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협약으로 FTA돌파해야
    2006년 05월 24일 10: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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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한국의 문화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스크린쿼터 축소 이외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한국과 미국의 FTA 1차 본협상 개시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미 FTA가 한국의 문화예술에 가져올 파장을 진단해보는 토론회가 24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개최됐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실과 한미FTA저지 문화예술공대위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연예술, 만화·캐릭터·애니메이션, 문학, 시각예술, 대중음악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FTA가 문화예술에 미칠 파장이 예상보다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문화부, 문화를 경제의 관점으로만 바라봐

‘자유무역의 파고, 문화로 뛰어넘기’를 주제로 발제를 한 목수정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문화관광부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문화산업 대미 개방에 따른 영향분석>을 언급하면서 “놀라운 것은 문화부가 오로지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영향을 분석했을 뿐 문화주권에 대한 아이디어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화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문화산업의 대미 경쟁력은 매우 취약한 상태이며 한미 FTA를 체결할 경우 인쇄부문을 제외한 전 부문에서 대미무역수지가 큰 폭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집약적 하청 산업인 인쇄분야만 흑자라는 것은 앞으로 한국 문화산업이 컨텐츠 생산기지에서 노동집약적 하청업체로 전락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목 연구원은 말했다.

문화부는 어차피 FTA는 덕보는 종목이 있고 망하는 종목이 있게 마련이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각 분야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는 했지만 최근에 열린 영화계 토론회가 전부였다.

목 연구원은 한미 FTA 체결로 우려되는 가장 큰 손실은 지난해 10월 148개국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문화다양성 협약’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다양성 협약과 한미 FTA 정면 배치

‘문화다양성 협약’은 문화는 통상협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주권국가는 자국 문화 진흥을 위한 문화정책을 시행할 주권을 가진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유네스코 총회에서 통과된 협약이다. 정부는 스스로 이 협약에 동의하고도 4개월도 안 돼 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한미 FTA 협정을 맺겠다고 발표했다.

이 협약의 국회 비준을 앞두고 주무부서인 외교통상부는 사전 검토를 위해 연구용역을 줬는데 최근 연구결과가 나왔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이 연구결과는 상징적인 협약이라며 의미를 축소시키고 있는 외교통상부의 선전과 달리 문화다양성 협약이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 전반에 관해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 포괄적인 국제문서라고 지적하고 있다.

공공문화예술 기관의 구조조정을 통한 문화의 공공서비스 상실도 우려되고 있다. 물론 한미 FTA에 공공기관 민영화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전체 시스템이 미국화된다고 봤을 때 문화복지와 문화 공공서비스의 틀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라고 목 연구원은 지적했다. 미국은 정부 부처 중 문화부가 없는 유일한 나라이며 모든 문화시스템이 민간 혹은 개인의 기부를 통해 굴러가고 있다.

이미 행정자치부는 민영화의 전단계로 책임운영기관제도를 도입했다.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된 국립극장은 김명곤 현 문화부 장관이 극장장으로 있을 때 각종 이벤트를 통해 후원회를 조직하고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았다. 게다가 기획예산처는 공공기관에게 경제적 효율성과 기업운영 마인드를 강제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기본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문화예외 한칠레 FTA 선례 삼아야

현재 문화예술분야는 스크린쿼터 외에 다른 이슈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방송, 언론, 광고 등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측은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독점 폐지 △방송쿼터(영화 25%, 애니메이션 45%, 음악 60% 이상 국내 프로그램 의무화)의 철폐·완화 △외국방송 재송신 관련 규제 철폐·완화 △더빙 및 외국방송 광고 재송출 제한 완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수입추천제 및 공연제한 완화 △지적재산권의 자국 기준으로의 강화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통신부문의 외국인 지분 제한을 없앨 것을 요구하고 있어 미국 거대자본이 통신분야를 통해 방송사 지분에 참여하거나 인수합병을 추진할 수도 있다.

   
 
▲발제를 맡은 목수정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목 연구원은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을 도구로 삼아야 하며 문화산업에 대해 폭넓은 예외를 허용한 한칠레 FTA를 선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문화다양성 협약을 의망의 협약으로 확대생산하기 위해 △문화기본법 제정을 통해 문화생태계와 다양성을 살려나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법제도에 확립 △문화다양성 협약의 조속한 비준 △칸 영화제와 같이 국제적 문화행사를 통해 문화다양성 협정 지지와 문화주권 사수 의지 천명 및 여론 환기 △문화다양성 협약의 전문과 부속서 숙지 및 이에 위배되는 정부 정책에 대한 감시활동 등을 제안했다.

[공연예술 분야] 문화부, 나쁘거나 혹은 무지하거나

공연예술분야를 대표해 토론자로 참석한 이중덕 전국문화예술노동조합 부위원장은 “문화나 예술을 단지 산업규모의 측면에서만 파악해 문제를 축소하거나 경미시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과 고유한 정체성을 파기하는 것이며 국민들의 정신적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라며 “문화를 산업으로만 바라보는 정부는 이를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가 공연예술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 부위원장은 △국공립예술단체의 민영화 또는 붕괴 △공연예술시장의 축소와 양극화 심화가중 △예술교육의 잠식 △미국이 제작한 공연물에 대한 지적재산권 발동으로 전통예술 붕괴 △문화적 정체성 상실 등을 들었다.

이 부위원장은 특히 교육개방으로 인해 현재도 사교육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예술교육이 철저하게 미국의 교육시스템에 잠식되거나 교육인프라 자체가 미국에 의해 구축돼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 분야] “일본이나 유럽으로 떠나야 하나”

두 번째로 토론자로 나온 우리만화연대의 신성식 사무국장은 한미 FTA가 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한국의 만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부흥을 보였다가 일본 만화가 밀려들면서 악재가 터졌고 아이엠에프 위기를 거치며 사실상 붕괴됐다. 이미 회생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정부(콘텐츠진흥원)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 돼버렸다.

신 사무국장은 “만화가들 사이에서는 자유무역협정 이후에도 만화를 그리려면 일본이나 유럽으로 가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유행”이라고 만화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애니메이션은 한국이 세계 3대 제작국이라고 하지만 하청이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7월 방송총량제(1%)가 도입돼 최소한의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의 발판이 마련돼 숨통이 터졌고 문화부의 애니메이션 중장기 발전 전략이 희망으로 여겨졌지만 한미 FTA로 다시 벼락을 맞은 꼴이다.

캐릭터의 경우도 시장의 80~90%를 외국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둘리 외에 마시마로, 뽀로로 등이 나왔지만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문학 분야] “우리말 스크린쿼터제에 대한 공격”

문학 분야를 맡은 송경동 시인(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 부위원장)은 “오늘 토론회 얘기를 듣고 작가회의 내부의 공부하는 사람들, 평론가들에게 참석을 부탁했는데 모두 하는 얘기가 ‘FTA가 문학에 영향이 있어‘라고 묻더라”며 “이는 고민이 부족했다는 증거이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자기자신을 시대의 피뢰침이자 사회역사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메신저로 생각해온 문학인마저도 노동자로 인식하게끔 하는 게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미 FTA는 “한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종속을 강화시키는 을사조약에 버금가는 협정”이라고 못박은 송 시인은 “미국의 압력은 다른 무엇보다 자연스레 유지돼 온 ‘우리말 스크린쿼터제’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모든 문화의 기본권리인 모국어의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규모 영세출판사의 몰락으로 인해 문화의 급격한 보수화, 왜소화가 진행되고 창작인들의 생존환경은 급속도로 약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송 시인은 “한미 FTA는 진보적인 문화예술인들의 시대정신과 감각과 자존심을 무시하고 있다”며 “인류의 보배로운 유산인 진보적인 문화예술의 가치를, 사기가 난무하는 신자유주의 시장바닥에서 지키기 위해, 나의 문학을 지키기 위해 한미 FTA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시각예술 분야] “현재의 생산, 유통, 소비구조부터 바꿔야”

시각예술 분야를 맡은 김윤환 미술인회의 사무처장은 FTA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관심한 미술계의 상황을 전하고 “미술 시장 자체는 문화 분야 중에서 가장 작고 그나마도 작은 파이를 나눠먹는 사람들도 극소수”라며 “그런 면에서 미술가들은 FTA를 상관없는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술시장 중 유일하게 ‘돈이 되는’ 곳은 1년에 7백억 원 규모의 공공미술 시장. 하지만 ‘껌값 시장’(3천억 원)보다 못한 게 현실이다. 그렇게 작은 미술시장도 몇몇 상업화랑, 미술관이 독차지를 하고 있다. 대학으로는 홍대와 서울대가 미술교육 시스템을 독식하고 있다. 또 거기에 매달려 있는 것이 바로 입시미술학원들이다.

김 사무처장은 “미술계는 한미 FTA에 대한 논의를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며 “미술의 생산과 유통, 소비구조를 제대로 잡아가는 것과 한미 FTA에 대한 대응과 함께 다루지 않으면 어렵다”고 말했다.

[음악] SG워너비 40만 장 vs 스위트박스 4만 장이지만…

음악 분야를 맡은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대중음악 분야에서 걱정하는 것은 미국의 일방적 문화침식이 아니라 더 획일화된 우리 음악”이라며 “그래서 일각에서는 FTA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방송부문 음악쪽 쿼터 규정은 가요를 60% 이상 틀도록 하고 있는데 임 씨에 따르면 이미 가요가 90%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을 듣는다고 바로 음반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서 스크린쿼터와 동일하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SM엔터테인먼트와 이효리 소속사인 DSP가 양분을 하고 있는 구조. 임 씨는 “댄스와 발라드가 주도하는 음반시장은 오히려 개방을 통해 다양화될 수 있는 게 슬픈 현실”이라며 “개방을 통해 어메리칸 팝과 락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월드 뮤직도 미국의 배급사를 통해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음반시장은 엄청나게 위축돼 있는 상태다. 1990년대 초 4천억 원(리어카 시장을 합치면 5천억 원) 규모였던 음반시장은 현재 8백억 원 규모로 줄어들었다. 예전엔 1백만 장 이상 팔리는 음반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팔려야 40만 장 수준이다. 지난해 음반판매 1위는 SG워너비로 40만 장을 팔았다.

팝송은 더 현격하게 줄어서 스위트박스가 4만장을 기록한 게 고작이다. 임 씨는 “영화는 외국영화를 많이 보는데 팝송은 왜 안 들을까를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영화는 자막이 나오지만 팝송은 해석을 안 해주니까 그런 것 같다”며 “옛날에는 가사를 몰라도 팝송을 들어야만 고학력이란 느낌을 가졌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솔직하다보니 안 듣는 것”이라고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임 씨는 “그동안 영어가 장사가 됐고, 방송사 PD들조차 가요와 팝송 앨범을 구분을 못할 정도였는데 미국 음악이 많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바뀔 게 그룹 이름”이라며 “모국어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에 공감한다. 음악 자체보다 큰 부분이 정신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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