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로 가는 길목
강원도 고성의 '간성교회'
[그림 한국교회]' 하디 벨트' 따라서
    2018년 12월 17일 09: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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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답답한 이들에겐 문이 되어 주시고 / 목마른 이들에겐 구원의 샘이 되시는 주님
절망하는 이들에겐 희망으로 / 슬퍼하는 이들에겐 기쁨으로 오십시오
앓는 이들에겐 치유자로 / 갇힌 이들에겐 해방자로 오십시오
이제 우리의 기다림은 / 잘 익은 포도주의 향기를 내고 / 목관악기의 소리를 냅니다
어서 오십시오, 주님 / 우리는 아직 온전히 마음을 비우지는 못했으나
겸허한 갈망의 기다림 끝에 꼭 당신을 뵙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첫 기다림이며 / 마지막 기다림이신 주님 /어서 오십시오 (중략)

(이해인 시, “다시 대림절에…” 중에서)

예수의 오심을 고대하는 이 대림절에 우리 민족의 간절한 기다림은 무엇일까? 이 답을 구하기 위해 올 겨울 가장 춥다는 12월 8일, 강원도 고성군 간성으로 갔습니다. 군대 생활로 익숙한 강원도라 고속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풍광은 낯익었습니다. 하늘은 짙푸르고 소나무가 듬성듬성 보이는 겹겹의 산에는 잎을 떨군 나무들이 따사로운 볕을 쬐며 서 있었습니다. 화양강 휴게소에서 강을 내려다보니 가운데는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면 본 개울들은 다 얼었던데, 강물이 다 얼지 않은 것을 보며, 남북의 마음이 좀 넓어지면 평화의 꿈은 도도히 흐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는 인제, 원통을 지나 진부령을 넘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남북공동조사단이 동해선 철도 북측 구간을 조사하는 날로 금강산역에서 두만강역 구간 약 800㎞을 살펴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지난 9월,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에서 동서철도를 연결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등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지만, 남북철도 공동조사는 미국의 북한 제제 문제로 인하여 예정보다 한 달 가량 늦은 11월 30일, 철도 공동조사단을 태운 열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남북 연결 열차 운행이 멈춘 지 꼭 10년 만인데, 동해선 구간은 오늘 처음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1937년에 연결한 안변-양양의 동해북부선은 지역주민과 금강산 등을 찾는 관광객의 이용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루 4차례 운행했던 열차는 원산으로 유학하는 학생들의 통학수단으로도 활용되었으며 경성(서울)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6·25전쟁 중 대규모 폭격으로 인해 양양 역사와 철로가 완전히 파괴되어 지금은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동해선 복구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 남북경제협력으로 진행되어, 2005년 말, 고성-군사분계선 구간이 완공되었고 2007년 시험운행이 이루어졌으나 그후 남북의 긴장이 고조되어 동해선의 연결과 영업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동해선이 온전히 연결되면 간성 같은 도시가 살아나고, 남북의 평화의 기초가 튼실해질 것입니다.

동해선 구간이었고 우리나라 가장 북쪽인 고성군에 소재하고 금강산 관광을 가던 길목이던 간성읍의 분위기는 남북 변화의 움직임을 전혀 느낄 수 없었고 퇴락한 시장이 안쓰러웠습니다. 남북화해에 대한 현수막이라도 기대했지만 볼 수 없었고, 지나가던 분에게 남북관계 개선이 어떤 변화를 주고 있냐고 물으니 아직은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간성 버스터미널 출입구에는 “평화지역 시화 전시회”와 “평화이음 토요콘서트”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림=이근복

간성교회는 간성읍이 잘 보이는 양지 바른 언덕 위에 운치 있는 적송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서 있었습니다. 영동지역 첫 교회로 1901년 하디(Robert A. Hardie) 선교사에 의해 현 간성초등학교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파송을 받아 1890년에 입국합니다. 처음에는 조선 정부가 세운 서양식 병원 제중원에서 2년 동안 근무하다가 원산에서 시약소를 운영하며 영덕에서 원주에 이르는 여러 곳에서 환자들을 치료하였습니다. 미 남감리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원산 이남지역에 파송 받아 의료사역과 함께 강원도 순회 전도사역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원산기도회의 강연을 준비하던 중 성령 체험을 하여 자기 죄를 통회하였고 연합기도회에 참석한 선교사들로 이어지며 ‘1903년 원산대부흥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한국교회의 부흥을 촉발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부흥운동의 주요 인물이 된 하디 선교사가 원산을 중심으로 강원도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복음을 전하여 ‘하디 벨트’가 형성되어 1901년에 강릉중앙교회, 고성교회, 간성교회, 양양교회가 세워졌습니다.

1939년 일제는 간성교회를 강제로 폐쇄하였고, 해방 후에는 간성이 북한에 속하게 되어 핍박을 받자 교인들은 교회문을 닫고 개인집에서 예배드렸습니다. 1953년 10월 수복이 되어 교회문을 열었을 때, 당시 15사단장이 돌집교회를 지어 헌당한 후 간성교회 성도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1954년 2월, 초대 노영태 목사께서 1960년까지 교회를 이끌며 교회가 발전하게 됩니다.

“교회 창립 1901. 7. 17 / 불꽃의 사람 로버트 하디 세움 / 선교사의 눈물과 열정으로 세워진 영동 첫 교회”

2016년에 새로 지은 교회 앞에 서있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돌비 뒤에 있는 글입니다. 117년간이나 고난에 찬 분단역사를 지켜본 간성교회(담임목사 차준만)는 남북이 더불어 살게 되고 문이 열리면, 하디 벨트를 따라 원산으로 올라가 선교할 꿈을 꾸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이맘때는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했는데, 이제는 군사적 대치에서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중이고 지금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평화체제의 탄생을 기다리는 강원도민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길 간구합니다.

필자소개
이근복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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