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 스크린도어 설치, 언제 어떻게
    [지하철 이야기③] 외주화·인력감축은 안전과 직결
        2018년 12월 13일 09: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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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준법투쟁 돌입! 스크린도어 설치 요구”

    2004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서울지하철공사에 대해, 승객 주의 의무에 미흡했다며 2억 2천만원을 유족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하며, 서울지하철공사의 책임을 물었다.

    이 사건과 파장이, 스크린도어 설치 공사 시발 계기다.

    2003년 6월, 4호선 회현역 승강장에서 40대 주부가 ‘어떤 사람’에게 떠밀려 추락, 마침 들어오던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터졌다. 아내를 잃은 남편은,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제3자의 고의로 아내가 추락했고 희생되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방송 등 언론에 보도되고 사회적으로 희생자를 애도하며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1997년 IMF 이후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광풍이, 전 사회적 정치적 구도로 안착된 서글픈 현실에 있다. 새로운 시설물의 도입에 따라 발생되는 예산(돈)을 인건비 절감 등으로 상쇄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남는 장사가 된다면, 회사는 오히려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다.

    당시, 노조 승무지부 내 지도부 및 활동가들의 고심이 깊어져 갔다.

    2007년 겨울, 도봉산 오봉에 오른 노조 승무활동가. 좌측부터, 위기열 전 성수승무지회장- 나명호 전 신정승무지회장- 백생학 전 구로승무지회장

    94년 창립된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담당)는 1-4호선을 담당하는 서울지하철공사와 달리 열차운전 및 승객 승하차 업무를 2인이 담당하던 것을 1인이 감당했다. 소위 1인 승무가 시행된 것이다.

    이후 97년 개통된 대구지하철, 99년 개통된 인천지하철, 2004년 개통된 광주지하철, 2006년 개통된 대전지하철이 그 뒤를 따랐다.

    전국 지하철 각 회사는 근로조건, 임금수준, 직장문화가 상이했고 현저하게 차이가 나 있었다. 각 노조의 조직력도 차이가 뚜렷했다. 누가 당시에 서울지하철 활동가에게, ‘당신의 고민은 무엇인가?’ 라고 물어 보았다면 대답은 뻔하다. ‘우리는 단결하고자 하나 방법은 잘 보이지 않고, 철저하게 고립 분산되어 있다.’ ‘그것이 그들의 의도이다.’ ‘우리의 자유, 평등, 평화가 갈수록 위축될 것이다.’ ‘타개책은 무엇일까, 고심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1인이 열차운행 및 승객 승하차 업무 그리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정상적인 열차 운행조건에서도 그러할 진데 돌발사태 발생 시에 승객(1열차당 평균 2,000여명) 안전, 생명 담보 등을 위해서도 그렇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사망 193명, 부상 151명, 실종 21명) 직접적인 원인인 기관사 1인승무의 위험을 성찰하지 않고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야만사회, 인건비를 절감해서 자신이 가져가겠다는 의도가 관철되는 사회라면 1인 승무는 가능한 일이 된다.

    2004년 1-4호선 구간 승강장안전문 설치계획을 발표하고, 단계적 공사에 들어갔다. 당시 서울시장은 이명박, 서울지하철공사 사장은 강경호, 감사는 김백준이었다.

    2004년 2호선 사당역을 시발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비는 한 역당 10억에서 15억 정도 들었다. 일반 역은 205미터 길이 두 면의 승강장스크린도어이지만, 환승역은 그 두 배 이상이다.

    서울지하철 1-4호선의 경우는 5-8호선과 달리 시공업체가 3개였고 하청과 재하청을 통해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되었다. 이것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반면에 5-8호선의 경우는 한 개 업체가 시공하였고, 유지보수 업무도 기존의 정규직 즉 도시철도공사 기술본부 소속 직원이 담당했다.

    확인해보면 알 수 있듯이, 스크린도어 오작동이라든지 이용 시민 불편사항이, 1-4호선보다 5-8호선이 현저하게 적었다.

    방배역 스크린도어는 잦은 고장 등으로 전면 철거후 재시공 중

    서울지하철공사와 서울시는 1-4호선 승강장안전문 ‘유지관리업무’를 아웃소싱하고 외주업체에 맡겼다.

    노조는 당시 서울지하철 전 부분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인원감축 및 외주화)을 방어하고자 총력을 집중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5-8호선에서는, 부족한 인력을 비정규직이 감당하다가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언론에도 보도되었듯이 강남역 스크린도어 보수작업 중 노동자 사망사고, 성수역 노동자 사망사고, 구의역 김 군 사망사고와 유사한 사고가, 정규직이 일하는 도시철도공사 5-8호선 구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2호선 신도림역 본선 승강장 스크린도어(완전 밀폐형)

    강변역 스크린도어(부분 밀폐형)

    2009년, 서울지하철 1-8호선 구간 모든 역 승강장안전문이 설치 완료되었다.

    스크린도어 설치 이후, ‘역 승강장 선로 사상사고’는(1-4호선) 2009년 이전에 매년 30건(명) 이상 발생하던 것이 현저하게 줄었다.

    2011년 강변역 승객 자살시도로 인한 사망사고 1건, 2012년 용두역 승객 전동휠체어 끼임 사고로 인해 발생한 부상사고 1건이 2013년까지 발생한 사고의 전부다.

    무척 다행한 일이다.

    우리 승무원들도 더 이상 사상사고 고통을 겪지 않아 무척 다행스럽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물밑에서 흐르고 있다. 공공의 이익과 관련되는 업무를 아웃소싱하고 인력을 감축하면 즉, 노동자를 자르면 이용시민이 죽고 우리 노동자도 죽는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에서 그랬고 2015년에 있었던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가 그랬다.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사회로 가고 싶은 것일까?

    우리는 지금도 상존하고 있는 서울지하철 내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싶다. 우리는 어느덧 한 세대가 다른 후배들에게 우리 자식들에게 안정된 직장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주고 싶다.

    우리는 이용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고 실제 현실에서 관철되기를 갈구한다.

    2017년 서울시장의 주도로, 서울지하철 1-4호선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서울시장의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

    노사 합의서가 체결되었다. 당시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최병윤이었으며, 그는 평소에도 기지 구내 식당에서 일하시는 노동자 처우개선과 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등 소신을 보이던 사람이다.

    현재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직제는 서울교통공사 기술본부 승강장안전문관리단이다. ‘은성PSD회사’ 소속 비정규직 직원이 대부분이다.

    3호선 약수역 PSD관리반에 근무하고 있는 모 선배에게 최근 사태 이른바, 조중동의 정치모략, 정규직 전환 반대에 따른 망동의 여파(현장 분위기)에 대해 물어 보았다.

    ‘더 이상 사람의 자존심을 짓밟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인간이라면….!’ 선배는 오히려 되물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후배들이, 정당한 대우를 회사 직제에서도 받을 수 있도록 해나가자.’ 고 우리는 뜻을 모았다.

    ‘그렇게 된다면, 하는 일에 신바람이 나고 사고도 줄일 수 있다.’

    이런 당연한 말을 기술해야 하는 심정은 몹시 처연하다.

    서울시민과 인근 경기도민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인 서울지하철 모든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용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우리는 이를 관철하고자 이용시민 및 각 노조와 연대하고 또 제 단체들과도 합심해서 실천방법을 강구 투쟁할 것이다.

    두 번째 주제인 지하철 업종별 근로조건 변천과 전략전술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 편집자

    필자소개
    서울교통공사 기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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