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천복원 정치적 유행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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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26일 10: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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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5일 오전 11시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동 한국아파트와 대동아파트 사이 굴포천에서는 공사 중인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고 계단식 수로로 물이 콸콸 흘러내렸다. 굴포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해 일명 ‘샘터’공사를 하고, 약 한 시간 동안 실험통수를 했다.

    지방선거가 아니었다면 제법 거창하게 준공식과 통수식을 했겠지만 이날은 정치인들의 인사말 없이 인천시 일부 관계자와 ‘굴포천살리기시민모임’(상임대표 신종철 신성교회 담임목사) 회원들과 인근주민들만이 박수를 치며 물이 솟아나는 것을 지켜봤다.

    이날 ‘시민모임’은 조촐한 물맞이 행사를 하면서 굴포천 복원에 남는 과제와 교훈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유행이 된 하천복원, 정치인들의 표밭?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복원이 아니라 거대한 인공어항을 하나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서울의 청계천 복원 이후 주요 대도시에서는 ‘하천복원사업’이 유행병처럼 추진되고 있다.

    오염된 도심 하천의 악취와 모기 등 해충문제 해결과 친수, 휴식공간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염원을 해결하는 것이 각종선거에 득표와 직결되는데다 자연형 하천 조성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은 21세기형 개발 사업이라는 말까지 듣는 일이니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호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굴포천을 모니터하고 있는 인천하천지기들
     

    하천 주변에 집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서는 집 앞을 흐르는 하천이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되면 집값까지 뛰니 반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치인들이 이를 제일 먼저 파악한 것이다.

    굴포천 자연형 하천 조성공사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환경부에서 매월 전국 하천 600지점의 수실조사에 따르면 굴포천은 BOD(생물학적 산소 요구량) 기준으로 전국 최악의 오염상황을 보이고 있는 하천이다.

    상류구간이 부평 4공단을 통과하는데다 주변에 평수가 넓지 않은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서 각종 공업용 폐수와 생활하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게다가 부평일대 구간 구간을 흐르는 굴포천 상류와 지류들을 10여년 전에 복개해 중상류지역의 오염과 악취는 더욱 심각하다.

    당연히 복개되지 않은 굴포천 지방2급 하천구간(하천을 관리하는 행정관청에 따라 국가하천, 지방1, 2급 하천, 소하천으로 분류한다. 국가하천은 중앙정부가, 지방 1, 2급 하천은 광역자치단체가 소하천은 기초단체가 관리한다.) 인근지역 주민들에게는 굴포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는 일이 숙원 중에 숙원이었고 지난 2000년 6월부터 ‘시민모임’이 구성돼 각종 활동을 펼쳐왔다.

    한편 인천광역시는 2003년 굴포천을 포함한 인천지역의 5개 지방2급 하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하겠다고 전격 발표했으며, 그해 국회에서는 추경예산으로 굴포천 자연형 하천 조성을 위한 기초설계비가 편성됐다.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주민공청회와 20여 차례에 걸친 간담회를 통해 최종설계를 확정짓고 공사에 착공한 것이다. 이미 ‘시민모임’이 구성돼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의견수렴과 관련 공무원과 시민들에 대한 교육이나 견학도 상당히 많이 진행됐다. 다른 곳에 비해 매우 긍정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과제와 문제점을 앉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5일 실험통수에 즈음한 ‘시민모임’의 행사에서는 여전히 남는 과제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었다.

    상류는 하수도, 하류는 ‘자연형 하천’의 모순

    이날 시민모임 신종철 상임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굴포천 자연형 하천복원은 시민들의 힘으로 만든 것이라며 “매일같이 악취와 모기에 시달리는 굴포천 인근 주민들의 고통이 만든 힘”이라고 평가했다. 신 대표는 이어 “그러나 한번 파괴한 자연은 인간이 아무리 복원하려해도 흉터처럼 흔적을 남긴다”며 하수구로 전락돼 있는 굴포천 상류와 각 지류의 상류구간을 복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줌 흙만 있어도 각종 식물이 자라고 곤충이 사는 등 먹이사슬이 형성된다. 굴포천에 풀벌레를 관찰하러 나온 아이들
     

    하천은 복개 한 이후에는 행정관청에서도 도로 하수과에서 관리하게 된다. 실제로 복개가 되지 않은 구간에서는 엽새우, 플라나리아, 가재 등 1급수 수서생물들이 서식하는 맑은 물이 흐르다가 복개구간을 통과하고 나면 시커먼 물이 악취를 풍기며 흘러나온다.

    더구나 공단지역의 각종 폐수는 최소 2급수 이상으로 정화시키도록 법적으로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깨끗하게 처리한 물을 더러운 생활하수가 흐르는 하천에 그대로 방류된다. 이 같은 문제가 비 오는 날 정화시키지 않은 물을 몰래 방류하는 악덕업체를 양산해 내는 것이다.

    갈산1동의 한 주민은 “상류의 복개구간을 걷어내지 않으면 비 오는 날 몰래 버리는 공장폐수를 단속할 수 없는데 그 물로 인해 하류에 복원된 하천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할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신 대표는 또 복개구간을 흘러나온 오염된 물을 지하에 매설된 차집관을 통해 하류의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고, 자연형 하천구간에는 한강에서 끌어온 물을 흘려보내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원래 하천을 흐르던 물은 오염된 그대로 하수구로 보내고 한강 물을 끌어다 하천으로 흘려보내고 있어 지하로는 하수구 지상으로는 한강 물이 흐르는 셈이다. 도심하천의 대부분이 이 같은 방식으로 복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이 제대로 된 진정한 복원인지 되짚어 봐야한다.

    한쪽에서는 하천 복원, 다른 쪽은 여전히 복개

    ‘시민모임’은 이날 성명을 통해서 한쪽에서는 하천을 복원한다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하천 복개나 직강하천(구불구불한 자연적 모습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든 직선형의 강)을 만들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행정을 비판했다.

    굴포천을 자연형 하천 조성공사를 하는 등 5개 하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기 위한 논의를 하는 이 순간에도 인천광역시는 남구 학익천을 복개하고 있다. 도로확장을 위해 검단의 나진포천 일부 상류구간도 복개공사를 하고 있다. 나진포천은 주변에 농경지가 많아 백로류의 산란터와 서식지가 있고, 주변에 부들, 큰부들 등 인천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식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어디 인천광역시 뿐인가? 대도시에서는 하천복원 사업이 유행처럼 진행되고, 말로는 사행하천(뱀이 길을 가는 것처럼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하천)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강원도를 비롯한 시골지역 곳곳에서는 ‘홍수방제’라는 이름 하에 직강하천에 시멘트 제방을 쌓는 공사현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전국 최악의 오염하천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굴포천에도 부평구청 앞 습지에는 환경부 보호종인 맹꽁이가 떼 지어 살고 있고 황조롱이 등 천연기념물이 살고 있다. 한줌 흙만 있어도 각종 야생식물이 자라고 그 식물을 먹이로 하여 곤충이 자라고, 각종 새가 나는 등의 먹이사슬을 형성한다. 볼수록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지금 제대로 복원하고 보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들딸들로부터 “우리 부모들이 함부로 사용하고 훼손해 우리가 고통 받고 있다”는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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