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의 다양성은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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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8일 10: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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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6일 한국에선 ‘새 진보운동 준비모임의 발족식’이 있었다. 반갑게도 진보신당 혹은 좌파신당의 창당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나아갈 길에 있어 착안해야 하고, 또 논의해야 할 지점들이 있기에, 그에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고자 독일의 사례를 전하고자 한다.

    2009년 총선을 앞두고 독일에선 현재 연방주의회 선거들이 벌어지고 있다. 27일에는 헤센주와 니더작센주에서 주의회 선거가 실시되며, 이어 2월 24일에는 함부르크에서 그에 준하는 시참사회 선거가 실시된다. 올해 그말고도 여러 차례의 주의회 선거들이 실시되기 때문에 2008년은 가히 ‘선거의 해’라고 부를만 하다. 그리고 그 결과들이 내년 총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좌파 정당 때문에 흥미로워진 독일 선거

    그런데 이번 선거들이 참으로 흥미로워진 것은 바로 ‘좌파 정당’ 때문이다. 동독 지역에 근거를 두었던 ‘민사당’과 서독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던 ‘선거대안’이 합쳐져 만들어진 ‘좌파정당’의 선전 여부에 따라 주의회들의 정치 지형이 확 바꿔지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만약 헤센주에서 ‘좌파정당’이 5%의 저지선을 통과할 경우 지난 2003년 선거에서 사상 최대치인 48%가 넘는 득표율을 획득해 단독정부를 구성했던 기민련은 정권을 내놓아야 한다.

    물론 연정형태를 둘러싼 가능 조합수들이 다양하게 펼쳐지는데,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파진영에 속하는 기민련과 자민련이 공공연히 유권자들에게 막아달라고 호소를 할 정도로 좌파블륵의 강세 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좌파블록이라 하면 사민당, 녹색당, 좌파정당 등의 세 정당을 말한다.

    이러한 좌파세의 강세는 통합 좌파정당의 출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지점이다. 일단은 사민당이 우향우의 행보를 하면서 지지층이 심하게 이반되며 지지율을 너무도 많이 까먹었기 때문이고, 또 녹색당의 특성상 녹색당만으로는 그것들을 만회하기 힘든 까닭이다.

    사민당이 새로 채택한 함부르크 강령, 그리고 현재 중앙 정계 대연정 내에서 최저임금제의 도입을 둘러싼 대립각 등에서 드러나듯 좌향좌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지만, 사민당이 독자적으로 이전과 같은 좌파세를 구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히나 착안해 봐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회적 분화현상이다. 이는 슈뢰더 정부시절 사민당의 우향우 경향 탓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예를 들어 재통일 이후의 상황, 신자유주의의 확대와 그 영향, 유럽연합의 확대와 그 영향 등을 다각도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 분화

    그와 같은 사회의 분화현상을 고려한다면, 독일의 좌파들은 유권자들이 가진 선택의 기회와 폭을 넓혀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바로 여기에서 좌파정당이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 좌파정당이 처음 출현할 당시 일각에선 그것이 좌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기도 했다. 물론 이는 사민당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렇다. 그러나 좌파는 사만당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좌파정당의 출현으로 오히려 최소한 지역에서는 ‘꼴아박을 대로 꼴아박은’ 사민당이 득을 보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우파측이 좌파블록을 우려할 정도로 좌파세의 확대현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진행형인데 만약 이것이 공고화된다면 독일의 정치지형은 연합과 사민당 양당을 중심으로 하는 구도가 더이상 아니라 우파와 좌파구도로 나가게 되며, 연정형태의 다양성을 가지면서도 좌파가 전체적으로는 우위를 점하는 구도로 나가게 된다.

    이러한 동반상승 효과와 함께 또한 전국 규모에서 좌파성향을 가진 정당들이 3개나 됨으로 해서 또다른 긍정적 효과들도 만들어진다. 좌파정당의 출현이 사민당의 좌향좌를 촉발했듯이 한편에선 좌파세를 유지하면서 상호 경쟁을 통한 발전을 도모하게 되고, 그와 함께 정당별 특성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곧 각 정당들이 부단한 자기 혁신을 하며, 자신들의 강령에 맞게 정책들을 개발하게 되고, 또 지역적으로 각 지역별 특성과 사정에 맞게끔 맞추어 나가게 된다. 기실 특히 사민당의 경우 ‘늙은’ 사민당이 된 지가 오래였다. 그러나 이제 독일 정치판이 보다 신선해진 것이며, 이 바람이 앞으로도 더욱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을 떠나 시민들이 정치에서 더많은 선택의 기회와 폭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입각해서 봤을 때 그 자체로 이미 지극히 긍정적이다. 특히 관심사를 비롯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대립되고 중첩되는 사회의 분화가 가속화된, 또 그것이 더욱더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 현재에선 더욱더 그러하다.

    진보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일의 현 정치상황은 한국에다 무엇을 말해 주는가? 특히 이제 새로운 발돋움을 하려는 진보신당 혹은 좌파신당에게 무엇을 시사해 주는가? 바로 진보의 다양성, 좌파의 다양성을 확보해 나가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진보의 길은 그 자체로 하나가 아니다. 게다가 현재와 같이 사회가 첨예하게 분화되어 나가는 형국에선 더더구나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가지고 본다면, 장기적인 전망에서 한국의 좌파진영은 다양한 색채의 정당들을 선보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는 장기적인 전망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현재의 경우 그 처지와 사정상 하나의 좌파정당이라도 세우기가 너무도 힘든 까닭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면 ‘일단’ 진보신당 혹은 좌파정당이 나아갈 길, 혹은 취할 형태는 ‘좌파연합당’이다.

    좌파적 가치들에 있어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가지는, 그러나 각 정당(정파)들이 각자의 지향과 강점을 특화시켜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그러면서 지역별 특성에 맞게 맞추어 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녹색운동이 강하거나 필요한 지역, 농촌지역, 도시지역 등에도 맞출 수 있어야 하며, 또 첨예한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문제 등도 특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의 보수 기성 정당들은 지역감정들을 부추기면서 의석따먹기를 한 것처럼 지역주의를 나쁜 방향에서 이용하고 있다. 또한 지역 부처들간에도 첨예한 이기주의적 대립들이 자행되고 있다. 향토애가 기본적으로 나쁜 것은 아닌데, 오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향토애를 긍정적으로 살리면서, 그것이 공존과 공영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안을 만들고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지역으로 들어가고, 지역에 맞는 사업들을 펼칠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구체성 속에서 또 공존과 공영을 위한 연대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구호는 폭력일 따름이다

    이제 하나의 구호 아래 모이자고 외칠 시기는 지났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폭력이다. 이제 이러한 도그마적 접근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하며,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민심에 담긴 민들의 욕구와 바램, 희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에 맞게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그것도 구체적으로 그렇게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좌파의 길이다. 우리는 진짜의 ‘민생’을 그리고 생생한 ‘코뮌’을 이야기하자.

    또한 이것이 바로 보다 현실적으로 통일운동을 펼치고, 또 통일을 준비해 나가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경험들을, 대안들을 모아야 한다. 그것도 진짜의 민생정치 속에서, 그리고 생생한 현장정치 속에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한 준비도 없이 어떻게 ‘너무도 낯선 세계’를 받아 안으려 하며, 너무도 낯선 세계랑 같이 가고자 하는가. 한국의 방방곡곡에서 살만하다는 소리들이 나올 때, 우리는 우리의 공존과 공영의 정치의 폭을 자연스럽게 넓혀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한국판 스킨헤드들의 출현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하튼 이제 좌파는 다양성의 시대에 발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것이 어떻게 한국의 정치지형과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연구는 물론 내 몫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에 착안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이 글에서처럼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비록 조야하나마 이야기 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좌파연합당에 관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면 독일 보다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 착안해 봐야 한다. 이것은 그 나라들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몫으로, 또 그 나라를 연구하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자기가 거하는 곳에서 자기 자리를 지켜주는 것, 그것도 지극히 좌파적인 모습이다.

    한국 진보신당 창당의 물꼬가 확실히 트이기를 고대하며, 독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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