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스 집권후 팔 지식인들의 딜레마, 그 생생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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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26일 01: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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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아시아> 창간호에는 팔레스타인의 자유기고가 알리 제인(Ali Zein)의 ‘나를 너무 떠밀지 마’라는 글이 실려있다. 이 글은 하마스가 다수당이 된 지난 1월 총선에서 팔레스타인의 지식인이 느낀 딜레마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시아>의 동의를 얻어 원고의 일부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총선 며칠 전, 나는 시내 작은 서점에 신문을 사러 갔다. 내가 서점을 나오려는데 60대 정도로 보이는 키 작은 사내가 들어섰다. 그는 모든 정당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떤 이와 격론을 벌이다 방금 헤어졌건만, 성에 안 차 혼자 반론을 더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당신은 투표하지 않을 건가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할 거요.” 그가 대꾸했다. “누구한테 투표할 건데요?” 나는 또 물었다. “물론 ‘하마스’죠.” “하지만 왜 하마스죠?” 나는 의아했다. 그는 화난 투로 말했다. “다만 샤피에 솔라나(Chaffier Solana)가 싫어서요.”

    이 지역에 파견된 유럽 공사 솔라나는, 만약 하마스가 선거에서 이긴다면 유럽의 경제 원조가 끊길 거라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협한 적이 있다. 나는 서점을 나와 시내 중심가를 걸었다. 선거 포스터가 벽을 온통 채웠다. 나는 커다란 하마스 포스터를 보았는데, 적혀 있는 문구는 이랬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단지 하마스를 떨어뜨리려고 투표했다. 당신은 어느 당에 표를 줄 것인가?” 하마스는 대중을 다루는 법을 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미국의 불공정한 정책에 얼마나 분개하는지 잘 알고 있다. 이 포스터로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난 몇 년 간 어느 모로 보나 하마스가 점점 더 많은 지지를 얻어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도 안다. 아마도 하마스는 의석의 40이나 50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다.

    투표함이 닫힌 지 한 시간 후, 우리 세속적(*secular, ‘종교적’의 반대말이 아니다. 종교와 관계없는, 또는 종교의 사회 지배를 반대하는-역주) 좌파 무리는 한 친구의 집에 모였다. 텔레비전으로 개표 상황을 지켜보려는 모임이었다. 우리 모두는 하마스가 집권당 ‘파타’를 바짝 따라잡으리라고 예상했으나, 누구도 하마스가 이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출구 조사에서는 파타가 6, 7석 앞설 거라고 나왔다. 그러나 두 시간 후 우리는 출구 조사가 거짓이었음을 알게 됐다. 하마스가 132석 중에 74석을 차지했다.

    뭐라고? 누구나 중얼거렸다. 처음 몇 분간 모두들 선거 결과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랍권에서 가장 세속적인 팔레스타인인들이 원리주의 그룹을 당선시켰다!

    이건 과연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경천동지의 놀라운 사건인가? 또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궁지로 밀어붙인 정책의 당연한 결과인가?

    며칠간 나는 왜 일이 이렇게 됐는지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어딜 가나 사람들한테 물었다. 도대체 왜?

    나는 파타 당원인 한 언론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사람들이 파타가 아니라 하마스를 뽑았다고 생각합니까? “단지 모파즈에게 그가 멍청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죠.” 모파즈는 현재 이스라엘 국방장관이며, 과거에도 군부의 실질적 지도자였다. “모파즈?” 나는 물었다. “2002년 그의 군대가 우리 도시를 급습할 때, 그가 한 말을 잊었어요? 자기 작전의 목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의식 자체를 불태워버리는 것이라고 선포했잖아요. 이제 그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걸 깨닫겠죠.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의식은 더 날카로워졌을 뿐이니까.”

    나도 모파즈의 진술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 그가 뜻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자기는 강제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마음을 바꾸어놓고야 말겠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이 주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아야만 한다. 이스라엘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은 절대로 없다. 그가 말한 “자의식을 태운다”는 이런 의미였다.

    그 언론인은 파타가 선거에서 져서 화가 났을지언정, 하마스를 택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항거하고자 했다는 점을 인식할 만한 이성은 있었다. 하마스의 압승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에 찬성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군대에게 도시를 유린당한 후, 사람들은 몹시 지쳤다. 이스라엘 병사들은 집집마다 들이닥쳤고,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집단의 자의식을 태워버리고자 한다면, 각 개인들을 일일이 다 목표로 삼아야만 한다.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극도의 피로감에 빠져 있던 순간에 팔레스타인인들은 마무드 아바스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삼 년이 넘게 관저에 포위당해 있던 아라파트가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은밀히 독살된 직후였다. 아라파트 살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던 미국 대통령 부시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경고하기를, 새 지도자로 ‘좋은’ 사람을 택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에 따른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미국에게 좋은 사람 말이다. 앞에서 이미 얘기했듯이 그때 너무나 지쳐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은 휴식을 원했다. 그래서 아바스를 뽑았다. 최소한 한 번은 조지 부시에게 귀를 기울여보려고 했다.

    일 년 뒤 팔레스타인인들은 ‘좋은 아바스’가 이스라엘인들과 부시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음을 확실히 알았다. 그들이 아바스를 축구공처럼 발로 걷어차 버렸을 뿐이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척 상처받았으며, 지난 선거에서 아바스를 당선시킨 자기들의 결정이 잘못이었다고 느꼈다. 그건 그때 지나치게 피로한 탓이었다. 이번에 하마스에 투표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떨쳐버리고자 했다.

    몇 달 만에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차를 세우고 내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축하해요.” 비꼬는 말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나를 조소하고 있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렸다. 나는 응대했다. “축하?” 그녀는 말했다. “이봐요, 친구. 십 년이나 협상해서 정착촌만 늘었지, 토지 강탈도 늘었지, 우리의 고생도 늘기만 했잖아요. 평화나 협상에 대한 말을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아요. 팔레스타인인들은 다정한 아바스가 뭔가 얻어다 줄 줄 알았지만, 이스라엘인들이 그를 변기에 처넣고 물을 내려버렸죠.”

    이스라엘인들은 평화나 평화를 위한 절차 따위를 얘기하는 사람은 누구나 변기에 처넣고 물을 내려버린다. 절차는 있었지만 평화는 없었다. 최근 이 년 동안에는 절차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하마스를 뽑으면 세계에 충격을 줘서, 고생하는 자기들을 돌아보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동네에서 나는 한 가난한 과부에게 왜 하마스한테 투표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대답했다. “우리는 우리를 보살펴주는 사람들을 뽑지요.” 후에 여동생이 내게 말해주기를, 하마스가 자식 넷 딸린 그 과부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때때로 소액의 생활 보조금을 주고, 고기와 설탕, 쌀을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인구 절반 이상의 소득 수준이 최저 생계비를 밑도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에서는, 이런 소소한 도움이 감동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마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왔다. 그들은 ‘자카’라는, 자발적으로 내는 일종의 종교세를 걷어 빈곤층을 보살폈다. “선거 날 사람들은 자신들을 돌보았던 이들을 돌보았던 거죠.” 여동생이 말했다.

    거리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다. 내가 묻기도 전에 그가 묻기 시작했다. “누구 찍었어요?” 나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알바딜, 당신은요?” 알바딜은 좌파 정당 사람이다. 그는 말했다. “내 콧구멍을 틀어막고 파타를 찍었건만, 그들이 지고 말았네요.” 코를 막았다는 건 그가 파타 당의 악취 진동하는 부패를 잠시 잊어주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그와 헤어진 후 나는 작은 정당에 표를 주지 말았어야 했나 회의가 들었다. 어쩌면 나도 콧구멍을 틀어막고 파타를 찍는 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마스의 승리가 나는 전혀 기쁘지 않다. 세속적인 사람으로서 나는 내 자유가 굉장히 염려된다. 내가 어떻게 먹고, 입고, 무엇을 읽을지 참견하는 그 누구한테도 통치받고 싶지 않다. 나는 합법적인 수단으로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나를 진정 화나게 하는 건, 전 세계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우리 동포들을 벌주려고 열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사십 년이나 우리의 등덜미에 올라타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그만 내려오라고, 그리고 우리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전 세계가 부시의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인정해야만 한다!”라는 어리석은 말만 따라하고 있다.

    고상한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을 인정했다. 아바스 역시 이스라엘을 인정했다.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도 이스라엘을 인정해왔다. 그래서 무슨 진전이 있었나? 전혀 아무것도. 이스라엘은 우리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한 시도 쉬지 않고 점령과 억압을 늘려오기만 했다. (이하생략)

    *전문은 계간 <아시아> 창간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알리 제인_올해 42살의 자유기고가. 팔레스타인의 일간지들을 비롯하여 베이루트 등 아랍 여러 지역의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1차 인티파다(봉기)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나를 너무 밀지 마’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집권하게 된 과정과 의미,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식인의 내면풍경을 그린 촌철살인의 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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