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외주화 속에
    노동자는 하나둘 죽어가고
    광화문의 고 김용균씨 추모문화제
        2018년 12월 14일 09: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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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용균 씨는 그 누구보다 꿈을 갖고 열심히 일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불과 3개월 만에 하청업체 인력을 개, 돼지 보 듯한 발전소 관리자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입니다. 발전소 측은 사고 수습 인력이 부족하다면서 불과 몇 시간 전에 같이 저녁밥을 먹던 사원들에게 시신 수습하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 씨의 동료들은 그의 죽음 앞에 원통함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에서 1년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지난 11일 새벽 석탄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시신은 사고 5시간 만에 동료들에 의해 수습됐다. 발전사는 시신이 수습되자마자 김 씨가 숨진, 그 자리의 기계를 다시 돌렸다.

    13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는 김 씨와 같은 일터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직접 마련했다. 200여 명의 시민들은 매서운 한파에도 저마다 김 씨를 추모하는 촛불을 들었다. 문화제 가장 앞줄을 채운 이들은 김용균 씨 또래의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죽음마저 외주화한 차가운 세상 속에 노동자는 하나 둘씩 쓰러져 갑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만나 달라 절규할 때 문재인 당신 대체 뭘 했습니까’ 손피켓을 들었다.

    추모제 모습(사진=유하라)

    광장 곳곳엔 추모 엽서도 걸렸다. 한 시민은 엽서에 “너무나 화가 납니다. 촛불로 바꿨다는 세상이 젊은 청년들을 사지로 내모는 세상일 수는 없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었고, 또 다른 시민은 “더 이상 죽지 않게 해달라는 당신과 당신 동료, 나와 우리의 요구를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국가와 기업 모두의 책임으로 먼저 보내드려 죄송합니다”라는 엽서도 광장 한 편에서 나부꼈다.

    김 씨의 동료인 A씨는 발언을 위해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았지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게…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지금 법을 제정하든 대책을 세우든 그 어떤 행위도 저희한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와 동료들은 오늘만큼은 김용균 씨를 함께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또 다른 동료인 B씨는 “김용균 씨와는 직장 동료이자 형, 동생 사이로 지냈다. 사고가 있기 5일 전에도 김용균 씨의 생일을 축하하며 함께 술 한 잔을 기울였었다. 사회에 첫발을 붙인 회사가 발전소였고 그는 누구보다 꿈을 갖고 열심히 일하던 청년이었다”고 고인을 회상하며 “김용균 씨 부모의 통곡, 원통함은 대체 누가 책임져야 하나. 도대체 우리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세금은 누굴 위해 쓰이고 있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한 중년 여성은 추모문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강화도에서 세월호 광장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제게는 28살, 24살이 된 딸이 있다. 우리 큰 애도 6개월에 한 번씩 계약하는 계약직 노동자”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이틀 전에 아들 같은 김용균 씨의 사망사고를 접했고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있다가 오늘 이 자리 나왔다. 이 자리에 올 수 없는 더 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김 씨의 죽음과 함께 내 가슴 아프게 찌른다. 우리 세대는 운 좋게도 20대와 30대를 일자리 걱정 없이 보냈다. 그런데 김용균 씨의 죽음 앞에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아 슬프고 황망하다”고 말했다.

    고인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죽음의 외주화’를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엘지유플러스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인 최 모 씨는 “사고 소식 접하고 남의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최 씨는 “저희는 일하다가 옥상에서 떨어져서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상황에도 업체 관리자에게 상황을 보고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머지 일은 어떻게 할 거냐’, ‘내일은 출근할 거냐’가 대부분 관리자들의 첫 반응이다. 원청에 의해 착취당하는 구조 속에서 하청 관리자들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현장이든 김용균 씨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며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기간제 교사인 박 모 씨는 “구의역 사고로 19살 청년의 죽음을 가슴에 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24살 청년의 죽음과 마주했다.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두렵고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니 더 안타깝다”며 “정규직이 할 일을 외주화하고 외주업체는 인건비 줄이기 위해 2인 1조로 할 일을 김 씨 혼자서 하게했다. 이 죽음의 책임은 발전사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도 있다”고 비판했다.

    박 씨는 “전기가 끊어지면 병원 뿐 아니라 모든 일상이 멈추고 위험에 처하지만, 회사는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던 약속, 생명·안전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은 우선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약속은 사기”라고 말했다.

    청년들도 연달아 발언대에 서서 김용균 씨의 죽음을 추모하고 또 분노했다.

    고인과 동갑내기 대학생인 허 모 씨는 “우리 청년들은 일자리를 얻고 싶어 하지만, 취직을 하면 위험한 업무에 목숨을 담보 걸고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허 씨는 “그래서 기사로 고인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분노가 치밀었다. 비정규직이 아니었다면, 민영화되지 않았다면, 생명이 이윤보다 중요한 사회였다면 그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은 국가가 저지른 살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인 박 모 씨도 “고인은 마지막까지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청년 노동자의 사망은 직접고용을 통한 정규직화를 회피한 정부의 책임”이라며 “죽음의 외주화를 끝내고 돈보다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자던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1시간 넘게 추모문화제가 진행되는 중에도 세월호 광장에 마련된 김용균 씨의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저마다 국화꽃을 놓고 향을 피우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명복을 빌었다. 영정 사진 속 김용균 씨는 마스크과 안전모를 쓰고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글귀를 적은 손피켓을 들고 있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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