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비핵화 문제
진전·교착·파국의 갈림길, 해법은?
[기고]북미-남북-한미의 복합 방정식과 진보의 역할
    2018년 11월 30일 11: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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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미, 남북, 한미 등 한반도의 핵문제를 둘러싼 정세 흐름에 대한 윤영상 박사의 기고 글이다. 10페이지 가량의 다소 긴 글이지만 여러 각도에서 현재의 정세를 살피고 있다. 관심을 부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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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밀당인가, 파국의 전조인가?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북미관계 개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등을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핵문제 해결과 냉전 해체를 위한 전략적 논의를 본격화했다. 당연히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그 마중물 역할을 했다. 취소될 뻔한 북미정상회담도 5월 26일 남북정상회담에 의해 되살려졌다.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돋보였고,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이 핵문제 해결을 넘어 한반도 냉전체제를 해체시킬 절호의 기회를 다시 한 번 만들어 낸 것이다.

정상들 간의 합의라는 유례없는 방식(top-down 방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한반도의 비핵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6.12정상회담을 구체화시킬 북미고위급회담은 한 달이나 지난 7월 6일에야 개최되었고, 비핵화와 상응조처를 둘러싼 논란은 해법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사진=VOA)

북미 간 핵심쟁점은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 동시행동 조치’와 미국의 ‘선비핵화조치 후 제재해제’의 충돌이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 북한이 취한 신뢰구축 조치에 대응해서 종전선언과 단계적 제재해제가 ‘상응조치’로 나와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미국은 핵물질, 핵탄두, 핵시설, 장거리미사일 관련 목록 제출과 검증이 이루어져야 제재해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6.12 정상회담 직전만 하더라도 남북미 종전선언을 북미정상회담의 자연스런 후속조치로 받아들였었는데, 북중정상회담과 중국 개입론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종전선언의 의미를 재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는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중국 변수가 만만치 않게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에 다름 아니다.

표류하던 북미고위급회담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과 9.19평양선언을 거치면서 재개된다. 평양선언에 동창리 미사일엔진실험장과 발사장 영구 폐기를 확약하고, 미국의 상응조치가 있다면 영변 핵시설도 영구 폐기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면서, 북미고위급회담 재개의 물고를 튼 것이다. 그 결과 10월 7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당일치기 4차 방북이 이뤄지고,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5시간이 넘는 회담을 진행한다. 김 위원장의 종전선언과 제재완화 요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핵목록 제출 요구가 충돌했으나, 2차 북미정상회담의 조기개최에는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이 아닌 김정은 위원장이 폼페이오와 직접 담판을 짓는 상황은 북한의 협상관행으로 봤을 때,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7월 방북 때는 김영철이 협상 상대였고, 빈손으로 온 폼페이오 장관을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주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후속논의는 계속되지 않았다. 11월 8일로 예정되었던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미는 전격 연기되었고, 추가로 잡혔던 11월 28일 고위급회담도 무산되었다. 이는 북미 간, 북한 내부, 미국 내부에서 많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 결과 내년 초로 예정되었던 2차 북미정상회담도 불투명해졌고,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시진핑 주석의 방북 및 김정은-푸틴 정상회담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9.19 평양선언 이후 기대되었던 한반도와 동북아의 ‘화려한 정상외교’들이 줄줄이 연기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미국의 강도적 요구를 비판하고, ‘핵경제 병진노선의 부활’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미국에서도 북한이 삭간몰 등 13곳에서 미사일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는 폭로기사가 나오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가짜뉴스라고 반박하는 일도 벌어졌다. 또 일부 강경파 관료들이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한다면 정권교체를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국을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서로에 대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또 북한이나 미국 역시 현재로선 마땅한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실험 및 미사일발사실험을 중단했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동창리 미사일엔진실험장 해체를 단행했고, 미군유해 55구를 송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한국과 미국은 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UFG), 한미해병대연합훈련(KMEP)를 중단했고, 12월로 예정된 한미공중연합훈련(VA)도 중단하기로 했다. 북미 정상 간 합의를 지키려는 신뢰조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은 파국이 아니며, 또 파국의 전조도 아니다. 오히려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의 본질적 실체에 접근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북한은 지금 체제의 운명을 건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고, 미국 역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한반도질서를 바꾸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호불신이다.

북한의 핵능력이 문제의 본질이다.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핵실험 중단, 장거리미사일발사 중단에 뒤이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동창리 미사일엔진실험장 해체를 단행하고, 영변 핵시설의 영구폐기 가능성까지 제시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상응조처를 취하지 않는 미국의 태도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합의한 바 있었던 종전선언도 트집 잡고, 제재해제는 비핵화가 상당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불가하다는 미국의 태도는 북한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방적이고 강도적’ 행태이며, 북한의 일방적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만 탓할 수 없는 상황도 분명하다. 미국 공화당만이 아니라 민주당, 그리고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다수의 연구기관들이 입을 맞추듯이 ‘북한의 비핵화 없는 제재완화 반대’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과거 미국의 대북 협상태도에 불만을 갖고 북한에 유리한 입장을 취했던 유럽연합(EU) 역시 ‘북한의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을 방문했을 때, 제재완화를 강조하는 문 대통령 앞에서 유럽연합 각국 정상들은 미국조차도 이미 폐기한 CVID를 거론하기도 했다. 유럽연합도 북한 핵능력의 고도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의 실체적 본질이 드러난다. 한반도 핵문제는 논리적으로는 한반도 냉전체제라는 구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핵문제는 냉전 해체와 평화협정 체결과 논리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북미 수교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과서적 논리거나 일반론이다. 북한의 고도화된 핵능력은 한반도 냉전체제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능력은 한반도 핵문제를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표현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미국의 대북 위협과 제재이며, 북한의 핵능력은 그에 대한 정당한 대응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결과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이고, 북한의 상대방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본질적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핵무기는 누구를 겨냥하느냐 이전에 존재 그 자체가 군사전략적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의미와 같은 맥락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모습

북한은 핵실험 중단, 장거리미사일발사실험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동창리 엔진실험장 및 발사대 해체, 미군유해 전달 등으로 성의를 표시했다. 미국은 사의(謝意)를 표시했지만 그것으로는 대북 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핵폐기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제재는 유지될 것이라는 입장을 고집스럽게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종전선언 문제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비록 정치적 선언이지만, 68년 만에 이루어지는 종전선언은 그 구조적 효과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6.12북미정상회담 후에 이루어진 김정은-시진핑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 및 유엔사와 주한미군 문제가 거론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종전선언에 대한 태도가 많이 달라지게 된다. 종전선언의 구조적 파급력이 거론되었고, 중국 변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북중 대화가 미국을 자극한 꼴이 되어 버렸고, 미국은 대중 정책과 대북 정책을 노골적으로 연계시키기 시작했다.

볼턴을 비롯한 미 강경파들은 북한 핵물질의 양, 핵탄두의 숫자, 핵시설 목록, ICBM 숫자 및 미사일시설 목록만이 아니라 핵물질과 핵무기의 일부 양도를 본격적인 협상의 전제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핵을 둘러싼 과거 협상의 기준으로 볼 때, 일부는 협상 중반부나 되어야 가능한 요구이고, 핵물질이나 핵무기 일부 이전은 협상 종반부에 도달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의 강경파들은 그것을 협상의 초기단계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정부는 과거의 협상 패턴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실질적인 비핵화를 위해서, 또 미국 의회를 설득하고, 미국 내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서 북한 핵능력의 실체 정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래야만 검증과 폐기 절차와 시간문제가 계획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인 것이다. 과연 북한은 핵능력의 실체를 드러낼 것인가?

북한의 핵능력이 이스라엘과 비슷하다?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북한 핵능력의 실체는 대략 핵탄두 65개 내외라고 알려져 있다. 2017년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OA)이 발표한 내용이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이것이 과장된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트럼프 정부와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 모두 그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그것은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주요 핵국가들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능력이 이스라엘 수준에 육박한 것이라고 해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표1. 주요 핵국가들의 핵탄두 보유정도(출처. 동아일보, 2018.10.23.)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이 대략 80개, 인도가 130-140개, 파키스탄이 140-150개 정도, 중국이 280개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 북한이 65개라면 이스라엘보다 조금 못 미치는 정도, 만약 80개가 넘는다면 이스라엘과 맞먹거나 인도-파키스탄에 육박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북한을 핵보유 국가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핵무기를 폐기하고, 해외 반출시킴으로써 완전한 핵폐기를 달성할 것인가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판문점선언, 싱가포르합의, 그리고 평양선언에서 반복적으로 완전한 핵폐기를 선언했다. 그렇다면 그 첫 출발은 북한 핵무기의 실체 공개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대북 제재의 단계적 해제나 종전선언은 그것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실체가 공개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지만 아직 그 실체를 공개한 적은 없다. 그것이 핵협상에 유리한 입지를 위한 것이든, 아니면 공개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여기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근까지 알려져 있는 방식대로 북한의 핵능력을 추정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북한의 핵물질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플루토늄의 양과 고농축 우라늄의 양이다. 플푸토늄은 일단 영변에 있는 5MWe 흑연감속로에서 지금까지 생산된 것으로 대략 25kg-56kg이라고 할 수 있다. 플루토늄 3-6kg당 핵무기 1개라고 가정한다면 8-18개이거나 4-9개 정도의 플루토늄 핵탄두를 보유했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2009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던 영변의 100MWe 실험용경수로가 언제 완공되어 가동되었느냐가 변수가 될 수 있다. 2013년 완공, 2015년부터 가동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최근 들어 가동을 시작했다는 설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추정은 불가능하다. 영변의 실험용 경수로는 1년간 정상가동했을 때 15kg 정도의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논의의 핵심인 우라늄농축시설 문제가 등장한다. 2010년 북한이 미국의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에게 공개한 영변의 우라늄농축시설은 2000개의 원심분리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설에서 1년간 고농축우라늄 약 40kg이 생산될 수 있다고 하는데, 2010년부터 본격 가동되었다면 2018년까지 320-360kg정도의 고농축우라늄을 보유했다고 추정가능하다. 2013년부터 북한이 영변의 우라늄농축시설을 두 배로 확장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5년간 200kg의 고농축우라늄이 추가로 생산되었다고 추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면 총 520-560kg 정도의 고농축우라늄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1개의 우라늄핵탄두는 10-40kg정도의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의 기술수준이 높으면 52-56개 정도의 우라늄 핵탄두, 낮으면 13-14개 정도의 우라늄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변 이외의 다른 지역에 우라늄농축시설이 존재하는지 여부이다. 2015년 이란 핵 합의과정에서 드러난 이란의 원심분리기 숫자는 구형원심분리기와 신형원심분리기를 포함 대략 20000개가 넘었다. 북한 역시 상당 정도의 원심분리기 생산 및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만약 별도의 시설에서 4000개 혹은 8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추가로 작동하고 있다면 우라늄핵탄두만으로도 100개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표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표2. 북한의 핵물질과 핵탄두 추정치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또한 추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을 북한이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사찰과 검증을 통해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의 모든 지역을 자유자재로 출입할 수 있어야 하고, 의심시설을 불시 사찰할 수도 있으려면 그 과정은 복잡하고 심각한 논란을 동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북한 핵능력을 가장 빠르게 확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북한의 자발적인 공개 외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나 미국 민주당, 그리고 유럽연합 등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실 북한의 자발적 공개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의 우려는 분명하다. 북한이 공개했는데, 그것의 진위를 둘러싼 불필요한 공방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북한 핵능력의 실체가 공개되면서 북한의 협상력과 얻을 수 있는 단계적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는 다른 상황이다.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을 놓고 거대한 협상게임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50개가 넘는 핵탄두와 500kg이 넘는 핵물질 목록이 공개되고, 주요 핵시설과 장거리미사일시설 목록이 공개된다면 그 자체가 갖는 충격파는 사소한 진위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트럼프가 말한 20% 핵폐기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고, 1차 북핵 위기 때처럼 사소한 핵물질의 양으로 논란이 발생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물질과 핵탄두의 양이 이상의 추정치와 현격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적다면 그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논란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의 태도로 봤을 때 그 가능성은 낮다.

얽힌 매듭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과연 북미 간 핵협상이 타결될 수 있을 것인가? 6.12싱가포르합의는 큰 틀에서의 전략적 의지를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략적 합의는 구제적인 사찰과 검증을 통해 확인되어야 현실화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갖고 있는 엄청난 핵능력은 사찰과 검증의 한계를 드러내준다. 리비아, 이란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마음만 먹는다면 수십 년이 걸려도 사찰과 검증을 완료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 다수의 견해이다. 결국 북한의 자발성, 선의(善意)가 문제의 핵심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발성과 선의는 북한의 체제안전보장, 북한의 이익이 담보되어야 가능하다.

미국은 바로 그런 이유로 북한이 먼저 핵능력의 실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2년 안에 비핵화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핵물질의 종류와 양, 핵탄두의 종류와 숫자, 핵시설의 목록, 장거리미사일관련 목록이 신고되고, 일부 핵탄두와 장거리미사일이 이전반출 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 뒤 사찰과 검증이 뒤따르고, 20% 이상의 비핵화가 진행되었을 때 제재해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이익과 북한의 불신을 해결할 방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익과 자신들의 방안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10월초 방북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북미 간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핵목록을 신고해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핵신고를 할 수 없다”, “미국은 재신고를 요구할지도 모르며 그러면 싸움이 될 것이다”고 말하면서, 풍계리, 동창리 사찰, 검증과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약속했다. 동시에 미국의 상응조치로 종전선언과 제재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도 역시 미국 내의 북한에 대한 불신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북한과 미국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방법은 타협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북미 간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타협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이다. 소위 핵목록의 제출은 뒤로 미루고, 북한이 지정하는 중요 장소를 사찰, 검증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당연히 북한이 지정하는 중요 장소와 시설은 미국도 익히 알고 있는 중요 장소와 시설이어야 할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엔진시험장 및 발사대, 그리고 영변 핵시설이 바로 그것이다. 9.19평양선언에서 남북정상이 합의한 내용이다. 남한의 중재자 역할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강경화 외교부장관이다. 문재인 대통령, 서훈 국정원장과의 긴밀한 협의 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는 지난 5월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토론하면서 리비아식 해법이 아닌 카자흐스탄 방식의 경제지원과 체제보장이 핵폐기의 길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9.19평양선언 이후에는 전통적 비핵화 과정과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면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종전선언의 맞교환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목록이 필요하지만 굳이 초반부에 그것을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북미 간의 양보 없는 대치상태에서, 초기부터 핵목록 신고를 할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풍계리와 동창리만이 아니라 미국이 중시하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이끌어 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핵목록의 제출을 무기한 연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초기 조치 후 신뢰구축이 되는 상황에서 핵목록의 제출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간 신뢰가 구축되면 비핵화는 미국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속도를 낼 것”이라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미국 모두를 만족시키는 창조적인 방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김영철을 상대할 때는 문재인 대통령과 서훈 국정원장이 나서고, 미국을 상대할 때는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정의용 안보실장이 나서는 남한 정부의 행동패턴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의용 안보실장 대신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금 미국 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장관이 만들어낸 창조적인 방안을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미국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상대로 강경 입장의 김영철을 상대적으로 온건하며 외교적 대화에 능한 리용호 외무상으로 교체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의 창조적 역할이 중요하다.

11월 20일 한미 간 워킹그룹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미 국무부가 북미관계보다 남북관계를 우선하는 남한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남한 내의 냉전적 보수세력이 갖고 있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무지거나 어거지 주장이다. 미국은 문재인 정부의 행위를 제어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압박, 유엔사와 주한미군, 주한미대사관 등등. 정치적 낙인찍기가 아닌 한미 간 워킹그룹의 실질적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1월 20일 한미워킹그룹 첫 회의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공동으로 주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점이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방송화면)

이도훈과 비건의 북한 측 파트너가 최선희 외무성부상이다. 한미 간 워킹그룹은 북핵 문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체결 문제 등 북한과의 협상에서 실질적으로 제기되는 핵심 쟁점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향후 최선희 부상과의 대북 협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물론 최근 임명되고 난 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비건 대표가 한국 측의 창조적 해법을 공유하면서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한미 워킹그룹이 북미 워킹그룹과 결합되면 남북미 워킹그룹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경화 장관의 창조적 아이디어처럼 남한이 단순히 북미 대화를 알선, 중개하는 수준이 아니라 막힌 곳을 풀어내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면, 남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훨신 더 많아질 것이다.

남한 정부는 한반도 냉전체제의 실질적 당사자이다. 소위 북미 협상의 중개자, 중재자, 촉진자를 너머 핵심 주체이고,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냉전체제는 남한 정부의 역할을 주연이 아닌 조연급으로 전락시키고 있고, 역대 남한 정부는 그것을 불가피한 현실로 수용했다. 그 결과 북한은 남한은 정치군사적 문제의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은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의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추진될 것을 요구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바로 그런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그것을 변화시키려 했다. 소위 ‘운전자론’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운전자론은 파국을 막고 대화와 협상을 이끌어 내는데 기여했다. 전쟁 위기로 갔던 1년전의 분위기와 비교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격세지감 그 자체이다. 그러나 북미 간 핵협상의 교착상태는 문재인 정부의 운전자론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나 9.19평양선언과 강경화 장관의 역할에서 보듯이 남한 정부의 창조적인 중재안과 남북관계, 한미관계에서 확보한 신뢰도는 남한 정부가 운전자를 자임하는 수준이 아니라 중재자, 촉진자, 당당한 문제해결 주체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창조적 중재안과 신뢰도가 관건인 것이다.

앞으로의 남북미 간의 핵협상은 정상회담-고위급회담-실무검증-고위급회담-정상회담의 틀을 반복할 것이다. 그것이 몇 차례나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수십 차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상회담은 실무회담이 아니기 때문이다. 5차례 내외의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결판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만 현재의 기회는 냉전의 해체라는 역사적 전환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할 것이다.

만약 북미 간 협상이 깨지고, 강경 대결국면이 조성될 경우 남한 정부의 입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재개되는 순간 다시 1년 전의 상황으로 곤두박질 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다가올 것이고, 남한 내부정치가 격렬하게 요동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안팎으로 샌드위치가 되는 상황에서도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분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촉진론인가, 연계론인가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소위 촉진론과 연계론이다. 남북관계가 북미관계, 북핵문제 협상을 촉진할 정도로 발전해야 한다는 촉진론과 남북관계는 북미관계, 핵문제 해결수준을 앞설 수 없다는 연계론이 그것이다. 마치 김대중 정부 때의 병행론과 연계론 논쟁의 복사판이다.

연계론의 관점에 선다면 사실상 남한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촉진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있을 때,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그럴 정도로 진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촉진론의 입장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 주의해야 할 부분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촉진론은 사실상 김대중 정부의 병행론과 노무현 정부의 남북관계 일보후행론의 절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동시에 논의, 발전시킨다는 병행론적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북핵문제를 둘러 싼 북미 갈등상황에서도 남북관계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북한에 대한 개입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2001년과 2002년 부시 정부가 출범했을 당시 남북관계 병행론은 미국만이 아니라 북한에 의해서도 도전 받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병행론의 가치를 부각시킬 수 있었다. 병행론의 가치는 북미관계와 별도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 교착국면을 타개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병행론과 일보후행론 사이에서 방황했고, 임기 후반기에는 일보후행론으로 정착하면서 남북관계 급진전의 기회를 놓치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 부각되었던 남북관계 일보후행론은 북핵문제 논의의 진전속도를 고려해서 남북관계가 한 발짝 또는 반 발짝 뒤에서 가야한다는 소극적 입장을 말한다. 미국의 입장이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현실을 고려해서 미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려는 현실적 필요에서 제기된 것이지만, 남북관계의 신뢰 후퇴와 연결되면서 오히려 남한 정부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관계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김대중 정부의 병행론적 사고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특히 서훈 국정원장과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김대중 정부 때 임동원 장관을 보좌하던 양축이었다는 점에서 병행론적 사고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대북 제재의 범위 안에서 남북관계를 풀어내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일보후행론적 사고와도 연결되어 있다. 지나치게 몸을 사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는 부분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한미간 정책 불일치가 가져올 혼란과 갈등은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병행론과 일보후행론을 절묘하게 종합, 살얼음판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선언은 미국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군사적 적대관계의 종식을 이끌어 내고 있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면서,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GP철수, 군사분계선(MDL) 10-40km 이내에선 비행금지, 5km 이내에선 포병사격 금지 및 야외 기동훈련이 중지되고 있다. 동서해 완충수역 내에서도 비슷한 조치들이 진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사실상 종전선언에 해당하는 실질적인 전쟁위험제거 조치들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돌이키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5.26남북정상회담과 9.19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고, 강경화 외교부장관을 비롯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북미 간 핵협상 쟁점들에 대해 수준 높게 개입하고 있는 상황은 북한과 미국으로 하여금 문재인 정부의 입지와 역할을 확실하게 인정하도록 만들고 있다. 관건은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계속해 낼 수 있느냐이다. 그것은 앞으로 감당해야 할 협상과정이 그 만큼 복잡하고 험난하기 때문이다.

다자회담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지금까지 상황은 남북미 관계를 통해서 진행되어 왔다. 과거 6자회담에 비해 아주 빠른 속도로 상황이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남북미 3자가 정상 간 대화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급격한 핵능력 확대라는 현실, 70여년에 이르는 냉전체제의 구조화된 복잡성 등을 고려해 볼 때, 남북미 정상들을 중심으로 한 대화는 전략적 매듭을 풀어내면서 효율적인 논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과정은 꼭 그렇게만 진행될 수 없게 되어 있다. 무엇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중국의 개입을 불가피하게 요구한다. 또한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은 미국의 잦은 말바꾸기 때문에 중국, 러시아 등의 보증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문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핵화에는 돈이 들어가고, 사찰과 검증에는 수많은 전문인력을 필요로 한다. 한국과 미국만으로는 근본적 한계에 부딪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4자회담, 6자회담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노무현-부시 정부처럼 6자회담이 중심이 아니라 남북미 중심으로 전략적 물꼬를 트면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서는 4자회담이, 핵검증과 비핵화에는 6자회담이 개최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미 차원의 논의 진전에 따라 적절한 시점과 관련된 의제가 명확하게 설정되면서 다자적 접근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간 워킹그룹에서 그 기본 설계가 가능할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2005년 9월 13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 당시 각국 대표들이 악수하는 모습

진보적 개입의 가능성

사실 한반도 핵문제, 그리고 냉전해체 문제와 관련해서 진보진영이 독자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은 근본적으로 제약되어 있다. 소위 국가 중심 담론, 정부 중심 의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국가나 정부도 결국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한 진보진영은 남한 정부를 통해서 정부 간 협상과 대화에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관계, 한미관계, 그리고 북미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남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감시, 평가와 비판, 지지와 연대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남한 정부를 구조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남한 내부정치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면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냉전해체를 지지하는 정치적 흐름이 안정적 다수가 되도록 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특별히 시대착오적인 자유한국당이나 보수언론들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진보진영의 평화주의적 입장과 분단 극복을 위한 노력을 부각시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은 그 구조적 위치상 대응의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국정 책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진보정당과 진보진영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맹목적인 통일지상주의나 반미선동으로 나타나서는 안될 것이다. 남한 내부정치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흐름이 대중적 헤게모니를 안정적으로 장악할 수 있도록 비판적 개입력, 균형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부여당이 한미관계나 남북관계 때문에 쉽게 제기하지 못한 주제들이나 쟁점들을 선도적으로 제기하면서 대중적 논의를 전개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냉전체제 해체 및 평화체제 구축 관련 다양한 쟁점들을 평화협정 체결 과정과 연동해서 단계적으로 제기,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엔사 해체, 군비통제 방법론,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구축,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미래, 다양한 통일방안 검토, 진실과 화해를 위한 노력 등등.

진보진영의 활동이 단지 국내정치에만 한정될 필요는 없다. 북한이나 미국 정부 또는 미국 내 정치세력이나 시민단체들을 상대로 활동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과 미국 정부의 행동이나 정책에 대해 지지와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한반도 핵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이 북한과 미국에 대한 침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과 미국 내부를 파고드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남한의 여론을 고려하게 만들어야 하며, 특별히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를 파고드는 방식으로 소통을 확대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의 민주당이나 시민단체들이 트럼프 반대라는 명목으로 한반도의 냉전해체 노력을 폄하시키고 방해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보다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진보진영이 한반도 핵문제와 냉전해체를 둘러싼 논의와 협상이 정부기구 중심으로 굴러 가는 것을 바꾸어 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대의 종식과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관심과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와 진보진영이 평화동맹을 구축해, 어렵게 열린 기회의 창이 70여년이 넘는 냉전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평화와 공존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만 쳐다보자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사회세력들의 독자적인 역할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끝)

필자소개
북한학박사,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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