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서의 ‘우문현답’ 정치
[진보 구의원의 동네정치] 의정보고
    2018년 12월 14일 04:4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의회 내 15대1의 싸움. 돌파구가 필요했다

2014년 12월이었다. 한참 추웠고 구로구의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을 다루는 정례회가 진행 중이었다. 초선의원의 첫 번째 연말 예산 정국이었기 때문에 공부할 것도, 준비할 것도 많았다. 그 와중에 싸움도 해야 했다. <구의원 개인사무실 설치 예산> 3억 5천만원의 향방을 둔 싸움이었다.

구로구의회는 의원 개인 방이 따로 없고 4~5명의 의원이 같이 한 방을 쓴다. 위원회 별로 회사로 치면 ‘한 팀의 자리 배치’라고 보면 된다. 이걸 의원 개인별로 각각 사무실을 만들도록 리모델링비, 개별 소파나 냉난방기 등 집기류를 사는 데 3억 5천만원 가까운 예산이 상정되었다. 예산이 충분하다면 구의원 개인 사무실을 만들어 주면 좋겠지만, 늘 그렇듯이 ‘무엇이 우선이냐?’ ‘무엇이 더 중요하냐?’를 두고 이견이 있었다. 특히 그 해는 예산이 너무 쪼들려서 웬만한 부서에서는 씀씀이를 줄여 3%, 5%씩 감액 편성을 하던 때였다.

영화에서만 보던 15대1의 싸움을 하게 됐다. 전체 16명 구의원 중에 ‘개인사무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15, ‘3억 5천이 적지 않은 돈인데 교육이나, 서민복지에 우선 써야 한다’는 의견은 나 혼자였다. 의회 안에서 운영위원회, 본회의장 발언을 통해 의원들과 구청을 설득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 의원, 의원들에게 도움 되는 거 할 때는 가만히 있는 거야”, “의원된 지 몇 개월 안돼서 잘 모르나 본데 의원들과 척지면 아무것도 못할 거야”라고 가르치고, 은근히 협박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점심식사도 같이 안하는 왕따가 되기도 했다.

의회 안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유치한 왕따 만들기까지 진행되는 판에 이성적인 설득이나 협의 따위는 불가능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고민을 했고 거리로 나서기로 했다. 주민들에게 알려서 주민들의 힘으로 돌파구를 만들기로 했다.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찾아가는 의정보고서’ 호외편

화려하게 컬러로 만들 시간도 없었고 필요도 없었다. A4 용지 앞뒤에 상황을 담았다. 흑백으로 인쇄했다. ‘15대1의 외로운 싸움, 주민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구의원 개인 사무실 만드는데 들어가는 돈을 교육예산, 주민예산으로 바꿀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라는 내용으로 찾아가는 의정보고서 호외편을 만들었다.

그리고 출근 퇴근길에는 전철역과 버스정류장에서, 의회가 조금 일찍 끝나는 날에는 시장-상가를 하나하나 방문해서, 주말에는 가가호호 우편함에 의정보고서를 투입하며 주민들을 만나고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렇게 2주 정도 지역을 뱅뱅 돌았더니 동네에서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역 언론에서 보도도 해주고, 의회와 구청 홈페이지에 예산을 바로잡아 달라는 의견도 쏟아졌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ooo 의원 그러면 안 돼. 그 돈이면 애들이나 어르신들에게 먼저 써야지 그러면 되겠어?” 하고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는 일까지 생기기 시작했고, 의원 사무실 예산을 지키려는 구의원들은 “하도 주민들이 이야기해서 도저히 집밖을 못나가겠다”며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내 문자메시지에는 이런 격려 문자도 들어왔다.

“의정보고서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겁니다.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힘 내십시오. 당신 뒤에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의회 안에서는 15대1의 싸움이지만, 우리 주민들이 그 싸움을 15대 43만의 싸움으로 반드시 만들어 주겠습니다.” (43만은 구로구 주민 숫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싸움은 15대 43만의 싸움이 되었고, 구로구의회는 결국 의원 개인사무실 설치 예산을 백지화하고 전액을 교육, 복지 예산으로 재편성 하였다. 주민들 앞에 똘똘 뭉쳤던 15명 의원들이 백기투항 한 것이다.

4년간, 13만부의 <의정보고서>와 165회의 <찾아가는 거리 의정보고>

나는 그 겨울, 주민들이 알고 싶어하고, 알면 행동한다고 느꼈었다.

주민들이 구정에는 관심도 없고, 동네정치는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옆에서 보여주고, 알려주고, 이야기 하면 함께 행동하고 변화에 동참할 수 있다’고 현실 속에서 배웠다.

국회, 정부 이야기는 TV, 신문에 나오지만 동네이야기, 동네정치, 동네예산은 잘 안 나오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먼저 찾아가서 이야기하고, 듣고, 반영하고, 다시 알려주면 함께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찾아가는 거리 의정보고>를 정기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초선임기 4년간 13만부의 의정보고서를 들고, 165회 정도 <거리의정보고>, <찾아가는 민원의 날>을 진행했다. 재선에 당선된 후에도 지난 6개월간의 활동을 정리해서 지난달 이번임기 첫 의정보고서를 만들고 의정보고 활동을 했다.

대략 방식은 이렇다.

3주간 출퇴근 의정보고(지하철역, 버스정류장 중심), 상가방문, 지역단체 방문을 하고 집집마다 우편함을 통해 배포도 한다. 국회의원은 의정보고 활동을 지원하는 예산이 있어서 우편발송도 하고, 인쇄비 디자인비도 일정 정도 보조를 받고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구의원은 그런 거 없다. 뭐든지 직접 다 준비해야 한다.

내용과 사진은 직접 만들고 구하고, 디자인 편집은 능력 있는 당원이 도와주고, 인쇄비도 알아서 마련하고, 배포도 해야 한다. 우표 값은 돈이 많이 드니, 직접 온 동네를 걸어 다니며 우편함에 투입한다. 때로는 경비 아저씨나 관리소장님한테 한소리 듣고 쫒겨날 때도 있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행위이고, 꾸준히 해 오고 있다는 설명을 잘 하면 이해해 주시기도 한다. 요즘은 워낙 정기적으로 하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협조해 주기도 한다.

우문현답, ‘현장에 있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내가 아는 구의원이 가끔 쓰는 말이다. 원래 ‘우문현답’의 풀이를 약간 다르게 해서 ‘리의’ ‘제는’ ‘장에’ ‘이 있다’ 앞글자만 따서 우문현답이란다. 말이 된다.

<찾아가는 거리 의정보고>의 가장 큰 장점은 ‘우문현답’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바로 문제의 현장에서 정치와 시민이 만나고, 의견을 나눌 장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거리 의정보고를 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서 ‘어두운 골목길에 조명이 필요하고’, ‘출근길 오류동역에 스크린도어가 필요하고’, 동네 놀이터에 모래가 밖으로 많이 나와 미끄럽다‘는 민원을 말한다.

집으로 온 의정보고서를 받아보고 거기 있는 전화로 전화를 걸어와 ‘정의당이 너무 강성이어서 좀 약해지고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하고, ‘구청장의 쓰레기 적환장 강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기도 한다.

의정보고서에 나와 있는 블로그로 들어와서 ‘동네개발 막아서는 김희서를 규탄한다’, ‘오류동 통학로 교통안전 예산 반영해줘서 고마워요’ 하는 글을 남기기도 한다. 말이 되는 이야기부터 말이 안 되는 이야기까지 어쨌든 동네에 관한 의견을 전하고 요청을 한다.

그 모든 말에 원하는 답을 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거기에서 풀뿌리정치, 동네정치가 시작된다. TV를 하루 종일 켜놔도, 중앙일간지들을 들춰봐도 전혀 들을 수 있는 풀뿌리 소식을 의정보고서를 통해 접하고, 풀뿌리 정치의 중요성도 느껴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 지역정치에 참여한다.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주민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구의원이자, 동네에서 진보정치를 하는 정치인으로서 <의정보고서>와 <찾아가는 의정보고 활동>은 주민참여를 돕는 방식이기도 하고, 지역정치를 활성화하는 도구이기도 하고, 진보정치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꾸준히 해온 이 활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한 이 활동은 현장의 소리를 통해 정책과 활동의 방향을 잡게 해주는 ‘지역정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이 보물창고를 나만 갖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좋은 걸 다른 의원들도, 심지어 다른 정당 의원들도 많이 했으면 좋겠다. 특히 동네정치 하는 구의원들이 말이다. 그게 주민들을 위한 길이자, 우리나라 풀뿌리 정치의 발전을 위한 길일 테니까.

필자소개
김희서
정의당 구로구의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