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개편 대상된 여당…'민주파'의 역사적 패배
    2006년 05월 31일 09: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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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의석수 142석의 거대 여당이 거둔 성적표다. 지도를 보면 여당은 고립된 섬처럼 전북에 간신히 얹혀 있다. 완패다. 그것도 우리 선거사에 일찌기 없던 참혹한 패배다. 최장집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민주화 이후 민주파’의 ‘역사적 패배’로 불릴 만하다.

민주화 이후 그 주도세력들이 앞장 서 시행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정적 결말이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귀결됐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깝지만 우리의 냉엄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제 예견된 패배 뒤에 남는 건 예고된 갈등이다. 열린우리당의 당내 투쟁 1회전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거냐는 문제를 두고 벌어질 것 같다.

"리더십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없다"

일단 정동영 의장은 책임론을 비껴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 의장 스스로 ‘무한책임’을 강조해온 터다. 문제는 책임지는 방식이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당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 김혁규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가 31일 저녁 서울 영등포 당사 회의실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전수영/정치/2006.5.31(서울=연합뉴스)
 

정 의장을 포함해 지도부가 동반사퇴하는 방법이 유력하다. 조경태 의원은 "당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특정 개인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주요 당직자 전원에게 물어야 한다"고 했다. 노웅래 의원도 "선거 패배는 누구 한 사람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며 지도부의 집단적인 책임을 강조했다. 우원식 의원도 "우리당의 지지기반인 서민과 중산층, 젊은 세대, 호남 지역을 모두 놓쳤다"며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 지도부가 사퇴하면 대행체제를 거쳐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부를 뽑아야 한다. 그런데 정동영, 김근태 양대 주주를 대체할 리더십이 당내에 없다. 현 상황에서 지도부 사퇴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내세울 사람이 없다는 것, 대안이 없다는 것, 이게 현 여당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했다.

"여당, 구심력은 없고 원심력은 강하다"

당 중진급 의원들 사이에서 지도부 사퇴 불가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며칠 전 유인태 의원이 거론한 바 있다. 그렇다고 선거 패배의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가기도 난감하다. 우원식 의원은 "대안부재론으로 피해가면 국민들에게 아주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대안은 또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는 말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정동영 의장이 재신임을 물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 의장 입장에서 봐도 지금 당을 끌고 가는 건 부담이 크다. 재신임이 되더라도 상황을 타개할 힘을 갖기 힘들다는 얘기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현재 여당의 상황을 "구심력은 없고 원심력은 강하다"고 요약했다. 그는 "선거 책임 문제를 회피할 수도 없고, 책임론을 공론화하면 원심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여당의 딜레마"라고 했다.

"여당은 정계개편의 주체가 아닌 객체"

결국 어떤 선택을 하건 당내의 리더십 위기를 타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당의 리더십 위기는 여당의 정국 주도권을 근원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이다. 여당발 정계개편론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 여당은 정계개편의 주체보다는 객체에 가깝다.

한귀영 실장은 "여당은 민주세력대연합 등 서부권 벨트 강화를 통해 전통적 지지층을 묶어내려 할 것"이라며 그러나 "합당을 하거나 정계개편을 한다고 해도 당내에 힘과 구심이 있어야 하는데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고 했다. 홍형식 소장은 "향후 대선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이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쥘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은 의석수와 상관없이 인수합병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당내 여러 정파가 구심 없이 산개하다가 흩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극단적인 전망도 나온다. 유력한 대권주자가 없는 것이 여당의 결정적인 한계다. 정당정치 구조가 취약한 우리 정치 여건상 차기 대권 주자 중심으로 세력 재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노 대통령도 정계개편 추진할 힘 없어"

정계개편의 또 다른 진앙의 가능성으로 거론되는 곳이 청와대다. 노 대통령이 동서통합을 명분으로 한나라당 일부 세력과 손 잡고 정계개편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이 탈당 후 한명숙 총리를 간판으로 내세워 한나라당 내에서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있는 이명박 시장과 손을 잡을 거라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가능성이 높지 않다. 레임덕에 처한 대통령이 이를 추진할 힘이 있겠느냐는 얘기다. 무엇보다 정계개편의 파트너로 거론되는 이명박 시장이 노 대통령과 손을 잡을 지 의문이다. "한나라당 간판을 달고 나와야 당선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여건이 다소 불리하다고 먼저 움직이거나 당을 깨고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요 대선주자군이 반대하는 한 개헌 논의 힘들 것"

여권이 개헌을 고리로 정계개편을 추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의 문제다. 현재의 게임의 룰로는 도저히 승리를 기대할 수 없는 여러 세력이 개헌을 고리로 뭉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역시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박근혜, 이명박, 고건 등 강력한 대권주자군은 현재의 구도에서 자기가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에 개헌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이들이 점하고 있는 정치적 지분을 감안할 때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헌을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개헌론의 명분이 확실한 것도 아니다. 홍형식 소장은 "누가 어떤 명분을 갖고 개헌을 추진하느냐가 중요한데 현재 여권은 개헌 주도할 힘도 명분도 없다"며 "누가 봐도 정략적으로 비춰지는 상황에서 개헌을 추진할 힘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했다.

"여당은 변화를 주도하기보다 주도당할 것"

열린우리당의 미래를 점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그러나 확실한 건 여당이 현재의 리더십의 위기를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 리더십의 위기를 극복하지 않고는 정계개편이건 개헌이건 정치적 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주도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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