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가?
[책소개] 『우리 몸이 세계라면』(김승섭/ 동아시아)
    2018년 12월 15일 1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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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편의 논문을 검토하고, 300여 편의 문헌을 구체적 근거로 삼았다. 1348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의 지시로, 파리 의과대학 교수가 쓴 흑사병 원인에 대한 보고서부터 암 치료에 영향을 주는 세포 내 수용체가 사회제도의 영향으로 변화한다는 최신의 논문까지. 시대와 공간을 횡단하며 지식의 최전선에서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경합과 지식인들의 분투를 담아냈다.

신간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2017년 『아픔이 길이 되려면』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의 신작이다. “인간의 몸은 다양한 관점이 각축하는 전장”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지식의 전쟁터가 된 우리 몸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몸을 둘러싼 지식의 생산 과정에 대해 말하면서, 어떤 지식이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지, 누가 왜 특정 지식을 생산하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에 질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전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10년간 김승섭 교수가 언론 매체를 통해 소통한 글들을 엮은 것이라면, 신간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지난 20년 동안 의학과 보건학을 통해 공부해온 몸과 질병에 관한 주제들을 ‘지식’에 방점을 찍고 새로 집필한 책이다. 방대한 자료를 검토했고, 그것들을 저자 특유의 정갈한 언어로 담아냈다. 과학과 역사의 사례, 현대의 여러 연구를 망라하며, 사회역학자의 글답게 데이터를 근거 삼아 이야기한다.

왜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가?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2018년인 지금도 심심치 않게 매스컴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이다. 그 뿌리를 따라가면, 제국주의 시기의 혈액형 인류학을 찾을 수 있다. 루드빅 히르쉬펠트는 혈액형을 ‘과학’의 도구로 이용해 민족과 인종을 처음 설명한 사람이다. 그는 마케도니아 전장에서 16개 국가의 군인 8,500명의 피를 뽑아 분석한 후 ‘생화학적 인종계수(AB형+A형/AB형+B형)’라는 지수를 만든다. A형 인자를 가진 사람이 B형 인자를 가진 사람보다 더 진화했다는, 인종주의적 전제를 담은 지표다.

이 지표는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드러낼 도구를 찾던 일본에게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일본은 조선에서 인종계수를 측정하면서, 일본과 가까울수록 인종계수가 높다는 계산을 도출해낸다. 김승섭 교수는 이러한 일제강점기의 인종주의 과학을 소개하면서, 어떤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 왜 그 시기에 그 질문을 던졌는지, 그 질문을 답하기 위한 연구들은 어디에 발표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은 이후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를 말하면서는 당시에 경제성장이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을 보건학자로서의 관점을 담아 다른 방향에서 질문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건강해졌는가를 물은 것이다. 김승섭 교수는 데이터를 통해 이를 입증해 보인다. 병원을 이용한 외래환자 수를 비교해봤을 때,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조선인에 비해 병원에서 치료받은 비율이 10배 이상 높았다. 한편 법정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조선인이 일본인의 10%에도 미치지 않았는데, 이 데이터를 해석하며 저자는 당시 조선인 전염병 사망자에 대해서는 그 규모조차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한다. 또한 당시 조선인의 평균키 변화를 검토하면서 식민통치가 조선인의 건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건학자로서의 질문에 답한다.

이 책에서는 병원 진단 과정이나 의학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몸만을 표준으로 삼아 생긴 문제들을 지적하고, 신약 개발에 있어서 고소득국가에서 소비되는 약만 개발되면서 저소득국가에서는 필요한 약이 개발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김승섭 교수가 이 책 전반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지식’ 그 자체에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지식이건 그 생산에는 누군가의 관점이 담기기 마련이고, 어떤 지식은 특정한 누군가의 이익을 반영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과학과 역사의 사례에서부터 현대의 연구까지 다루며 이러한 지식의 배경들을 드러내고 질문한다.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의 연구가 한국 사회를 연구하지 않는 이유

2016년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4년간 1억 원의 장학금을 제안한다. 흡연자가 고객인 담배회사가 건강을 연구하는 보건대학원에 장학금을 제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립 모리스는 “기존의 담배가 중독성이 있고 사망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담배의 종류는 다양하며, 그 독성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오히려 흡연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말하며, 장학금을 제안했다. ‘덜 해로운 담배 선택권’ 즉, 전자 담배에 대한 연구 제안을 한 셈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교수회의를 거쳐 이 제안을 거절한다.

이 책에서는 지식에 질문함과 동시에 이러한 지식 생산의 주체인 지식인들의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본이 지식 생산 과정에 관여한 사례로서, 담배회사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을 어떻게 매수하는지 여러 사례와 연구를 통해 보여준다.

2018년 연구에서 국제구호단체인 유니세프(UNICEF, 유엔아동기금)가 담배회사의 후원을 받으며 어린이 흡연 예방 활동을 축소한 문제를 다루고, 미국에서 공개된 담배회사 내부문건에서 한국의 학자들이 등장한 내용을 다루기도 한다.

또한 최근 담배회사들이 주력하는 전자담배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다. 2018년 스탠턴 글랜츠 교수는 필립모리스가 전자담배 ‘아이코스’의 미국식품농약청 승인을 받기 위해 제출한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그 내용을 소개한다. 필립 모리스는 미국과 일본에서, 90일간 아이코스를 사용한 사람의 폐활량, 백혈구 수치, 콜레스테롤 수치를 포함한 24개 생체지표의 변화량을 제시했다. 분석 결과 24개 지표 중 23개에서 기존의 궐련 담배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책에서는 담배회사의 사례를 통해 지식 생산 과정에서 지식인들의 책무에 대해 질문한다.

여기에 더해 한국에서 학계 평가 시스템에 따라 미국 중심의 학술 주제를 선정하게 되는 상황이나 논문 발표 시에 한국에 필요한 지식이어도 국외 저널 즉, 영어논문으로 발표하게 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도 제기한다.

데이터를 통해 읽는 몸과 질병의 사회사

저자인 고려대 김승섭 교수는 데이터를 통해 인구집단의 건강을 말하는 ‘사회역학’ 연구자이다. 전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그러한 사회역학의 연구방법으로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드러냈다면, 이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는 데이터를 활용해 몸과 질병의 사회사를 이야기한다.

조선시대를 말하면서는 중종 시기 티푸스로 추정되는 전염병의 실제 사망자 수 데이터를 제시하고, 일제강점기를 말하면서는 병원을 이용한 외래환자 수, 법정 전염병 사망자 수, 평균키 데이터를 보여준다. 중세 흑사병을 말하면서는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사망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흑사병 유행 시기와 유행하지 않은 시기의 남녀 사망비를 분석한 2017년 네덜란드의 연구를 소개한다. 데이터를 보여주며 동시에 질문한다. “대규모 재난 앞에서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죽음의 불평등을 묻는다. 대규모 재난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오늘날 그 함의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가장 최신의 연구들을 소개하면서, 사회의 제도나 폭력이 우리 몸에 어떻게 기록되는지 데이터를 통해 말하고 질문한다. 소득수준에 따라 영유아의 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대뇌 회백질 크기가 달라진다는 연구를 소개한다. 대뇌 회백질은 뇌에서 정보 처리와 학습 능력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사회 환경에 따라 신체가 변화한다는 여러 연구 사례를 소개하며, 가난의 문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2018년 사회역학자인 낸시 크리거 교수는 데이터를 통해 출생연도별로 유방암 환자의 암세포에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있는지를 분석한다. 이 수용체가 있을 경우, 타목시펜과 같은 약을 통해 치료가 효과적이고 완치 가능성도 높아진다. 연구에서 미국의 인종차별법인 짐크로우법 폐지 전후로, 인종별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가진 사람의 수에 차이가 있음이 드러난다. 사회의 제도와 차별이 우리 몸 안의 세포에까지 변화를 일으킨다는 최신의 연구를 보여주면서, 저자는 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금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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