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수영장의 건립과 변천과정
[근현대 동아시아 도시이야기]서울의 호텔 이야기③
    2018년 12월 06일 09: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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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면 호텔은 야외수영장에 얼음을 채워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사계절 온수풀을 자랑하며 추위에도 변함없는 수영을 제안하며 투숙객들을 유혹한다. 최근에는 동네 곳곳에 많은 수영장들이 있어 겨울철 수영이 특별이 언급해야할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겨울철에 수영을 한다는 것은 추위와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극기훈련’에 가까웠다.

그랜드하얏트호텔 서울 스케이트장

현대적 의미에서의 수영이 시작된 것은 군인들의 훈련수단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까지의 수영은 미역을 감거나 개헤엄을 치는 등의 유영(遊泳)을 즐겼다고 한다면 1898년 5월 14일 무관학교 칙령을 통해 여름 휴가 시기 유영 연습을 명한 것은 근대적 수영 영법이 학습되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는 강가나 바닷가의 임시로 만든 수영장에서 연습을 하였는데, 서울에서는 마포와 용산의 한강변이 수영 연습장소로 활용되었다.

수영장의 건립

1929년 5월 경성제국대학교에 인공적으로 물을 가두어 만든 수영장이 개장하였다. 경성제국대학교 학우회에서 6,000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길이 25m, 폭 13m의 수영장에서는 8월 25일 제1회 중등학교 수영경기대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그 뒤를 이어 1931년 용산중학교와 경성사범학교, 1932년 경성중학교에 수영장이 만들어졌다.

경성중학교 운동장 수영장(서울역사박물관 소장)

1934년에는 경성운동장에 길이 50m, 폭 20m 국제규격의 수영장이 개장하였다. 길이 20m, 폭 18m의 다이빙 풀, 길이 25m, 폭 20m의 아동용 풀 1개 등을 설치되었다. 월요일을 여자 전용일로 운영하여 남자의 입장을 금지하였다. 경성운동장 수영장은 개장되자마자 수많은 인파로 들끓어서 수영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거대한 목욕탕과 같았다고 한다.

경성운동장 수영장(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최초의 실내수영장, 워커힐호텔 수영장

최초의 실내수영장은 YMCA회관 내에 만들어질 계획이었다. 1959년부터 계획되어 1962년 5월에 착공되었으나 사업비 등의 이유로 1967년 3월 10일이 되어서야 개장하였다. 그 사이 워커힐호텔의 수영장이 먼저 만들어졌는데, 실내 수영장은 길이 23m 폭 7m, 연중 수온 24도를 유지하는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다. 1963년 2월 1일부터 우수한 수영선수들에게 개방해 수영 할 수 있게 하였는데,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동계에 수영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박태환 선수를 발굴한 김봉조 감독도 선수시설 이곳에서 동계훈련을 하였고, 4개월 뒤에 진행된 시합에서 본인이 수립한 자유형 400m 한국 신기록을 12초 단축하기도 하였다. 이곳은 겨울철 영하의 날씨 속에도 실내온도 34도, 수온 27도를 유지하여 ‘혹한의 망각지대’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매년 여름방학 중에 실시되던 초등학교 교사들의 수상안전강습회가 겨울방학 기간에 개최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68년 12월 14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결혼식이 열리기도 하였다. 신랑과 신부는 이곳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다가 사귀게 되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언론이 전한 결혼식 장면을 소개하면, 신랑, 신부는 물론 주례까지 잠수장비를 갖추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신부는 비닐면사포를 썼으며, 붉고 푸른 조명이 물속을 수놓았는데, 하객들을 물 밖에서 가끔씩 올라오는 거품만을 볼 수 있었다.

워커힐호텔 수영장은 실내수영장과 실외수영장이 각각 입장료를 받았으며, 부속시설로 모터보트 10여대가 있어 수상스키를 즐길 수도 있었다. 어린이 놀이터도 있어 목마 등 7가지 놀이기구가 있었다. 시민들의 이용편의를 위해 반도호텔 앞에서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버스가 운행되기도 하였다.

워커힐호텔 실내수영장(국가기록원, 1963)

워커힐호텔 실외수영장(국가기록원, 1976)

워커힐호텔 수영장 광고(1971)

실외수영장 전성시대

메트로호텔은 우이동에 위치한 그린파크호텔에 2천명 이상을 수영할 수 있는 야외수영장을 조성하였다. 1968년 6월 문을 연 이곳은 길이 50m 정규 풀과 다이빙 풀, 어린이 풀과 미끄럼틀을 갖추고 있었는데, 한 달 간 약 2만여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1969년에는 방문객이 더욱 늘어 1일 수용능력을 훨씬 넘긴 6천여 명이 일시에 방문하기도 하는 등 성황을 이루기도 하였다. 그린파크호텔 수영장은 입장료만 내면 의자, 돗자리 등 부대시설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으나 하이슬라이더는 한번에 20원씩 별도로 돈을 받았다. 투숙객들에게는 50%의 할인을 해주었는데, 도시락을 싸서 온 가족동반의 손님이 많았다.

그린파크호텔 수영장(국가기록원, 1973)

그린파크호텔 수영장 광고(1968)

1971년에는 타워호텔의 야외수영장이 문을 열었다. 국제규격보다 긴 77m의 길이에 폭 22m, 어린이용 풀을 별도로 갖추고 있었으며 높이 8m 길이 20m의 미끄럼틀도 있었다. 다른 호텔들에 비해 위치가 가까운 타워호텔 야외수영장은 인기가 많았다. 1974년 8월 11일에는 오전 11시쯤 입장객이 정원인 540명을 넘어섰으며, 오후 2시에는 4천여 명이나 입장하여 초만원을 이루어 수영장의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타워호텔 수영장(국가기록원, 1975)

타워호텔 수영장 광고(1974)

호텔수영장에 이용객이 만원이었던 이유는 한강이 오염되고, 익사자가 늘어나 수영이 금지되는 구역과 기간이 계속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1971년 7월에도 대장균이 들끓어 한강에서의 수영이 금지되었다. 서울시내 수영장은 시립과 사립, 호텔 수영장을 모두 합쳐도 20개 밖에 되지 않아 수영장에는 방학 중인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신문기사에는 서울시내 풀장에 약 2억 원의 돈이 몰려들고 식비와 교통비 등을 더하면 4억 원의 돈이 거래되고 있다고 적고 있다.

1975년 요금을 살펴보면 이 세 호텔은 모두 어른 7백 원, 어린이 5백 원이었다. 당시 서울운동장 수영장은 어른 1백 원, 어린이 50원이었으며, 어린이대공원 수영장은 어른 3백 원, 어린이 2백 원이었고, YMCA 수영장은 어른 4백 원, 어린이 3백 원이었다. 이를 비교하면, 호텔 수영장은 서울운동장 수영장에 비해서는 7~10배, 다른 수영장과 비교해서는 2배 가량 비싼 요금이었는데,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150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다소 비싼 편이었다.

투숙객을 위한 공간

1970년 긴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연 조선호텔에도 야외수영장이 있었다. 이 수영장은 위의 다른 호텔 수영장과 달리 수영장 내에 3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규모였다. 주로 호텔에 묵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았다. 1974년 11월 한국을 찾은 미국 포드 대통령의 투숙을 기념하여 ‘제럴드 포드관’으로 이름 붙여지기도 한 이곳은 일일 이용객들이 아닌 투숙객을 위한 공간이었으며, 도심 속 휴가를 상징하는 호텔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요금도 가장 비쌌는데, 1975년을 기준으로 평일 1천 원, 공휴일 1천5백 원을 받았다.

조선호텔 실외수영장(웨스틴조선호텔)

이후 새로 지어지는 호텔들의 수영장은 점차 투숙객들, 그리고 호텔 스포츠클럽 유료회원들에게 개방하는 공간으로만 활용되었고, 여름철 일일 이용객들은 늘어난 공사립 수영장들과 서울 근교의 대규모 위락시설들이 나누어 담당하게 되었다.

필자소개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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