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의 미래
    [경제산책] 어떤 딴지걸기 그리고 필요한 대응 방향
        2018년 12월 24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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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뒤이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흔히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현재 존재하는 일자리의 과반 이상이 컴퓨터에 의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특히 저숙련 노동이 위험하다고 한다. 다른 이는 의사, 약사, 금융, 변호사, 회계사와 같이 고도로 숙련된 일자리가 더 위험하다고 한다. 소위 창의적인 사람만 살아남는다는 말에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데, 이런 걸 프레임이라고 한다. 일단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여기에 저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①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정말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는가? 4차가 온다는 말은 2차, 3차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18세기 말에 발생했다고 알려져 있는 산업혁명뿐이다. 이를 1차 산업혁명이라 한다. 혁명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산업혁명은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던 사회를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회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것조차도 혁명은 아니었다. 혁명이란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이 단어에 집착하면 자고 일어나 보니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세상이 갑자기 변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그런 것들은 과장이지 현실이 아니다. 상식과 달리 세상은 매우 느리게 바뀌고 있었다. 실제로 사람들이 혁명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생산성 변화를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은 수십 년이 지나서였다.

    1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2차와 3차 산업혁명이 무엇이었는지는 모호하다. 어떤 이는 화학이 2차, 전력화가 3차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컨베이어벨트와 전기 동력화가 2차, 전자기술과 자동화가 3차라고 한다. 4차는 더 모호하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던 매 시기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1940년대에는 통신수단의 발전과 원자에너지의 이용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했고, 1950년대에는 전자공학의 출현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했다. 1970년대에는 컴퓨터의 발전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했고, 1980년대에는 경제학자 로스토가 전자공학과 유전공학을 바탕으로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 들어서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실제 우리 삶에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이 혁명을 야기할 것이라는 말은 늘 있었지만, 상식과 달리 생산성 변화는 매우 느리게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예컨대, 1970년대에 등장한 컴퓨터에 의한 생산성 향상 효과는 아직까지도 모호한데, 연구자들은 이를 생산성 역설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4차 산업혁명이란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임을 추론할 수 있도록 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전 사회적으로 말하는 나라는 우리 사회가 유일하다.

    ② 독일 사회의 대응 : Industry 4.0

    그럼에도 4차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변화에 주목하자는 주장이 가능하다. 기술의 변화가 혁명적이었는가 아니었는가와 같은 사변적 논의를 중단하고, 현재 논의되는 4차 산업혁명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으며, 그것이 현실에서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규모와 무관하게 기술의 변화란 항상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의 변화와 사회적 수용에 주목하자는 것인데, 이는 매우 생산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행어는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슈밥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최근 논의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개념적 근원은 2011년 독일의 ‘Industry 4.0’이다. 독일은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후발주자의 추격과 여타 선진국과의 경쟁 속에서 제조업 강국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Industry 4.0’이다.

    이는 개별 소비자의 취향에 대응할 수 있는 고품질의 고부가가치 제품 공급을 통해 제품 차별화를 꾀하고, 노령의 숙련공도 일할 수 있는 친환경 도심 공장 ‘스마트 팩토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스마트 팩토리는 고부가가치 상품을 통해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숙련공이 부족해지는 문제에 대한 독일 사회의 대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스마트 팩토리는 과거 존재했던 팩토리와 어떤 차별성을 갖는가? 스마트 팩토리는 과거 존재했던 자동화에 깊이를 더하려는 시도이다. 과거 자동화는 중앙제어에 의한 일방향 공정이었기 때문에 생산기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전체 생산공정이 진행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스마트 팩토리는 제품에 스마트 메모리를 장착하여 생산기기와 무선통신을 주고받는다. 이를 통해 문제가 없는 다른 설비를 이용하여 생산이 진행하도록 하는데, 이를 자율분산제어시스템이라고 한다. 또한 실시간으로 획득된 방대한 데이터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기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징후를 사전에 진단하여 선제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품질의 안정성을 높이고 설비의 수명 역시 연장한다는 것이다.

    단순화시켜 말하면 ‘Industry 4.0’은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하여 제조업의 자동화 수준을 상승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품종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논의되는 4차 산업혁명의 기원으로 간주되는 ‘Industry 4.0’의 문제의식과 시도는 매우 구체적이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이 가며, 현실적이다. 비록 이념적 원형대로 스마트 팩토리가 구축될 것인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자동화의 심화와 이를 조작할 수 있는 숙련공의 결합을 통해 기존에 존재하던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시도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래야만 고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③ 우리 사회에서의 4차 산업혁명

    독일의 ‘Industry 4.0’의 문제의식과 비교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4차 산업혁명은 어떠한가?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논의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논의는 너무 광범위해서 목표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Industry 4.0’이 스마트 팩토리 구현이라는 매우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는 것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 3D프린팅,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인공지능 로봇 등과 같은 여러 기술발전의 묶음을 4차 산업혁명으로 이해한다.

    말하자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의 모든 첨단 기술을 망라한 것이 4차 산업혁명이란 개념인데, 다양한 기술발전을 총망라했기 때문에 무엇이 핵심인지 알 수 없고, 현실적 의미 또한 찾기 어렵다. 굳이 공통의 목적을 찾자면 ICT가 전통산업에 결합될 것이기 때문에 ICT 기반의 다양한 첨단 기술에 자원을 투자해 기술 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 주장은 사실상 실현가능성이 없는데,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과 같은 분야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추격전략에서 벗어나 있던 분야였기 때문에 이 분야의 선진국인 미국과 비교해 크게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주장은 모든 자원을 ICT에 집중하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닌데, 우리 사회의 산업이 ICT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산업이 뒤쳐질 수 있으며,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가 약화되면서 기존 산업을 발전시키거나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는 것에 대한 대응능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기존에 존재하던 산업을 무시하고 소위 4차 산업혁명이 주장하는 모든 ICT분야의 첨단산업을 육성하자는 것은 공상적인 주장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너무 광범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고 이를 육성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업의 발전이란 현재 우리 사회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역량을 바탕으로 발전해나가는 경로의존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만약 이를 무시하고 존재하지도 않던 신산업에만 집중할 경우 기존산업이 무너지면서 대량실업이 발생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4차 산업혁명은 목표가 모호하기 때문에 구호만 요란하지 실제로 실행되기 어려운 주장들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의 논의는 ‘Industry 4.0’과 달리 실현가능성 없는 요란한 구호로 가득 차 있는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2016년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을 계기로 정치진영의 이해관계에 맞게 급조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바둑대결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알파고의 승리에 따라 신기술에 대한 충격이 확산되자 갑자기 지능정보 사회를 위한 기술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언론 또한 이에 동조하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온갖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프레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은 곧 도래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로 굳어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다는 주장은 박근혜 정부 반대쪽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유리하게 수용되기 시작했는데, 4차 산업혁명의 도래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제공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저성장을 벗어나 새로운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될 것으로 판단했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입시 위주의 표준화된 교육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창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단순 반복적인 인간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면 노동의 미래는 창의적 활동에 집중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프레임이 작동하자 이를 부정하거나 의심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는데,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2017년 대통령 선거이다. 후보들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적임자가 자신이라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공격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는데,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어 지방의 상황과 전혀 관계도 없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주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연기관에서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배출가스 규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내연기관 부품을 생산하던 다수의 자동차부품 업체들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의 실제 삶은 이들 부품산업의 판매를 지원하여 활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하고, 전기자동차 관련 부품으로 연구개발 기능을 지원하여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지 4차 산업혁명을 도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대다수 지방의 현실에서 4차 산업혁명은 실제 삶과 유리된 공허한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던 제조업을 공장환경 변화를 통해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독일 사회의 대응과 크게 대비되는데, 4차 산업혁명 프레임이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④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잠식하는가?

    그런데, 4차 산업혁명과 관련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일자리이다. 4차 산업혁명론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일자리 충격은 필연적이다. 어떤 이는 현행 일자리의 52%가 4차 산업혁명의 영향권에 있다고 하고, 다른 이는 1,800만명의 고용이 위험하다고 한다. 의사, 약사, 금융, 변호사, 회계사 등과 같이 고도로 숙련된 일자리가 더 위험하다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대규모 고용대란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정말 그러한가? 4차 산업혁명이란 기술혁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기술혁신이 일자리 감소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듣기엔 그럴 듯하지만 이론적으로 명확하지 않고, 역사적 경험은 더욱 그러하다.

    기술혁신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현존하는 일자리를 감소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존하지 않던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어느 경향이 더 우세한가를 선험적으로 알 수 없다. 오직 사후적인 분석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데, 지금까지 역사적 경험을 보면 일자리가 줄어든 것보다 늘어난 쪽이 더 많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얘기가 반복적으로 나왔지만 실제 역사는 이와 정반대로 흘러갔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예컨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동화의 수준이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노동자 1만 명 당 로봇 수를 의미하는 로봇밀도 부문에서 2016년 기준 631대로 세계 1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2위 싱가포르가 488대, 3위 독일이 309대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의 자동화 수준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우리 사회의 경우 2010년 이후 7년 동안 로봇밀도 세계 1위를 유지하여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 준 적이 없다. 2015년에 비해 19%가 늘어날 정도로 자동화 수준은 지속적으로 상승했지만, 이로 인해 일자리가 줄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스마트공장의 보급에서도 마찬가지로 관찰된다. 정부는 2022년까지 스마트공장 2만 개 보급을 목표로 2014∼17년까지 5,003개 중소기업에 대한 생산자동화를 지원했는데, 자동화를 도입한 중소기업의 경우에도 고용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평균 2.2명이 증가했다.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원가가 줄어든 결과 매출액이 20%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했지만,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공장자동화를 구축하여 오랜 기간 4차 산업혁명의 실험장으로 기능해 왔다. 이 실험장이 보여준 경험적 증거에 따르면 자동화가 오히려 일자리를 증가시키고 있다.

    그럼 왜 상식과 반대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가?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동화 자체는 일자리 감소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자동화가 원가감소를 야기하여 매출을 증대시키면 오히려 일자리가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로봇에 의해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논의는 기술발전의 한쪽 측면만 고려한 지나치게 단순한 주장일 뿐이다.

    ⑤ 숙련편향적 기술혁신과 교육의 중요성

    그렇다면 기술발전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인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술발전 자체가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주장은 그동안 기술결정론으로 비판을 받았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에 존재하던 제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조정되기 때문에 기술발전 자체가 인간의 삶에 아무런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카카오 카풀과 같은 플랫폼 기술은 이와 충돌하는 기존의 제도가 미비한 곳에서는 별다른 저항 없이 쉽게 그 사회에 도입될 수 있었다. 미국의 우버, 동남아시아의 그랩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와 같이 저렴한 가격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택시 제도가 발전된 곳에서는 수용되기가 쉽지 않다. 택시 기사들의 이해관계 외에도 택시 제도가 너무 잘 작동하기 때문에 굳이 카카오 카풀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카카오 카풀은 사회적 정당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유사하게 알파고의 충격이 절정에 달했을 때, IBM의 인공지능 왓슨이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다. 인공지능에 의해 가장 고도로 숙련된 노동이 먼저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이 등장한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다. 인공지능 왓슨의 진단과 처방능력이 의사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에 다수의 의사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왓슨은 수도권 메이저 병원에 대항하기 위해 지방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2017년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렇지만 1년이 경과한 현재 왓슨은 의료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다. 의사들의 판단과 왓슨의 판단 사이에 심각한 불일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론 왓슨이 국가별로 상이한 문화적 차이에 따른 질병의 차이를 구분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도 퇴출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기계가 고도로 숙련된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은 일면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주장이기도 하다. 왓슨은 의사들의 판단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기능한 것이지 그 이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의사 사회는 왓슨을 동료 의사로 존중한 것이 아니라 기계 조수로 취급하다가 버린 것이다.

    공장자동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존 노동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신규공장의 경우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자동화가 쉽게 도입되지만 노동자들이 이미 존재하는 기존 공장의 경우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자동화를 도입할 수 없다. 현대기아차만 하더라도 신규로 건설되는 공장의 자동화율이 국내 공장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기술발전이 인간의 삶을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역사적 경험을 보면 기술발전이 해당 사회에 수용되는 역사적 패턴이 존재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기술발전은 숙련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반복업무를 중심으로 한 중간숙련 노동은 결국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되었는데, 기술변화에 적응한 숙련노동자들은 이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실질임금 역시 상승했다.

    이 말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무관하게 기술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개인의 역량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기술의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한 개인이 어떤 부문에 소질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를 조기에 인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자기 재능을 알 수 있는 기회도 부족하지만 직업세계에 대한 경험 역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특정 직업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함양을 조기에 결정하도록 요구하는 제도는 결코 바람직한 제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더라도 이를 이해하고 습득하여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과 무관하게 교육의 방향은 기초수학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필자소개
    부경대 경제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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