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라는 폭주기관차
지난 12월 3일 마포 아현재건축구역 철거민 박준경(만37세) 씨가 한강에 투신하여 12월 4일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박준경 씨의 유서에는 ‘마포구 아현동에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지난 9월의 강제집행 이후 3개월 이상을 거주할 곳이 없어서 개발지구 내 빈집을 전전하며 생활을 해 왔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지난 11월 30일 마지막으로 기거하던 공간마저 강제 집행된 후 38시간을 거리를 전전하며 추위에 떨다 결국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18년 7월 27일 박준경의 집이 철거되고 있다
이런 사건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10월 30일 아현동에서는 강제집행이 오후 4시부터 시작되었다. 120여 명의 용역반이 집을 에워싸며 지붕 위를 넘어 문을 뜯고 집으로 진입하였고, 집주인을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차단한 채 강제 집행을 했다.
11월 1일에도 철거는 이어졌다. 서울시 공문에 따르면 강제집행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이었으나, 오후 2시부터 집행이 되었다. 이날 백 명이 넘는 용역반이 아현동 철거민 집을 에워쌌다. 일부 용역반은 주변 옥상을 타고 넘어 진입하다 옥상에 있던 60대 철거민을 밀쳐 다치게 했다. 그리고 건물 옥상과 같은 건물 1층에서 소화기를 사람을 향해 난사했다. 그 집안에는 90세가 다 되어가는 거동이 힘든 노인이 계셨으며 아들과 철거민 2명이 전부였던 것으로 아현동 철거민은 증언한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현장에 대한 감독과 책임을 집행관이 엄격하게 묻게 되어 있지만 그러하지 못했으며 서울시 담당 공무원과 인권지킴이도 없었다. 용역반을 동원하여 경비업법까지 위반한 사례에 해당되는 것이다. 여러 차례 지적되었지만, 한국의 도시 개발사의 치부라 할 수 있는 용역 폭력은 멈추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철거민 박준경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도정법’으로 불리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문제가 존재한다. 이 법에 따라 재개발구역은 임대주택이나 이주비 제공 등 나름의 세입자 보상대책이 마련된다고 하지만 ‘재건축 세입자’에게는 기반시설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노후 건물을 중심으로 한 민간의 개발사업 성격이다 보니 제대로 된 대책이 전무하다.
세입자들은 사업에 대한 의견과 결정을 제시하거나 참여할 방법이 없기에 많은 세입자가 임대주택 등 주거대책의 대상자가 되지 못하거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주하게 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아현2구역은 조합이 ‘세입자에게 주라’며 1000만원을 전달했고, 이중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00~500만원 만이 세입자에게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300~500만원 가량이 기존 세입자에게 돌아갔는데 그나마 이조차 배려 차원이었다고 전해진다. 도대체 이 돈으로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재건축 결정이 나면 가옥주들은 분쟁의 소지가 있기에 세입자들에 대한 계약기간 연장을 중단한다. 동네에 재건축이 시작되면 덩달아 주변의 전월세 시세가 오르기 때문에 지역생활권 거주를 박탈당하고 철거를 당하는 사람은 더 멀리 외곽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세입자들은 도시의 난민이 되어 부유하듯이 떠돌게 되는 원인이 된다.
더 큰 문제는 도시정비사업 자체가 ‘공공성’에 목적을 두고 있지만 ‘강제수용권’을 보장하고 있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도정법의 매도청구제도는 헌법이 정한 위와 같은 한계를 벗어난 강제수용법이라는 지적이 있어 왔지만 철거의 성과에 급급한 용역반들은 사람을 끌어내거나 밀쳐내고 욕을 하는 등 폭력을 사용했다. 이렇게 가리지 않고 시행되는 도시공간의 개발과정은 고도의 상품화 과정을 거치며 이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끔찍한 철거현장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도 마찬가지 였다. 전국철거민연합 김소연 씨에게 걸려온 기자의 전화를 무심코 엿듣게 되었다. 내게도 걸려온 내용은 이랬다. 그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왜 그 나이 먹도록 집 없이 떠돌았는지, 가족과 친구와 이웃은 그가 죽기까지 눈치 채지 못했는지, 장례식은 언제인지……. 역설이지만, 이렇게 철거민은 누군가 죽어야지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다. 그 관심이란 것도 대부분 ‘동정’에 가려져 좀 더 구조적인 문제는 비정한 사회 탓으로 돌려지거나, 신파적 결론을 끝으로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우리는 이미 박준경 열사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11월 6일 기자회견을 진행하였고, 경찰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경찰의 엄중한 대처가 있었다면 아현동 철거민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마포구청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서울시 박원순 시장도 영안실을 방문해 조의를 표했다. 왜 결국 누군가 희생을 당하고서야 뒤늦게 수습하려 드는가? “다 필요 없다”라는 유가족의 절규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이 대목에서 10여 년 전 용산에서 벌어진 철거민 학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철거민 박준경 씨는 유서의 끝에 자기 어머니는 임대아파트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정부는 일 년 전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공공주택 백만 호를 약속했고, 수많은 주거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고시원 화재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 주거취약 계층은 정책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변함없이 가난한 많은 이들이 죽고 있지 않은가? 막다른 골목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박준경의 죽음 또한 국가에 책임을 묻는 게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이번 2018년 민중대회를 통해 ‘빈민해방실천연대’는 다음과 같이 주거권을 주장했다. “공공임대주택 확충, 전월세 상한제 도입, 강제퇴거 금지법 제정, 강제철거 중단, 선대책 순환식 개발 시행” 상대적 박탈이나 상대적 소득 하락에 빠지지 않으려면 폭주하는 기차에 누구나 올라타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다시 한 번 음미해볼 일이다. 지금도 마포 아현 재건축구역에는 경축이라는 현수막이 겨울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모두들 떠난 집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지친 몸을 뉘였을 박준경, 그마저도 헐리고 마지막 유서를 남긴 한 철거민의 죽음에 모두들 귀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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