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여성노동자
‘미투’ 운동이 시작될 때
[번역] 공단지역은 ‘반성폭력 운동’의 불꽃으로 크게 불타올라야
    2018년 11월 27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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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투떠우공사(土逗公社)가 지난 8월 6일 인터넷 상에 공개했던 글 “女工米兔进行时:让反性骚扰这场大火,在工业区里越烧越旺”을 번역한 것이다. 투떠우공사는 중국에서 지난 수년간 활동해온 매체다. 노동자운동과 여성주의운동 등 사회운동에 주된 관심을 갖고, 대중문화 비평도 활발히 한다. 종종 서구권 좌파 매체들의 글들을 소개하거나, 저명한 정치철학자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고,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이 글이 올라오자, 투떠우공사의 웨이신 계정은 당국에 의해 폭파됐다. 이와 함께 ‘샤오메이리(削美丽)’의 계정 역시 이 글을 옮겨 실자마자 폭파됐다. 당일 두 계정의 페이지 상에는 법률법규 위반으로 계정 사용이 정지됐다는 메시지만 보일 뿐 그간의 콘텐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투떠우공사는 다시 계정을 만들고 매체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미투 운동’의 촉발을 촉구하고, 그 방향성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켜봐야 한다. 중국에서 한국의 ‘미투 운동’을 보는 시선은 막대한 집회 참가 인원 등으로 대표되는 등 선망의 시선이 가득한 것 같다. 하지만 정보가 제한적이고 우리 내부의 여러 논쟁과 쟁점에 대해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인 교류가 필요해 보인다. 볼드 처리된 부분은 원문의 강조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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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떠우공사(土逗公社)(2)

미투(운동)(1)는 이제 보다 넓은 곳,
억압으로 의해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었던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 여성노동자들은 평상시와 같은 난처한 성폭력과 그밖에 성차별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녀들이 당하는 성폭력의 정도는 놀라울 정도로 높고, 이에 맞서 할 수 있는 대항은 지극히 한계가 있다.

2013년, 광동성의 여성노동자 지원단체 두 곳이 각각 공장 여성노동자 성폭력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노동자의 비율이 69.7%와 71.2%에 이르렀다. 설령 70% 정도의 성폭력 피해자가 성폭력에 대한 혐오 정서를 표현했지만,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46.6%의 저항자들이 처리 과정에서 중간에 흐지부지되는 결과를 얻었다. 또, 저항 후 상대방이 다시는 잘못을 범하지 않은 것은 고작 10%를 차지했고, 상대방이 면직처리된 것은 고작 1%에 지나지 않았다.

보다 유감스러운 것은 중국에서 “여성노동자”가 여전히 은폐되어 있다는 점이다. 언제든 성폭력을 마주하게 됐을 때 그녀들은 이미 효과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고, 힘있는 목소리를 낼 통로는 보다 결핍되어 있다.

그녀들은 읽히지 않는다. 연장 근무와 퇴근 후의 가사노동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자기만의 아름다운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쓸 시간이 없다.

그녀들은 들리지 않는다. 완전히 다른 사회교류 관계와 계급적 위치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웨이보(중국의 트위터 형식 SNS)나 웨이신(카카오톡 비슷한 중국의 앱) 상에 ‘#미투’를 외칠 방도가 없다.

그녀들은 고려되지도 않는다. 공장 관리자가 노동자들의 노동을 감시하는 수많은 CCTV의 설치를 바라기 때문에, 조금도 여성노동자 권익을 위해 준비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지엔자오부락(3)

하지만, 사람의 지위가 낮아 그 목소리가 무시될수록 더욱 들어야 할 필요가 있고, 어둡고 구석진 곳일수록 밝게 비추어질 필요가 있다. 대학가에서 #미투의 열기가 나타나고, 언론과 NGO계는 활활 불타오를 때, 성폭력을 겪을 대로 겪은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는 더 큰 관심을 이끌어야 한다. 그녀들의 경험 역시 보다 깊게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미투 운동이 보다 광범위한 곳, 억압자들에 의해 일절의 목소리도 낼 수 없었던 곳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는 4개의 여성노동자 지원단체와 함께 성폭력과 미투운동 등 문제들에 의한 대화를 진행했다. 장기적인 활동 중에 그들은 여성노동자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여성노동자들이 성별 곤경을 접하는 모든 곳에 깊이 들어가 이해하고 고민했다. 우리는 두 발표는 바탕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계급 구획을 뛰어넘어 운동을 주도하길 희망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지금껏 마주하고 있었던 성별 문제와 그녀들의 노동과 삶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말하기’는 목소리를 내는 것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결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 믿고, 미투 운동에 새로운 함의를 더해야 한다. 하나의 운동이 되게 하고, #미투의 의의를 단지 피해자가 개인의 경험을 공개하는 것에 두지 않고, 여성들이 얻는 개체의 각성을 사회구조적인 불평등한 피해자로서의 전체 여성에게 호소해야 한다. 하나의 자각된 총체가 되어, 단결과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지엔자오부락 : 전파를 통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부순다

폭스콘 여성노동자가 공개편지를 들고, 직장성폭력 방지를 위한 시스템의 건립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지엔자오부락)

올해 1월, 선전 폭스콘의 몇몇 여성노동자들은 공장 측을 향해 공개서신을 제출했다. 그녀들은 반성폭력을 위한 제도의 건립과, 전문적으로 성폭력 피해의 고발‧신고를 접수할 수 있는 경로의 설치 등을 요구했다.

그녀들의 요구는 여성노동자 정보 플랫폼인 지엔자오부락에 투고 형식으로 발표됐다. 또한 웨이보 상에도 “女工미투”라는 명의로 60만의 열람, 1천 이상의 공유를 얻어냈다. 인터넷 상의 일반적인 전파 속도와 비교할 때 이는 우리를 대단히 큰 숫자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엔자오부락의 활동가의 눈에 이는 노동자들이 행동해 거대한 돌파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녀들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을 깨부수고 있다. 지엔자오부락의 사업에서 드러난 것은 성폭력이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회피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심각하게 은폐된 문제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한 여성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인터넷 언론으로서, 각 세대와 각 도시에 걸쳐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접촉했다. 오프라인에서 활동해 18세에서 30세 사이의 공장 여성노동자들과 접촉했다. 우리는 2016년부터 오프라인에서 무료 법률 자문을 제공해왔다. 이중 가장 많은 경로는 ‘친구의 소개’였다. 비록 모호한 상황 묘사 때문에 적절한 대안을 내기가 어려웠지만, 일상에서 여성노동자들과 만나면서 우리는 이러한 피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성노동자가 와서 신고를 할 때, 그녀들은 자신이 당해온 성폭력의 경험을 진술한다. 어떤 이는 야간 연장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미행을 당했고, 더는 참을 수 없어 고소를 선택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다른 이에 해를 끼치면 일자릴 잃는다”고 질책했다고 한다. 어떤 이는 면상 앞에서 공정을 가득 울리는 언어폭력을 가하는, “남성 문화”의 공격을 가했다.

여기 한 가지 심각한 인상을 갖게 하는 사례가 있다. 남성 동료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한 여성노동자가 상급자에게 이를 알렸다. 하지만 공장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처리 결과를 내놨다. 사측은 작업장 안에 한 ‘통지서’를 붙였다. “어깨동무를 금지합니다.” 이는 마치 여성노동자가 작디작은 한 번의 승리를 얻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모호하고 우스꽝스러운 말을 쓰는 걸 보면, 오히려 공장이 여성노동자의 처지와 환경을 진정성 있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공장의 반성폭력 제도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사례들은 여성노동자들이 성폭력 사건을 겪게 됐을 때의 대처를 어렵게 하고 있다. 물론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경고하거나 투서를 쓰는 등 각종 대응을 시도해볼 순 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은 그녀들에게 극대한 억압을 조성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성’과 상관있는 화제에 대해 입을 열기를 난처해한다. 만약 성폭력이 상급자로부터 이뤄진 것이라면, 반항하는 순간 훨씬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는 게 현실이다.

예컨대 성폭력은 일상 속에서도 발생할 수 있고, 곁에 있던 남성 친구에 의해 당할 수도 있으며, 혹은 남자친구로부터의 성폭력일 수도 있다. 이는 아마도 모든 여성들이 모두 마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문제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은 종종 목소리를 낼 때, 인터넷 상에서 그녀들에 대한 지지는 매우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자매애’의 역량은 홀시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힘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경시되기도 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은 연결과 목소리를 내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예컨대 올해 폭스콘 여성노동자들의 투서 행동이 있다. 비록 폭스콘 사측은 오늘까지도 여전히 효과적인 조치를 내놓진 않았지만, 이번에 전개된 여성노동자들의 #미투 행동은 적지 않은 미디어의 관심과 보도를 받았다. 이 사건을 거치면서, 여성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 그녀들의 거대한 행동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일정한 정도에서 노동자 의제를 공공의 시야 속으로 가져오게끔 했다.

또한, 대중들이 보지 못한 곳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여성의 생존 공간을 쟁취하는 것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여성노동자들이 모인 곳에서, 우리는 공장의 가부장 문화에 대해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토론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다. 어떤 여성노동자는 남성 엔지니어에 의해 생산라인에서 성희롱을 당했는데, 곁에 있는 동료 노동자들이 이에 목소리를 내고 도왔다. 또 어떤 여성노동자들은 반성폭력의 이념을 알리기 위해, 반성폭력 광고 간판을 등에 지고, 공장 내를 돌아다녔다. 곁에 있던 남성 노동자들은 이를 사진 찍으며 지지하기도 했다.

반성폭력 광고판을 등에 맨 폭스콘 여성노동자 (사진 출처 : 지엔자오부락)

우리는 서로 믿는다. 이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녹색장미 : 복잡한 성차별적 곤경을 직적 마주하다

“우리 작업장 안에 한 모든 사람이 아는 ‘늙은 색귀’가 있었어요. 어떤 여성노동자가 뭔가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자 남자는 곧바로, ‘어제 밤에 내가 너 좀 만졌다고 그러는 거냐.’라고 말했죠. 사람들은 매우 놀랐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말을 꺼내면,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당신은 이미 결혼했잖아.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니 남편을 매일 밤 봐야 하잖아.’”

이는 한 여성노동자가 녹색장미의 활동가에게 진술한 이야기다. 그들은 이와 유사한 사정들을 이미 엄청나게 많이 들어왔다. 녹색장미는 풀뿌리 여성노동자 지원단체다. 그녀들은 지엔자오부락에 비해 평소에 연령대가 높은 여성노동자들을 만난다. 결혼한 지 이미 몇 년이 지나 어린 아이도 있는 노동자들이 아주 많다. 활동가들은 그녀들을 “제제(언니)”라고 부르곤 한다. 이와 같은 여성노동자들은 집 안에서 혼자 여러 일을 맡는 “슈퍼맘”이다. 동네(시구: 거주지역 공동체)에서 풍부한 경험을 했고, 존경받는 ‘큰 언니’인 셈이다. 하지만 나이와 가정의 요소로 인해 그녀들이 성폭력에 맞서 항의하는 행보를 걷기는 어렵기도 하다. 여성노동자들이 당하는 성차별 억압에 대해 녹색장미는 지속적으로 자세한 관찰을 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는 각 업계 다양한 직종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전자공장 여성노동자도 있고, 가사노동을 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들도 있으며, 서비스업 노동자들도 있다.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언니들이 매우 많은데, 그녀들은 한편으로는 집에서 어린 아이를 키우고, 한편으론 집 안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꽃을 자르고(중국에서 집집마다 문 앞에 붙이는 꽃모양 종이를 만드는 일), 지퍼를 끼우는 일을 하며, 인형을 만들고, 솜을 채우는 일도 한다.

이와 같은 여성노동자 절대다수는 모두 갑작스레 성폭력을 당한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남성들이 성적 농담을 하는 현상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특히 컨베이트라인에서 일하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여성들에 대해 남성 동료들은 보다 거칠고 거리낌이 없다. 게다가 공장에서는 여전히 ‘암묵적 관행’이란 게 있다. 일군의 조장, 주임들은 어떤 예쁜 여성을 보게 되면, 바로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나는 이전에 일했던 공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마주쳤던 적들이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한 여성노동자가 임신을 당한 것이었는데, 남자는 그녀에게 승낙을 얻긴 했지만 사실은 단지 그녀를 가지고 논 것일 뿐이었다. 그 후 바로 그녀를 상대하지도 않았고, 그녀를 실성케 했다. 이후 그녀는 자주 공장 입구에서 남자를 기다렸다. 저녁이 돼서도 돌아가지 않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녀와 소통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녀의 배가 부른 것을 봤다. 이는 그녀를 사회적으로 유린한 것이다. 그녀로 하여금 다시 아이를 품게 만든 것이다. 이와 같은 많은 상처를 겪고 난 후, 그녀의 정신적 문제는 끊임없이 악화되고 있다.

공장 바깥에서도, 성폭력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대인(4)에 의한 성폭력이 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노출증 환자가 그렇다.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움직이는 손과 발들도 그렇다. 하지만, 설령 성폭력(성희롱)을 당하더라도, 여성들은 단지 잡담을 나눌 때 말을 꺼내볼 수 있을 뿐, 이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문의해 도움을 찾지 않는다. 가능한 한 여성노동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생존을 구하는 것은 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삶 속의 고난은 실제로 매우 많다. 친정집으로부터 시댁까지, 그녀들은 줄곧 독립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자신을 바쳐왔고, 줄곧 억압받아 왔다. 성폭력을 맞닥뜨렸을 때, 여성들의 심리에는 상처가 생기지만, 생존을 위하 그녀들은 번거롭게 애를 태워야 한다. 성폭력과 같은 일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눌러둘 수밖에 없다.

마침내, 가정폭력이나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서로 비교해보면 성폭력은 매우 ‘가볍게’ 치부되어, 입 밖으로 꺼내고 아무도 듣지 않는다. 하지만, ‘가벼움’은 문제가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단지 생활의 다른 보다 힘든 부분에 의해 가려져 제외되고, 억눌리는 것뿐이다.

녹색장미 사무실에서 책임자 딩리가 여성노동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 : 월간 《GQ》)

그러므로, 만약 여성노동자의 ‘미투’운동을 만들어내야 한다면, 그 과정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관건은 이 주제를 끌어낸 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달려있다. ‘미투’운동 중에서 우리는 연예인들과 대학생들 혹은 각 업계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그녀들의 이야기를 진술하기 시작했음을 봤다. 그것은 대상이 명확한 것이었고, 게다가 모두 일정하게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었으며, 심지어 대중적 인물이기도 했다. 여론의 압력이 그의 일자리나 일상에 대해 많든 적든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여성노동자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대상은 결국 누구인가? 만약 가해자가 한 남성노동자라고 한다면, 그는 스스로 어떠한 사회 지위도 없기 때문에, 여론의 압력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를 굴복시킬 방법이 없고, 그를 제재할 방법은 더욱 없다. 덧붙여, 만약 이 회사에 반성폭력 기제가 없다면, 혹은 신고의 경로가 원활하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공장 안에서 어떻게 반성폭력의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주거지역 안에서 발생한 성폭력에 대해 어디에 책임을 추궁할 것인가? 사구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완전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도적인 것을 건립할 것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반성폭력 시스템은 세우는 것은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직접 겪은 일을 진술한 당사자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곧 좋은 일일까? 꼭 그렇다고 할 순 없다. 특히 공장은 이러한 성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일은 매우 심각한 곳이다. 성폭력이 일단 발생하면, 사람들은 모두 개인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다. 젊은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면, 사람들은 당사자가 너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게 아닌지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또 만약 이미 결혼한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다면,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거나 말장난을 하며 놀리기도 한다.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진술했지만, 오히려 상응하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 했고, 응당 있을만한 지지도 얻지 못했다. 반대로 모든 환경에 의해 공격받았을 뿐이다. 가족들은 창피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비웃을지도 모른다. 당사자에 대한 이러한 국면은 2차 가해이기도 하다.

앞서 알 수 있었듯, 미투 운동은 여성노동자 집단 안에서 호응을 얻어야 하지만, 이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여성노동자의 처지에서 반성폭력은 의의가 없는 걸까? 하지만 우리는 곤란하고 엄중하다는 이유만으로 노력하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사실 필자가 보기에, 여성노동자에 대한 ‘미투’ 사건은 본보기의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일련의 사건은 여성노동자들로 하여금 성폭력은 그녀들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계층, 어떤 사람의 삶 속에서도 모두 존재할 수 있는 것임을 의식하게 한다. 게다가 우리는 사회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태도를 갖고 있고, 그들이 여성을 지탄하지 않고, 성폭력 가해자를 비난하는 걸 본다. 그들로 하여금 법률적 책임을 지우게 할 것을 지적한다.

사업 중, 우리는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이러한 사회 사건에 대해 토론하고 그 배후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해왔다. 또한 무엇이 평등하고 안전한 성인지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여성노동자들은 익명으로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할 수 있다. 자신이 일찍이 당한 상처에 대해 말하면, 설령 잠시간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집단 안에서 지지를 획득할 수 있고, 자신에게 역량이 있음을 찾게 된다.

녹색장미에서 여성노동자들이 함께 연극 “그녀들이 말하다” 감상하고 있다.(사진 : 녹색장미)

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말한다면, 우리는 이야기들을 연극이나 음악으로 만들어 전파하고 싶다. 우리는 이미 연극의 형식을 이용해 여성노동자들의 일생에서 당하는 성차별의 어려움에 대해 강의했고, 쯔리 화재에서 한 여성노동자 영웅의 이야기도 강의했었다. 사람들은 연극과 노래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가 담겼다고 여길 수 있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주류 문화 안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들을 볼 수 있고 토론될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킨다면, 그것은 사실 이미 변화가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녀들에게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우리는 ‘여성노동자 미투’를 호소한다

여성노동자의 성차별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마땅히 성차별 문제가 결코 하나의 ‘진공’의 문제가 아님을 의식해야 한다. 그것은 언제나 계급적이고 민족적이며, 종족 등 기타 사회 문제와 함께 뒤섞여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제야 성차별 문제가 사회의 갖가지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함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서로 다른 여성의 몸에는 각각 다른 표현이 있음을 알게 됐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차별 문제를 단독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또한 동시에, 전면적이고 철저한 해결 역시 어렵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외친다. 계급(억압)과 그밖의 장벽들이 조성한 시야와 행동의 제한을 타파하고, 여성노동자가 성폭력과 다른 성차별 문제에 맞서 행하는 모든 노력에 지지하자.

1. 여성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에서 반성폭력 기제를 세우는 것에 연대하고, 성폭력 행위에 대한 고발 경로와 징벌 조치를 명확히 하자.

2. 여성노동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최저임금 인상, 연장근무 임금 인상, 임신과 출산, 수유 시기의 노동 보호, 사회보험 등 노동권익의 납입금 요구를 지지하자.

3. 일터에 이미 공회가 건립되어 있는 경우 여성노동자 부문을 만들 것에 연대함으로써, 여성노동자의 단결을 촉진하고, 여성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자. 일터에 공회가 없는 경우, 여성노동자들이 공회를 건설할 수 있도록 연대하자.

4.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지지하고, 여성노동자들이 생활과 노동의 문제를 폭로할 수 있도록 여론 공간을 제공하자.

5. 여성노동자와 다른 친구들이 노동자 거주지와 공단, 그리고 그 주변 지역에서 여성노동자 지원단체를 조직하고,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법률과 문화, 건강 등 각 방면에서 지지하고 돕자. 또한 남성에 대한 성차별 교육을 실시하자.

제1회 여성노동자 예술제 – “이야기하게 하자” 폐막식 현장.

이와 함께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에게 앞서 나아가 행동할 것을 호소한다. 진정한 연결의 공간을 만들자고. 서재 안의 지식인들에게 실천 속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한다. 보다 많은 경험과 실험을 인식하고, 사회에 돌려줄 것을. 여성주의자들에게 호소한다. 보다 광범위하게 다른 계급의 여성을 사고하고 인류 문명이 진보 속에서 거대한 작용을 일으킬 것을. 여성노동자 집단이 반드시 자기 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하나의 전면적이고 철저한 여성주의가 요구된다.

덧붙이는 말 : 광범위한 ‘여성노동자’란 전체 여성 직공을 가리키지만, 본문에서 ‘여성노동자’는 좁은 의미를 취했다. 단지 2차 산업 노동(예컨대 공장 제조 가공, 건설현장 등)과 부분적으론 3차 산업 노동(예컨대 가사 서비스, 식당 서비스, 화물운송 등)의 기층 여성노동자들을 가리킬 뿐,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도시 직장 여성과 관리층 여성은 포괄하지 않는다. 국가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2016년 전국 여성 취업인원은 3억 3400만 명이었고, 이는 전국 취업인원 중 43.1%를 차지했다. 그중 성진 단위(인구 20만 이상의 진, 현, 시 등 모든 도시)에서의 여성 취업은 6518만 명이며, 호적과 다른 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9719만 명이다. 이 통계의 추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노동자들은 1억 명 이상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저항은 1억 명에 관한 일이며, 모든 사람에 관한 일인 것이다.

단체 소개

지엔자오부락

지엔자오부락(www.jianjiaobuluo.com)은 기층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플랫폼이다. 노동자들을 위해 각종 권익과 생활 정보를 제공하는데 힘쓰고 있으며, 성차별과 계급 교차의 시각에서 사회를 분석하며, 각종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념을 포장하고, 전략적으로 중국 여성노동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해 알린다.

녹색장미

선전시 녹색장미사회공작복무센터는 2015년 7월에 선전시 민정국에 정식 등록되었으며, 전문적으로 유동여성과 유동아동에게 사회복지를 지원하는 센터다. 녹색장미는 유동여성의 건강과 사회환경 개조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아동 활동이 없는 곳에서 무료로 도서 대여 구역을 운영하고, 또한 다종다양한 취미반, 문예반, 미싱반 등을 운영한다. 능력 제고, 사구 참여, 문예 공연의 방식을 통해 여성 스스로 주도하고 힘을 키우는 걸 실현하며, 사회 역량에 결합해 유동여성과 아동들이 스스로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걸 촉진하고자 한다.

부록 : 표

<각주>

1) 본래 글의 전체 제목엔 ‘중국에서’와 ‘운동’이 없지만, 한국의 맥락상 위와 같이 쓰는 게 맞아 보임.
2) 土逗公社 : 중국 베이징과 광저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회운동 인터넷 매체.
3) 尖椒部落 : 중국의 여성주의 인터넷 매체
4) 二房东 : 빌린 집을 다시 남에게 빌려주어 이익을 얻는 사람. 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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