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사상사고!
막거나 피할 수는 없을까?
[지하철 이야기]"생존 위한 몸부림. 그런데 김군이 죽었다. 이제는?"①
    2018년 11월 29일 01: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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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독자께 드립니다.

신입 후배들과 얘기하다가 문득 ‘아 – 그렇지, 이 친구들은 나와는 세대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그리고 철도차량 운전면허증을 어렵게 따고 입사한 후배들입니다.

저는 93년에 입사하였습니다. 일 년도 안 돼 6.24 파업을 경험했고 노조 현장간부로 1999년 4.19 파업, 2004년 7.21 파업을 겪었습니다.

최근 서울교통공사는 무기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런데 후배들 중 일부는 공정하지 못하다며 강하게 반대하였고, 400여 명이 무효 소송을 행정법원에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각 자 살아온 굴곡 같은 이력을 차분하게 정리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과 선배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먼저 세 가지 주제입니다.

– 생존을 위한 몸부림. 그런데 김 군이 죽었다. 이제는 …?
– 지하철 업종별 근로조건 변천과 전략전술.
– 지축을 뒤흔든 4.19 파업, 뒤 끝은 왜 그랬나.

제가 정리한 내용이 부정확하거나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의 관점에 따라, 의미를 다르게 부여한 것일 수 있습니다. 독자들께서 틀린 부분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 내내 건강하십시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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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본선 운전 모습. 2018년 도입되어 운행중인 신조전동차(사진은 필자)

1호선 AD전동차. 1989년 도입되어 현재도 운행중. 노량진역 출발 한강 철교 진입하기 전 모습

생존을 위한 몸부림. 그런데 김 군이 죽었다. 이제는 …? ①

2호선 구로공단역(지금은 명칭이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뀜)에서 젊은 엄마가 두 아이를 끌어안고 선로로 뛰어 내렸다. 승강장 첫머리, 진입중인 열차의 속도는 높다. 기관사는 손쓸 틈이 없다. 어찌할 방법이 없다. 자살이다.

열차에 사람이 치이면, 선두 운전실에서 그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그 기관사는 사고 발생 신고를 운전사령(현 운전관제)에게 해야 한다. 발생 장소, 발견 시 열차 속도, 발견 거리, 피해자 신원(남 또는 여, 나이, 명수) 등이다. 심지어 목격자 수배까지 해야 된다.

그리고 열차운전은 계속해야 한다. 다른 승무원과 교대할 때까지다.

선로에 뛰어내린 그 일가족은 모두 죽었다. 현장에서 또는 병원에서 사망했다.

기관사는 열차에 내려서도 각종 사고조사에 ‘피의자 신세’가 된다. 회사 내 사고보고서 작성과 보고 등은 물론, 경찰에 출두해서 사고 조서를 받게 된다. 검찰 송치는 당연한 절차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절차고 무혐의 또는 기소유예로 사건은 일단락된다.

재판에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는지 그 여부는, 피해자의 사회적 위치 소위 끗발(?)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기관사-차장, 열차승무원들은 집단적 경험으로 이렇게 알게 되었다. 형사 재판 또한 민사 재판의 선행 절차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2호선 당산역에서 두 사람이 선로로 떨어졌다. 열차가 진입해 들어오자 한 사람이 피하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이 못 가게 뒤에서 잡았고, 둘 다 열차에 치여 죽었다. 목격자 진술에 의하면 승강장에서 심하게 다투었다고 했다.

3호선 녹번역에서 두 건의 사상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들어오는 열차에 사람이 뛰어들어 치여 죽었다. 근무를 하고 있던 신입 역무원이 시신을 수습했다. 사망자의 모습을 확인하고 수습을 하고 참혹한 시신의 사진을 찍어 상황보고를 해야 했다. 영업을 종료하면 역사 및 승강장 형광등을 소등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 역무원은 무서워서 불을 못 껐다고 한다. 얼마 뒤 그 신입 역무원은 또 사상사고를 수습해야만 했다. 공교롭게도 그해 발생한 녹번역 두 건의 사상사고는 그 신입 역무원이 근무하던 시간에 발생했다.

또 2호선 당산역에서, 열차가 승강장 첫머리로 막 진입해 들어오자, 어떤 사람이 열차를 향해 점프를 했다. 기관사는 본능적으로 비상제동을 체결했다. 운전실 기관사 코앞까지 쑥 들어왔던 머리가, 다시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 기관사는 사고를 당한 당산역에서 합정역을 거쳐 홍대입구역까지 열차를 운전하고, 운전대를 바꿔 유치선까지 다시 운전했다. ‘신정승무사업소’ 대기조 기관사가 홍대입구역 유치선으로 출동했다. 사망자는 몽골에서 온 노동자였다.

대기조 기관사가 사고열차 운전실에 들어갔다. 기관사 운전실 전면 유리가 농구공만한 크기와 모양으로 구멍이 나 있었다. 유리 파편들이 계기판과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사고를 당한 그 기관사는 객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근무복 잠바 상의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고, 유리 파편 부스러기가 눈에 들어간 듯 눈을 제대로 못 뜨고 있었다. 그는 정신적 충격을 받고 공황 상태에 빠져있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2호선 교대역에서 강남역 구간 승강장이 아닌 터널 내 선로에서 한 사람이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그 때 기관사는 사람을 발견하고 즉시 비상제동을 체결하였으나, 제동거리가 불가피하게 있으므로 그 전에 열차가 서지 못했다. 나중에 사망자는 취객으로 밝혀졌다.

유족이 서울지하철공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다. 3번의 현장 검증이 실시되었다. 영업 운전을 마친 심야 시간대 그 사망 장소에서의 현장 검증이었다. 검찰에서는 기관사를 상대로 불구속기소했다. 재판 기간은 3년이 걸렸다. 당시에 승무원 동료들은 그런 상황 전개에 대해 몹시 분개했다. 사망자의 집안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다고 소문이 났다.

현장검증을 세 번이나 하고,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재판정에 출두해야 하는 기관사의 심정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차량과 차량 사이에 있는 사다리. 차량 지붕으로 올라가는 용도임.

1994년 2월, 4호선 동작역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 술에 취한 승객이 차량과 차량 사이에 있는 사다리 손잡이를 잡고, 다음역인 이수역까지 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열차가 출발하고 승강장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승강장 연단에, 승객 엉덩이 부분이 접촉돼 쓸려 나간 사고였다. 다행히 그 승객은 손을 놓지 않았지만, 뼈가 허옇게 드러날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동작승무사업소 승무원들 사이에, “승객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뜻으로 한동안 구사일생, 구사일생이라고 회자되기도 하였다.

당시 노동조합 상황은, 문민정부 초기라는 호재 속에, 어용 집행부를 몰아내고 임·단협을 체결, 최초로 해고자 복직을 성사시켰으나, 복직 방식을 가지고 내부 분란이 일어나고 있던 때였다. 노동조합 전체가 사당동 본사농성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경찰이 이례적으로 두 번째로 출두 요구하였고 조서를 받던 당해 열차 차장이 덜컥 구속되었다. 본사에서 농성하고 있는 소속 지회장에게, 현장에서 급하게 찾아와 위급한 상황을 알렸다.

중상을 입은 승객의 친동생이 ‘검사’, 사촌 동생은 ‘모 일간지 기자’라고 한다. 상황이 마무리되고 난 후에 공사 경영진이 노조 간부에게 하소연한 말이다.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된 차장은, 4호선 동작승무지회 조합원이다. 노조(승무지부)에 노사합의사항에 대한 노조 내부 이견과 행동전개라는 ‘내우’에 이어 ‘외환’이 닥쳐오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조합원이 업무중에 일어난 사고로 구속, 기소된 것이다.

노조(승무지부) 지도부는 ‘현장투쟁으로 전환한다’고 내, 외부에 선언했다. 본사 농성장에서 철수하는 한편, 구속 조합원 소속인 동작승무지회에 상황실을 차렸다. 노조 중앙의 지원과 지지가 있었다. ‘외환’이라는 위기를 잘 돌파하여야 ‘내우’까지 해소할 수 있는 비상한 상황이었다. (계속)

필자소개
서울교통공사 기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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