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들의 '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노래합니다
        2006년 05월 29일 01: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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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ck for Choice
    "Spirit of ’73"
    1995년
    1. If I Can’t Have You – Eve’s Plum
    2. More, More, More (Pt. 1) – Babes In Toyland
    3. We Are Family – Ebony Vibe Everlasting
    4. Dreams – Letters To Cleo
    5. Dancing Barefoot – Johnette Napolitano
    6. Cherry Bomb – L7 And Joan Jett
    7. Midnight At The Oasis – That Dog.
    8. Have You Never Been Mellow – Pet
    9. River – Rosanne Cash
    10. Feel Like Makin’ Love – Melissa Ferrick
    11.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 Cassandra Wilson
    12. Blue – Sarah Mc Lachlan
    13. It Won’t Take Long – Indigo Girls
    14.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 – Sophie B. Hawkins
     

    일단 사실관계 확인부터 하고 넘어가자. 이 세상에 낙태에 반대하는 사람은 있어도 낙태에 찬성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없다. 여성운동이 주장하는 것은 ‘자기 몸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이다. 이것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의료행위의 제공이 필요한 것이다.

    그 이야기가 그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낙태를 둘러싼 논란의 가운데에 있는 것은 의료시술의 법적 인정여부도 아니고, 낙태라는 행위 자체도 아니고, 윤리적인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간혹 거리에서 낙태시술 장면을 비디오로 상영하는 낙태반대 캠페인을 볼 수 있다. 태아의 모습이 참혹하기는 하지만, 이런 식의 캠페인에는 항상 가장 중요한 문제가 빠져있다. 바로 ‘여성’이다.

    근본주의적인 종교관을 가진 사람들은 생명은 신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연이 있든지 간에 잉태된 순간부터 인간이 결정권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생명의 신비,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은 표현을 쓰며 낙태를 비난하지만 이들이 여성의 결정권을 부정하는 순간 아름다운 어머니는 단순한 ‘출산기계’로 전락한다. 여성을 주체가 아니라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pro-choice”라고 부르고 반대진영은 “pro-life”라고 부른다.

    * * *

    “선택을 위한 록음악Rock for Choice”은 1991년 여성밴드인 L7과 여성운동단체인 “페미니스트 다수파Feminist Majority”가 함께 결성한 캠페인 그룹이다. 잘 알다시피 낙태를 둘러싸고 가장 시끄러운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딴 살림을 차리고 사는 이유는 미국 정치의 가장 뜨거운 쟁점들인 낙태합법화, 총기규제, 학교에서의 기도 문제에서 입장이 갈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골수 공화당원들의 눈에는 낙태를 허용하고, 총을 쏘지 않고, 신에게 기도하지 않는 인간들은 ‘진정한 아메리칸’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결정권을 옹호하고 이를 홍보하며, 이런 권리를 지키기 위해 여성들의 단결을 촉구하는 것이 ‘Rock for Choice’의 활동이다. 지금도 미국 각지를 돌며 홍보와 기금마련을 위한 콘서트를 열고 있다. 이런 공연에는 여성 음악인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들로 이루어진 밴드지만 ‘pro-choice’진영의 대표주자들인 펄 잼Pearl Jam,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랜시드Rancid 같은 밴드들이 동참한다.

    앨범 <73년의 정신The Spirit of ’73>도 이 단체의 기금확보와 홍보를 위해 1995년에 제작된 음반이다. 73년의 정신이란 1973년 1월 22일 미국 대법원이 낙태의 합법성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소송의 판결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번복되지 않은 이 판결은 미국의 낙태반대운동진영에게는 ‘악마의 술수’로 여겨지고 있다.

    1973년 대법원 판결을 옹호하고 이 판결을 이끌어내기 백여년 넘게 투쟁한 미국 여성운동의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이 음반은 기획됐다. 또한 73년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90년대의 대표적인 여성 아티스트들이 70년대 선배들의 히트곡을 다시 부르는 방식을 선택했다.

    우선 먼저 눈에 띠는 것은 ‘Rock for Choice’의 창립자인 L7이다. 이들이 고른 노래는 여성하드록의 선구적 존재였던 조안 제트의 “체리폭탄Cherry Bomb”이다. 노래만 고른 것이 아니라 아예 둘이 같이 녹음을 했다.

    쟈니 캐쉬의 딸인 로잔느 캐쉬와 사라 맥클랜은 나란히 조니 미첼의 곡을 골랐다. 이들은 1971년 조니 미첼이 발표한 앨범 <블루Blue>에서 한 곡씩을 불렀다. 소피 B 홉킨스가 고른 선배는 포크록의 대선배 존 바에즈다. “옛 남부를 관통하던 밤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은 남북전쟁에 관한 노래다.

    90년대 여성과 에이즈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었던 밴드 콘크리트 블론드Concrete Blonde의 보컬이었던 조넷 나폴리타노는 패티 스미스 그룹의 “맨발의 춤Dancing Barefoot”을, 레터스 투 클레오는 플리트우드맥의 히트곡 “꿈Dreams”을 녹음했다. 그러고 보면 거친 목소리의 패티 스미스와 남성들의 우상이었던 플리트우드맥의 스티비 닉스는 70년대 대중음악에서 서로 상반되는 여성성을 보여줬던 인물들이다.

    특별히 우리 귀에 익은 노래들도 있다. 롤러스케이트장이나 음악다방에서 인기 있었던 올리비아 뉴튼 존의 “Have You Never Been Mellow”는 역시 여성 밴드인 펫이, 지금도 라디오에서 자주 들리는 로버타 플랙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는 카산드라 윌슨이 불렀다. 70년대 노래지만 80년대 디스코텍에서 수많은 형님들을 땀흘리게 만들었던 “We Are Family”도 들을 수 있다.

       
    ▲ Riot Grrrl 운동의 상징들. 여성의 성별을 나타내는 기호를 전투적으로 변형시킨 것들이다.

    베이브 인 토이랜드는 90년대 미국의 “Riot Grrrl(girl이 아님)” 운동의 전통 위에 서있는 밴드다. Riot Grrrl 운동은 페미니즘과 언더그라운드 펑크 록이 결합하면서 발생한 문화운동이다. 얌전한 소녀의 이미지를 거부하고 도발적이며 저항적인 음악과 표현을 통해 사회의 힘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 운동의 유일한 목표였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걸(girl)들의 혁명"을 주창하며 공연장에서 남성 관객을 발로 차서 내쫓았던 소녀 폭동은 너바나로 대표되는 그런지와 함께 90년대 록 문화의 대표적인 풍경이었다.

    베이브 인 토이랜드가 고른 노래 “More, More, More (Pt.1)”는 포르노 배우 출신으로 유명했던 가수 안드레아 트루가 1975년에 발표한 곡이다. 가수의 출신성분과 노래 제목을 연결시키면 무슨 내용의 노래인지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로버타 플랙의 또 다른 히트곡 “Feel like Making Love”를 부른 멜리사 페릭은 레즈비언 아티스트다.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확실히 90년대 이후 미국 여성운동에서 한 흐름을 형성할 정도로 강해졌다. 이 앨범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Rock for Choice’의 중심인물 중 한명인 가수 멜리사 에더리지도 레즈비언 페미니즘의 신봉자이다. 멜리사 에더리지는 가족을 이루지 않고 도너에게서 제공받은 정자로 인공수정하는 ‘레즈비언 맘’을 직접 실처하기도 했다. 후에 그 아이의 도너가 60년대 전설적인 밴드 버즈와 크로스비, 스틸즈 앤 내쉬 출신의 그 데이비드 크로스비라는게 밝혀져 미국 음악계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 * *

    캠페인 음반답게 <73년의 정신>에 들어있는 부클릿(소책자)에는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실천방법들이 적혀있다. 재정지원부터 시작해서 지역 정치인에게 의견을 보내는 방법까지 여러 가지가 적혀있다. 그중에 ‘투표인 등록’을 하고 클린턴 대통령에게 당신이 여성의 선택권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리라는 문구가 재밌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정치적인 출판물이나 음반에는 반드시 ‘투표인 등록’을 하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미국은 우리처럼 (그리고 거의 모든 나라들처럼) 시민에게 참정권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투표소에 가서 신고하고 등록해야만 참정권이 주어진다. 대통령도 간접선거로 뽑는 마당에 참 너무한 나라다. 그러니 미국의 투표율 50%는 우리로 치면 30~40%정도 수준인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민주주의 국가다.

    하긴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교과서에 직접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나라로 소개되는 스위스는 1971년에 가서야 여성의 참정권을 허용했다. 그나마도 1990년에 가서야 전 지역, 모든 여성에게 적용됐다. ‘서방선진8개국’의 일원인 이탈리아는 1974년에 이르러서야 이혼을 허용했다. 이게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복습하자. 여성들은 ‘낙태를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 대한 ‘자신의 결정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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