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는 이제부터 시작!
    [그림책 이야기]『오싹오싹 팬티』(에런 레이놀즈. 피터 브라운/ 토토북)
        2018년 12월 05일 10: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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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그림의 시대

    그림은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 했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선사시대 유적에도 동굴벽화 같은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글이 만들어지자 그림책이 만들어집니다. 그림이라는 표현 수단에 글이 첨가된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글이 아니라 그림이 본능적이고 기본적이고 인각적인 표현 수단이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역사시대, 즉 권력과 문자의 만남은 글과 그림의 관계를 역전시키게 됩니다. 문자를 소유한 권력이 또 하나의 계급을 만듭니다. 바로 문맹입니다. 권력자들이 쉽고 편리한 그림이 아니라 어렵고 불편한 글로 통치하고 정보를 독점하는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글을 먼저 쓰고 그림은 옵션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책 덕후의 눈으로 보면, 이후 인간의 역사는 문자로 상징되는 권력의 시대에서 그림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시대로 다시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책이 그림책이 되고 만화와 영화와 그래픽노블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입니다.

    공포의 초록 팬티

    꼬마 토끼 재스퍼는 새 팬티가 필요합니다. 어린이들은 금방 쑥쑥 자라니까요. 엄마는 재스퍼와 함께 속옷가게로 갑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한 흰 팬티 세 개를 집어 듭니다. 하지만 계산대로 가는 길에 재스퍼는 아주 기막힌 팬티를 발견합니다. 바로 공포의 초록 팬티입니다. 아마도 공포의 초록 팬티는 새로 나온 상품인 모양입니다. 한쪽 벽면에 아주 크고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광고에 따르면, 초록 팬티는 소름끼치게 으스스하고 무시무시하게 편안하다고 합니다.

    재스퍼는 엄마에게 ‘공포의 초록 팬티’를 사달라고 조릅니다. 엄마는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 초록 팬티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꼬마 재스퍼는 자기도 이제 다 큰 어른이라며 고집을 부립니다. 하는 수없이 엄마는 재스퍼에게 ‘공포의 초록 팬티’를 사주고 맙니다.

    공포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날 밤 꼬마 재스퍼는 멋진 새 초록 팬티를 입고 잠자리에 듭니다. 아빠는 재스퍼를 위해 복도에 불을 켜놓을지 묻습니다. 하지만 재스퍼는 자기도 이제 아가가 아니라 다 큰 어른이라고 대답합니다. 아빠는 조용히 방문을 닫습니다.

    바로 그때, 재스퍼는 뭔가 이상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재스퍼는 이불을 젖히고 팬티를 봅니다. 세상에! 팬티가 저절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마치 유령처럼 아주 으스스한 초록빛으로 말입니다. 재스퍼는 눈을 꼭 감아보고, 이불을 뒤집어써보고, 베개로 얼굴을 덮어도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으스스한 초록빛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결국 재스퍼는 초록 팬티를 세탁바구니 맨 아래에 넣고 평범한 흰 팬티를 입습니다. 그제야 재스퍼는 잠이 듭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재스퍼는 깜짝 놀라고 맙니다. 분명 어젯밤 초록 팬티를 세탁 바구니에 넣고 흰 팬티로 갈아입었는데, 자신이 여전히 초록 팬티를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맙소사!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코믹 호러 그림책

    그림책 『오싹오싹 팬티』의 장르를 굳이 나눠보자면 코믹 호러 그림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이 다 같은 그림책이지 왜 굳이 장르를 나눠 보느냐고요? 그림책이 다 같은 그림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은 어린이 책이라는 편견에 갇혀 예술이 아닌 교과서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림책이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책이라면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독자로서 존중하는 예술작품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독자를 존중한다는 뜻은 작가가 만든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독자를 작가 스스로 섬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가가 독자를 섬기는 방식이 바로 장르입니다. 작가는 독자를 섬기기 위해, 즉 독자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상상력과 기술을 동원합니다. 신비한 환상의 세계, 알쏭달쏭 수수께끼, 오싹오싹한 공포, 새콤달콤한 사랑, 배꼽 잡는 유머, 참을 수 없는 눈물, 속 시원한 영웅 이야기 등이지요. 이러한 상상과 기술은 그대로 예술의 장르를 만들어냅니다. 바로 판타지, 미스터리, 호러, 로맨스, 코미디, 트래지디, 히어로 등의 장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 드라마는 성인들조차도 호불호가 갈리는 장르입니다. 게다가 그림책은 어린이 책이라는 편견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그림책에 공포 드라마를 접목시킨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모험입니다.

    그런데 에런 레이놀즈와 피터 브라운은 공포 드라마와 그림책을 아주 기발하고 성공적으로 결합시켰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두 사람이 공포 드라마를 흥미진진한 그림책으로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유머와 우화입니다. 유머와 우화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술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소설과 영화가 장르 드라마를 통해 세계인의 마음을 훔친 것처럼 그림책 역시 다양한 장르 드라마를 통해 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훌륭한 장르 그림책이 있습니다. 바로 코믹 호러 그림책 『오싹오싹 팬티』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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