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의 주말밥상
[밥하는 노동의 기록] '어쩌다 보니'
    2018년 12월 04일 10: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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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돈 버는 일을 시작했다. 하여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집 근처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는 중이다. 일을 그만두기 전과 동일한 형태의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임에도 15년 경력단절녀의 이력서를 들여다 본 원장님은 미안해하며 ‘모든 것이 너무나 많이 바뀌어 지난 경력을 인정해드리기 어렵다’고 하셨다.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바로 당연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면접이 끝나갈 즈음 여성 조합원 한 명이 내게 “어떻게 15년이나 일을 쉬실 수 있었어요?”라 물었다.

입덧 때문에 사직할 때 나는 세는 나이로 스물 일곱, 보육교사의 급여는 포기라 말하기도 무색하게 적었고 경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나는 애 낳고 석 달만 지나면 육아협동조합의 조합원이자 교사로서 아이와 함께 출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말 믿어 의심치 않았다.

8월에 태어난 아이가 백일이 되었을 때는 마침 수능 날이었다. 찌뿌둥하게 추운 겨울 하늘과 누워 버둥대는 아이를 번갈아보다 쟤가 돌은 되어야 일을 시작하겠구나 싶었다. 그 ‘쟤가 돌이 되’자 둘째가 들어섰고 나는 또 ‘얘가 돌은 되어야 일을 하겠구나.’했다. 무상교육은 흰소리 취급받을 때라 무상보육은 세상에 없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아이 둘의 보육비용과 나의 급여를 저울질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아이가 클수록 보육비용이 내려가니 나는 아이가 크기를 기다리며 키웠다. 그러나 키워도 키워도 아이는 크지 않았다. 걷기만 하면, 기저귀만 떼면, 말이라도 하면, 유치원에 가면, 혼자 전화라도 걸 수 있게 되면, 둘째가 초등학교라도 가면, 알아서 밥을 차려 먹게 되면… ‘컸다’라 말할 수 있는 시기는 오지 않았다.

나는 농으로 “불과 칼을 쓸 수 있어야 다 큰 거지.”라 말하고 다녔다. 아이들을 보면 모자란 것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정말 더럽게 안 컸다. 가끔 누군가 아이들의 나이를 물어보고는 “아유, 다 키웠네.”하면 “낳아놓으면 다 키웠다는 건 없어요.” 딱 잘라 말했다. 그러나 ‘둘째가 중학교라도 가면’이라는 생각을 하던 날, 이거 저거 따지다간 영영 집을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싶어 그제야 마음이 급해졌다. 내 마음은 급해도 내 행동은 급하지 않았으며 세상은 더 급하지 않았으니 일 년쯤 지나서야 그나마 몇 가지 혼자 정한 조건 중 ‘집에서 가까워야한다’를 충족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간단히 몇 문장으로 정리해 답하자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이해한다. 나도 그렇게 살 줄은 몰랐으며 살아보지 못한 삶을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서 그냥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살았네요.” 얼버무렸다.

15년의 삶을 ‘어쩌다 보니’ 다섯 글자 안에 우겨놓으니 참 보잘 것 없지만 사실 오십, 오백 글자로 푼대도 대단해질 것 같지 않다. 15년 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하나하나 주워섬기는 것은 무용한 일이다. 다만 나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산’ 이유에 대해서는 보잘 것 없고 싶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와 창문 너머를 번갈아 바라보다 결국 집에 머물기로 결정하는 양육자들의 그 ‘어쩌다 보니’의 무거움을 안다. 나름의 대차대조표를 머리에 수십 수백 번 그려보다 하는 그 모든 선택들을 지지한다. 결국 들을 말은 ‘집에서 놀아’, ‘시간 많으시잖아요’ 정도가 될 것이 뻔한 이른바 ‘전업맘’도 넋 놓고 앉아있다 떠밀려 온 선택지가 아니다. 모두의 선택은 무게가 모두 같다. 이런 말을 조리 있게 할 수 없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살았다’라고 말하고 말았지만. 이 글도 조리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먹이고 키우고 돈 버는 일을 하루에 다 우겨넣고 하다보면 삶의 조리라는 것은 찾을 수 없게 된다.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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