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영리병원 허가 논란
    청와대·정부 책임론 확산
    “의료 민영화는 국민적 재앙”···100만 서명운동과 촛불집회 등 투쟁
        2018년 12월 10일 06: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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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도 녹지국제병원의 개원 허가 결정 이후 ‘의료민영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녹지병원 개원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무력화로 현행 건강보험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불씨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엔 녹지병원 설립 반대 청원글에 2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서명했고,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전 조직적 투쟁을 통해 영리병원을 막아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정작 영리병원 설립 금지를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전 정부의 승인사항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녹지병원 설립 허가를 방조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지난 4일 올라온 ‘원희룡 제주 도지사가 제주도민이 공론조사로 결정한 영리병원 불허 결정을 따르도록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작성자는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돈벌이로 취급하는 영리병원이 제주도에 발붙이지 못하게 도와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관련 청원 링크)

    작성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영리병원을 반대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되면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 고 약속도 했다. 그 약속을 이제 국민들에게 보여달라. 지금 당장,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영리병원 불허 결정을 발표하도록 나서달라”고 했다. 해당 청원글은 10일인 이날 오후 기준 1만7108명이 서명했다.

    제주도민과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녹지병원 설립 허가 결정과 관련해 일제히 청와대와 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다.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오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너무도 쉽게 제주도민의 민의를 배신하고 영리병원을 허가한 것은 집권 여당도 마찬가지로 각종 의료 영리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원희룡 도지사의 영리병원 허가 방향이 정확하게 의료 민영화 추진으로 방향키를 잡은 현 정부와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녹지그룹 법정 대리인인 김앤장은 내국인 제한 없는 전면적인 영리병원 허가가 아니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제주도정이 만든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법적인 권한으로 영리병원 사업계획서 승인을 철회하지 않으면 원희룡 도지사에 이어 박능후 장관의 퇴진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복지부가 승인한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사업계획서 전체 공개와 영리병원 승인을 위한 법 제도에 명시된 ‘의료기관 개설 허가 사전 심사’ 전 과정 공개, ‘내국인 진료 제한은 현행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복지부의 올해 1월의 유권 해석에 관한 해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제주도 내에선 ‘녹지병원 개원 불허 결정을 청와대가 반대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공론조사 결과를 수용하겠다던 원희룡 지사가 돌연 ‘조건부 허가’ 결정을 한 것 역시 복지부와의 교감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사진=보건의료노조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원희룡 지사는 내국민 진료를 금지하는 조항을 근거로 해서 올해 복지부의 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이러한 행정조치가 복지부와의 사전교감을 통해서 나왔다는 것이 원 지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원희룡 지사가 청와대와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한 발언은 문재인 정부가 영리병원 설립에 동의한 것 아닌가, 하는 강력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의지만 있다면 직권으로 녹지병원의 설립을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나 정부에선 관련해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 역시 원 지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우 정책위원장은 “녹지병원 설립은 2015년 복지부의 승인 사항이었지만, 현 복지부 장관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직권으로 승인을 철회할 수 있다. 지자체법에 따르면 잘못된 명령이나 조치는 주무부처 장관에 의해서 그 명령을 직권 철회가 가능하다”며 “승인 철회로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현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의료민영화가 눈앞에서 시행되는 이 마당에 문재인 대통령은 왜 나서질 않고 있나. 나몰라라하고 뒷짐만 질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영리병원 철회를 장관에 명령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여당이 규제프리존법을 날치기 처리하고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 역시 녹지병원 개원 허가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의료민영화로 방향을 잡으면서 지자체에서도 이런 일련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민주당은 해당 상임위에서 의료기기와 의약품 안전평가 기준 완화하는 법안 통과시키려 했다. 청와대는 이것이 영리병원과 의료민영화를 분명히 반대하는 공약을 한 촛불혁명 정부에서 추진하는 의료정책이 맞는지 답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장호종 노동자연대 활동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손을 맞잡고 돌아오는 길에 의료민영화법인 규제프리존법이 날치기로 본회의를 통과됐고,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서비스발전기본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고, 여당은 대통령 지시라며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의료기기 안전성 평가 과정을 축소하는 규제완화 법안을 상정하고 있다”며 “이 정부가 이토록 강경하게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데 원희룡 도지사가 하지 못할 게 뭐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녹지병원 개원을 청와대와 정부가 막아야 한다고 촉구하며, 의료영리화를 막아내는 전 조직적 투쟁을 비롯해 대국민선전전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 “의료 민영화는 국민적 재앙”이라며 “부자들은 값비싼 민간 보험 들어 영리병원의 진료를 받으면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무력화되고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그토록 부러워했던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체계는 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100만인 서명운동, 촛불집회 등을 이어가고,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개설 허가를 삭제하는 법률 제정 투쟁도 전개하겠다”며 “영리병원 뿐 아니라 의료기기, 의약품, 원격의료추진 등 의료영리화 전반에 대해 투쟁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자살율, 장시간 노동, 저출산율, 빈부격차 모두 1위지만 건강보험 체계만큼은 자랑스러움 가지고 있었다. 이 정부가 ‘더 이상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겠다’ 정도의 안일한 생각으로 대처한다면 의료 재앙이 올 것”이라며 “우리나라 단 하나의 영리병원 허용되지 않도록 이를 주도한 원희룡 지사가 퇴진할 때까지 앞장서서 투쟁할 것으로 전조직적으로 결의하겠다”고 말했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도 “건강보험 체계가 허물어지려 하는 현 상활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의료연대본부를 중심으로 21만 전 조직이 영리병원 개원을 철회하게 하는 투쟁에 돌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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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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