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살인 미수
        2006년 05월 25일 10: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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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인천 용현동에서 일하다가 다친 한 노동자가 집 화장실에 들어가 식칼로 심장과 배를 찔러 중태에 빠진 사건이 벌어졌다. 일하다가 다쳤기 때문에 산재신청을 하겠다는 그에게 회사는 출근을 강요했고 협박마저 마다하지 않았다. 아픈 노동자는 고장난 부품에 불과한 것인가.

    고뇌하던 그는 산재신청을 냈다가 하루만에 취소하고 그 다음날 자살을 기도했다. 마침 야간근무를 하는 부인이 집에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부인이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회사가 산재 노동자에게 휘두르는 흉기

    회사와 관리자가 그에게 출근을 강요하고 협박한 행위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행위가 아닐까. "도저히 몸이 아파 일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노동자에게 "출근하지 않으면 연월차가 까질 수밖에 없다"는 회사의 반응은 ‘흉기’였다. 회사가 휘두르는 그 흉기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 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2,49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이다. 하루에 7명씩 죽고 있는 것이다. 또 산재환자가 1년에 20여명씩 자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기업살인’이라고 부르는 이 산재사망 사고에 대해 언론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고, 사용자가 구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법원은 벌금 200만원을 물리는 게 전부다.

    인천의 노동자가 자살을 기도한 이틀 후 지충호씨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얼굴을 문구용 칼로 그어 상해를 입혔다. 그의 죄는 법률적으로 ‘상해치상’에 해당한다. 목을 겨냥해 흉기를 휘두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미수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대체적인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언론은 그를 ‘테러범’이라며 온 나라가 뒤집힌 듯이 호들갑을 떨고 있고, 검찰은 이에 부응하듯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으며, 법원도 이를 수용했다.

    지충호 사건의 배후는 ‘썩어빠진 정치’

    지충호 씨의 행위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 행위는 근본적으로 보면 정치인들과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04년 3월 12일 정치인들을 증오하며 국회의사당을 향해 차량을 돌진했던 사람의 심정과 비슷한 행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마치 그가 ‘프로 청부살인업자’인냥 몰아갔다. 연일 배후를 밝히라고 떠들었다. 그의 배후는 ‘썩어빠진 정치’와 전과자들의 삶을 외면하는 사회다. 문제가 있다면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에 대한 경호가 소홀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18일 스스로 심장과 배를 찔러 자살을 기도한 노동자들에 대한 기사는 어느 언론에도 다뤄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에 대한 ‘살인미수’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보수정치인들에 대한 ‘상해치상’에 대해서는 문구용 칼이 아니라 ‘회칼’ 보다 더한 흉기를 들이미는 언론과 보수정치를 바꾸지 않고서는 이 나라 노동자들의 미래는 그저 암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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