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물을 보면 후보가 보인다? 안보인다?
By tathata
    2006년 05월 29일 04: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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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네의 대문 앞에는 누런 대봉투들이 그득히 쌓여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공보물들이다. 이들 공보물이 때로는 일주일이상 주인이 찾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아마 5월 31일이 지나면 뜯겨지지도 못한 채 휴지통으로 직행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각 당의 서울시장, 비례대표, 광역의원, 기초의원 후보를 다 합하면 묵직한 두께가 될 정도로 많은 분량의 이 공보물들에서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최고’임을 자랑하고 있다.

선거공보물에는 공약과 정책의 비중이 거의 사라지고, ‘맑은, 매력있는, 행복한, 듬직한’이라는 각종 형용사를 동원한 추상적인 어구로 가득차 있다. 공약이 구체적일수록 맑지도, 매력이 있지도,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그래서 공약은 적고, 화려한 미사여구와 후보의 이미지만 가득한 ‘기이한’ 선거공보물이 탄생했다.

   
 ▲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의 공보물

강금실 후보 공보물의 컨셉은 ‘보람이가 행복한 서울’이다. 총 12페이지 분량에 초등학교 1년생이라는 보람의 사진과 관련 글은 5페이지 분량을 차지한다.

"초등학교 1학년 보람이 오늘 엄마한테 야단 맞았습니다.어린이날 선물로 빨간 구두를 받은 게 엊그제인데 게임기를 또 사달라고 졸랐기 때문입니다. 보람이는 한동안 빨간 구두는 신지 않을 것입니다."(3면), "어느 날 보람이가 학교에 안 가겠다며 주저앉았습니다."(4면), "보람이가 10분만 보이지 않아도 덜컥 겁이 나지 않으세요?" (6면), "보람이가 강남으로 이사가자고 조를까봐 걱정이세요?"(8면).

‘보람이’라는 어린이를 통해 친근함을 돋보이게 하면서 쉽게 다가가고 싶은 의도는 이해를 하겠지만, 공보물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라면 도가 지나치다 싶다. ‘공약의 문자’가 사라진 곳에는 어린이를 동원한 ‘모호한 이미지’가 들어섰다.

강 후보는 모든 초등학교에 원어민 영어교사나 영어능통자를 두고,  방과 후 학교를 설치해 공교육을 살리며, 강북지역에 CCTV 1,000대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또 강남북 격차해소를 위해 자치구의 세목을 교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 공약들은 각 세줄로 압축돼 있다. 나머지 10~12페이지는 강 후보의 성공한 인생담과 ‘열심히 하겠다’는 열린우리당의 반성문과 맹세문이 있다. "상처가 많은 여자와 영광이 많은 여자"(10페이지), "아줌마가 보람이의 힘이 되어줄거야. 자, 새끼손가락 내밀어봐. 약속!"(12면). 주택, 사회 양극화, 환경, 노인 장애인 등에 관한 정책은 없다.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의 공보물

오세훈 후보는 ‘맑은 서울! 매력있는 서울!’이다. 전체 분량 가운데 5페이지를 고스란히 오세훈 후보의 인물사진으로 할애하고 있는 이 공보물은 마치 오 후보의 개인사진 앨범을 연상시킬 정도다.

와이셔츠를 입은 모습(4면), 청년들과 함께 웃는 모습(5면), 수산물 시장에서 조개를 들고 웃는 모습(8면), 볼펜을 들고 뭔가를 설명하는 모습(10면),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하는 모습(12면)이 한 면을 차지한다.

오 후보도 ‘서울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 빠짐없이 특별하도록! 서울 강남북, 한 동네 한 동네 빠짐없이 신명나도록!’이라는 역시나 애매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제시한 공약은 강북도심의 재탄생, 강남북의 균형발전,  시민수명의 3년 되찾기, 임대주택 10만호 건설 등이다. 강금실 후보에 비하면 공약의 분야도 비교적 넓고, 풍부한 편이지만, 강 후보가 강조하고 있는 보육과 교육, 세금 관련 정책은 없다.

   
▲김종철 민주노동당 후보의 공보물

김종철 후보의 공보물에는 서울시민이 등장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집없는 서민, 노인, 장애인 등 서민이 있다. ·서울시부터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1가구 1주택을 법제화하며, 서울시민 공공주치의제를 도입하는 동시에 서울시 세금의 2% 교육기금 조성 등을 실현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의 김 후보가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책을 위한 후보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세 후보는 모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후보를 드러내고 있다. 강 후보는 유권자가 아닌 어린이에게 약속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다른 한 후보는 자신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인물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방식은 모두 두 후보 모두 자신이 속한 당과 정책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정책과 후보, 당의 삼박자를 갖춘 후보는 김 후보였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지난 6일 김종철 후보를 만나 "강금실, 오세훈 후보의 이미지가 새로운 것으로 나오는데 문제는 새롭다면서 정치와 거리두기를 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반정치 담론 태도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최 교수의 지적이 선거 공보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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