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장집 “의원정수 확대해야,
    청와대 기구 확장에 비해 의회 왜소화“
    한국 정치지형, 온건한 다당제 위해 비례대표제의 제한적 확대 필요 강조
        2018년 11월 28일 08: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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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최장집 전 고려대 정치학과 명예교수가 비대화된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위해 의원정수 확대해 의회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장집 전 교수는 28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정개특위 자문위원 간담회에서 “민주헌법을 충실하게 지킨다고 할 때 한국 민주주의의 요체는 의회를 강화하는 것에 모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의원 정수는 국회의원 1인당 국민 수는 17만 명 이상이다. OECD국가 평균은 10만 명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포함하여 여러 국가들에 비해 적은 수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국회의원 1인당 대표하는 국민 수가 우리보다 많지만 이들 나라는 우리와 다른 양원제와 연방제를 택하고 있다.

    최 전 교수는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의 국회의원 수를 350~60명 수준으로 늘린다 해도 전혀 그 대표성이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행 헌법은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고, 공직선거법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합해 300명으로 정하고 있다. 처음으로 의원정수를 규정한 1948년, 인구가 2천만 명이었을 당시 의원정수는 200명이었다. 현재는 5천만 명으로 늘었지만 의원정수는 100명밖에 늘지 않았다.

    최 전 교수는 “대통령의 오피스인 청와대의 예산, 인력, 기구의 확장 등 그 규모는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돼 오늘에 이르러 국가권력의 정점에서 엄청나게 팽창한 집행부의 행정관료 체제를 통괄, 지휘하고 있다”며 “그러는 동안 국회의원의 수는 제자리걸음”이라고 짚었다.

    특히 최 교수는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 의원의 왜소화가 과거 왕조적 전통, 분단과 전쟁, 남북 간 군사적 적대관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가 과거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대통령 권력이 비대화함에 따라 의회의 역할과 권력이 왜소해지면서 삼권분립의 뚜렷한 약화를 가져왔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과 민주주의의 대표 기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의원수를 350~60명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의원정수를 확대하되 지역구 의원수를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 의원수를 증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비례대표 의원 수는 47명으로 전체 국회의원 수의 16%에 불과하다.

    정개특위 간담회 모습(방송화면 캡처)

    정책 생산의 효율성 생산성 가치 중시한다면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가 더 우월하다고 믿는 거와 같아

    일부 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국민이 의원정수 확대에 부정적이다. 국회에 대한 강한 불신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거대양당은 국회 불신으로 인한 의원정수확대 반대 여론을 핑계 삼아 그 논의조차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최 전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예산만 잡아먹고 일하지 않는 국회의 규모를 줄여 의원수를 2백 명으로 하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내려놓거나 줄여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면서 “만약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해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한 발상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효율성, 생산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책의 산출(output) 측면에 있다고 믿는 결과”라며 “그는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가 훨씬 더 우월한 체제라고 믿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민주주의의 본질은 사회의 다원적 요구와 열망, 가치와 열정을 정치과정을 통해 지지와 결정의 채널 속으로 연결하는 투입 (input) 측면에 있다”며 “정당이 하는 역할은 다수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여러 종류의 이슈들을 묶어 조정해서 다수를 형성하고, 다수의 지지를 끌어내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투표, 주민투표 등과 같이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것은 바로 포퓰리즘에 이르는 길”이라며 “그러한 방식으로 결정된 법은 그 법안이 목적으로 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 다른 부문에서 부정적 결과가 발생하는 사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책임성 문제를 지적했다.

    최 전 교수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더 넓은 다수의 복리, 다수의 이익과 의사에 복무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면 현 시점에서 의회기능을 활성화하고 시민들이 선출하는 대표의 수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거듭 의원정수 확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온건한 다당제 위해 비례대표제의 제한적 확대 필요

    아울러 최 전 교수는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 ‘온건한 비례대표제 수용’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비례성을 확대하는 비례대표 제도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전 교수는 “소선거구제의 가장 큰 장점은 민주주의의 두 원칙, 대표와 책임 가운데 책임을 분명히 물을 수 있다. 이 점은 한국제도의 큰 장점이고, 그동안 민주화를 만들어온 힘”이라면서, 의회 중심제를 취하는 비례대표제의 경우 “책임보다는 대표성을 확대하는 장점을 갖는다”며 “사회의 균열과 갈등, 사회의 다원적 이익과 의사를 대표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대표성을 구현하는데 분명히 우월하다”고 설명했다. 정치인의 책임을 묻는 소선거구제와 비대화된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의회중심제를 동시에 취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 전 교수는 양당체제의 폐해 극복, 한국 정치의 협소한 대표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현 정부의 형태가 대통령중심제인 만큼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그에 상응하도록 제도 개혁의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전 교수는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면서 흔히 의회중심제에서 나타나는 급진적인 다당제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제약을 염두에 두고 개혁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처럼 다당화를 통해 실현한다고 할 때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는 우리나라에선) 그 효과에 대해 많은 의문점들이 제기된다”면서도 “그러나 어느 정도의 다당화는 필요하다. 따라서 어떤 방식의 선거제도 개혁이냐에 대한 나의 해답은 온건한 다당제를 바라면서 비례대표제를 제한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사적 기본축이었던 한국의 양당 체제,
    다원적 사회구조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조직하는 것 억압

    아울러 최 전 교수는 불비례성이 강한 현행 선거제도가 만들어낸 양당체제가 다원적인 사회구조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의 정당체제는 대표적인 두 개의 역사적, 정치적 균열축, 즉 민족문제와 성장이냐 분배냐를 둘러싼 것으로 기본적으로 양당체제를 지배적인 형태였다”며 “(이러한 양당체제는) 다원적인 사회구조를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조직하는 것은 억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촛불시위 이후 한국사회에서 비례대표제에 대한 개혁요구가 커지는 것은 정당하다”고 덧붙였다.

    최 전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마찬가지로 양당체제 역시 과거의 산물이라고 해석했다. “보수-진보, 좌-우의 균열을 대표해온 양당체제의 조건들, 특히 탈냉전이라는 환경변화는 양당제를 떠받쳐온 기반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양당체제가 정치적 의사결정의 비효율성을 가져온다는 점에 대한 지적도 나왔는데, 가치관이남 이념, 노선의 차이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단지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최 전 교수는 비판했다.

    그는 “한국의 양당제는 상대에 대해 가장 강력한 비토 플레이어 (veto player)다. 이러한 정당의 행태는 국회의 의사결정에서 매우 자주 ‘교착상황’을 만들어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한국의 보수, 진보 정당은 뚜렷하게 보수-진보, 좌-우 하는 식으로 이념적 상극성을 갖지만 그것은 실제의 정책 내용의 측면에서 실체적 차이를 별로 보여주지 못한다. (거대양당의 싸움은) 대통령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여론의 부침을 따라 움직이는 투쟁일 뿐”이라며 “이들이 정부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의 이념과 가치, 행태와 담론이 다른데. 그 차이는 그들의 정치적 위치,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다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의 이러한 행태가 현재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은 수행하지만, 비판자가 얼마나 자신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대안, 비전, 플랫폼을 통해 정치할 것인가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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