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한나라당과 시민후보 의미있는 승부처
        2006년 05월 26일 04: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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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형원은 자신을 여성이 건너갈 ‘다리’라고 한다. 4년 뒤 지방선거에는 여성 시민후보가 지역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드는 것이 시민후보 서형원의 역할이자 지역운동에 대한 약속이라고 한다. 만약 4년 뒤에도 여성 시민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자신의 4년 의정활동이 실패한 것일 거라고 단언한다.

    2003년부터 고민한 2006년 지방선거

       
    ▲ 과천시의원에 출마한 서형원 후보

    오래 못 본 친구를 만나러 가듯 서형원 후보를 동행 취재하러 나서는 마음이 설렌다. 지난 2003년 봄, 그가 환경운동연합의 정책실장을 그만두고 나와 광화문 근처 어느 골목길 건물 2층 사무실에서 ‘녹색정치준비모임’(현 초록정치연대)을 창립하던 날이 생각나서다. 그 전부터 준비모임인지, 세미나인지에서 나온 녹색 정치 고민들을 가득 담아, 보내주던 메일도 기억이 난다. 

    그는 2003년에 이미 2006년 지방선거를 준비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먼 훗날의 일 같았는데 어느새 2006년 5.31 지방선거 투표일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25일 오전 과천정부청사역 인근, 선거사무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기자를 알아보고는 놀라며 반겼다. 선거운동원들이 건네는 명함이 하나같이 과천의 다른 지역단체 소속들이다.

       
    ▲ 지하철역 앞에서 출근 유세를 하고 있는 서형원 후보 ⓒ 문영배

    서형원 후보는 과천 시민단체의 공식 후보다. 민주노동당 후보와 경선을 거쳤고 지역운동의 유일한 시민 후보가 됐다. 서울의 구 정도 크기라는 조그만 도시 과천에서 매번 마주하는 지역운동가들끼리 경쟁하는 것보다 한 후보를 내고 지지하자는 의미였다.

    환경단체, 여성단체, 노동조합, 공동육아협동조합 등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회원 370여명이 참여해 ‘지역자치연대’를 만들고 경선을 치렀다. 지역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아줌마 활동가들은 서형원을 시민 후보로 선택했다.

    오전 7시부터 서울로 출근하는 과천 시민들에게 유세를 하고 김밥과 빵 몇 조각으로 아침을 때운 서형원 후보는 저녁 유세에 사용할 파워포인트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초록 풀잎을 전체에 붙여 ‘풀잎 차량’이라고 부르는 유세 차량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 다른 지역 시민단체 후보들의 유세 차량 사진을 뽑아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4년 뒤 여성후보 내기 위한 ‘다리’ 약속하며 출마

       
    ▲ 서형원 후보가 길거리 유세에 앞서 로고송을 틀기 위해 MP3를 만지고 있다.

    여행가방 같은 엠프 스피커 가방을 끌고 길거리 유세에 나서는 서형원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을 따라 나섰다. 시민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깍듯이 허리를 굽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정치인 서형원’이다. 2003년부터 풀뿌리 지역 정치를 고민하고 2006년 지방선거를 준비해온 그였지만 직접 출마를 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왜’라는 물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직접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생각 못했어요. 항상 참모였기 때문에, 선거를 치러본 경험도 있고 그걸 바탕으로 이번에도 사무장 정도 맡아서 하게 될 줄 알았죠.”

    과천의 지역운동을 이끌어온 실질적 주체인 여성을 풀뿌리 시민후보로 내보자, 당선시켜보자 했지만 기초자치단체까지 정당공천제가 확대되면서 시민단체 후보들이 출마를 포기했다.

    결국 지난해 가을 즈음에는 서형원 후보가 출마를 결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해야 할 일은 피하지 않고 있어야 할 자리에는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그의 평소 소신이 이를 수용했다.

    서형원 후보는 출마를 다짐하며 자치를 위한 약속을 했다. “4년 뒤 지방선거에는 여성 시민후보가 지역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드는 것이 시민후보 서형원의 역할이다.” 4년 뒤에도 과천 지역운동이 여성 시민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자신의 4년 의정활동이 실패한 것일 것이라고 서 후보는 단언했다.

    지하철 역 한편에서 ‘초록빛 바닷물에~’ 동요를 개사한 ‘초록빛 기호 10번 서형원 뽑으면~’ 노래가 울려나온다. 필승코리아니, 찬찬찬이니 하는 여타 정당 후보들의 익숙한 선거 로고송과 달리 신선하다. 초록정치연대에서 직접 녹음한 거란다. 노래가 좋아 아무 때나 흥얼대고 노래패에 함께 하고 있는 서형원 후보의 로고송답다. 공식선거운동에서 기호 10번을 받은 이후, 32번째라는 서형원 후보의 길거리 유세가 이어졌다.

    “관문 사거리에 말동상을 세우는 데 5억을 쓴답니다. 남태령 고개에 표석세우는 데 1억, 시민회관 바닥재 교체에 5억, 의회 유리창을 교체하는 데는 5천 만원을 쓰겠답니다. 시의 예산이 낭비되는 사례입니다. 시민의 힘을 모아 잘못된 예산을 바로 잡은 다음에야 공약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말 동상 하나만 세우지 않아도 초등학교 아이들 모두에게 일년 반 동안 유기농 급식을 먹일 수 있습니다….”

    남은 것이 고단한 삶뿐이라면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

       
    ▲ 과천 지역단체 활동가들이 선거운동원으로 나섰다. 자원봉사자만 100명에 달한다.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까지 맡았던 ‘환경운동가’ 서형원 후보가 ‘녹색정치준비모임’ 간사로 지역정치운동에 뛰어들게 된 이유가 뭘까.

    서형원 후보는 2002년 지방선거에서 여성민우회, 환경단체연합 등 시민단체의 후보로 나선 도봉구의회 추경숙 후보의 선거캠프에 함께 했다. 당시 추 후보를 비롯해 여러 시민단체 후보들이 선출돼 새로운 정치의 출발점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지역정치운동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에 의원의 활동이 개인화되고 녹색지역정치운동을 발전시키지는 못했다는 한계가 남았다. 그 대안으로 지역정치운동의 주체를 키워야한다는 논의가 있었고 서 후보가 간사를 맡아 녹색정치준비모임을 창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상황에 앞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서형원 후보가 환경운동을 하면서 가졌던 오랜 고민들이 바탕이 됐다.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주민투쟁 등에 함께 하면서 환경운동이 지향하는 가치를 지역에서부터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역자치운동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주민들의 눈물겨운 싸움이 승리로 끝난 경우에도 지역에서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한번 싸움에는 이겼지만 주민들 스스로 대안을 실현할 자치 역량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은 것이 상처뿐이요, 고단한 삶뿐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이겼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싸움 뒤에 남은 상처가 제게도 큰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고향’ 과천 만들기

       
    ▲ 서형원 후보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클 수 있는 ‘고향’ 과천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자면 자연과 공동체가 살아있는 도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 문영배

    서형원 후보가 살고 있는 중앙동 주택가로 이동해 33번째, 34번째… 길거리 유세를 이어갔다. 보는 이마다 “여기 중앙동 00번지 사는 온이 아빠입니다”라며 인사를 건넨다. 34번째 유세였던가, 서 후보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아이보리색 건물을 가리켰다. 한국유네스코 한국본부에서 일하는 아내와 올해 과천자유학교에 입학한 딸 온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이란다.

    나즈막한 집들이 연이어 있고 멀리 산이 보이는, 그의 말마따나 양지바른 동네다. 서형원 후보의 공약들은 딸 온이는 물론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클 수 있는 과천을 그리고 있다. “과천이 고향이 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그다. 그러자면 자연이 있고 건강한 시민의식과 공동체가 살아있는 과천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형원 후보가 지역자치 운동이 활발한 과천으로 이사 온 것은 지난 95년경이다. 과천환경운동연합의 창립에 함께했지만 기본적으로 서울의 환경운동연합에서 상근으로 일하던 때다. 그가 과천 지역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행하기 시작한 것은 ‘녹색정치준비모임’을 준비하던 때부터다. 과천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2003년 과천 풀뿌리 모임을 갖기 시작했고 2004년에는 ‘맑은내 방과후학교’를 만들었다. 과천 지역신문인 ‘마을회관’을 내고 ‘우리가 만드는 과천의 미래(우리미래)’도 만들었다.

    서 후보의 주택가 길거리 유세에 함께 한 선거운동원이자 지역자치활동가로부터 서 후보의 과거(?)를 듣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서 후보가 처음에는 “중앙에서 주로 활동해 지역자치를 몰랐다”는 이야기다. 중앙에서 언론을 대하던 언어는 지역 생활자의 언어와 괴리된 것이었고 큰 방향만 잡아온 국가정책 마인드도 생활과 직접 연관돼 각론을 이야기해야 하는 지역정책을 짜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지역에서는 주부의 동선 속에서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많이 싸운 끝에 지역자치 운동가들에게서 “이젠 됐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서형원 후보다.

    내가 안되면 한나라당에서 싹쓸이, 도와달라는 말이 절로 나와

       
    ▲ 지역주민들에게 인사하는 서형원 후보 ⓒ 문영배

    그는 "요즘엔 도와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기초단체인 과천 에도 박근혜 대표의 피습 사건 영향이 적잖다는 설명이다. 어떤 한나라당 후보는 박근혜 대표 얼굴을 넣어 명함을 다시 만들었을 정도라니. “길에서 만나는 50~60대의 표정이 바뀌었어요. 정당 정치 쏠림 현상이 확실히 심해졌어요.”

    비단 분위기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후보 쪽에서 진행한 여론조사를 흘려들으면(?) 선거 초반 단독으로 앞섰던 서형원 후보가 박 대표 피습 이후 3위권 경쟁으로 밀려났다. 그가 출마한 과천시 ‘가’ 선거구에서는 3명의 시의원을 뽑는데 10명의 후보 중 한나라당 후보가 3명이다. “제가 안 되면 한나라당 후보 3명이 모두 당선된다는 것인데 저나 캠프나 분발해야겠죠.”

    과천 지역운동의 절박감도 있다. 시민후보가 계속 시의회에 진출해오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예산 낭비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자치의 가장 기본인 정보 공개조차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위원회 명단과 위원 성비조차 공개할 수 없다는 과천시의회다.

    더구나 서형원 후보 캠프에 자원봉사자 100명을 지원할 만큼 과천 지역운동은 이번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선거를 바탕으로 다음 지방선거에서는 여성 시의원와 과천시장까지도 시민 후보를 낼 참이다. “실패 경험을 쌓는 것은 좋지 않죠. 지역운동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뒷받침하고 모든 자원을 집중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안되면 다음에 다시 해보자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게 돼요. 이번에는 꼭 돼야 합니다.”

    지역자치는 풀뿌리 지역정당에서

       
    ▲ 민주노동당 후보와 경선에서도 이긴 과천지역 시민단체 공식후보이지만 지만 서형원 후보는 무소속 기호 10번이다. 

    과천 시민단체 공식 후보이지만 정당이 아닌 탓에 무소속 기호 10번을 받은 서형원 후보. 공식선거운동 하루 전인 17일 저녁에서야 기호가 확정됐다. 비로소 기호를 넣어 명함도 만들고 플랜카드도 만들 수 있었다. 정당 후보들이 예비후보 선거운동 기간부터 정당 기호를 쓰는 것에 비하면 “비상식적이고 불공정한 경쟁이고 지나친 정당 특혜”라는 지적이다.

    “삼성의 물건은 맨 앞자리에, 현대는 그 다음에 놓고 동네 특산품은 구석에 쳐 박아 놓는 것과 같죠. 평소 지역에서 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한나라당 기호 ‘2-가’를 받았다고 당선을 확신하는 것은 말이 안돼요.”

    더불어 서형원 후보는 거대 전국정당이 아닌 지역정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지난 3월 옥천에서 풀뿌리 초록정치네트워크 5.31 공동행동 발족식이 열렸다. ⓒ 문영배

    “정당공천제 자체보다도 거대 전국정당만 법률적으로 정당으로 인정하는 것이 문제예요. 독일에서는 지방선거 때 지역 단체들이 비례대표 명단을 만들 수 있어요. 지역정당이 인정된다는 건데 청소년 비례대표 후보 30명이 당선되기도 했죠. ‘과천 풀뿌리 정당’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거죠.”

    서형원 후보가 창립 간사를 지낸 녹색정치준비모임은 현재 지역운동 주체들의 네트워크인 ‘지역정당’ 성격의 초록정치연대로 발전했다. 지역정치의 자원들이 하나하나 쌓이면 얼마든지 초록당도 만들 수 있다는 그다. 풀뿌리 지역자치 네트워크 또는 지역정당의 꿈을 함께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3월에는 옥천에서 시민단체 무소속 후보들과 지역단체들이 참여한 ‘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 5.31 공동행동’을 발족하기도 했다.

    환경운동을 거쳐 지역자치운동으로, 이제 시민후보로 직접 과천시의원에 도전하는 그에게 다시 처음 사회운동을 시작했던 출발점에서 물었다. 그는 10여년 전 미래에 대한 대안과 대중성이라는 2가지 기준으로 ‘환경운동’을 선택했었다.

       
    ▲ 환경운동을 거쳐 지역자치운동으로, 이제는 과천시의원에 직접 출마한 서형원 후보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어요. 환경은 근원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예요. 자원분배의 문제이자 개인이 아닌 집단의 사람들이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죠. 환경운동은 새로운 정치 대안을 제시해줬고 대중성 있는 운동이었어요. 많은 것을 배웠죠.”

    4년 뒤, 의정활동에 성공했다며 서형원 의원이 자랑스레 소개하는 여성 시민후보와 함께 다시 오솔길 같은 중앙동 주택가를 걷는 상상을 해본다. 그 때는 관악식당의 동태찌개에 오늘 그가 못내 아쉬워한 막걸리 한 사발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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