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이인국은 누구?
‘꺼삐딴’ 위한 통역의 정치
[소설로 읽는 한국사회] 전광용의 『꺼삐딴 리』
    2018년 12월 19일 11: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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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도대체 어떻게 잊어야 할까, 택시에서 발견된 유서, 탄가루 묻은 컵라면과 과자, 탈수를 막는 소금과 물. 살기 위해 죽어야 했던 혹은 이 악물고 허기를 버텨야 했던 이들이 가슴 깊숙이 들어앉아 한없이 침전한다. 우연 같기만 한 슬픔의 연쇄 속에 광화문에 모인 이들은 머리 숙여 울었다. 마치 최루탄을 들이마신 사람처럼 눈과 코가 빨개지도록.

이제 광장에는 최루탄 대신 촛불이 있다. 87년 6월 항쟁과 촛불 항쟁, 30년 사이 유실된 것은 무엇이었나. 자조 섞인 물음에 나는 문득 혁명의 연좌제에 대해 생각한다. 그 긴요하고 질긴 그들만의 통용어, 30년을 이어온 통역의 정치에 대해.

근현대사에 친일과 친미로 이어지는 망국적 매국은 단죄의 역사였다. 그럼에도 역사는 청산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청산의 대상은 인간이었다. 어쩌면 역사는 청산을 통해 진정 역사이고자 했다. 일제 치하 제국에 협조한 자, 민족의 반역자를 다룬 소설들이 더러 있었다. 특기할 점은 결말이 늘 열린 채로 끝난다는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였지만 배반자의 벌은 늘 유예되고 역사가 그 공을 이어받았다. 그 후 수십 년 역사에서 그런 인물은 빈번했다. 종종 기회주의자라 불렸지만 따지고 보면 ‘기회주의’라는 단어는 마치 제도권력의 하위어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1963년 출간된 전광용의 「꺼삐딴 리」는 혼란 정국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이인국 박사 이야기다.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은 해방 후, 서울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한다. 그는 “한 집 걸러 병원”인 상황에서 병원비 “부담 능력을 감정”하며 손님을 가렸고 “왜정시대는 주로 일본이었고 현재는 권력층이 아니면 재벌”만 받는다. 일제시대가 끝난 뒤 소련군 점령으로 감옥 생활을 하다 기회를 잡는다. 삼팔선을 넘어 남측에 오자 미군정 주요 인사와 어울린다.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살아낸 이인국의 비결은 의술보다 언어사용에 있었다.

“야 원식아, 별수 없다. 왜정 때는 그래도 일본말이 출세를 하게 했고 이제는 노어가 또 판을 치지 않니. 고기가 물을 벗어나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지. 아무튼 그 노서아 말 꾸준히 해라.” (p. 243)

친일 친러 친미주의가 되는 데에는 일어 영어 러시어에 능통해야 했다. 제국의 언어는 우리말보다 우위였고 앞잡이라 불리는 자들은 내지인들과의 소통에 능했다. 이인국은 ‘국어 상용의 가(國語(일본어를 말함) 常用의 家’)라는 상장을 받기 위해 기를 쓰고 일본어만 구사했고 “마침내 잠꼬대까지 일본어로 할 정도”의 경지에 이른다. 해방 후, 소련군이 주둔해 위기를 맞지만 감옥에서도 끊임없이 노어 사전을 보며 그들의 말을 듣고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월남 후 병원의 주 고객을 부유층으로 제한한 뒤 영어를 구사하며 미군정 지배 인사만 상대했다.

패권의 언어를 습득해 그들의 이득을 대변할 수 있는 통역가는 어느 시대나 유리했다. 부역할 수 있는 자격은 언어 구사와 대변 능력이다. 그들이 알고자 하는 것, 그들이 원하는 것을 통역해 초법적 통치가 가능하도록 협조해야만 한다. 대동아공영권 같은 말은 힘의 근원이 되어 제국 권력의 길을 냈다. 이 과정에서 지배자의 언어와 인식을 체화한 인텔리들은 자연스레 강자의 편에 섰다.

87년 혁명을 통해 얻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민의의 대변자를 앞세웠지만 막상 대변할 대상을 취사선택했고 정치적 셈법을 따졌다. 선거적 합의라는 정통성 아래 정치 대리자는 당선과 동시에 재임이라는 목표를 제 일 과제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시민적 대의는 어느새 당리당략이라는 이해관계로 함몰된다. 즉 “대표된 이익들 간의 갈등이 아니라 대표된 정당체제와 대표되지 못한 사회 간의 갈등”(박찬표 『 한국의 48년 체제』)이다.

관제 야당이라는 말을 들어 본적 있는가, 구색 정당 즉 집권당의 합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껍데기 정당으로 제5공화국 때의 야당을 일컫기도 했다. 이때 나온 말이 소위 2중대라는 표현이다. 80년대 신군부에게 대항할 수 없었던 야당 대신, 학생과 노동자로 이루어진 시민사회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여기에 노동운동이 합세해 정치적 여파를 키웠고 숱한 생명과 맞바꾼 투쟁 끝에 형식적 민주화를 이뤄냈다.

거리의 정치는 곧 의사당으로 향했다. 노동자와 학생 농민 도시빈민이 피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는 제도화 과정에서 그들을 배제했다. 권위주의 정당이었던 여당은 야당의 자리를 보전해주는 대신 시민사회운동 세력을 정치의 장에서 추방하는 선거법을 설계한다. 이에 야당은 여당과 담합해 재야세력의 정치 진출을 막고, 지속적인 공모로 국회의원 ‘직’을 유지하기 위한 연합에 나선다.

87년 체제 이후 ‘통치 없는 통치’가 이루어진다. 지역적 지지기반을 확보해야 할 제도정당은 학연 지연 혈연 중심의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지역주의 정치에 물꼬를 틀고 시민적 대의는 자기 지역에 가져다줄 수혜를 거래 삼아 변형된다.

이러한 흐름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당시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영토 확장은 세계 전역이 아닌 이윤 창출이 가능한 곳으로 집중포화된다. 이 과정에서 배제가 발생하는데 국가적 의무를 자유로 전환시키고, 동의에 의한 협조를 꾀하는 포섭의 정치가 시작된다. 이는 전후 자본주의 재건의 새로운 조류였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탈노동적 산업으로 한국 경제가 재편되면서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 노동과 실업이라는 원치 않는 자유를 하향 부과한다. 일방적인 자유가 주어진 노동자들은 무능이라는 논리에 가려 철저한 패배자가 되거나, 성공한 자들은 지속적인 경쟁을 받아들이며 자본주의적 질서를 내면화한다. 푸코의 말대로 호모 에코노미쿠스 (자기경영적 주체)의 탄생이다.

‘민주 대 반민주’가 끝나자마자 ‘노동 대 자본’으로 점화되는 신자유주의 내에 대의제는 경쟁력을 갖지 못한 집단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한 입으로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정치 통역자들은 선거철마다 유권자에게 마치 불공정한 사회를 단죄할 듯 기함을 토하다 가도, 실전에서 번번이 지역 토호세력의 재산을 보호해줄 예산 쟁탈을 위해 야합하는 이중 언어의 구사자가 된다. 친기업적 성장만이 돌파구라 라던 일명 자본 통역의 정치, 친자본의 관제 야당으로 그 본색을 드러낸다.

87년 체제 이후 혁명의 성과는 예상과 달리 답보상태였다. 하지만 보통선거권의 확립과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라는 최소한의 형식을 남겨 2017년의 촛불 혁명을 가능케 했다. 촛불 혁명은 시민적 성숙함을 자랑하며 정권을 교체했지만 집권 엘리트 간의 상호 독점 덕에 여전히 지체와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어쨌거나 기득권을 대변해 온 기회주의 정치는 상황에 따라 발 빠르게 자기-부정을 시전하며 효율과 이윤 극대화라는 신자유주의 실질적 “꺼삐딴(우두머리)”을 비호한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의 ‘더불어 자한당’을 닮은 이인국이 필요하다.

이제 촛불을 이행할 의회가 한국 정치를 30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 한다. 날치기 예산 통과, 밀실 야합이라는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자신의 지역구 개발 예산을 올리고, 국회의원 수당도 올린 뒤, 의석 수마저 독식하려고 한다.

세계인권의 날, 카카오와 맞선 택시 노동자는 몸에 신나를 부었고, 대통령과의 만남을 요구했던 24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는 차디찬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이 끊어졌다. 동료를 허망하게 떠나보낸 뒤 5석의 의석으로 서민을 대변해야 할 진보 정당 당 대표는 열흘간 식음을 전폐하며 차디찬 국회 바닥에 엎드렸다.

87년 6월이 남긴 절차적 민주주의는 최소한의 형식을 심지 삼아 백만 촛불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17년 촛불 항쟁은 역사에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 물론 선거제도 개혁으로 하루아침에 서민을 위한 정치가 실현될 거란 건 맥없는 낙관이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이라는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을 사수하는 것이야말로, 최루탄과 촛불에 범벅된 눈물을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이에 앞서 기득의 편에 붙어 친자본 통역을 일삼는 국회 안 이인국을 교체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필자소개
여미애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기법을 연구했으며 성균관대 박사과정에서 현대 문학평론을 공부하고 있다. 독서코칭 리더로 청소년들과 붉은 고전읽기를 15년간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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