 추진되면서 세입자의 임대료가 오르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세운상가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작은 가게와 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 30㎡(약 9평)짜리 임대료는 평균 월 15만~25만 원 선에서 유지돼왔다고 한다. 그러다 도시재생사업과 ‘다시 세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최근 임대료는 1.5~2배 정도 올랐다. 특히 전망 좋은 3층 보행로와 이어진 상가의 임대료는 월 50만 원 정도로 이전보다 2~3배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아직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임대료가 먼저 오른 셈이다.

이번에 철거가 진행 중이거나 예상되는 중구 광희동, 을지로동, 종로구 종로 1.2.3.4 가동 일대 면적 439,356.4 ㎡ 은 청계천 복원공사 이후 도심 내 섬처럼 고립되어 방치된 구도심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이었다. 2018년 3월 30일 ‘서울도시재생포털’에 등록된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 고시 및 보고서를 요약하면 ‘서울 도심 4대 축 중 3축에 있는 세운상가 일대는 서 측으로 광화문, 명동 등과 인접하고 동쪽으로는 동대문과 인접한 중심지역이다. 주변으로 지하철역 4개소 등이 자리 잡고 있어 대중교통 접근성이 양호하며, 동․서로 종로, 을지로, 퇴계로가 통과하고, 전자상가와 청계상가 사이로 청계천이 흐르고 있어 입지적 잠재력이 높은 지역이다’ 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세운상가 주변은 지난 10년간 사업체 수가 약 18% 감소하였고, 세운상가동과 대림상가에는 영업이 중단된 공실 점포가 약 23% 정도다. 상인들은 침체한 지역경제의 원인은 청계천 복원공사 이후 오랫동안 방치된 이유 때문으로 지역의 산업생태계가 파괴된 것이 또 하나의 원인이라 지목한다. 재활성화가 과제라는 것이다. ‘근린재생 중심시가지형 또는 중심지 특화형으로 개발’ 될 예정이라지만 막상 전개되는 양상은 협력적 거버넌스와 지역의 삶의 질 개선은 사라지고 적극적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박원순식 도시재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에 대한 의미를 사회적으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재와 같이 세운상가 주변부에 대한 대대적인 철거와 개발은 산업경제의 활성화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행정이다. 승효상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이 산업 생태계를 살리는 게 우리의 건강한 산업을 부흥시키는 중요한 방향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건축만 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산업 자체도 재생시키는 것이 중요한 목표입니다.”라고 이야기 한 바 있듯이 시간이 중첩된 오래된 풍경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허물고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닌 올바른 순환식개발과 산업생태계를 유지하고 맞춤형 리모델링으로 전환 되어야 한다.

돌아오는 길

청계천 대로변에는 연말을 알리는 등불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처럼 캄캄한 청계천 골목 위로 맥락 없이 흥겨운 노래가 낯설게 울려 퍼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차기 대선을 준비하며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듯하다.

이명박과 오세훈 서울시장에 의해 파헤쳐졌던 청계천이 박원순 서울시장에 의해 또다시 ‘도륙’ 당하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청계천에서 만난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수십 년 동안 사용하던 공구와 기계들을 챙기고 있었다. 지금 청계천은 인간의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이 이윤과 결합해 개발로 치닫고 있는 현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준경 열사의 죽음을 통해 개발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용역 깡패에 대한 폭력적인 문제, 그리고 재건축 사업이 안고 있는 세입자 대책 문제 등을 전면에 걸고 그 죽음을 애도하고 제도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모아 청계천에서도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문화운동가 그리고 전철연과 같은 철거민 당사자 대중조직, 이밖에도 주거권 운동조직이 서로 연대하는 방식으로 각각의 이해와 함께 공동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어떤 공간이든 직접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함부로 짓밟아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개발이 선한 목적으로 시작되지만, 결과는 재앙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자꾸만 청계천 공구상가 쪽을 뒤돌아봤다. ​

필자소개
빈민해방실천연대 수석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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