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와 불교의 퓨전 제문(祭文)
[역사의 한 페이지] 태건, 형수의 극락왕생을 빌다
    2018년 11월 28일 10: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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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 글 [역사의 한 페이지] 6.25전쟁과 고지전의 비극

# 어느 절의 극락보전 앞 고애신과 그 절집 보살의 대화 장면

애신, 영어로 미국 선교사인 ‘Joseph Stenson’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내민다.
보살 : 이것이 무엇입니까? 애기씨.
고애신 : 어느 미국인의 이름일세. 내 이 이를 위해 초를 밝혀주고 싶은데…
(돈주머니를 내밀며) 장례일이 오늘이야.
보살 : 예. 그리 하겠습니다.
고애신 : 헌데…이 이는 하나님을 믿는 분이긴 한데…
보살 :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기 계시는 분들이야 서로 잘 알고 지내시겠지요. 부처님께서 하나님 품으로 잘 인도해주실 겁니다.
고애신 : 허면..부탁하네.
보살 : 예..애기씨..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방송화면 캡처

문화도 생명과 같아서 태어나고 성장, 변화하고 소멸한다. 고정 불변의 문화는 없다. 또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고 내용이 풍부해진다. 문화 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융합될 수 없는 것조차 사람들은 자기의 편리에 맞게 섞어 쓰고, 고쳐 써 왔다. 그러면서 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나간다. 애당초 순수한 문화라는 것이 존재할 수나 있는지 모르겠다. 종주국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문화를 사용하는 자들이 자기 입맛에 맞추어 사용하면 또한 그들이 그 문화의 주인이 된다.

불교는 인도에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불교는 태국과 중국, 한국, 일본 등에 수용되어 자기 입맛에 맞게 변형되고 자기 특색에 맞는 개성적인 태국식 불교, 중국식 불교, 한국식 불교, 일본식 불교로 변형되었다. 인도는 불교의 발상지이자 석가모니의 나라이지만, 현재 인도의 불교 신자는 전체 인구의 1% 이하에 불과하다.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이지 더 이상 불교의 나라는 아닌 것이다.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김치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보자. 다음은 최근의 신문 기사이다.

“일본 지바(千葉)현 나리타에 있는 김치공장 ‘미야마(美山)’. 자동화한 8개의 김치 생산라인에서 유산균과 비타민, 고춧가루 등을 각각 다르게 양념한 김치가 일렬로 쏟아져 나와 자동포장되고 있었다. 배추김치만 연간 2만1000t을 만드는 이 공장은 일본 내 1위 김치 브랜드이자 회사인 ‘이치오시’가 자랑하는 곳이다. 오야마 하지메(大山 一) 대표를 만나 1위 비결을 묻자 “유산균과 낫토, 치즈 등을 가미해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만드는 기술력”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이 회사가 김치 1위 브랜드에 오른 건 자체 기술로 개발한 ‘LB27’이란 유산균을 200g짜리 한 박스에 870억 개씩 넣은 ‘이치오시’를 출시하면서다. 이치오시는 한국·중국·일본 고추를 각각 양을 조절해 사용해서 매운 정도가 다양하다. 또 단맛을 선호하는 젊은 소비자 입맛에 맞게 감과 사과 등에서 추출한 당분으로 단맛 수위를 제품별로 조절한다. 시장에 내놓는 종류는 21가지나 된다. 오야마 사장은 “일본에서 몇 년 전까진 한국산이 많이 팔렸지만 이젠 일본산 김치가 대세”라며 “내년엔 젊은 입맛에 맞춘 김치를 들고 한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중앙일보, 2018년 11월 5일 기사

일본 김치회사 이치오시가 개발한 낫토 김치, 치즈 김치 등은 일본이 새롭게 변형시킨 김치이다. 그렇다면 이 김치는 어느 나라 김치인가? 한국 음식인가? 일본 음식인가? 문화는 처음 만든 자의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또한 변형시켜 사용하는 자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김치들을 한국 김치라고 고집할 수 없다. 마치 한국 불교를 인도 불교와 동일시할 수 없는 것처럼.

짜장면, 태권도, 라면 속의 문화 융합

이런 사례들이 어디 한두 가지뿐이겠는가? 말 나온 김에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례 몇 가지를 더 살펴보자.

먼저 짜장면이다. 이 짜장면은 한국 음식인가? 중국 음식인가? 이 음식의 족보는 ‘Made in Korea’이다. 1890년대 중국 산둥 지방에서 건너 온 하역 인부들이 부둣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려고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던 음식으로 출발한 것이 짜장면이다. 이후 짜장면을 만들어 파는 음식점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 최초가 1905년에 문을 연 공화춘이다. 이후 이 짜장면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짜장면은 한국 문화 속에서나 의미를 가지지 중국의 음식 문화로 보기에는 어색하다.

다음, 태권도를 보자. 태권도를 먼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 무술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태권도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태권도는 해방 직후 남한의 국군 장성인 최홍희를 중심으로 당시 여러 무술인들이 가라테, 중국무술 등을 종합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손기술 위주인 가라데를 주로 참고하였으나 발기술 위주로 무술을 새롭게 재편한 것이다. 태권도(跆拳道)라는 명칭은 1955년 명칭 제정 위원회에서 택견을 한자로 음차하면서 발차기(跆)와 주먹지르기(拳)의 뜻을 붙여서 지어졌다. 한때 태수도(跆手道)라고 이름을 바꿨다가 다시 태권도로 돌아왔다.

[사진] 태권도는 1950년대 일본의 가라데를 바탕으로 발차기 기술을 도입하여 새로 만든 무술이다. 최홍희가 창시자이다. 그렇다고 하여 태권도가 한국 무술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면은 어떤가? 원래 라면은 중국인이 먹던 납면(拉麵)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그런 형태의 라면을 발명한 사람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에서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로, 그는 미군 구호품인 밀가루를 이용해 국수를 만들어 기름에 튀겨 국수 안의 수분을 증발시킨 후 이후 조리할 때 뜨거운 물에 넣어 끓여 먹는 새로운 식품으로 고안해 낸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먹는 라면은 일본이 발명한 그 라면이 아니라 완전히 한국적으로 진화시킨 라면이다. 라면의 면은 비슷하지만 스프는 완전히 다르다. 수십 가지의 재료를 배합해 만든 한국의 스프는 완전히 한국식이다. 그러므로 한국 라면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진화한 것이다. 이런 한국식 라면은 세계 100여개 이상의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한국은 라면 강국이다. 라면 종주국인 일본에서도 신라면과 같은 한국 라면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라면 하나에도 중국, 일본, 한국의 문화가 융합되어 있는 것이다.

종교에서 나타나는 융합

종교 역시 문화의 한 영역을 차지한다. 종교는 기반하고 있는 세계관들이 많이 다르므로 배타성을 띄기 쉽지만, 종교들 간에도 수없이 많은 융합과 교배가 이루어진다. 물론 다른 영역에 비해서는 그 융합이 매우 느리고 매우 부분적인 것이긴 하지만 종교 역시 사람들이 만들고 향유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사람들 입장에서 좋은 것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종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종교 수행자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종교는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인 경우가 많다. 특히 기복적 신앙이 발달한 한국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사진]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칠성각으로, 불교와 민간 신앙의 융합을 보여준다. 사진은 1962년 대구 화장사의 칠성각 앞에서 학생들이 찍은 기념사진이다. ‘七星閣’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박건호 수집사진)

한국의 불교 사찰들을 통해 이 종교 융합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서 불교와 토속 민간 신앙이 융합된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절의 제일 뒤편에 배치되는 산신각, 삼신당, 칠성각 같은 것은 기존 불교가 토속 신앙을 어떻게 융합 포용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융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어떤 절에서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에서 밀양 표충사(表忠寺)는 매우 흥미로운 사찰이다. 이 절의 원래 이름은 영정사(靈井寺)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절 안에는 유교적 공간인 표충서원(表忠書院)이 있다. 왜 불교 사찰 안에 유교적 교육·제사 공간인 서원이 자리 잡고 있을까?

표충서원(表忠書院)은 본래 표충사(表忠祠)라고 불렀는데,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위해 싸웠던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 등을 제사 지내기 위한 시설로 광해군 때에 밀양군 무안면 중산리에 창건되었다. 그러다가 이후 현종 때에 예조의 승인을 얻어 위치를 영정사 경내로 옮기고 편액을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 고쳐 걸었고, 이 때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불교 사찰에 유교 공간이 결합될 수 있었던 것은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이 보여주었던 승병장으로서의 ‘충(忠)’의 메시지가 유교에서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절 이름도 그러하거니와 절의 구조도 유교와 불교가 특이하게 결합된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사진] 밀양 표충사는 대광전 중심의 불교 공간과 표충서원 중심의 유교 공간이 결합된 특이한 구조를 가진 사찰이다. 이 고장 출신의 사명대사가 승병 활동을 통해 드러낸 ‘충’의 의미가 유교에서 중시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이런 융합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의 왼쪽 건물이 표충서원(表忠書院)이고 오른쪽 건물이 표충사(表忠祠)이다. (박건호 사진)

나무아미타불 애제 상향 나무아미타불

‘문화 융합’이니 ‘종교 융합’이니 이렇게 긴 사설을 늘어놓은 이유는 내가 수집해 소장하고 있는 한 편의 제문 때문이다. 가로 53cm, 세로 30cm의 한지에 붓으로 쓴 제문이다. 한글로 되어있는데 ‘태건’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기사년에 그의 형수를 위해 쓴 제문이다. 종이의 재질이나 한글의 문법, 용어들을 종합해보건대 일제 강점기인 1929년으로 추정된다. 이 제문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한 것은 제일 마지막 문장이 던져주는 강렬한 느낌 때문이었다.

“나무아미타불 애제 상향 나무아미타불”

이 문장이 상징하듯 이 제문에는 유교와 불교적 세계관이 절묘하게 융합되어 있었다.

이 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세차 기사 시월 계해삭 이십육일 무자 형수 유인(孺人) 광주 안씨 중상지일야라.

전일 석(夕) 무자 시동생 태건은 단향일배로 영좌전에 재배 곡고우하나이다.

오호라! 광음과 일월은 여전한대 인생과 세월은 흘러 어언간 주상이라.

인간세상 무상함과 헛되고 허탈함은 어찌 다 기록하리요.

인후하신 우리 형수 출가종부 옛 법 따라 우리 집에 오신 지가 오십 성상 상시하솔 희로애락 칭칭시하 지극효성 모범되고 봉제사 접빈객이 출중하여 가문이 빛이 나고 가정화합하고 대소가 화목함은 형수님의 덕분이라. 고진감래 아니릿가.

불민한 시동생을 보살펴주신 은공 어찌 다 잊으리까.

생전에 못다함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사오며 면목도 없나이다.”

[사진] 태건이 형수를 위해 쓴 한글 제문이다. 가로 53cm, 세로 30cm 크기. (1929년 추정, 박건호 소장)

이 제문의 전체 내용을 토대로 추정컨대 태건의 형수는 광주 안씨로 그녀는 시집 온 이래로 ‘봉제사 접빈객’이라는 며느리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먼저 죽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남편이 제문을 썼을 것이다. 광주 안씨는 슬하에 3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1927년 정월에 아들 철동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요절하는 고통을 겪었고 그 때문인지 갑자기 병이 들어 2년 뒤인 1929년 10월 희수(70세)를 채우지 못하고 아들이 있는 세상으로 떠난 것이다.

안씨가 병으로 죽자 태건은 이 형수를 위해 비통한 마음을 담아 정성껏 제문을 지었다. 그런데 그의 형수 안씨는 평소 불심이 매우 돈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건이 지은 제문의 형식은 유교식인데 그 내용에는 불교적 내용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유교적 제사 프레임 속에 불교적 내용을 담아 제문을 지은 셈인데 흥미로운 종교 융합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점이 융합인지를 살펴보자.

원래 유교와 불교는 생사관이 많이 다르다.

먼저 유교는 죽은 이의 시신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으로 함부로 훼손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매장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불교는 긴 윤회의 흐름 속에서 이 육신은 잠시 영혼을 담는 그릇일 뿐, 죽으면 영혼이 빨리 다른 육신의 옷을 입어야 되므로 화장을 해서 육신을 태워줘야 한다. 이런 불교에 대해 유교에서는 “감히 부모의 시신을 태우다니”라며 크게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또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위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에 남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백이 묻혀있는 묘(墓)도 정성스럽게 관리해야 하고, 혼이 깃드는 나무패(신주)를 모신 사당도 따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매년 제삿날이 되면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내는 행사를 통해 후손들이 조상을 만나 뵙고 인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따로 죽은 자에게 제사 지내는 풍습이 없었다.

장례도 비교해보자. 먼저 유교에서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상을 치른다. 즉 3년이 지나야 완전히 탈상(脫喪)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는 원래 49일로 모든 상장례가 끝이 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불교의 사후 세계관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육도 중의 어디에 업보를 받아야 할지 중음신(中陰身)으로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49일째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평생 쌓은 공덕과 죄악을 보고 49일째에 지옥이든 극락이든 가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때 불교에서는 49재를 지낸다.

그런데 여기서 쓰는 한자가 제사를 의미하는 ‘제(祭)’가 아니라 ‘재(齋)’라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 유교의 제사는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이나 그 대상자의 영혼을 불러내어 그에게 음식을 올리고 위로하는 의식의 성격이 강하다. 제문의 마지막이 ‘상향(尙饗)’으로 끝나는 의미는 거기에 있다. 상향은 제사 대상이 되는 영혼에게 “차린 제사 음식을 흠향하시기를 바랍니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교의 재(齋)는 베푼다는 의미를 가진다. 즉 죽은 망자를 위해 남아있는 유족들이 음식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골고루 베풀면서 망자를 대신하여 참회와 속죄를 하고, 부처님을 기쁘게 함으로써 망자가 좋은 데 가도록 해달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재의 대상이 망자가 아니라 부처님이다. 그래서 49재에서는 “부처님께 아룁니다”로 시작하는 불소(佛訴)를 읽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규정하는 생사관이 전혀 다르다고 해도, 실제 망자를 보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종교나 신에 상관없이 그냥 망자가 무조건 좋은 데 가기를 바랄 뿐인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종교 간의 융합이 일어나는 것이다. 절에 삼신당이 자리 잡게 된 것도 그런 의미인 것이다. 아기를 점지해주는 것이 부처님이든 삼신할머니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아들을 낳게 된다면 바위든, 부처님이든, 삼신할머니든 무엇이든 빌고 싶은 것이 사람의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태건도 그러하였다.

그는 죽은 형수를 위해 유교적 의식으로 제사를 지내면서, 평소 형수가 믿었던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에 형수가 가서 거기서 요절한 조카와 만나기를 빌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불교 냄새가 물씬 나는 유교 제문을 지어 읽었던 것이다. 앞에서 잠깐 봤던 제문 앞부분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이다.

“오호 애재라!

인생은 무상이라. 영웅호걸도 천명은 있아옵고 성현 신선도 장생불사 못하나니 하물며 초로 인생 장생불사 바라리까. 신체는 쇠약해도 마음만은 강정해서 백세상수 바랐으나 희수도 못하시고 간간이 볼 적마다 장수하시기를 부탁하고 마음속에 빌었으나 허사가 되고 보니 헛된 심정 어디서 설화하리. 조상님의 음덕 형수님의 지성으로 질아(姪兒) 삼남매 장중에 보옥이요 기린같이 성장하여 요조숙녀 작배되어 백년대계 초석되고 가신도 윤산되며 현철한 자부들과 옥반에 구슬같은 손자손녀 형성하며 자황자미 진진하니 금상첨화 아니릿가. 조물주가 시기튼가 호사가 다마런가. 가운이 쇠진하여 정묘년 정월달에 질아 철동 요사(夭死)하니 일월이 무광하고 청천에 벽력이라. 내 마음 이러한대 형수님은 오직하리. 놀란 마음병이 되어 백약이 무효로다. 희춘을 못하시니 억울하고 분한 마음 어디다 비하리오. 극락세계 드실 적에 모자상봉 하시거든 생전과 다름없이 인자하신 자애로서 요사함을 꾸중 말고 앞세우고 아미타불 설법 받고 황금누각 연화대에 영생불멸하옵소서.

후세 인연 있사오면 극락에서 다시 만나 서러운 소회하오리다. 아미타불 원력으로 가정이 창명하고 액운을 소멸시켜 주시옵기 발원하오며 생전 정을 생각하니 눈물이 가로막고 지필이 부족이라. 정곡을 못다 하고 술 한 잔 가득 부어 두손 모아 드리오니 생전 아렴(?) 계시거든 갑읍하옵소서. 영롱한 촛불도 희미하게 빛이 없고 향연만 그윽하고 성음이 없사오니 허황하고 한심하다.

나무아미타불 애제 상향 나무아미타불”

[사진] 태건이 형수를 위해 쓴 제문의 마지막 부분. 이 제문은 ‘영롱한 촛불도 희미하게 빛이 없고 향연만 그윽하고 성음이 없사오니 허황하고 한심하다. 나무아미타불 애제 상향 나무아미타불’로 끝나고 있다.

‘극락세계’, ‘아미타불 설법’, ‘연화대’, ‘아미타불 원력’ 등의 표현도 흥미롭지만, 이 제문의 압권은 역시 제일 마지막 대목이다.

“나무아미타불 애재 상향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哀哉 尙饗 南無阿彌陀佛)

‘유세차(維歲次)’로 시작해서 ‘상향(尙饗)’으로 끝나는 유교적 제문의 형식을 지키기 위해서 태건은 제일 마지막 부분에 ‘상향’을 쓰긴 썼지만, 평소 불교를 믿었고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돈독했던 형수를 위해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불교적 염원을 거기에 얹어 놓았다. 그는 유교적 형식의 제사를 지내면서도 간절히 형수를 위해 “나무아미타불”을 외면 아미타불이 형수를 극락왕생케 해주실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절집 보살이 죽은 기독교 선교사를 위해 절에서 촛불을 켜고 잘 빌어주면 “부처님께서 하나님 품으로 잘 인도해주실 것”이라고 말한 내용과 그 맥락이 동일한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애재 상향 나무아미타불”

이론적으로는 양립 불가한 두 종교의 생사관이 이 하나의 문장 속에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나는 이를 통해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교리보다는 인간이,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되고 간절한 마음은 그 어떤 것에 앞선다는 것을……

필자소개
박건호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강남대성학원의 역사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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