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혁명 지속 원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야
    [기고] 12월 15일 집회가 중요하다
        2018년 11월 30일 05: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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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동시간 공약파기

    더민주당은 지금까지 꽤 여러 번 공약을 파기해 왔다. 몇 가지만 언급해 본다. 주52시간 상한을 준수하며 노동시간특례업종을 줄여서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그만큼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약했는데, 탄력근로시간제를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탄력근로시간제를 6개월로 늘리면 과로사의 위험기준을 넘게 되며, 민간 일자리도 만들지 못한다. 공약 파기다. 경제 사정이 악화되어 불가피하다는 변명이다. 전체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탄력적으로 하겠다는 의미여서 공약 파기는 아니라 한다.

    #2 의료영리화반대 공약파기

    의료영리화를 막겠다고도 했다. 원격의료는 의료인 상호간에만 허용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지금 대통령과 민주당은 원격의료를 본격 도입하여 사실상 의료 영리화를 부추기고 있다. 명백한 공약 파기다. 도서벽지나 의료취약지역의 주민들을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런 곳에는 공공보건소나 소규모 의료원을 지원하는 더 좋은 방안이 있는데도 한사코 그 이유로 원격진료를 하겠다고 주장한다. 원격진료가 곧 의료영리화는 아니라는 논리다.

    #3 정치개혁 공약파기, 공약조작 시도

    대통령이 권역별 정당명부비례제를 공약했는데 이것은 원래부터 연동형 비례제를 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단다. 이것은 공약 파기 정도가 아니라 숫제 공약을 조작하는 것이다. 살다 살다 공약 조작이라니.

    이런 식이면 대한민국은 이미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하고 있는 셈이다. 권역별이 아니라 전국형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전국형 정당명부비례대표제도를 권역별로 바꾸겠다는 의미였단다. 이해찬 더민주당 대표의 변명은 변명도 아니다. 이것은 그냥 거짓말이고, 조작이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의 소신도 이해찬 대표에 의해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일 텐데,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던 분으로서 해서는 안될 말이었다.

    연동형 비례제 도입 촉구 야3당 집회와 이에 반대하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박스)

    왜? 자신감과 비전의 부재

    이해찬 대표는 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뜻까지 조작해가며 무리를 할까? 이 대표는 지역구 당선자가 많이 나오면 비례의석을 얻지 못하게 되어 훌륭한 직능대표를 당이 영입할 수 없게 되는 불합리를 이유로 댔다. 훌륭한 직능대표가 진짜 고민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그럼 진짜 고민은 뭔가? 더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한때 대통령 지지율이 80%가 넘었고 더민주당 지지율도 50%를 상회했지만, 지금 대통령지지율은 50% 조금 넘는 정도이고 여당 지지율은 30%대까지 하락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해찬 대표는 지역구 당선자로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정당지지율을 만들 자신감과 비전이 없는 것이다. 자신감 및 비전의 부재가 연동형 제도 공약의 파기로 나타나고 있으며, 박근혜 정부처럼 거듭된 공약 파기의 반복이 도덕적 정당성을 잃게 할 것이기 때문에 공약 파기를 사과하거나 공약 파기 아니라고 강변하는 수세적 전략이 아니라, 우리는 공약대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공세적 억지피우기 모드에 들어간 것이다.

    역사 속 민주당은 항상 어떤 조작의 피해자였으나, 이해찬 대표에 의해 공약을 조작하는 정당으로 새 길을 걷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진심 감탄했다. 이런 수를 부리다니.

    이해찬 대표의 공약조작 시도가 최악의 수인 이유

    이해찬 대표의 고민은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동반하락 하고 있으며, 이것을 뒤집을 묘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지지율 1위의 정당이기 때문에 단순다수대표제 하의 총선이라면 표심을 왜곡하는 현재의 제도로 인해 제1당을 넘어 과반수 정당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대통령에게 좋지 않다. 왜냐하면 정의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이제 문재인 대통령 당신이 말하라고 외칠 것이 뻔하다. 원래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당대표일 때 만든 당론이었고, 그가 후보였던 대선에서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야당들은 당연히 이해찬 대표와의 의미 없는 설전 대신 대통령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대통령의 처지를 군색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하면 민주당에게도 좋지 않다. 당대표는 당원과 지지자에게 당이 자랑스럽게 여겨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부끄럽게 만들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지지 강도에 현격한 차이를 불러온다. 이제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해찬 대표를 따라서 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의 공범이 되든지, 아니면 정치적 대화 적어도 정치개혁이라는 대화소재는 기피해야 한다. 대표님 따라 우리도 철판 깔고 거짓말에 동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민주당원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정치에 대한 회의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 것이고, 보수정당은 회의주의를 정치적 비타민으로 먹고 자란다.

    무엇보다 이렇게 하면 대한민국에 좋지 않다. 오바마가 당선되었을 때 민주당 전략가들은 장기집권을 기대했다고 한다. ‘흑인후보를 내세웠어도 당선되었다’는 것이 그런 전망의 근거였다. 그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무슨 위대한 정치인에게 무너진 것도 아니고 고작 트럼프에게. 그들은 그들의 제도가 항상 양당제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잊었다. 오바마 시대에도 공화당은 항상 제1당 아니면 제1야당이었다. 대한민국도 똑같다. 이번에 이 승자독식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자유한국당은 언제나 제1당 혹은 제1야당의 위상을 보유할 것이며, 끔찍하지만 언제든지 현 여당의 정책 실패나 부패 등 실정을 딛고 여당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프랑스 사람 ‘뒤베르제의 저주’란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 촛불개혁 지속의 가능성은 없는가?

    ‘돈도 실력, 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정유라의 말은 작은 촛불들에게 기름이 되어 번지게 했다. 고 노회찬 의원의 말대로 이것이 끔찍한 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촛불혁명과 정권교체 이후에도 계속해서 고발되고 있는 재벌가의 갑질 행위는 공개될 때마다 그 심각성의 정도가 세지고 있으며 우리를 계속해서 더 놀라게 한다. 최근 조선일보 사장 일가의 초등학생 자녀가 운전기사에게 던진 폭언을 들으며 중세 귀족사회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촛불혁명이 외쳤던 적폐청산의 목표는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우리는 갑질 없는 사회라고 말해 볼 수 있다. 갑질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부당한 갑질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넘어야 할 수없이 많은 개혁의 과제들이 존재한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부와 권력이 부당하게 상속되는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사회적 투자를 통해 공공부문과 민간영역의 일자리를 늘려야 하고, 사회복지를 위한 증세를 검토해야 한다. 개혁의 주체세력을 굳건하게 형성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가입률을 획기적으로 재고해야 하고, 시민단체와 협동조합의 조직률을 중요한 사회적 지표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갑질에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사회, 복지국가로 나아간다는 목표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사이 어디쯤에 형성되어 있는 정치의 중심을 민주당과 그 왼쪽 세력 사이로 옮겨야 한다. 지금과 같은 중심점 하에서 민주당은 보수세력과 자본의 욕망을 자유한국당보다 유능하게 대변하는 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 규제프리존법, 은산분리의 완화와 탄력근로시간제 확대 등은 모두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함부로 추진하지 못했지만 그들도 염원했던 자본세력의 청부입법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 제도가 이 중심점의 이동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 중 하나이다. 이 제도 하에서는 사표의 발생이 최대로 억지되므로 유권자는 각 정당과 후보의 정책을 보고 자신의 지지후보와 정당을 정할 수 있다. 각 정당이 받은 지지율만큼 의석수로 환산되어 당선자를 결정하게 되므로 유권자 표의 가치가 동등해지며, 정당은 소수의 귀족적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다수 대중을 위한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정당의 책임성은 강화된다.

    이 제도 하에서라면 촛불혁명의 성과가 유실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12월 15일, 집회가 중요하다.

    민심을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 제도를 통해 국회와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우리보다 먼저 이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던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배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2015년 총선에서 훈남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트뤼도는 150년간 이어져 내려온 캐나다의 선거제도를 연동형 제도로 개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총리가 된 후로 이 공약을 파기했다. 당연히 야당들의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이 제도의 도입에 성공한 나라는 뉴질랜드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이 제도를 공약한 사람은 1987년 당시 집권 노동당의 대표였던 데이비드 랭 총리였다. 그는 선거제도 개혁 공약과 함께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그 후 약속을 저버렸다. 결국 90년 총선에서 공약 파기를 맹비난하며 공세를 편 국민당이 집권했고 국민투표를 통한 제도개혁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사실 국민당 또한 국민투표의 부결을 기대했다는 평가가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한국에서도 배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찬 더민주당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민주당의 당론이 아니라고 발을 빼는 발언을 했다가 야당과 여론의 맹비난을 받고서야 당 사무총장과 정개특위 간사의 입을 빌어 이를 정정했다. 이런 식의 배신은 다시 한 번 시도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여당을 비판하기 위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야3당의 입장에 동의한다고 말은 했지만 이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소선거구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폐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노예제도가 동정심 많은 의회에 의해 폐지된 것이 아니듯, 소선거구 승자독식 제도의 폐지에는 다시 한 번 촛불의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치개혁으로 나아갈 진짜 힘에 대한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노동당의 공약 파기, 국민당의 소극적 집행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의 길이 좁아지지 않은 것은 의회 바깥에 형성된 강력한 힘 때문이었다. 뉴질랜드 시민들은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가 한참일 때 의회세력만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선거제도개혁연합(The Electoral Reform Coalition, ERC)’이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했다. 이들은 거대 양당이 개혁에 주춤할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시민을 상대로 캠페인을 하고, 양당에게 개혁을 요구했다. 이 단체에는 정당원이 아닌 시민들도 많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소수당인 민주당(사회신용당의 후신)과 가치당(세계 최초의 녹색정치세력. 후에 녹색당이 됨) 당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정치개혁이 뉴질랜드의 중요한 정치의제가 되고 단기간에 정치개혁 지지 여론이 양당을 당황시킬 정도로 커진 것은 의회 바깥에서 형성된 ERC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와 시민의 힘이었다. 국회에서 정개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의원을 중심으로 속도감있게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뉴질랜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더민주당이, 때로는 언제나 그렇듯 자유한국당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럴 때 의회 바깥의 진짜 힘이 가동되지 않고서는 중심을 잡기 힘들어질 수 있다.

    기득권 양당 중 어느 하나라도 언제든 정치개혁의 약속을 배반할 수 있다는 점, 흔들리지 않고 정치개혁을 통해 복지국가로 나아갈 진짜 힘은 의회 바깥에 있다는 점, 이 두 가지 때문에 12월 15일,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여의도 불꽃집회’가 매우 중요하다. 정의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민중당을 비롯한 원내 정당과 노동당, 녹색당, 우리미래와 같은 원외 정당도 함께 하며, 정치개혁 공동행동이 기획·주관한다. 이 집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또 이 집회를 마친 이후에,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지역방송 토론회를 요구하고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기성 정치세력에게 입장을 요구하는 흐름을 만드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긴 글이었지만 마지막으로 잊지 않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국회가 처리해야 할 정치개혁의 주제가 선거제도 개혁만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 정개특위는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도 선거권과 정당의 당원자격을 인정하자는 논의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 지역공동체와 마을, 협동과 자치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한 지역정당의 허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 노회찬 의원의 사후에 형성된 정치자금법 개정 여론에 대해서도 구체적 논의에 들어가지 못했다. 정개특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뿐만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다른 개혁의제들에 대해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의회바깥의 힘이 크고 단단해야 한다.

    만화가 최규석은 87년 6월 항쟁을 그린 작품 ‘100도씨’의 에필로그에서 항쟁을 통해 시민들이 얻은 것은 백지 한 장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그렇다. 촛불혁명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백지 한 장이다. 최규석의 말마따나 조금만 함부로 대하면 구겨져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잠시만 한 눈 팔면 누군가 낙서를 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꿈꿀 수 없는 약하면서도 소중한 그런 백지 한 장! 그 위에 무엇을 쓸 것인가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이다. 나는 그 백지의 맨 위 왼편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도와 정치개혁’이라고 쓰고, 맨 아래 오른 편에는 ‘따뜻한 복지국가’를 쓰고 싶다.

    필자소개
    광주의 미래 공동대표. 정의당 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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